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뿔테 안경? 하얀 마스크...?”강시원은 들으면 들을수록 기이하고 심지어 섬뜩하기까지 했다.뭔가 옛날 홍콩 영화에 나오는 점잖은 변태 살인마 같은 차림새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그 남자가 그저 윤슬의 어깨를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윤슬이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이 수법은 정말 음흉하다는 말로밖에 형용할 수가 없었다.“윤슬 씨, 옷 좀 벗어봐, 내가 볼게.”윤슬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하얀 셔츠를 벗었다. 그러자 흰 살결과 둥글고 매끈한 팔이 드러났다.피부가 워낙 하얗고 연약했기에 강시원은 한눈에 그녀의 팔뚝에 있는, 눈에 띄는 주삿바늘 자국을 발견했다.“아... 진짜 짐승 같은 놈들이네!”그 작은 바늘 자국을 바라본 강시원은 눈시울이 새빨갛게 충혈될 정도로 분노했다.강시원을 모함하기 위해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까지 덤으로 끌어들이다니.이것은 강시원이 극도로 증오하는 일이었다.“가자, 병원에 가자!”윤슬의 살짝 차가운 손을 꼭 쥔 강시원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목소리까지 떨렸다.“괜찮아요, 언니 지금은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고 정신도 말짱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윤슬은 머릿속이 아직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안 돼, 꼭 가야 해. 혹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잖아?”강시원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분노를 간신히 누르고 다짐하듯 말했다.“걱정 마, 이번 일, 절대 윤슬 씨 혼자 억울하게 당하지 않게 할게.”윤슬을 위해 아침 식사를 주문한 뒤 호텔 방 안을 이리저리 샅샅이 뒤졌다.그러다가 마침내 침대와 협탁 사이의 틈에서 검은 배지를 하나 발견했다.“이건...”눈살을 찌푸린 강시원은 순식간에 생각에 잠겼다.배기훈과 여러 번 접촉하면서 황근우의 양복 옷깃에 바로 이 배지가 달려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순간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언니, 다 먹었어요!”거실에서 윤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 바로 갈게!”강시원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배지를 주머니
호텔을 나설 때 강시원은 다시 윤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화가 되지 않았다.길 건너편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다 마신 뒤, 여러모로 고민 끝에 윤슬의 가족에게 연락해 보기로 했다. 만약 윤슬이 어젯밤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면 바로 신고해야 했기 때문이다.배명욱이 그녀의 비서에게까지 손을 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윤슬은 겉보기에 순수하고 또 어리숙해 보였기에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남자에게는 애초에 위협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여러 가지 단서들이 눈앞에 있는 상황, 약을 탄 것도 함정을 판 것도 어쩌면 배명욱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그렇다면 범인이 덤으로 윤슬에게 손을 댈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바로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깜짝 놀란 강시원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윤슬 씨! 어디야?!”“언니... 나 호텔 방에 있어요. 방금 막 일어났어요...”윤슬은 사석에서 강시원을 편하게 언니라고 불렀다.하지만 힘없는 윤슬의 목소리는 마치 정신을 빨려 나간 듯했다.“언니, 너무 힘들어요. 죽을 것 같아요...”강시원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왜 호텔 방에 있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저... 저도 몰라요...”나긋한 윤슬의 목소리에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어젯밤에 생리가 와서 화장실에 가서 정리하고 나왔는데... 나와서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갑자기 의식을 잃었어요.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 강시원은 바로 호텔 방으로 달려가 윤슬을 만났다.“언니!”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윤슬이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강시원도 다정한 언니처럼 윤슬을 꼭 껴안아 주었다.“울지 마, 울지 마, 내가 있잖아, 무서워하지 마!”강시원은 윤슬의 어깨를 잡고 위아래로 살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의 몸에 이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했다.“어때? 몸이 어디 안 좋은 데는 없어? 이상한 느낌 같은 건
