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시은의 비통하고 처절한 오열이 피비린내 나는 자경전의 잿빛 밤하늘을 무참히 찢어발겼다.민혁은 주군의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슬픔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바닥에 엎드렸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처단했어야 할 피붙이를 놓쳤고 주군의 가장 소중한 버팀목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지독한 죄책감과 무력감이 민혁의 심장을 잔혹하게 도려내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간밤 자경전을 피로 물들였던 참혹한 폭풍이 지나간 황궁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그 소름 끼치는 고요함은 곧 제국 전체를 근본부터 뒤흔들어버릴 거대한 재앙의 전조에 불과했다."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지금 당장 뉴스를 보셔야 합니다!"아침 일찍 황후전 내실로 예의조차 갖추지 못하고 뛰어 들어온 한비서의 얼굴은 피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떨리는 손에 들린 태블릿 PC 화면에서는 대한제국 최고의 시청률과 파급력을 자랑하는 주요 방송국의 아침 뉴스 특보가 긴급 편성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그리고 화면의 정중앙에는 어젯밤 분명 혈랑회의 수장 김태혁에게 구출되어 도주했던 신아리가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머리와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환자복을 입은 채 수많은 기자의 마이크 앞에서 가증스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국민 여러분……! 저는 어젯밤, 이 황궁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지옥을 두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황후 민시은이…… 결국 황실의 모든 권력을 완벽하게 독차지하기 위해 완전히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제26화: 끊어진 숨결, 피 끓는 맹세의 밤]"마마의 길을 막는다면...설령 그것이 같은 피를 나눈 핏줄이라 할지라도,제 손으로 모조리 도륙하여 마마의 발밑에 꿇어 바칠 것입니다."민혁의 핏발 선 칠흑 같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포한 살기에 자경전 내실의 무거운 공기마저 날카롭게 얼어붙는 듯했다.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내 혈랑회의 수괴이자 15년 전 가문이 멸문지화 당하던 밤비를 맞으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친형 김태혁, 그 피붙이를 마주하고도 민혁이 꽉 쥔 티타늄 검 끝은 단 한 치의 흔들림이나 망설임조차 없었다.오직 등 뒤에 숨죽여 서 있는 주군 민시은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짐승 같은 맹목성만이 민혁의 이성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과거의 핏줄 따위는 현재의 신을 섬기는 사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미친 새끼 황후라는 고고한 계집 하나에 눈이 멀어 제 핏줄마저 서슴없이 물어뜯는 미친 사냥개가 되었단 말이냐!"태혁이 비릿하고 역겨운 조소를 흘리며 검은 망토 자락을 펄럭이더니 허리춤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두 자루의 쌍검을 뽑아 들었다."좋다! 선황제가 기른 개였던 나와 황후의 발밑을 핥는 개가 된 너! 어느 쪽의 이빨이 더 날카롭고 흉폭한지오늘 이 자리에서 한번 시험해 보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형제의 거대한 신형이 허공에서 맹렬하게 충돌했다.카아앙-!! 쾅!묵직한 티타늄 대검과 날렵한 쌍검이 무자비하게 부딪히며 귀를 찢는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엄청난 완력의 충돌 여파로자경전의 견고한 바
단호하게 외치던 시은의 고개가 거칠게 돌아갔다.자경전 내실에 벼락이 떨어지듯 날카롭고 매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평소 한없이 온화하고 자애롭기만 하던 대비마마가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며느리 시은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친 것이었다.하얗게 질린 시은의 뺨 위로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은은 너무 놀라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굳어버렸고뒤에 서 있던 민혁 역시 경악하며 검 자루를 쥔 채 흠칫 멈춰 섰다."닥치지 못할까!!!"평소 한없이 온화하고 자애롭기만 하던 대비마마가평생 처음으로 벼락같은그리고 피를 토하는 듯한 처절한 호통을 내질렀다. 시은은 놀라 입을 다물었다."네가 감정에 치우쳐 여기서 칼을 맞고 죽으면! 이 썩어빠진 제국은 신아리 같은 요부와 뒷골목 쓰레기들의 먹잇감이 되어 완벽하게 멸망하고 백성들은 도륙당하고 만다! 황후! 네 목숨은 이제 네 알량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이 제국을 구원할 마지막 남은 희망이야! 내가 이 늙은 황실의 가장 큰 어른인 내가 내 남편의 업보를 갚기 위해 짐승들의 길목을 막아설 것이니!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 반드시 저 옥좌에 앉아 이 지독한 피비린내를 끝내란 말이다!"대비마마가 호통을 치며 김비서에게 눈짓을 하자 김비서가 재빠르게 내실의 거대한 병풍과 벽장을 밀어내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육중한 비밀 통로의 강철문을 열어젖혔다. 서늘한 공기가 밀실에서 흘러나왔다."김민혁!!"대비마마가 엎드려 있는 민혁을 향해 피 끓는 명령을 하달했다.
