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황실 내수사 감사장 수십 개의 샹들리에가 뿜어내는 찬란한 불빛조차 지금 이 공간을 짓누르는 무거운 한기를 걷어내진 못했다.
"이 시각 부로 내명부 수장의 권한으로 황제 직속 궁녀 신아리를 국고 횡령 및 황후 암살 미수 혐의로 즉각 하옥할 것을 명한다. 방해하는 자는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역모의 죄로 다스릴 것이다!" 시은의 차갑고도 단호한 선언이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팽팽했던 감사장의 허공을 날카로운 검처럼 베어냈다. 일순간 호흡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지독한 정적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그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황명(皇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은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도열해 있던 호위무사 김민혁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턱짓 수신호를 받은 덩치 큰 내수사 소속 호위병들이 무거운 갑옷 소리를 절렁이며 맹수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있던 신아리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가녀린 양팔을 거칠고 억세게 꺾어 결박했다. "이....이거 놔! 당장 놓으란 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내 몸에 감히 손을 대고도 네놈들의 목숨이 온전할 줄 아느냐! 나는 폐하의 사람이야! 감히 나를 건드려?!" 아리가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악을 썼다. 목에 핏대가 서고 고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지만 오직 살육과 무력만을 위해 길러진 건장한 호위병들의 악력을 이겨낼 방도는 없었다. 버둥거릴수록 황제가 직접 하사했던 최고급 실크 드레스가 찢어질 듯 구겨졌고 머리를 장식하고 있던 수천만 원짜리 다이아몬드 티아라가 바닥에 나뒹굴며 파열음을 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짐짝처럼 질질 끌려가면서도 아리는 핏발이 선 살기 어린 눈으로 단상 위의 유종석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폐...폐하..폐하! 저를 살려주십시오! 저 독부가 앙심을 품고 모든 것을 조작한 것입니다! 폐하, 제가 폐하를 위해 어찌 살았는데 저를 이대로 내치십니까! 제발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폐하아아!" 단장지애(斷腸之哀)와도 같은 처절한 비명이 감사장의 높은 천장을 때리고 울렸지만 황제 유종석은 마치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갇힌 사람처럼 옥좌에 굳어버린 채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자신을 부르는 아리가 아니었다. 탁자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자신의 추악한 죄악을 낱낱이 까발릴 명백한 회계 장부들과 비밀 거래 내역서가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범접할 수 없는 서늘한 노기를 뿜어내며 자신을 응시하는 어머니 대비마마의 꿰뚫는 듯한 시선에 완전히 묶여 있었다. 종석의 머릿속이 미친 듯이 굴러갔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옥좌의 팔걸이를 쥔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덜덜 떨려왔다. '지금 이 끔찍한 상황에서 아리를 감싸고돈다면 나 또한 끝장이다.' 그것은 5천억이라는 막대한 국고 횡령의 진짜 주범이 황제 본인이라는 사실을 저 단상 아래에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과 감사관들 앞에서 만천하에 인정하는 꼴이 될 터였다. 한 번 불이 붙은 여론은 황제라는 껍데기조차 불태워버릴 만큼 거세게 타오를 것이 뻔했다. '내...내가 저 천박한 계집 하나 때문에 이 절대적인 옥좌를 잃을 수는 없다. 꼬리를 잘라야 해 철저하게 아주 완벽하게 혼자 다 뒤집어쓰게 만들어야만 내가 산다.' 가장 고결하고 자애로워야 할 제국의 지배자이자 비열한 권력의 노예 종석은 결국 제 얄팍한 안위와 남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어젯밤까지만 해도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던 여인의 비명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는 공포로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아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무는 그의 모습은 한 나라의 황제라기보단 겁에 질린 한 마리 쥐새끼에 불과했다. "폐하! 폐하아아앗!!" 자신을 완벽하게 외면하는 종석의 비겁한 모습 그 찰나의 뒷모습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아리의 절규가 처절하게 찢어졌다. 그것은 버림받은 자의 절망이자 스스로 권력의 정점에 섰다고 착각했던 오만한 꼭두각시의 최후였다. 그 비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몰락을 단상 아래서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시은의 맑은 눈동자에는 단 한 줌의 동정심이나 연민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 14년 저 천박하고 붉은 입술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온 가증스러운 거짓말들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13살의 어린 신부였던시은은 자신이 촛불 하나 없는 차가운 별궁에서 홀로 삼켜야 했던 수많은 피눈물과 굴욕의 밤들 황실의 안주인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온갖 모멸감을 견뎌야 했던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면 고작 이 정도의 수모는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복수의 서막에 불과했다. "조용히 끌고 가라 내명부의 가장 깊고 서늘한 한 줌의 빛조차 들지 않는 제1 지하 옥방에 가두고 내가 직접 명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면회도 단 한 모금의 물조차 허락하지 마라!" 