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6
콜의 입이 순전한 놀라움에 떡 벌어졌다. 이건 분명 클레어의 도플갱어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는 소심하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입을 열어 말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비방을 당해도, 말대꾸하는 것보다 침묵으로 맞서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뭐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클레어가 씩 웃으며 물었다.
콜은 고개를 끄덕이며 털어놓았다. "너 정말 강해졌네. 난 이런 네 모습이 좋아."
"고마워. 내 결혼을 위해서라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어. 헌터와 우리 관계를 지켜야 해, 콜. 그리고 그러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난 언제나 너희 둘 편이야, 클레어. 어떻게 도우면 되는지만 말해." 그는 그녀의 기개가 마음에 들었다.
"좋아, 내 말 잘 들어." 그녀가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자라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싶어. 콜, 난 그녀의 귀환이 의도적이라고 느껴. 그리고 그녀 남편의 죽음도 자연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콜의 등이 굳어졌다. 그는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결혼을 지키고 싶다는 네 마음은 이해해, 클레어. 하지만 난 네가 자라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해. 난 그녀가 헌터와 사귈 때 같이 어울렸어. 그녀는 순수한 사람이야. 자라는 파리 한 마리도 못 해칠 사람이야. 하물며 네 결혼을 깨뜨릴 리가 없어."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한 거야. 자라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 줘, 콜."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아, 클레어." 콜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자라도 알고 너도 알아. 너희 둘 다 각자의 삶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 고통의 원인은 같은 한 남자야. 헌터와 직접 이야기해서 해결해야 해. 자라와 관련된 일에는 끼고 싶지 않아."
"헌터와 친구라서 그러는 거야?"
"그것도 있고, 내가 자라를 알기 때문이기도 해. 그녀는 결백해, 클레어. 헌터와 함께하려고 남편을 죽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네 불안은 이해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추측이야." 그는 클레어의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정말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면, 약혼자와의 결혼을 거절했으면 됐어. 그랬다면 헌터는 그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칠대양도 건넜을 거야.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고 조용히 결혼을 진행했어.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 자라는 네 불행의 원인이 아니야. 네 남편이 문제야."
클레어는 무릎 위에 놓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콜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결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소중한 반쪽을 잃어가는 고통을 몰랐다.
결혼기념일에 눈부시게 돌아온 옛 연인을 두려워해야 하는 처지도 아니었다. 벼랑 끝에 매달린 건 그의 결혼이 아니었다.
반대로 클레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참고 있었다. 그녀의 육감은 자라가 겉모습보다 훨씬 더 많은 면을 숨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와 줘서 고마워, 콜. 이건 평생 기억할게. 하지만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거야." 그녀는 그의 시선을 마주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행운을 빌게. 하지만 헌터가 화가 나서 너한테 무슨 미친 짓이라도 하게 되면, 그를 탓하거나 다른 누구를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이미 경고했으니까." 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자라는 정말 겸손하고 소탈한 사람이야. 그녀에게서 부정적인 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야. 그런 게 없으니까."
그는 찡그린 얼굴로 떠났고, 그 모습을 보며 클레어는 자신이 친구 하나를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콜의 자라에 대한 말을 진지하게 새겨들었지만, 그녀는 학교 친구였던 몬티에게 연락했다. 그는 전문 탐정이었고, 땅속 다섯 겹 깊이 묻힌 정보라도 찾아내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
"안녕, 클레어. 인터넷에서 뉴스 봤어. 그런 일을 겪게 돼서 정말 유감이야." 몬티가 말했다.
"별일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할게."
"난 항상 네 기개가 좋았어, 클레어. 넌 강한 여자야. 그 끈기 있는 태도라면 앞으로도 크게 성공할 거야." 몬티는 언제나 클레어 편이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클레어는 자신의 의심을 털어놓았다. "난 그냥 내 결혼을 지키고 싶어, 몬티. 남편을 붙잡기 위해서라면 어디까지든 갈 거야.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한참 한숨을 쉰 뒤 몬티가 대답했다. "좋아, 함께할게, 친구. 난 항상 너와 함께 일해 보고 싶었어. 하지만 우리 직업이 너무 달라서 그 바람을 접었지. 네 일을 맡게 되니 기분이 좋네."
클레어는 그에게 감사했다. 전화를 끊은 뒤, 부모님께 상황을 솔직히 말씀드리기 위해 찾아가기로 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거실에서 서류를 읽고 있었고, 어머니는 부엌에 있었다. 스콧은 아침 일찍 그녀가 그의 차를 가져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차를 타고 대학에 갔다.
"클레어." 도미닉의 몸이 그녀를 보자 굳어졌다.
