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행이네요.”마음을 놓은 하승태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연미혜는 김태훈에게 인사를 한 뒤 회사를 떠났다.별장에 도착한 후 경다솜의 방에 들어가니 책상 옆에 앉아 일을 하고 있던 경민준은 연미혜를 보고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왔어?”“응...”연미혜는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가서 경다솜을 보았다.링거를 맞고 있는 경다솜은 힘든 듯 눈썹을 찌푸린 채 잠들어 있었다.연미혜는 경다솜을 깨우지 않은 채 경민준에게 물었다.“어디가 아픈 것인데?”“내가 돌아왔을 때는 조금 아픈 것 같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응..
경다솜에게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말린 후 연미혜도 씻을 준비를 했다.경다솜 방에 연미혜의 물건이 없었기에 안방으로 들어갔다.어두운 안방에 경민준은 없었다.불을 켠 순간 연미혜는 방을 착각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이 방에서 7년 넘게 살았고 모든 것에 익숙했지만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방 안의 모든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물론 전부 다 바뀐 것이 아니었다. 바닥만 바뀌지 않았지만 바닥을 제외하고 방의 샹들리에, 커튼, 침대, 침대 옆 탁자, 창가의 작은 원탁 테이블, 소파, 티테이블, 카펫 등 심지어 정수기
7시가 거의 될 무렵 위층으로 올라간 연미혜는 경다솜이 깬 것을 발견했다.경다솜은 연미혜를 발견하자 재빨리 카톡 채팅 창을 닫았다.연미혜는 못 본 척하며 평소와 같은 말투로 말했다.“빨리 씻고 옷 갈아입어.”“네!”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연미혜는 유순자가 어젯밤에 그녀가 입었던 잠옷을 정리해 빨래를 하려는 것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버려도 돼요, 빨지 마세요. 다른 물건들도 앞으로는 쓸 일이 없을 거예요.”경민준과의 이혼은 곧 처리될 것이기에 앞으로 경다솜을 만나더라도 이곳에 오지 않
경다솜의 학교에 도착하자 방아연의 목소리가 들렸다.“미혜 이모.”고개를 돌린 연미혜는 방아연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이모, 어젯밤에 엄마가 이모에게 만두를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이모가 집에 없어서 만두를 다시 가져갔어요.”연미혜가 말을 하려던 찰나 연미혜가 이미 집을 나갔다는 것을 모르는 경다솜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거짓말, 우리 엄마는 어젯밤에 분명히 집에 있었어.”방아연이 머리를 긁적였다.“그... 그래? 그럼 왜...”연미혜가 말을 하려 할 때 경다솜의 선생님이 그녀를 불렀다.“연미혜 씨, 안녕하세요.”
연미혜는 노트북을 들고 김태훈과 함께 유명욱의 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식사를 마친 후 유명욱은 연미혜가 쓴 논문을 봐주었다.시간이 늦어지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할 때 숙모 하여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내일 배표를 예약해 두 아이와 함께 바다 여행을 하루 가려고 했는데 친정에 일이 생겨 돌아가야 하므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연미혜가 말했다.“알겠어요. 내일 제가 시간이 있으니 내가 데리고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기가 다시 울렸다.발신자가 하승태인 것을 본 연미혜는 전화를 받자마자 먼저 말했다.
연유라와 연이찬이 다가와 수연에게 물었다.“수연아, 물 미끄럼틀 탈래?”멀리 있는 화려한 물 미끄럼틀을 본 수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요트의 물 미끄럼틀은 실내에 있었고 또 온천식이라 겨울에도 춥지 않았기에 어른과 아이 모두 탈 수 있었지만 대부분 청소년과 아이들이 많이 탔다.연미혜와 하승태는 몇 번 타고 나서 바로 흥미를 잃었지만 수연과 연유라, 연이찬은 신나게 놀았다.연미혜가 한쪽에 앉아 온천을 즐기고 있을 때 하승태가 다가와 음료를 건넸다. 연미혜가 음료를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아니에요.”하승태는 멀지
연미혜도 말했다.“다음에 봐요.”말을 마친 연미혜는 주저 없이 차를 운전해 자리를 떴다.연씨 저택에 도착한 뒤 위층으로 올라가자 연이찬은 허미숙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연미혜와 함께 한 사람이 하승태라는 것을 안 허미숙은 매우 놀랐다.하승태는 경민준과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로 연미혜와는 별 친분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갑자기...연창훈이 말했다.“안 그래도 하씨 가문이 왜 갑자기 협력하자고 하는지 궁금했어. 하승태가 나를 볼 때마다 아주 적극적이더라고. 이제 보니...”하여진이 말했다.“그럼 정말인가 보
경다솜이 곁에 없자 연미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이혼할 거예요.”방아연의 엄마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연미혜는 딸이 있지만 항상 혼자서 그녀 집 맞은편에 살고 있었으니...게다가 지난번 학부모 회의에 연미혜 대신 섹시하고 예쁜 다른 여자가 왔었다.경민준이 먼저 방아연의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경민준이 물었다.“서로 아는 사이인가요?”방아연의 엄마에게 한 말이었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연미혜에게 시선을 돌렸다.연미혜가 경민준을 무시하자 방아연의 엄마가 바로 말했다.“저는
캐벳 스미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내 박사 과정 학생, 임지유입니다.”그는 임지유 외에도 네댓 명의 학생들을 데려왔는데, 그중 임지유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임지유가 캐벳 스미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에선 감탄과 부러움이 쏟아졌다.“세상에, 스미스 교수님 박사 과정 학생이라니 완전 대단한데?”“그런데 저렇게 예쁘기까지 해? 신이 모든 걸 다 줬네. 너무 불공평해!”“더 기가 막힌 건... 저 여자가 경민준의 여자 친구라는 거잖아.”“헐... 진짜 비교할 게 못 되네. 나 같은 인생은 어떡하라고...”순식간
이틀 뒤, 김태훈은 서원시에서 열리는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했다.지난해의 기술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 역시 업계 관계자들이 AI 관련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이번에 그와 함께한 일행은 연미혜, 그리고 최근 넥스 그룹에 새로 합류한 구진원을 포함한 몇몇 엔지니어들이었다.구진원을 비롯한 신입 직원들을 함께 데려온 이유는 아직 이들이 회사의 핵심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서원시에 도착한 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이미 내부
구진원은 결국 연미혜와 함께 래프팅을 타볼 기회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또 한 번 ‘우연히’ 연미혜와 연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외삼촌 연창훈과 외숙모 하여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와 그의 친구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구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창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근데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도원시로 내려올 생각을 다 하고...”구진원은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도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경민준 씨는 바쁘다며 다솜인 못 챙긴다더니, 정작 임지유랑은 같이 있고?’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연미혜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보다 먼저, 경다솜이 해맑게 말했다.“엄마, 조금만 더 일찍 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헬기 타고 있을 때 영상 통화했으면 진짜 멋지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그 말에 연미혜는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경다솜이 이번 여행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더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슴안에 찜찜함이 또 하나 차곡히 쌓였다.경다솜은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