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차은호와 오전에 막 혼인신고를 마쳤는데, 그는 그날 오후에 나를 데리고 와서 이혼했다. 나는 혼인신고서와 이혼 서류를 손에 꼭 쥔 채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옆에서 차은호의 친구들이 나를 비웃었다. “차은호, 윤시아가 한마디 했다고 진짜 저 아가씨랑 결혼했다가 바로 이혼까지 한 거야?” “하하, 저 아가씨 얼굴 좀 봐. 새하얗게 질렸잖아. 혹시 울려는 거 아니야?” 하지만 차은호는 입양된 여동생 윤시아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정하게 말했다. “네가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이제는 나한테 웃어 줄 거지?” 그러자 윤시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싸늘하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앞으로 나서서 따지려고 했지만, 세 오빠가 나를 꽉 붙잡고 꼼짝도 못 하게 했다. 회사 대표인 큰오빠가 미간을 찌푸렸다. “시아를 웃게 할 수 있는 건 은호뿐이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톱스타인 둘째 오빠는 나를 바닥에 밀치면서 넘어뜨렸다. “시아는 처지가 딱하잖아. 넌 부족한 것도 없으니까 남자 하나 양보할 수는 있잖아.” 교수인 막내오빠도 얼굴을 굳혔다. “은호가 애초에 결혼했어야 할 사람은 시아야. 이제 그만 좀 매달려.” 세 사람은 자신들의 첫사랑인 윤시아의 행복을 내가 방해하지 못하게 억지로 나를 차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시스템이 마침내 다시 활성화됐다. [호스트님, 공략 퀘스트 완료가 감지되었습니다. 즉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나는 뒷좌석에 앉아 침울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공략 퀘스트를 위해 연기해 온 시간이 드디어 끝이 났다. 저 인간들이 사랑하고 미워하며 어떻게 얽히든,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상대해 주지 않을 거다.
View More“아니야! 그럴 리 없어!”차은호가 절망에 차 울부짖었다.“네가 지금 이렇게 돌아왔잖아! 우리 연구실에서도 이미 결과가 나왔어. 윤시아의 시스템도 분리해 냈고...”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끊었다.“당신들이 연구라고 부르는 건 더 잔인한 방식으로 남을 괴롭히고, 자신을 해치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것뿐이야.”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밀치고 들어왔다.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백지수!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너 때문이야!”바로 윤시아였다.윤시아는 놀랄 만큼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얼굴은 흉측한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한쪽 눈은 이미 실명한 상태였고, 초점이 없는 눈빛은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가장 먼저 반응한 건 차은호였다.윤시아가 달려드는 순간, 그는 거의 동시에 앞을 막아서며 거칠게 밀쳐 냈다.윤시아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바닥에 엎어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백지수...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저 인간들이 내 모든 걸 망가뜨렸어. 전부 너 때문에...”윤시아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차은호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저 조심스럽게 내 눈치만 살폈다.“지수야, 내가 널 지켜 줬어...”나는 차갑게 웃었다.“그런데 나를 상처 입힌 건 당신들 아니었어?”나는 새하얗게 질린 그 인간들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스템, 생명 유지 장치 꺼.”삐-길게 이어지는 기계음이 고요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그 소리는 그들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환상을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백지수는 이미 죽었어. 억지로 이 육체를 붙잡고 있으면 이 세계만 망가질 뿐이야.”하지만 차은호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눈에 어린 집착은 점점 더 짙어졌다.“지수야, 난 널 보내지 않을 거야.”그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기계를 꺼내서 버튼을 눌렀다.시스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끌림이 온몸을 휩쓸었다.눈앞이 차갑고 새하얀 빛으로 뒤덮였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병원 중환자실 바로 앞에 와 있었다.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해서 속이 울렁거렸다.중환자실 유리문 너머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몸이 누워 있었다.바로 ‘백지수’의 몸이었다.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온몸에는 갖가지 튜브가 꽂혀 있었고, 옆에 놓인 생명 유지 장치와 연결돼 있었다.모니터 위에서 움직이는 곡선만이 그 몸이 아직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그리고 침대 곁을 지키고 있는 건, 몰라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사람이었다.막내오빠 백우진.예전의 그는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흰 가운을 입었고, 다정한 목소리로 실험실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하지만 지금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진 채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원래 몸에 꼭 맞던 흰 가운도 이제는 뼈만 남은 몸에 걸쳐 놓은 듯 헐렁하게 늘어져 있었다.막내오빠는 침대 곁에 엎드린 채 한 손으로 병상에 누운 사람의 손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텅 빈 공허한 눈으로 기계 화면만 바라보는 모습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발소리가 바닥에 울리자, 백우진이 감전이라도 된 듯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그는 입을 벌렸지만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목구멍에서는 거친 숨소리만 새어 나왔다.“지... 지수야?”막내오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잔뜩 갈라져 있었다.“너야? 정말 너 맞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많이 말랐네.”막내오빠의 눈에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그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의 간식을 집어서 내 앞에 내밀었다.“네가 이거 좋아하는 거 알아. 시내에 있는 건 전부 사 왔어. 먹어 봐...”나는 간식을 받아 들었다가 옆에 내려놓고 담담하게 말했다.“너무 달아. 이제 안 좋아해.”막내오빠의 손이 갑자기 멈추더니 눈물이 더 거세게 쏟아졌다.나는 그