가볍게 한숨을 쉰 강시원은 마음이 복잡해졌다.어젯밤, 큰 정사를 치렀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정말로 배기훈을 원망하는지 조금은 의심이 들었다.이 남자에 화를 내긴 했지만 다행이라는 마음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을까?‘다행히, 이 사람이었기에...’...강시원은 옷을 한 벌만 골라 입었고 나머지는 방에 그대로 뒀다. 그러고는 황근우에게 나중에 가져가라고 문자를 보냈다.시큰거리는 허리를 붙잡으며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다.허리 통증뿐만 아니라, 아래쪽도 화끈거리며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마치 어젯밤 배기훈과 잠자리를 한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분만실에 들어간 것 같았다.강시원은 다시 한번 황근우의 말이 떠올랐다.‘어떤 여자와도 접촉한 적이 없습니다.’거칠고 정도를 모르는 것이, 참으로 금지된 열매를 처음 맛본 풋내기 같았다.하지만 배기훈은 배다울의 엄마와 서로 깊이 사랑했고 또 아이까지 함께 키우지 않았던가? 어떻게 여자를 아끼는 법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 어디선가 대화 소리가 들렸다.“씨발! 밤새 쪽팔리게 잠복했는데 아무것도 못 찍었네, 진짜 짜증 나!”“그러게 말이야, 우리를 여기로 불러 놓고 뭐 하는 거야! 배강 그룹 대표가 유부녀를 꼬시는 핫이슈를 찍을 수 있다고 하더니 개뿔, 듣자 하니 배 대표는 벌써 갔다고 하더라고! 말이 되냐?”“아 진짜! 누군가한테 놀림당한 느낌이야!”몸이 굳어진 강시원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두 줄기 서늘한 빛이 살구꽃 같은 눈동자 사이에 번뜩였다.기자들은 그녀와 배명욱의 스캔들을 노리고 호텔에 와서 잠복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그들에게 소식을 흘려 그녀와 배명욱을 잡으러 오게 한 것이다.어젯밤, 만약 배기훈이 강시원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배명욱이 한방에 있었다는 소식은 이미 온 천하에 퍼져 시끌벅적했을 것이다.그렇게 되면 네티즌들이 강시원의 신분과 배경을 철저히 파헤쳤을 것이고 혼란을 틈타 누군가가
이것이 배기훈의 지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강시원은 화가 난 참이라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로 차갑게 말했다.“아? 그렇게 오버할 정도인가요? 어제 회의장에서 누군가가 나를 괴롭혔을 때 배명욱 대표님께서 나서서 도와주셨어요. 행동도 젠틀하고 예의도 아주 바르셨고요. 황 비서님 말처럼 그렇게 무서운 분은 아닌 것 같은데요?”“그건 그냥 고양이가 쥐 생각을 해주는 거지, 절대 좋은 마음이 아니에요!”강시원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배명욱 대표님이 고양이라고요? 그러면 내가 쥐인가요?”황근우가 자기 입을 치더니 목구멍에 불이 날 듯 급하게 말했다.“어쨌든 저희 대표님의 말씀을 한 번만 믿어주세요. 저희 대표님은 결코 강시원 씨를 해치지 않으실 거예요! 어젯밤 강시원 씨가 그런 상황을 겪으셨는데, 정말 배명욱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세요?”짙은 눈썹을 찌푸린 강시원은 웨이터가 가져다준 주스가 떠올랐다.그 주스에 문제가 있었다.‘배명욱이 약을 탄 것일까?’머리를 최대한 굴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배명욱이 배강 그룹 대표이사로서 자신의 작은 회사와 협업을 논하러 몸을 낮추는 것은 영원 테크의 실력을 보고 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아마 강시원이라는 여자를 노린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약을 타서 자기 침대로 데려가는 게 더 편했을 텐데? 굳이 좋은 사람인 척하며 인공지능 얘기를 듣느라 고생할 이유가 없었다.게다가 어젯밤 강시원은 배명욱 외에는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았다. 이는 곧 약을 탄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는 걸 알리는 꼴이 아니었나? 배강 그룹 대표이사라면 아무리 저급하고 비열해도 체면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강시원은 직감적으로 어젯밤의 일이 배명욱이 주도한 것이 아님을 느꼈다.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강시원 씨...”“황 비서님, 당부는 감사합니다.”눈을 내리깔고 잠시 침묵하던 강시원이 다시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지만 저 또한 성숙한 가치관을 가진
