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빠, 언니를 만나고 싶으면 내가 언니한테 연락해 볼게.”임지민은 억울하고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차피 내 말은 귓등으로 듣겠지만 오빠를 위해서라면 시도해 볼 수 있...”“그래, 한번 물어봐.”임지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정혁이 바로 대답했다.순간 화가 난 임지민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조금 전 한 말을 거둬들이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난 것은 서정혁이 오늘 밤 생신 잔치에서 강시원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장난하나!'오늘 밤 자리한 손님들이 그들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임지민의 체면은 말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오늘 밤, 강시원이 생신 잔치에 나타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한편, 영원 테크 쪽에서는 강시원이 막 신에너지 자동차 공장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아직 회색 작업복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지만 강시원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의욕이 넘쳤다.“대표님, 이 옷도 대표님한테 너무 잘 어울려요!”윤슬이 두 손으로 볼을 감싸며 넋이 나간 듯 강시원을 바라보았다.“완전 멋져요. 너무 시크해요! 일 잘하는 여자가 제일 멋진 것 같아요! 임지민 그 가식적인 여자랑은 완전 달라 보여요. 임지민은 겉치레뿐이죠!”윤슬의 볼그레한 얼굴을 본 강시원은 너무 기분이 좋아 참지 못하고 농담을 던졌다.“윤 비서, 그게 칭찬이야? 아니면 욕이야?”윤슬은 강시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당연히 칭찬이죠! 저는 대표님의 열성 팬이에요!”“칭찬인데 나를 임지민과 비교해?”멈칫한 윤슬은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그때 강시원의 휴대폰이 울렸다.이로 장갑 한쪽을 물고 아래로 잡아당겨 장갑을 벗은 뒤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심플한 동작에도 윤슬은 또 넋이 나갔다. 강시원이 남자가 아니라는 게 한이 될 지경이었다. 남자였다면 정말 시집가고 싶을 텐데 말이다.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던 강시원
무표정한 남자의 냉담한 모습에 임지민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순간 너무 당황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지난 5년 동안 서정혁은 임성호의 생신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갑자기 왜...임지민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내면의 초조함과 불안을 억누르고 부드러운 말투로 설득했다.“오빠, 사실 선물은 정말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 기회에 우리 가족 모두가 모여서 식사를 하는 거야. 오빠가 참석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빠에게는 최고의 생신 선물이야.”“우리 가족?”서정혁의 잘생긴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임지민은 서정혁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보고 급히 덧붙였다.“오빠는 내 형부잖아. 언니와 나는 아버지가 같은 친자매니까 우리도 한 가족이지.”이 말에 남자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보아하니 ‘오빠'라는 호칭보다는 ‘형부'라는 호칭이 더 마음에 드는 듯했다.서정혁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초조해진 임지민은 눈시울이 붉어졌다.“형부, 오늘 밤에 아빠의 사업 파트너들도 몇 분 올 거야. 오빠가 매년 갔는데 올해 안 가면... 사람들이 형부와 우리 임씨 가문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줄 알 거야. 형부도 알잖아. 사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권력이 큰 사람한테 자세를 낮추는 거... 나는 그 사람들이 괜히 나가서 함부로 말할까 봐 그게 걱정돼. 그러면 아빠가 앞으로 협상하실 때 순탄치 않을 수도 있고...”지난 몇 년 동안 임씨 가문은 서정혁이라는 큰 나무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보았는지 모른다. 사업장에서는 몰락한 영원 테크와는 달리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웠다.임씨 가문을 아낌없이 지원한 이유가 임지민이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지만 임지민이 정작 이렇게 직설적으로 목적을 말하자 서정혁은 좀 거절하기 불편했다.“그래, 알았어. 갈게”남자가 마음을 바꾸었다.“정말? 오빠, 고마워!”그제야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가라앉은 임지민은 말투까지 가벼워졌다.“오빠가 안 가면 오늘 임씨 가문에 온 손님한테 제대로 해명조차 못 했을 거야