그는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일어나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거의 그녀의 이름을 외치다시피 했기에, 어머니도 그들에게 달려왔다.
"아가야, 집에 와 줘서 정말 다행이야." 안드레아가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소파에 앉았고, 클레어는 가운데에, 부모님은 양옆에 앉았다. 부모님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그녀는 긴장했다.
아전트 가문은 블룸크레스트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가문이었고, 매킨타이어 가문은 첫 번째였다.
하지만 소유한 것이라는 면에서 매킨타이어 가문보다 더 뛰어났던 것은 사랑이었다. 아전트 가문은 서로를 사랑했고 깊이 아꼈다. 그들의 가족은 문화와 행복으로 가득했다. 삼촌과 숙모들, 사촌들 모두가 마치 한 천에서 잘라낸 것처럼 화목하게 살아갔다.
반대로 매킨타이어 가문은 흩어져 있었다. 서로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가족 식사를 하려면 서로의 비서를 통해 연락하고 약속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 클레어가 톰슨 매킨타이어 씨의 차갑고 무감정한 셋째 손자의 청혼을 받은 뒤 그에게 마음이 있다고 말했을 때, 도미닉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들의 가족은 화합이라는 의미를 몰랐다. 그들은 규칙과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체스판 위의 말들 같았다.
"어제 놀라게 해서 미안해." 클레어는 아버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고 어머니는 그녀를 안아 주었다. 남편이 형편없는 인간으로 드러난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헌터와의 결혼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부모님께 말했다. 부모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앞의 현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이미 떠났다.
그들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그녀를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키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걸 잘못된 곳에서 실천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바로잡지 않았다.
그녀가 떠날 시간이 되자 도미닉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집은 네 집이란다, 사랑하는 딸. 언제든 돌아오는 걸 망설이지 마."
"내가 왜 돌아와? 난 남편과 함께하는 내 집이 있는데." 그녀가 웃으며 말하자, 부모님의 얼굴에는 억지 미소가 번졌다.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클레어. 너도 끝났다는 걸 알고 있잖아. 부디 곧 그걸 받아들이길 바란다.' 부모님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부모님의 저택을 막 나서자마자, 아전트 저택 대문 앞에 마이크를 든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비원 세 명이 그들을 막아 세우려 애쓰고 있었다.
'자라 레빈, 네가 충분히 영리하다고 생각하지! 거울을 보여 줄게.' 그녀는 머리를 높이 치켜든 채 군중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며 생각했다.
계속...
Chapter 60자라의 시점 (Zara's POV)믿기지 않는 현실의 파도가 내 안에서 요동쳤다. 손에 쥐고 있는 명의 이전 서류를 구겨버리지 않으려 손가락을 경련하듯 떨었다. 현실 같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헌터가 나를 이런 식으로 쫓아낼 수는 없었다."헌... 헌터, 날 쫓아내려는 거예요?" 나는 목소리 톤을 한참 낮추며 상처받은 척 시늉을 했다."난 그저 내 가슴속에서 날마다 커져가는 감정을 외면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리고 그 감정은 당신을 향한 게 아니지." 헌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내 입술이 떨렸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충격이 너무 컸다. 그의 예상치 못한 행보에 내 이성은 거센 폭풍을 맞은 듯 흔들렸다.서류를 멍하니 바라보자, 불과 10분 전에 내가 엔조에게 자만심에 차서 뱉었던 말들이 환청처럼 귀에 울렸다.'난 여왕으로 태어났어. 헌터 맥인타이어가 이 나라의 왕이니까 날 여왕으로 만들어 줄 거라고.'내가 감수했던 모든 위험과 범죄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나 때문에 파산했던 남편의 살해부터 스스로 꾸며낸 강간 자작극까지. 나는 클레어의 삶을 망가뜨렸고 그녀의 유산 원인이 되었다.이 모든 짓을 겨우 아무것도 아닌 결말을 맞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순금과 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을 내 머리 위에 쓰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평생 쓰레기처럼 취급하던 아내에게 갑자기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며 헌터가 이렇게 느닷없이 나타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는 없었다.내 안에서 광기가 치밀어 오르며 창자가 비틀리는 듯했다. 남편을 죽인 후 며칠 동안 내가 자아낸 모든 꿈들이 거친 회오리바람처럼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꿈들이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보였다.나는 눈을 감고 그 꿈들을 꽉 잡았다. 내 꿈이 어둠 속으로 흩어지게 둘 수는 없었다. 클레어가 내 왕관을 차지하게 둘 수는 없다. 헌터가 내 왕관을 그의 전처 머리 위에 씌우도록 방치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내 길을 가로막는 것을 치우기 위해