시은이 싸늘하게 돌아서며 쐐기를 박았다. 얼음장 같은 황후의 축객령에 아리의 발악하는 목소리는 닫히는 육중한 감사장 철문 밖으로 멀어지며 이내 완전히 사그라졌다. 아리가 끌려나간 감사장은 마치 거대한 빙하에 갇힌 듯 헛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숨 막히게 고요했다. 천하의 오만한 황제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증거로 굴복시키고 무려 14년간이나 황실을 어지럽히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요부를 단숨에 처단해버린 황후.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경이롭고도 무자비한 반전 앞에서 모두가 맥을 못 추고 있었다. 평소라면 황실의 스캔들을 물어뜯기 위해 혈안이 되어 셔터를 눌러댔을 언론의 날카로운 펜대들조차 카메라를 내린 채 숨을 죽이고 시은의 눈치만을 살폈다. 꼿꼿하기로 소문난 내수사의 늙은 관원들 역시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을 꼴깍 삼킬 뿐이었다. 시은은 특유의 기품 있고 흐트러짐 없는 우아한 걸음으로 아직도 옥좌에 굳어있는 종석의 앞까지 천천히 다가갔다. 또각, 또각, 그녀의 구두 굽 소리만이 적막한 감사장을 울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차가운 허공에서 팽팽하게 얽혔다. 끝 모를 두려움과 생전 처음 겪는 굴욕감 그리고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종석의 얼굴 그 초라한 낯짝을 내려다보며 시은은 작고 서늘한 그러나 상대의 뼛속까지 시려오는 조소를 지었다. "폐하, 부디 옥체를 강건히 보존하시어 앞으로 다가올 무수한 재판과 추궁의 시간들을 단단히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시은의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그 안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황실의 깊게 곪아 터진 상처를 도려내는 이 핏빛 수술은 이제 막 아주 가벼운 첫 칼을 대었을 뿐이니까요." 그 서늘하고도 뼈 있는 경고를 끝으로 시은은 단상에 서 있던 대비마마에게 다가가 정중하고 기품 있게 부축하며 감사장을 빠져나갔다. 쾅-! 시은과 대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무거운 감사장의 철문이 닫혔다. 그 굳게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종석의 눈동자가 이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포와 굴욕감으로 하얗게 질려 있던 그의 뺨에 서서히 시뻘건 분노가 차오르더니 종내에는 핏줄이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민시은... 감히 쥐새끼 같이 숨죽이고 살던 계집이 감히 나를 이딴 식으로 능멸해...?" 감히!!! 그의 목구멍에서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기괴한 쇳소리가 긁히듯 새어 나왔다. 탁자 위에 흩어진 자신의 치부 그 회계 장부들을 찢어질 듯 꽉 움켜쥔 종석의 손등 위로 굵은 핏대가 흉측하게 불거졌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반쪽짜리 증거들로 옥좌를 빼앗기고 바닥을 뒹굴 바에야차라리 그 잘난 황후의 목을 먼저 쳐버리는 것이 빠르지 않겠는가 그녀만 사라진다면 민시은 저 오만하고 독기 품은 눈깔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파내어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말이야" 하지만 옥좌를 잃을 위기에 처한 자신이 직접 피를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완벽하고 잔혹하게 저 독부를 물어뜯어 줄 사냥개가 필요했다. "흠..누가 좋을까 황실의 가장 깊고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기꺼이 칼춤을 출 미친개... 그때 분노로 흔들리던 종석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며 번뜩였다.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 하나의 이름.. "아! 그놈이 있었지" 아무도 남지 않은 텅 빈 감사장 벼랑 끝에 몰린 오만한 황제의 입가에 번진 것은소름 끼치도록 비릿하고 잔혹한 미소였다.시간은 흐르고, 제국의 상처는 핏빛 진달래가 피고 지는 숱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서서히 아물어갔다.신아리의 참수 이후, 제국은 거짓말처럼 평온을 되찾았다.썩어빠진 반역자들의 피로 대지를 씻어낸 황후 민시은의 통치는 잔혹하리만치 무자비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 철권통치 덕분에 백성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어느 화창한 봄날의 오후,거센 피바람이 불었던 자경전(慈慶殿) 앞마당에는 이제 따스한 햇살만이 가득했다."어마마마-!"봄바람을 가르며 들려오는 청아하고 앳된 목소리,올해로 다섯 살이 된 제국의 유일한 황태자, '윤(潤)'이 화려한 태자복을 펄럭이며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테라스 상석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시은의 붉은 입술에 부드럽고 우아한 미소가 번졌다."뛰지 마시지요, 전하 그러다 옥체라도 상하시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어마마마께서 곁에 계시는데 제게 감히 무슨 일이 생기겠사옵니까! 어마마마께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신 분인걸요!"시은의 품에 와락 안긴 어린 황태자는,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 자신을 품어준 세상 유일한 어미를 우러러보았다.신아리의 뱃속에서 태어난 원수의 핏줄 하지만 그 끔찍한 진실을 아는 자는 이제 이 궐 안에 아무도 없었다.