“큰 집안이라고? 한번 보자. 얼마나 크길래? 누군데?”주건우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모두 실토했다.“그... 박영주...”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누군데?”“운도 테크 임성호 회장님의 부인입니다. 그, 그 여자 딸은 임씨 가문의 임지민이고요.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서정혁의 여자친구라고 합니다.”주건우는 이를 부들부들 갈았다.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박영주를 마음속으로 만 번 넘게 욕했다.“큰 배경이 있는 여자라...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임 회장님은 그렇다 쳐도 임지민 씨 뒤에 서 대표님이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함부로 거절하겠습니까?”“서정혁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곰곰이 생각하던 배명욱은 더 화가 나서 또 한 번 주건우를 걷어찼다.“넌, 서정혁을 건드리는 게 무서우면서 나를 건드리는 건 무섭지 않았어? 씨발,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서정혁만 못하다는 거네? 죽고 싶어?!”주건우는 바닥에 엎드려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대표님, 이번 일 좀 이상한데요...”신빈우가 앞으로 나서며 의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은 박영주가 누군지도 모르시고 임씨 가문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박영주가 왜 배 대표님을 몰래 찍으라고 지시한 걸까요?”주건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배명욱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아마 그 여자는 나를 노린 게 아니라 강시원 씨를 노린 거겠지. 본래 의도는 나를 폭로하려는 게 아니라 강시원을 폭로하려는 거였어. 내 말이 맞지?”주건우는 방아 찧듯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배 대표님, 정말 똑똑하십니다. 악!”“꺼져! 나를 감히 이용해 먹으려 하다니, 죗값 단단히 치러!”또다시 폭발한 배명욱은 주건우의 얼굴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건우의 앞니가 날아가 버렸다.바닥에서 아파 뒹구는 주건우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배명욱이 워낙 성격이 정말 변덕스럽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1분 전까지 웃고 있었지만 1분 후에는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살아있
“씨발! 누구야?! 나를 때린 놈 누구야! 나와!”“역시, 아직 덜 맞았나 보군. 네 머리통을 깨뜨리고 이빨을 하나씩 뽑아 버려야 정신 차릴래? 그때는 지금처럼 짖을 힘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구나!”그 순간, 신빈우가 배강 그룹의 부하 직원 두 명을 데리고 음흉한 눈빛으로 주건우 앞에 걸어왔다.“너, 너희들 누구야?!”얻어맞은 주건우는 입안 가득 피비린내가 퍼졌다. 바닥을 향해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나... 나는 너희들이 누군지 몰라. 그런데 왜 나를 때리는 거야? 여, 여기는 어디야?!”신빈우가 코웃음을 쳤다.“여기는 배강 그룹이 사들인 빌딩이야. 뭔가 감이 와?”“배강 그룹...”머리를 재빨리 굴린 주건우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온몸을 덜덜 떨었다.“너희, 너희들... 배 대표님의 사람들이야?!”“이제 와서 겁이 난 거야? 아까는 엄청 즐겁게 욕하더니.”신빈우가 허리를 굽히고는 음흉한 눈빛으로 주건우를 응시했다.“말해 봐,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몰래 찍어. 그런데 왜 하필 우리 영명하시고 멋지신 배 대표님을 찍었냐 말이야. 빨리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배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몰라? 아까 여기 올라올 때 보니까 바닥 콘크리트 공사를 하고 있던데... 주 실장님, 설마 우리 배강 그룹 프로젝트 기초 공사에 일조하고 싶은 건 아니지?”겁에 질린 주건우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너희들! 뭘 하려는 거야! 나를 죽이려는 거야?! 지금은 법치 사회야! 살인죄는 평생 감옥에서 못 나와!”“법치 사회? 좋지. 법치 사회에서 법을 무시하는 게 제일 재밌거든.”조롱이 가득한 거만한 말과 함께 담배를 문 배명욱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심드렁한 걸음으로 주건우 앞에 다가왔다.신빈우와 부하 직원들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오셨습니까?”“배, 배 대표님...?!”주건우는 배명욱을 보자마자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렸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마지막 기운도
