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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락희
다음 날 아침, 온채아가 생체 시계에 맞춰 눈을 떴다. 커튼을 걷자 창밖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기예보에 눈이 온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첫눈이 제법 크게 내렸고 창문을 사이에 두고도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니트 스커트를 갈아입고 세수하던 그때 복도에서 쨍그랑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리모델링 업체라도 들어온 줄 알겠다.

“아주머니, 무슨 일...”

온채아가 긴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넋을 잃고 말았다.

리모델링 업체가 아니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평소 깔끔하던 집 안이 엉망진창이 돼버린 것이었다.

1층 소파에 있어야 할 쿠션이 그녀의 방 앞에 굴러다녔고 위에 정체 모를 짙은 갈색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깨진 꽃병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복도에 걸려 있던 2억 원짜리 유화도 망가져 있었다.

그야말로 입이 쩍 벌이지는 상황이 눈앞에 벌어졌다.

오경애는 거의 애원하면서 주시윤을 쫓아다녔다.

“시윤 도련님, 그건 건드리면 안 돼요. 작은 사모님이 제일 아끼시는 다기란...”

쨍그랑.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주시윤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혀를 날름 내밀더니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메롱. 갖고 놀 거야. 삼촌이 이젠 여기가 내 집이라고 했어. 가정부 주제에 감히 날 막아?”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는데 온채아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쳤다. 순간 겁에 질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나쁜 여자! 어젯밤에 너 때문에 악몽까지 꿨어. 밤새 산타클로스랑 괴물한테 쫓겼다고. 널 언젠가는 꼭 내쫓고 말 거야. 엄마가 그랬어. 너만 없으면 삼촌이 나랑 엄마의 것이 된다고.’

온채아가 차분하게 말했다.

“가지고 놀아. 마음껏.”

“정말?”

주시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쁜 여자가 좋아하는 물건을 이렇게나 많이 망가뜨렸는데 화를 안 낸다고?’

온채아는 난간 옆에 서서 아래층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앉아 있는 심서정을 힐끗 보고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거실에 걸려 있는 수묵화는 절대 건드리지 마. 그건 내가 제일 아끼는 거거든.”

지금 이런 난동을 부리는 게 심서정이 시킨 건지, 아니면 주시윤의 자발적인 행동인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온채아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누군가 그녀에게 이렇게 가르쳤었다. 누가 괴롭히면 열 배, 백 배로 갚아주라고.

주시윤이 바로 눈알을 굴렸다.

“알았어.”

그러고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 모습에 오경애가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사모님이랑 도련님 모두 시윤 도련님을 너무 오냐오냐하세요.”

“괜찮아요.”

온채아가 오경애를 달랬다.

“아주머니도 막지 마세요. 시윤이 주씨 가문의 유일한 손자예요. 아이가 행복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리고 형님도 가만히 있잖아요. 형님의 육아 방식을 존중해야지 않겠어요? 간섭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주머니나 나나 책임 못 져요.”

“알겠습니다.”

오경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사모님은 너무 착해서 문제예요. 이러니까 아무나 다 작은 사모님한테 막 대하죠.”

온채아가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집에 안 쓰는 선물 상자 있어요?”

“어떤 거요?”

“A4 용지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거면 돼요.”

“창고에 있어요.”

오경애의 기억력이 꽤 좋았다.

“지금 가져다드릴게요.”

상자를 받은 후 온채아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인한 이혼 합의서를 상자에 넣고 정성스레 리본까지 묶었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

온채아는 못 들은 척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리본을 단단히 묶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네. 잘했어, 아주.’

곧이어 오경애가 급히 방 문을 두드렸다.

“작은 사모님, 빨리 내려와 보세요. 시윤 도련님이 어르신의 유작을 망가뜨렸어요.”

온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뭐라고요? 거실에 걸어둔 그 그림 말이에요?”

“네...”

오경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채아가 너무 서둘러 내려간 탓에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 그녀를 본 주시윤이 턱을 들고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날 어쩔 건데?’

온채아가 오경애에게 물었다.

“본가에 전화했어요?”

“아직요.”

“지금 당장 전화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시윤이 그녀에게 돌진했다.

“하지 마. 고자질하지 마, 이 나쁜 여자야.”

어린아이의 힘이 이 정도로 셀 줄은 몰랐다. 온채아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져 꼬리뼈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엄청난 고통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채아 씨, 괜찮아요?”

심서정이 황급히 다가와 부축하더니 원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내가 시윤이를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 장난을 칠 때 힘 조절을 못 해요. 그런데 애들은 다 이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

온채아는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커다란 구멍이 뚫린 수묵화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러니까 시윤이가 남의 집 물건을 망가뜨린 것도 형님이 오냐오냐해서 그런 거란 말이죠?”

심서정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내가 잠깐 한눈팔아서 애를 보지 못해서 그런 건데 꼭 이렇게까지 몰아가야겠어요?”

“아, 잠깐 한눈판 거였군요.”

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난장판이 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오전 내내 이 난리를 쳤는데 잠깐만 한눈을 팔았다고요?”

“온채아!”

주변에 아무도 없자 심서정도 더는 착한 척 연기하지 않았다.

“꼭 이렇게까지 꼬치꼬치 따져야겠어요? 본가까지 들쑤셔야 속이 후련해요? 할머니가 고작 이깟 그림 하나로 날 어쩔 것 같아요?”

“이깟 그림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에요.”

온채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 세단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주씨 본가의 사람들이 아주 빨리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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