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말해 줘요! 우리 막내가 어디 있는지 말해 달란 말이에요. 제발!”수년 만에 강미진이 하아린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이었다. 이전의 소식들은 늘 안개처럼 실체가 없고 허무했으나 이번은 달랐다. 만약 두 다리를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그녀는 이미 심서정 앞에 무릎이라도 꿇었을 것이다. 하아린을 찾을 수 있다면 무릎을 꿇는 것뿐만 아니라 목숨과 바꾼다 해도 기꺼이 응했을 터였다.강미진은 그저 하아린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하아린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회의실은 방음이 잘 되어 있어 원래대로라면 온채아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어야 했다. 하지만 강미진의 절규 섞인 목소리가 희미하게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온채아는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채아의 심장이 아려왔다. 온채아는 몸을 굽히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통증을 달래려 애썼다.회의실 안, 심서정은 겁에 질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강미진이 한참을 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심서정은 문득 머릿속으로 생각이 스쳤다.‘분명 온채아 짓이야!’지난번 옥 펜던트를 가져갔을 때 똑같이 복제해 둔 게 분명했다. 심서정이 지금 가진 이 펜던트는 진작에 온채아가 바꿔치기한 것이 틀림없었다.심서정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강미진의 무릎에 매달려 눈물을 쏟아냈다. “몰라요. 정말 저는 몰라요...”그녀는 울먹이면서도 지극히 진실해 보이는 목소리로 해명했다. “옥 펜던트는 2년 전쯤 제가 넘어져서 실수로 깨뜨렸어요. 하지만 제 목에 평생 걸려 있던 거라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사람을 시켜 똑같이 복제해 달라고 한 거예요!”심서정의 순발력 있는 대처에 하예원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미진은 몸이 굳은 채 눈물을 흘렸다. 눈동자에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우리 막내 아린이가... 심서정이라고? 그럴 리가!’하도연은 강미진이 충격으로 쓰러질까 걱정되어 한마디 거들었다. “엄마, 막내 어깨 아래쪽에 태점이 있었잖아요
하예원이 손을 뻗자 심서정은 자신만만하게 옥 펜던트를 풀어 건네주었다. 이 옥 펜던트는 과거 심서정이 온채아에게서 직접 빼앗은 것이었다. 틀림없었다.어제 하예원이 옥 펜던트를 빼보라고 하더니 손에 쥐고 자세히 살피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심서정의 신분을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심서정은 입가 근육을 파르르 떨며 속으로 기쁨을 억눌렀다.‘내가 하씨 가문의 귀한 아가씨가 되기만 하면 이제부터 온채아는 내 발밑이야!’‘교통사고 사건도 결국 흐지부지 끝나겠지. 하씨 가문이 자기 핏줄의 몸에 오점을 남길 리 없으니까.’‘온채아, 네가 태어나길 잘 태어나면 뭐 해? 결국 다 내 차지가 됐는데!’심서정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지 못할 때쯤 옥 펜던트를 무심히 훑어본 하도연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옥 펜던트 어디서 난 거예요?”심서정과 하예원 모두 멍해졌다. 하도연이 단번에 꿰뚫어 볼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하예원이 다급히 물었다. “언니, 어디 문제라도 있어?”“문제가 아주 많지.”하도연이 차갑고 엄숙한 표정으로 심서정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말해요. 옥 펜던트 어떻게 손에 넣었어요?”“저는....”심서정은 살면서 여자에게서 이런 기운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겁에 질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는 머리를 쥐어짜 대답했다. “줄곧 저한테 있었어요! 옥 펜던트는 제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제 목에 걸려 있었다고요!”“그래요?”하도연이 비웃으며 그녀를 놓아준 뒤 집안 어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옥 펜던트, 막내가 어릴 때 차고 있던 게 아니에요.”말을 마친 하도연은 강미진의 손에 옥 펜던트를 쥐여주었다. 강미진은 펜던트 안쪽에 새겨진 글자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막내... 우리의 막내 아린이.’강씨 가문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마다 옥 펜던트를 하나씩 받았다. 강미진이 맏이였기에 부모님은 특별히 펜던트에 강의 성씨를 따서 K라는
심서정은 온채아를 향한 증오로 미칠 것만 같았다!‘왜 온채아는 항상 귀인의 도움을 받는 거지?’성유준, 주율천, 이제는 하씨 가문까지. 그것도 하씨 가문 전체가 온채아를 이토록 끔찍이 아끼고 있었다. 만약 온채아가 그 교통사고로 죽기라도 했다면 지금 이렇게 끌려가는 것도 나름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온채아는 멀쩡히 살아있는데 심서정만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생겼으니.경찰은 심서정이 움직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강제로 연행하게 되면 체면이 서지 않으실 텐데요.”겉으로는 엄연히 주씨 가문의 사람이었기에 경찰 쪽에서도 일을 너무 험악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심서정은 하예원이 끝내 나타나지 않자 기대를 접고 넋이 나간 듯 입을 열었다. “지금 따라갈게요.”“잠시만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예원이 어디선가 나타나 강미진의 곁으로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휠체어 손잡이에 놓여 있던 강미진의 손가락이 거세게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서정을 한 번, 하예원을 한 번 쳐다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니?”온채아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예원은 온채아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 중대한 사안이니 관계없는 사람들은 좀 물러나게 하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우리 가족끼리 회의실에 가서 얘기하시죠.”화장실 옆에는 하씨 가문의 회의실이 있었다. 강미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냉정하게 결단을 내렸다.“회의실로 가자.”그리고 집사에게 하선호와 하용건 내외를 모셔 오라고 지시했다.곧 하씨 가문 사람들이 속속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마지막으로 들어가려던 강미진은 우두커니 서 있는 온채아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설명을 해줄게요.”하지만 속으로는 하예원의 말이 그저 고약한 장난이기를 바랐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온채아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씨 가문의 집안일과