나는 어릴 때 자란 보육원으로 돌아갔다.원장님이 세상을 떠난 뒤, 이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낡고 허물어진 작은 건물에서는 예전의 북적이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담벼락은 이끼로 뒤덮였고 철문마저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나는 문밖에 서서 천천히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느꼈다.아주 어릴 때, 나는 보육원 문 앞에 버려졌다.그런 나를 발견해 데려와 키워 준 사람이 원장님이었다.원장님은 한때 내 인생의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은혜를 갚을 틈도 없이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을 잃은 것이다.원장님은 늘 말씀하셨다.“지수야, 마음속에 빛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해.”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이제 내게도 힘이 생겼으니, 당연히 원장님을 대신해 이 따뜻한 곳을 지키고 싶었다.나는 석 달에 걸쳐 보육원을 새로 단장했다.그리고 보육원에 ‘햇살’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예전에 원장님이 나를 밝혀 주었던 것처럼, 나도 의지할 곳 없는 이 아이들을 비춰 줄 수 있기를 바랐다.나는 차츰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받아들였다.겁먹은 듯 조심스러우면서도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나는 원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이들 곁을 지켰다.보육원에는 늘 구석에 숨어 있는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갑자기 내게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그림에는 여러 명의 조그만 사람들과 그보다 조금 키가 큰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었다.옆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지수 언니’와 ‘우리’라고 적혀 있었다.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가족이 될 수 있어서 정말 좋아.”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그렇게 3년이 흐른 뒤, 나는 어느새 다시 가족을 갖게 되었다.내 손으로 직접 선택한 가족이었다.보육원 옆에 새로 꽃집이 하나 들어섰다.꽃집 주인 정태오
의사는 나를 붙잡고 몇 번이나 다시 검사를 했다. 아무 이상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퇴원을 허락했다.나는 퇴원하자마자 가장 먼저 은행으로 갔다.계좌에 찍힌 긴 숫자들을 확인하고서야 천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시스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호스트님,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아직 알고 싶은 진실이 있으신가요?]나는 은행 카드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못 미더운 시스템은 나를 다른 세계에 던져 놓고 15년 동안 감감무소식이었지만, 어쨌든 내게 두 번째 삶을 주기도 했으니까.잠시 생각한 끝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호스트님과 이름이 같은 여주인공 백지수가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 여파로 세계관이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어쩔 수 없이 평행 세계에서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 여주인공을 대신하게 해야 했습니다.][호스트님은 원래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았고, 불치병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습니다.]기계적이던 시스템의 목소리에 희미하게 미안한 기색이 묻어났다.[죄송합니다. 하지만 세계관 붕괴를 막는 것이 저희의 임무입니다.]나는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납득했다.[괜찮아. 어쨌든 난 건강도 되찾고 상금도 받았잖아.]시스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곧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윤시아 말인데요.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또 다른 공략자입니다.][윤시아의 임무는 그 세계의 중요 인물들이 지닌 운을 흡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호스트님을 그 세계에 막 보낸 직후, 미처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도 전에 윤시아의 시스템이 제게 바이러스를 심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강제로 수면 모드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나는 눈길을 내리깔았다.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자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득했다.낯선 세계에 떨어졌으니 당연히 두렵고 불안했다.하지만 그 시절 오빠들이 나를 아껴 주고 차은호가 다정하게 대해 준 덕분에, 그 모든 불안은 차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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