먹구름이 무겁게 짓누른 제국의 아침,밤새도록 미친 듯이 쏟아지던 짐승 같은 폭우는 멎었지만, 자경전(慈慶殿) 앞마당을 가득 채운 축축하고 비릿한 흙냄새는 금방이라도 피바람을 몰고 올 듯 음산하게 깔려 있었다.이른 새벽부터 황궁의 넓은 앞마당에는 제국의 모든 대신들과 종친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도열해 있었다.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마당 한가운데에 높게 솟아오른 서늘한 단두대, 그리고 그 단두대를 굽어보는 가장 높은 상석에 자리한 거대한 옥좌였다.옥좌에는 황제의 상징인 흑룡포를 연상케 하는 압도적이고도 화려한 핏빛 적의를 두른 여제, 황후 민시은이 북해의 빙하처럼 차가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거대한 사신(死神)처럼 칠흑 같은 제복을 입은 김민혁이 서늘하게 안광을 번뜩이며 버티고 서 있었다."죄인을 끌어내라"시은의 붉은 입술 사이로 떨어진 무자비한 하명,그와 동시에, 묵직한 북소리가 둥, 둥, 둥 하며 황궁의 적막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아아아악! 놔! 놔란 말이야!! 내 아이! 내 아이를 돌려줘!!"내수사(內需司) 감찰 요원들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짐짝처럼 질질 끌려 나오는 한 여자,어젯밤 끔찍
황궁의 시간은 피도 눈물도 없이 무심하게 흘러갔다.거센 눈보라가 치던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핏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을 거쳐, 다시금 숨 막히는 폭염이 제국을 덮칠 때까지. 그 기나긴 10개월의 시간 동안 황궁은 황후 민시은의 완벽하고도 서늘한 철권통치 아래 쥐 죽은 듯한 평정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화려하고 평온한 정전(正殿)의 수십 미터 아래, 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 특별 구금실의 시간은 오직 지독한 절망과 광기로만 점철되어 있었다."내 아이야...조금만 참으렴. 이 어미가 꼭 널 황제로 만들어 줄 테니까 으흐흐흑."만삭이 된 배를 부여잡고 거친 짚단 위에 웅크린 신아리의 모습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오직 '황태자 배양기'로서의 역할만 허락된 그녀에게, 내의전 상궁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차가운 얼굴로 들어와 최고급 영양액과 순산약만을 강제로 입에 쑤셔 넣고 나갈 뿐이었다.단 한마디의 대화도, 한 줌의 따뜻한 온기도 없는 철저한 고독 이였다.아리는 불러오는 배를 쥐어뜯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친 듯이 웃다가, 이내 짐승처럼 처절하게 오열하는 기괴한 발작을 반복하며 서서히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검은 폭우가 쏟아지던 늦여름의 어느 짐승 같은 밤,
"내... 내 아이야! 내 배 속의 아이라고! 네년이 무슨 권리로 내 핏줄을 빼앗아!!"지하 구금실의 썩은 공기를 찢고 신아리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승리의 단꿈에 젖어 있던 그녀의 오만방자했던 얼굴은 이제 짐승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사지를 결박한 강철 쇠사슬이 살갗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아리는 고통조차 잊은 채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이 악마 같은 년! 차라리 날 죽여! 날 당장 죽이라고! 내 아이가 널 어미로 부르게 두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이 배를 갈라버릴 테다!!"아리가 악귀처럼 눈을 까뒤집으며 결박된 손으로 제 배를 내리치려 발악했다.그러나 그 하찮은 자해 시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시은의 턱짓 한 번에, 어둠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블랙 쉴드 요원들이 벼락처럼 달려들어 아리의 사지를 짐짝처럼 바닥에 짓눌러 완벽하게 제압했다."그 알량한 모성애마저도 참으로 역겹구나, 신아리."시은은 발밑에서 짐승처럼 헐떡이는 아리를 쓰레기 보듯 서늘하게 내려다보며 붉은 입술을 열었다."네년이 14년 전 황실에 기어들어 오기 위해 버렸던 첫 번째 핏줄은 기억조차 나지 않더냐?! 권력을 위해 제 자식조차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네가! 이제 와서 황손이라는 권력의 동아줄을 빼앗기게 생기니 어미 흉내를 내는 꼴이 참으로 가소롭다.""아아아악! 민시은!! 널 저주해! 내 아이가 언젠가 네년의 목을 물어뜯을 거야!!""마음껏 저
