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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한다면서

Author: 밤이불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10-14 03:45:32

“하나 더 만들어주면 그만할래?”

우리의 아이가 물건도 아니고.

내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었다. 눈을 감으면 아이를 잃던 날이 떠올랐고, 무심코 배 위에 손을 올렸다가 텅 빈 현실을 깨닫곤 했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숨이 막혔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말해봐.”

강현은 합리적인 해결책이라도 제시하는 사람처럼 담담했다.

“돈이 필요해? 아니면 당분간 어디 가서 쉬고 싶어?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돈.

휴식.

그가 내놓은 선택지 어디에도 우리가 잃어버린 아이는 없었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밤도, 아이의 심장 소리를 처음 들었던 순간도, 아직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 작은 배냇저고리도.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돈이나 시간으로 대신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목이 메었다. 강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가 나의 눈물을 지겨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혼인신고를 한 지 고작 2주 뒤의 일이었다.

남편의 성을 따라 바뀐 서류들을 정리하며, 나는 우리가 진짜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애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혼인신고를 마친 뒤부터 강현은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무언가를 물으면 귀찮다는 듯 대답했고, 함께 먹기로 한 저녁은 회사 일정을 핑계로 취소하기 일쑤였다.

ㅡ ‘약속할게요, 연우연 씨.’

ㅡ ‘우리 오래 사랑해요.’

그때의 다정함이 거짓말이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이유를 찾았다.

결혼 준비로 지쳐서. 회사 일이 많아서. 아이를 잃은 충격이 커서.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라면 무엇이든 붙잡았다.

“당신이 힘든 거 알아요. 나도 알아서 참았어요. 당신한테 기대고 싶어도 참았고, 같이 병원에 가 달라고 하고 싶어도 참았어요. 당신도 힘들 테니까…….”

“그럼 계속 참아.”

강현이 잘라 말했다.

“나까지 네 감정 받아 주느라 지칠 이유는 없잖아.”

“미안해요.”

결국 사과한 건 나였다.

“나도 이제 안 울려고 했는데…….”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소파에 놓아둔 재킷을 집어 들었다.

“오늘 늦어. 먼저 자.”

“강현 씨.”

그가 현관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우리, 괜찮아질 수 있겠죠?”

“연우연.”

그가 나를 불렀다.

“결혼까지 했으면 이제 좀 어른스럽게 굴어.”

그는 내게 어른이 되라고 했다. 더는 자신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뜻처럼 들렸다.

***

강현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차린 식탁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함께 먹으려고 준비했는데, 음식은 식어 버렸고 맞은편 의자는 끝내 비어 있었다.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어째서 나는 하루가 다르게 초라해지는 걸까.

“…….”

무심코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나 혼자였다.

그 사실이 다시금 선명해지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 내어 울면 강현이 돌아왔을 때 또 지겨워할까 봐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다음 날 아침, 강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어디에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왜 연락 한 통 없었는지, 내가 잠들지 못하고 기다렸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준비했던 말들이 목구멍 안에서 사라졌다.

“아침은 아직이죠?”

내가 먼저 물었다. 아침이라도 차려 주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질까 싶었다. 밤새 기다렸다는 말도, 연락 한 통 없어서 걱정했다는 말도 삼킨 채였다.

강현은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밖에서.”

“아…….”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커피라도 내려 줄까요?”

강현이 대꾸 대신 소파에 놓인 재킷을 집어 들었다.

“오늘 저녁에 장인어른 뵙기로 한 거 기억하지?”

“네. 어머니도 같이 오시기로 했어요.”

“그럼 당신이 잘 말씀드려. 이번 투자 건은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아버지께 말씀드릴게요.”

내 대답에 강현이 그제야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사랑해.”

그의 말대로,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지켜 온 결혼이, 그토록 간절하게 붙잡고 있던 관계가 전부 잘못된 선택이 되어 버릴테니까.

강현의 회사가 처음 투자를 유치했을 때가 떠올랐다. 직원이라고 해 봐야 열 명 남짓이던 작은 스타트업. 사무실 월세조차 빠듯해 밤늦게까지 사업계획서를 붙들고 있던 그가 안쓰러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었다.

저녁이 되자 친정에서 연락이 왔다.

강현의 회사가 추진하는 신사업은 수익성이 높은 만큼 위험 부담도 컸다. 우림리테일 측은 강현의 회사가 추진하는 신사업에 선뜻 투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성장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아직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데다 초기 투자 규모가 상당했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감수해야 할 손실도 적지 않았다.

우연의 아버지는 사적인 관계와 사업적 판단은 별개라며, 충분한 검토 없이 투자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우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강현에게 연락했다.

“여보, 아버지가 투자 건은 조금 더 검토해 보신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ㅡ “얼마나?”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사업 계획을 다시 확인하고 싶으시대요.”

ㅡ “당신이 잘 말씀드려.”

익숙한 대답이었다.

“나도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아버지도 그룹에서 결정하셔야 하는 일이라…….”

ㅡ “연우연.”

강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강현 씨, 나도 당신 회사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께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 거잖아요.”

ㅡ “말로는 누가 못 해?”

“……뭐라고요?”

ㅡ “정말 내가 잘되길 바랐으면 어떻게든 설득했겠지.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뭐가 있어? 고작 이게 어려워?”

고작.

그 단어가 가슴에 박혔다.

우림리테일과의 첫 협업을 연결한 것도 나였다.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자리를 마련했고, 강현의 사업을 믿어 달라며 가족들을 설득한 것도 나였다.

“나는 지금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ㅡ “또 시작이네.”

내가 바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투자를 성사시키겠다는 약속도, 성공한 남편으로서의 보상도 아니었다. 내가 애쓰고 있다는 걸 알아주기를, 내가 혼자 버티고 있다는 걸 한 번쯤 돌아봐 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강현 씨.”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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