일순간 자경전 내실을 채우던 목탁 소리와 함께 대비마마의 주름진 손에서 쉴 새 없이 굴러가던 옥 염주알이 딱- 하고 멈췄다.온화하고 인자했던 대비마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고 매서운 노기(怒氣)로 휩싸였다. 평생을 피비린내 나는 황궁의 암투 속에서 살아남아 정점을 찍은, 제국의 가장 큰 어른다운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내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선황제께서 기르다 버린 그 흉악한 짐승 새끼들이 감히 고아원 출신의 천박한 계집이 던져준 돈줄에 팔려 내 며늘아이의 고결한 처소를 짓밟으려 든단 말이냐!"대비마마가 자리에서 벼락같이 벌떡 일어나며 서늘하게 하명했다."김비서! 당장 자경전의 직속 근위대를 총동원하여 황후전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철통같이 차단하라! 감히 그 뱀 같은 계집이 옥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면 내 그년의 사지를 찢어 광화문 네거리에 매달 것이다!"김비서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려 할 때대비마마가 단호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리고 시은이와 그녀의 호위무사 민혁이를 당장 내 앞으로 은밀히 불러들이거라."대비마마의 탁한 눈동자에 날 선 결단이 스쳤다."이 늙은이가 늙은 손에 다시 피를 묻히더라도 내 새끼들만큼은 저 더러운 짐승들의 아가리에 결코 내어줄 수 없다. 당장 두 사람을 이곳 자경전으로 피신시켜!"한편 황후전의 굳게 닫힌 서재 한비서가 무전기를 들고 다급히 서재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쾅, 쾅, 쾅-!서재 밖 복도에서 다급하고 날카로운 발걸음 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굳게 닫힌
"그들은 그저 뒷골목에서 칼을 휘두르는 시정잡배가 아닙니다."무겁고 끈적한 침묵을 깬 것은 민석그룹의 두뇌이자 시은의 가장 충직한 수족인 한비서의 차분하지만 극도로 긴장된 목소리였다.안경 너머로 빛나는 그의 눈빛에는 지금 당장 마주해야 할 현실의 끔찍한 위기감이 서려 있었다."마마 혈랑회의 뿌리는 마마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참혹합니다.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시려면 피비린내 나던 과거 선황제 폐하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합니다."그 끔찍한 진실의 서막에 시은의 미간이 차갑게 좁혀졌고 등 뒤에 선 민혁의 호흡이 짐승처럼 거칠어졌다. 한비서의 묵직한 목소리가 서재를 채우며 공간은 순식간에 수십 년 전의 핏빛 과거로 빨려 들어갔다.[과거,선황제 시절의 암흑기]제국이 아직 철권통치 아래 신음하던 시절화려한 황궁의 가장 깊은 지하 밀실,어둠 속에서 황금빛 용포를 입은 선황제가 서늘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은 검은 그림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명분 없는 숙청은 백성들의 반발을 사고 황좌를 흔들 뿐이다."선황제의 탁하고 탐욕스러운 목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그는 품에서 붉고 끈적한 피로 그려진 듯한 '늑대 대가리' 문양이 박힌 흑철패를 바닥에 내던졌다.챙그랑-! 기분 나쁜 파열음과 함께 흑철패가 그림자들의 발밑에 굴러떨어졌다."그러니 너희가 짐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라 이 핏빛 늑대 문양이 곧 짐의 어명이다! 내 앞길을 막고 감히 황실을 능멸하는 꼿꼿한 귀족
서재의 공기를 날카롭게 찢어발기는 거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시은의 하얗고 가녀린 손이 이성을 잃은 민혁의 거친 뺨을 사정없이 있는 힘껏 내리친 것이었다.고개가 완전히 돌아가 버린 민혁은 뺨의 화끈거리는 고통보다 자신을 때린 시은의 낯선 행동에 경악하여 얼어붙었다. 시은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네 복수가 어찌 네 개인의 것이란 말이냐!"시은의 처절하고도 뼈를 깎는 듯한 외침이 메아리쳤다."네가 분명히 내 그림자라 하지 않았더냐!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내 지옥의 가장 흉포한 문지기가 되어주겠다 그리 맹세하지 않았더냐! 네 목숨은 온전히 내 것이라 확인해 놓고 어찌 이제 와서 네 목숨을 초개처럼 짐승들 입에 던지려 하느냐!"시은은 눈물을 쏟아내며무너질 듯 민혁의 넓은 가슴팍을 두 손으로 꽉 틀어쥐었다. 옷깃을 쥔 그녀의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덜덜 떨리고 있었다."너는 이 황궁에서 피를 묻히는 도구가 아니야! 14년 전 그 추운 겨울날 진흙탕 속에서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널 내 마음에 품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가 널 은애한다 김민혁! 내 심장이 널 사랑한단 말이다!"시은의 입술을 뚫고 나온14년 만에 처음으로 터져 나온 애절하고도 처절한 고백황후라는 껍데기를 모두 벗어 던진오직 한 여인으로서의 피 끓는 절규였다."혈랑회가 2,500억이라는 막대한 군자금을 손에 쥐었다면 그들은 이미 뒷골목의 단순한 암살단이 아니다. 제국을 통째로 전복시킬 괴물이 된 거야! 네가 이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