여명이 밝아오는 황궁,어젯밤,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호위무사 김민혁이 신아리의 독방에 잠입해 소리 없이 빼내 온 극미량의 혈액 샘플. 그 작은 핏방울이 품고 있는 끔찍한 진실을 낱낱이 해독하기 위해, 황실 지하 벙커의 초정밀 양자컴퓨터는 밤새도록 쉬지 않고 육중한 기계음을 뿜어내고 있었다.밤새 피비린내 나는 폭풍이 휩쓸고 간 궐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지만, 황후전 집무실의 공기만큼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마마 민석그룹 양자컴퓨터 연구소에서 급파된 수석 연구원이 도착했습니다."굳게 닫혀 있던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한비서의 다급한 안내를 받으며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식은땀을 닦아내며 안으로 들어섰다.그의 손에는 삼중으로 굳게 봉인된 티타늄 금고가 들려 있었다.지난밤 채취한 신아리의 혈액과, 과거 유종석 및 김태혁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밤새도록 교차 대조한 가장 완벽하고도 잔혹한 '최종 분석 결과'였다."이리 가져오라."거대한 자단목 책상 앞에 꼿꼿하게 앉아 있던 시은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명령했다.연구원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금고의 암호를 해제하고, 붉은 황실의 인장이 묵직하게 찍힌 서류 봉투를 시은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민혁은 시은의 등 뒤에 거대한 산처럼 서서, 그 얇은 서류 봉투를 뚫어질 듯 예리하고 살벌하게 주시하고 있었다.시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봉투의 밀봉을 미련 없이 뜯어냈다.바스락거리는 종이 마찰음만이 숨 막히는 집무실의 정적을 채웠다.
"마마! 신아리가 냉궁에서 깨진 유리 조각으로 쇠사슬을 끊고, 제 몸에 상처를 내며 탈주를 시도하다 발각되었습니다!" 어스름한 새벽, 황후전 집무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김비서의 다급한 보고에 시은의 맑은 눈동자가 북해의 빙하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젯밤, 달빛 아래 야외 테라스에서 민혁과 나누었던 온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유리 조각이라니 감시가 그리 철저하거늘, 기어이 제 목숨과 뱃속의 핏덩이를 담보로 황실을 겁박하려 드는구나." "제압하는 과정에서도 제 배를 끌어안고, 뱃속의 황손이 잘못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악귀처럼 발악을 해대어 감찰 상궁들이 진땀을 뺐사옵니다." 시은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며칠 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던 신아리가 단두대 밑에서 마지막 발악처럼 던졌던 '회임'이라는 단 한마디. 그것은 단순한 비루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은이 자신의 아버지를 희생하며 피눈물로 힘겹게 쌓아 올린 이 모든 숙청과 개혁의 정당성을, 단번에 '황실의 적통을 무참히 살해한 잔혹한 반역'이라는 더러운 프레임으로 완벽하게 짓이겨버리겠다는, 악녀다운 가장 교활하고 악랄한 역습이자 방패였다. 시은은 핏빛 적의(翟衣)를 차려입고 곧장 대비마마가 머무는 자경전(慈慶殿)으로 향했다. 병석에 기대어 있던 대비마마 역시 이미 냉궁의 소란을 전해 들었는지, 핏기가 가신 창백해진 얼굴로 이마를 짚고 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