주율천은 심서정과 함께 다니고 싶지 않아 어제 하씨 가문을 방문해 미리 생신 축하를 드린 뒤 오늘은 핑계를 대고 나타나지 않았다. 주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살고 있었기에 민은하만 참석하는 것도 큰 문제는 없었다.민은하는 경찰들이 그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갔다. 그리고 근처에서 들려오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일그러졌다.‘이 멍청한 것.’‘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해성까지 와서 하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있었다.심서정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하예원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도와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경찰이 들이닥칠 때까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미리 귀띔조차 없었다.뒷마당 쪽에서 소란을 감지한 강미진이 휠체어를 타고 다가와 하도연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채아 씨 교통사고 사건 말이에요. 가해자가 입을 열었대요.”하도연도 불과 30분 전에 전달받은 최신 소식이었다. 경찰은 심서정이 현재 하씨 가문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으나 하용건의 생일잔치 분위기를 망칠까 염려되어 하도연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잔치가 끝난 뒤에 연행할지 물어왔다. 하도연은 망설임 없이 지금 당장 오라고 답했다.그제야 온채아는 경찰이 말한 고의 상해 사건이 자신의 교통사고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심서정을 향해 차갑게 비웃었다.“내가 멀쩡히 서 있는 걸 보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네요?”어쩐지 아까 온채아를 보고 그렇게 경악하더라니. 온채아가 아직도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심서정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씨 가문 사람들이 온채아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알고 있었다. 또한 민은하가 이미 자신 때문에 성씨 가문의 미움을 산 마당에 하씨 가문까지 등질 리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난...”그녀는 억지로 잡아떼며 경찰에게 부인했다. “고의 상해라니요. 전 모르는 일이에요...”앞장선 경찰이 단호하게 말했다. “심서정 씨, 저희도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기에
의약 분야의 새내기임에도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는 신세가 되었다.온채아는 덤덤하게 심서정을 쳐다보았다. “내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배 속의 아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요?”“뭐요?”심서정은 당황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소리예요?”온채아가 비웃었다. “임신했잖아요. 주율천 애라고 속인 거죠?”“내 일에 참견할 시간 있으면 나중에 진실이 밝혀졌을 때 주씨 가문에 어떻게 설명할지나 잘 생각해 봐요!”발표회가 끝나고 이틀 뒤, 온채아는 민은하가 심서정을 구해줬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했었다. 민은하가 왜 이런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심서정을 보니 비로소 이해가 갔다.누가 봐도 임신한 기색이 역력했다.임신 주수도 온채아와 비슷해 보였다.만약 다른 사람의 아이였다면 민은하는 진작에 심서정을 쫓아냈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정말 주율천의 아이였다면 심서정은 벌써 아이를 빌미로 안주인 자리를 꿰찼을 터였다.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으나 주율천은 인정하지 않았고 민은하는 주씨 가문의 핏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령 잘못된 선택일지언정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이다.온채아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고 주변에는 손님들이 오가고 있었다.다급해진 심서정은 손을 뻗어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당당하다면 뭐가 두려운 건데요?”온채아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차갑게 경고했다. “주씨 가문 귀에 들어가는 게 싫으면 당장 꺼져요.”말을 마친 온채아는 심서정을 지나쳐 걸어가려 했다.밖에서 성유준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시간을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무엇보다 하씨 가문의 생일잔치에서 심서정과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심서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온채아에게 매번 밀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어제 하예원이 했던 말을 떠올린 심서정은 갑자기 온채아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하씨 가문과 성유준이 보호해 준다고 해서 평생 기세등등할
온채아는 어제 하지훈에게 물었던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본래 경성으로 돌아간 뒤에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오려 했다.성유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온채아를 바라보았다.“말해봐.”“만약에...”역시 이 질문은 너무 무거웠던 것일까. 온채아는 자신감이 부족해진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머뭇거렸다. 두려웠다. 혹시라도 네가 뭔데 내가 가족의 평화까지 포기해 가며 널 택할 거라 생각하냐고 되물을까 봐.하지만 그토록 화목한 하씨 가문에서 자란 하지훈조차 망설임 없이 정다슬을 선택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게다가 강미진이 해준 말들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상태였다. 확실히 물어보지 않는다면 정말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온채아는 고개를 들어 성유준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흔들리는 눈빛 사이로 마침내 용기를 쥐어짰다. “나 요새 계속...”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이가 다급히 올라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인터넷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온채아는 미간을 찌푸렸다.“더 심각해졌다고요?”성유준은 오히려 평온했다. “어느 정도야?”“다른 환자 가족들이 줄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약을 먹고 비슷한 증상을 겪었거나 각기 다른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상이가 보고했다.온채아가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이미 실시간 검색어 순위 두세 개가 이 사건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게다가 여론의 흐름이 이전과는 달랐다. 전에는 온채아와 한빛 그룹을 싸잡아 욕했다면 이제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듯 화살이 오롯이 온채아 한 사람만을 겨냥하고 있었다.성유준은 온채아의 휴대폰 화면을 직접 꺼버리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당장 경성으로 돌아가야겠어. 같이 갈 거야?”한빛 그룹 내부도 혼란스러울 게 뻔했다. 성유준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룹 내에서 물을 흐리려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채아 혼자 경성으로 보내는 것도 영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