황근우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이용’이라는 단어가 날카로운 칼처럼 고막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대표님, 대표님 곁에 오래 있은 만큼 강시원 씨에 대한 대표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강시원 씨를 위해 하신 모든 일도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고요. 가끔은 강력하게 대응할 때도 있지만 그 속에 악의는 절대 없었다고 믿습니다.”“내가 강시원에게 품은 마음이라...”배기훈은 긴 속눈썹을 떨며 다시 시계로 손목의 빨간 머리 끈을 가렸다.“내 마음을 강시원이 정말로 필요로 할까? 강시원이 원하는 건 서정혁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걸 거야.”“그럴 리가요. 강시원 씨가 5년 동안 정성을 다했는데도 결국에는 개 한 마리한테 잘해준 것보다 더 못한 게 되었는데 아직도 미련이 있다고요? 그러면 정말...”‘뼛속까지 호구잖아요.’황근우는 배기훈과 강시원 사이에 풀리지 않은 오해와 하지 못한 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평소에는 과감하고 치밀했던 배기훈이 오히려 강시원을 대할 때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발견했다.뭔가 강시원 앞에만 서면 자존감이 매우 낮아진 것 같았다.이렇게 잘생기고 능력도 있는 배기훈이 왜 강시원을 대할 때는 이렇게나 자존감이 낮은 걸까?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근우야,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일에 내 사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야.”배기훈이 창밖을 바라봤다. 눈빛이 어두워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지만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걸 보니 무언가 격한 감정을 감추고 있는 게 확실했다.“29년간의 치욕을 참으면서 오늘까지 왔어. 복수라는 생각 하나로 그동안을 버틴 거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 차가운 시체가 됐을 거야.”젊었을 때 배기훈은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다. 완전히 해방되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강시원의 어머니가 배기훈에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온기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말 자신을 포기했을 것이다.그래서 반드시 배씨 가문에 복수하기로 마음
배강수는 아들을 쳐다보기도 귀찮은 듯 고개를 저었다. 자기와 너무 똑같아 뭐라고 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아버지,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이 사진들... 어디서 얻으신 거예요?”배명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언론사에서 이 사진들로 협박해서 입막음할 돈을 거액으로 요구한 건 아니죠?”“훈이가 이 사진들을 가로채서 내게 준 거다.”배강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만약 파파라치가 사진을 들고 내 코앞에 나타났다면 그 전에 내가 먼저 네 가죽을 벗겨 버릴 거야!”배명욱의 눈빛이 잔뜩 어두워졌다. 누군가에게 농락당한 듯한 섬뜩한 느낌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아버지, 이상해요! 배훈 그 자식이 나를 함정에 빠뜨렸어요! 파파라치도 분명 그 자식이 고용한 거예요. 몰래 저를 찍어서 아빠 앞에 나서서 잘난 척하려는 거였어요!”“너를 몰래 찍었다고? 네가 먼저 남에게 빌미를 제공했으니까 그런 거지. 네가 유부녀를 꼬시지 않았더라면 남들이 어떻게 찍을 수 있었겠어?”배강수는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네가 의심하는 걸 나라고 의심하지 않을 것 같냐? 벌써 사람을 보내 조사했다. 훈이와 그 YS 뉴스라는 언론사는 아무런 연관도 없더라. 훈이 비서가 우연히 발견하고 그 실마리를 따라 파파라치를 잡아낸 거였어. 설령 훈이가 꿍꿍이 속셈으로 널 어쩌려는 게 사실이라 해도 어쩌겠냐? 그건 네가 실력이 모자라서 자신의 약점을 상대에게 드러낸 탓이지. 자기 아랫도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네 욕심 때문이니까.”주먹을 꽉 쥔 배명욱은 분노가 활활 타올라 가슴이 급히 오르내렸다.배훈이라는 잡종 같은 개가 자신에게 이런 수작을 부린 게 너무 화가 났다. 이건 배명욱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로 하여금 극에 달하는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내가 이 자식 너무 얕잡아 봤네.’서자로 배씨 가문에 들어온 이 자식은 기회만 생기면 눈에 드는 여자라도 이용할 수 있는 족히 음흉한 놈이었다.“YS 뉴스의 주건우라는 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