Chapter 59자라가 킥킥거리며 응수했다. "그리고 그 남자 성기 때문이기도 하지. 이만큼 길고 이만큼 두껍거든." 그녀는 손으로 헌터의 성기 크기와 두께를 가늠해 보였다."너 같은 놈 성기 10개를 합쳐 놓아도 그 사람 것처럼 두껍게는 못 만들어. 게다가 침대 위에서 끝내주거든.""나보다 더?" 엔조는 그녀를 돌아 눕혀 한쪽 유두를 입에 머금었다.자라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는 그의 다른 한 손을 끌어당겨 젖혀진 반대쪽 유두에 얹어주고 손가락 사이에 쥐여주었다."내 솔직함으로 너의 피나는 노력을 욕되게 하고 싶진 않은데!" 자라가 킥킥거리며 웃자, 엔조가 유두를 깨물어 가슴에 지릿한 고통이 몰려왔다.고통을 되갚아주려 그 남자의 성기를 손으로 꽉 쥐려던 순간, 엔조가 다시 그녀의 몸속을 가득 채우며 거세게 들이치기 시작했다."그렇게 잘한다면서 왜 나랑 이 침대에 누워있는 건데?"자라는 웃음을 지으며 그의 억센 어깨를 끌어안았다."그야 그 멍청이가 전처를 향한 숨겨진 사랑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으니까 그렇지. 나한테 손 하나 대지 않으려 하고, 그 여자가 떠난 후로는 시체처럼 걸어 다니고 있거든."그녀는 계속해서 그가 들이치는 쾌감을 느끼며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싸쥐었다. "내가 그날 밤 젖은 몸에 란제리만 입고 돌아왔을 때, 난 뜨거운 밤을 보낼 준비가 다 되어 있었어. 거부할 수 없는 성적 호르몬을 자극하는 약까지 음식에 탔단 말이지. 그런데 그 거대한 성기를 가진 왕이 나와 섹스하지 않으려고 서재에 들어가 문을 잠궈버리더라고.""그래서 그 남자가 전처에게 돌아갈까 봐 두려운 거겠지, 안 그래?" 자라의 입술이 가늘어졌다."하지만 넌 네 맘대로 박아줄 큰 놈을 갖고 있잖아. 그 남자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다고."자라의 눈동자가 흥미로움으로 커졌다. 그녀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엔조가 먼저 답했다."얼마 전에 시내에 있는 BDSM 클럽으로 널 따라간 적이 있거든. 제법 더러운 짓을 즐기는 어린 양이었더군, 응?"엔조는 음흉하게
Chapter 58헌터의 시점 (Hunter's POV)사흘 뒤,헌터는 열려 있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눈은 화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정신은 올드 머피 저택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지나치던 클레어의 그 순간에 멈춰 있었다."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한 거지— 걱정이라도 해줄 줄 알았나?" 그는 비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내 낭심을 차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신사적이었어.”그는 머릿속에서 그녀를 지울 수 없었다. 헌터는 업무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날 밤의 그녀의 잔상과 서늘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돌았다.그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실수를 갚으려 해도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미안해, 클레어. 내가 너무 멍청했어. 네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어."그는 눈가를 비비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차라리 다행이야. 자라가 우리 삶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난 너에 대한 내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그 사랑은 항상 우리 사이에 있었어. 넌 나를 네 남자로 다뤄왔는데 난 그걸 전혀 몰랐지. 알지도 못한 채 평생 너와 행복한 남편 놀이나 하며 살았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된 게 차라리 잘된 일이지.” 그의 입꼬리가 작은 미소를 그려냈다.“어떤 사건들은 삶에서 중요한 교훈을 주기 위해 일어나는 법이니까. 난 교훈을 얻었어. 지독하게 아픈 방식으로 배웠지. 미안해, 맥인타이어 부인. 죽은 우리 아이를 다시 돌려줄 수는 없겠지. 그건 내 능력이 밖의 일이지만, 우리가 다시 화해하고 정착하면 십여 명은 더 낳아줄 수 있어. 절대 너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네가 날 죽어서도 보기 싫어한다 해도, 넌 늘 네 주변에서 날 보게 될 거야.” 그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클레어의 결혼반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가슴은 불안하게 쿵쾅거렸고 눈은 피로로 가려웠다. 그는 단
Chapter 57헌터의 시점 (Hunter's POV)그가 내 뺨을 만지려 다가왔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턱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에게서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내려 그의 발밑에는 이미 붉은 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고 단단한 자세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널 사랑했던 내 자신이 지독하게 혐오스러워. 넌 내 인생 최고의 실수야. 널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시선을 내리까벼렸다. 그 모습에 내 가슴이 아려왔다. 저렇게 거대하고 막강한 남자가, 내 말 한마디에 어쩌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넌 나한테 할 만큼 고통을 줬어, 헌터. 다시는 내 앞에 얼굴 비밀 생각 마. 감히 또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난 자살해 버릴 거니까."그의 고개가 팍 들려 졌고, 그의 눈이 충격으로 크게 벌어졌다."너 그럴 수—""내가 할 수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죽은 내 아이를 걸고 맹세하는데, 난 정말 할 거야."그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너 절대로 그런 짓 못 해.""할 거야. 그리고 네가 내 아이를 죽인 책임이 있듯, 내 죽음에 대한 책임도 전부 네가 지게 될 거다."그가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내가 먼저 말을 막아섰다. "가버려, 헌터. 그냥 당장 가라고.""가라고, 제발!"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더 할 말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지독한 통증이 온몸을 괴롭혔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서럽게 오열했다. 벽에서 몸을 떼어내어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그러다 헌터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멀리 가지 못했다. 벽에 기대어 선 채, 코트 아래쪽 갈비뼈 부근을 살피고 있었다.나는 기둥 뒤로 숨어 그가 입술을 뒤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고, 그 모습에 내 가슴속에서 일렁임이 일어났다. 이내 그가 낮은 신음과 함께 왼쪽 갈비뼈에 박혀
