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그날 밤 경다솜은 유난히 들떠 있었다.평소에도 경민준이 집에 있으면 경다솜은 자연스럽게 경민준의 서재에 들어가 숙제하거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곤 했다.밤 열 시가 넘어 씻고 잘 준비를 마친 뒤, 경다솜은 잠들기 전에 연미혜를 향해 말했다.“엄마, 저 아빠한테 다녀올게요. 아직 안 주무시는지 보고, 안 주무시면 안녕히 주무시라고 말씀드리고 오려고요.”“그래.”경다솜은 곧장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 앞에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문틀을 붙잡은 채 고개를 갸웃하며 물
연미혜는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요. 밖에서 먹고 들어왔어요.”그 말을 들은 경다솜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그러네요. 엄마가 오늘 집에 올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같이 저녁 먹는 건데. 엄마, 집에서 저녁 드신 지 진짜 오래됐잖아요.”경다솜은 이제 연미혜와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던 때가 어땠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미혜는 경다솜 때문에 이 집에 들르는 일이 있더라도 실제로는 저녁까지 함께하고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대신 밤늦게 와서 하룻밤
식사를 마친 뒤 경다솜은 먼저 집에 들어가 조금 준비할 게 있다며 연미혜와 경민준에게 십 분쯤 뒤에 들어오라고 했다.연미혜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정말 많은 모양인지, 경다솜은 들뜬 얼굴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덧붙였다.그런 모습이 귀여워 연미혜와 경민준도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경다솜이 운전기사와 함께 먼저 떠난 뒤, 룸 안에는 연미혜와 경민준만 남았다.문이 닫히자마자 금세 조용해졌다.잠깐 시선을 마주쳤지만, 연미혜는 곧 휴대전화를 꺼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화면에 고정했다.반면 경민준은 휴대전화조차 들지
경다솜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아빠, 엄마! 저 곧 방학하잖아요. 그때 우리 같이 여행 가면 안 돼요? 해외로 가도 좋고, 남해 쪽으로 내려가서 래프팅 같은 거 해도 좋고요. 적어도 보름은 신나게 놀다 오고 싶어요.”연미혜는 속으로 생각했다.‘다솜이 아빠랑... 다 같이 해외여행을?’경민준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거기에 보름이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더더욱 현실감이 없었다.하지만 연미혜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경민준이 먼저 말했다.
연미혜의 목소리를 들은 경다솜은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와! 엄마랑 아빠 진짜 같이 있었어요?”연미혜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이 시간까지 왜 안 자고 있었어?”“이제 자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 약속한 거 잊으면 안 돼요. 엄마랑 아빠 돌아오면 같이 밥 먹기로 한 거 말이에요!”“안 잊었어. 늦었으니까 얼른 자.”“네.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씩씩하게 인사를 마친 경다솜은 문득 생각난 듯 덧붙였다.“아, 그리고 아빠한테도 안녕히 주무시라고 전해 줘요. 따로 전화하기 귀찮으니까요.”말을
마침 그때 유명욱이 연미혜에게 직접 상을 수여하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유명욱이 연미혜를 위해 시상식에 참석했다고 인정하는 장면과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는 연미혜의 얼굴이 화면에 잡히자, 손아림은 노골적으로 비웃었다.“연미혜는 지금 엄청나게 감격했겠지. 유명욱 교수랑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잖아. 김태훈 대표가 제자라는 인연 때문에 특별히 와 준 건데, 무슨 표정이 꼭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은 제자 같네.”손아림의 비아냥이 이어졌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명욱 교수가 직접 10여 년을 가르친 스승이고 연미혜가 한때
염성민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짧았다.‘경민준의 딸이니, 경민준을 닮은 건 당연하겠지...’그런데 아이의 얼굴에서 경민준 말고도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염 대표님, 이쪽에 앉으시죠.”염성민은 그 느낌이 처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이전에도 경다솜을 볼 때면 비슷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막상 누구를 떠올린 것인지는 끝내 짚어내지 못했다.그는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았다.곧바로 화제는 업무 이야기로 넘어갔다.업무를 논하는 동안, 경민준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민준 씨는 연미혜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왜 먼저 우리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담하게 굴며 내가 먼저 이별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임지유는 경민준의 의도가 궁금했다.‘혹은 마음 한쪽에 아직 내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연미혜가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을까.’손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람들은 최근 경민준과 연미혜가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다솜을 이유로 당분간 이혼을 미루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그러나 경민준
다음날.점심 무렵, 임지유는 경민준에게 연락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지금쯤이면 시간이 나는지, 함께 식사라도 할 수 있을지 그런 말을 꺼내 보려던 참이었다.그때 경다솜의 휴대전화가 먼저 울렸다.“아빠한테서 문자 왔어요.”임지유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경다솜이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아빠가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네요. 오늘은 우리랑 밥 못 먹는대요.”“그래... 알겠어.”결국 경민준은 두 사람과 함께 점심을 먹지 않았다.오후가 되자 경다솜은 놀다 지친 기색을 보이며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때도 경민준
잠시 후, 지관식은 다시 한번 모두에게 인사를 건넨 뒤, 복도를 따라 자신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갔다.연미혜, 김태훈, 경민준, 하승태, 그리고 임씨 가문과 손씨 가문의 사람들도 함께 그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 들어간 사람이 많았지만, 임씨 가문과 손씨 가문의 사람들도 함께 있었기에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정원과 긴 정자에는 손님들이 자리를 잡았고 도우미들이 다과와 차를 내왔다.지관식은 허미숙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허미숙뿐만 아니라, 지관식에게는 동양화에 조예가 깊은 두 명의 친구가 더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