“아! 잠깐만요!”배기훈이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것을 보자 강시원이 급히 불렀다.남자의 발걸음이 멈췄다.“저, 제 옷은요?”강시원이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버렸어.”“버렸다고요?!”이불로 몸을 꽉 감싼 강시원은 허리를 곧게 펴더니 아쉬운 듯 말했다.“2천만 원짜리 옷을 그냥 버렸다고요?! 배 대표님, 모든 사람이 대표님처럼 돈이 많아서 매일 집 한 채를 입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게다가 버리면 제가 뭘 입어요?!”“다시 찾고 싶으면 쓰레기통에서 찾아.”그러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기훈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보아하니 매우 화가 난 듯했다.“뭐야!”화가 난 강시원은 살구꽃 같은 눈을 부릅떴다.‘어젯밤 잠자리를 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지?! 아무리 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너무 심하고 너무 뻔뻔하잖아!’옷장에서 가운을 꺼낸 뒤 쓰레기통을 뒤진 순간 멍해졌다.어젯밤 입었던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완전히 헝겊 조각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맞출 수조차 없는 수준에 게다가 축축하기까지 해서 마치 화장실 걸레가 된 것 같았다.“세상에... 배기훈, 늑대 아니야?”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강시원은 그야말로 울고 싶었다.이 일이 혹시라도 밖에 새 나간다면 강시원은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는 정도였다.바닥에 앉아 잠시 감정을 추스른 뒤 침대 머리맡으로 가서 휴대폰을 집어 윤슬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연결음이 한참 동안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시 걸어도 역시 받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잠옷을 걸친 채 문을 밀고 나갔다.“강시원 씨.”누군가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에 강시원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심장도 쿵쾅쿵쾅 뛰었다.황근우가 거실 중앙에 공손히 서 있는 것이었다. 소파 위에는 여러 개의 고급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황 비서님.”깊게 숨을 들이쉰 강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그냥 한 번 잠자리를 가졌을 뿐이지 않은가? 서로 아이가 있는 유부녀, 유부남이니 마치 첫날밤에 강제로 당한
눈앞의 남자는 큰 기럭지에 체구가 탄탄했으며 단단한 근육의 형태는 어찌나 완벽한지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린 배기훈은 깊고 어두운 복숭아꽃 같은 눈동자 속에 읽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살피는 듯, 탐색하는 듯, 어두운 욕망이 섞여 있었다.강시원의 심장은 놀란 사슴처럼 가슴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뛰었다. 입술 안쪽 살을 꽉 깨물며 몸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남자의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 마치 작은 미꾸라지처럼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든 뒤, 붉고 부은 두 눈만 밖으로 내놓았다.눈을 가늘게 뜨고 강시원을 깊이 바라보는 배기훈은 어깨뼈 근육이 순간적으로 다시 꽉 조여들었다.어젯밤의 밀회와 광기가 다시 한번 눈앞에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숨결이 점차 거칠어지며 아랫도리가 다시 불타오르는 듯했다.“배 대표님, 저... 이미 결혼했어요. 게다가 아이도 있어요.”강시원의 목소리에는 답답하면서도 가벼운 떨림이 섞여 있었다.“제가 대표님께 책임질 자격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보상은 해드릴 수 있어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배기훈의 말투는 놀리는 듯했지만 눈빛은 차갑고 엄숙했다.“강시원, 우리는 진짜로 관계를 가졌어요. 무슨 뜻인지 알아? 어젯밤, 당신 몸속에 내가 있었고 내 몸속에 당신이 있었어. 우리가 관계를 했다고. 그것도 여러 번.”촉촉한 속눈썹을 살짝 떤 강시원은 울음이 터질 듯했다.‘여러 번이나?’서정혁과는 오랫동안 잠자리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승냥이처럼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아이를 낳은 여자는 성적인 욕구가 별로 강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당신과 서정혁은 아직 혼인 기간이지만 강시원 당신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어.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강시원 당신은 혼인 중에 바람을 피운 거고 혼인을 배신한 거야.”배기훈은 마치 농담을 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무심하게 말했다. “이 참에 서정혁과 끝내는 건 생각 안 해봤어? 그리고...”배기훈의 말이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