Chapter 56무언가가 깨지고 파열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나는 그자리에 얼어붙었다. 헌터와 타일러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듯 맹렬하게 덤벼들었다. 헌터가 타일러를 벽으로 밀쳐치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타일러가 헌터를 밀쳐내고 있었다.단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두 사람 모두 온통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타일러가 헌터의 머리에 화병을 깨뜨리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퍼뜩 들었다. 충격으로 헌터가 몇 걸음 뒤로 휘청거렸다. 그는 중심을 잡으려 애쓰더니, 균형을 되찾자마자 미친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바닥에 떨어진 날카롭고 뾰족한 유리 조각을 낚아챘다."헌터, 안 돼!" 나는 그를 막아서며 온몸으로 그를 내던졌다.어지러움을 느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헌터의 피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의 이마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왼쪽 눈썹 끝이 찢어졌으며, 입술 오른쪽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그의 입술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괴물처럼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밀려왔다."제발..."내가 왜 애원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가 행동을 멈추기를 바라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피가 그렇게 빠르게 흘러내리는 것을 멈추기를 바라서였을까?헌터는 내 떨리는 몸짓을 본 듯, 유리 조각을 쥔 손에 세게 힘을 주어 손바닥을 깊게 찔렀다. 유리 조각을 내던지고 신음하기 전, 그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옆에 있던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타일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던 무기를 그가 내려놓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분노가 진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 분노가 그의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폭발하기 전에 그를 여기서 끌고 나가야 했다. 나는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하지만 요란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내 수고는 덜어졌다. 여러 사람의 발소리였고, 예상대로 제 오빠와 페넬로페, 그리고 타일러의 가족들이 달려왔
Chapter 55클레어의 시점 (Claire's POV)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머릿속은 지독한 두통으로 깨어질 듯 아파왔다. 꿈에서조차 이 두 사람이 이렇게 정면으로 맞붙는 상황 따위는 결코 바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그들이 서 있었다. 나를 사이에 두고. 대체 무엇을 위해서? 서로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나는 기가 막혀 실소를 터뜨리며 눈을 감았다 떴다.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성인군자는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들 모두 손에 피를 묻히고 사는 이들이었다.부자들이 더 큰 부를 쌓는 방식이 바로 그랬다. 피를 흘리는 것. 때로는 자신의 피를, 때로는 타인의 피를.비록 그들이 직접 범죄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없었지만, 그들이 어둠의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에 하수인이나 세력 기반이 없는 남자라면 그렇게 지독한 적의를 품고 타인을 위협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그런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그렇기에 나 때문에 그들이 물리적인 주먹다짐까지 벌이게 되는 상황이 끔찍하도록 두려워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너 지금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서 설치고 있다는 거 알고는 있냐?" 타일러가 양손을 불끈 쥐며 지독하게 찌푸린 음성으로 조롱하듯 중얼거렸다.헌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비웃었다. 하지만 그의 침묵 뒤에 숨겨진 치명적인 위험함이 공기를 통해 그대로 전해져 왔다.헌터가 순간 이성을 잃고 타일러의 목이라도 꺾어 내 손에 쥐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가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타일러," 나는 헌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를 막아서며 타일러를 향해 섰다.경련하듯 떨리는 내 손가락이 타일러의 손목을 잡았고, 나는 떨리는 미소로 그를 다독이려 애썼다."잠깐 밖에서 기다려 줄 수 있어? 제발."내 등 뒤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울려 퍼져 목덜미의 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