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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Author: 해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5 19:42:43

강도현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빈소에는 밤새 향이 피어 있었고, 조문객들이 놓고 간 흰 국화가 영정 앞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국밥집 단골들과 시장 상인들은 정숙이 얼마나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지만, 정작 그녀의 아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남자는 조화 한 송이 보내지 않았다.

도현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강성호의 이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면 적어도 한 번쯤은 찾아올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자신 때문에 평생 고생한 여자가 세상을 떠났다면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전화는 세 번째 시도 끝에 연결됐다.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강도현입니다. 회장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대는 도현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으면서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님께서는 현재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계십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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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억울하면 증거를 가져오든가."도현은 형의 얼굴을 살폈다."원본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군요.""회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나?"태준은 넥타이를 고쳤다."도현아, 이제 그만 인정해. 넌 여기까지야. 아버지도 널 버렸고, 이사회도 네 편이 아니야."도현은 그를 지나치려 했다.그러나 태준이 다시 불렀다."어머니 장례는 잘 치렀어?"도현의 발걸음이 멈췄다.태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내가 직접 가려다가 참았어. 기자들이 붙어 있는데 괜히 말 나올 필요 없잖아."도현은 천천히 돌아섰다."어머니가 그날 형한테 무릎 꿇으셨습니까?"태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그걸 누가 얘기해 줬어?""꿇으셨냐고 물었습니다."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어머니가 먼저 그러셨지. 나보고 도현이 좀 살려 달라고. 평생 모은 통장까지 가져오셨더라."도현의 손가락이 굳었다."그 통장에 얼마가 들어 있었는지 알아? 팔백사십억 원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걸 내놓으시는데, 솔직히 좀 당황스럽더라고."태준은 웃음을 참지 않았다."그 돈이면 변호사 착수금이나 제대로 낼 수 있겠어?"도현은 형에게 다가갔다."그만하십시오."태준은 물러서지 않았다."왜? 사실이잖아. 그렇게 귀한 아들이면 애초에 이 집에 보내지 말았어야지. 어머니도 자기 처지를 너무 늦게 아신 거야."도현은 태준의 멱살을 붙잡았다.태준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다시 말해 봐."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우리 어머니가 무릎 꿇고 계실 때 형은 뭘 했습니까?"복도 끝에서 경호원들이 달려왔다.태준은 도현의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귓가에 속삭였다."때려. 그래야 네가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증명되지."도현은 그제야 주변을 보았다.경호원 한 명이 휴대전화로 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태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못 때리겠어?"도현은 천천히 손을 풀었다.태준의 구겨진 옷깃이 아래로 떨어졌다."형이 원하는 게 이거였군요."태준은 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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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은 거래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강성호가 고개를 들었다."지금 네 형을 의심하는 거냐?""제 서랍에서 원본이 사라졌습니다. 그 열쇠를 가진 사람은 몇 명 안 됩니다. 적어도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도현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아버지께서 조사 지시만 내려 주십시오. 제가 범인이라면 책임지겠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진실을 확인할 기회는 주셔야 합니다."강성호는 잠시 아들을 바라보다가 내선전화를 들었다."비서실장."도현은 아버지가 조사를 지시하려는 줄 알았다.그러나 이어진 말은 전혀 달랐다."강도현의 사무실 접근권한을 오늘부로 전부 정지시켜. 개인적으로 보관한 회사 자료가 있으면 회수하고, 감사팀에 대한 자료 제출도 비서실 승인 없이 진행하지 못하게 해."도현의 눈이 커졌다."아버지!"성호는 전화를 끊었다."네가 더 이상 일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거다."도현은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았다.자신을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방금 자신의 마지막 방어 수단을 빼앗았다."제가 무슨 자료를 갖고 있는지 확인도 안 하셨잖습니까.""네가 가진 자료 때문에 그룹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제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그 판단은 내가 한다."도현은 말을 잃었다.성호는 찢어질 듯 팽팽해진 침묵 속에서 진술서를 다시 밀었다."서명해라. 네가 살 길은 그거다."도현은 종이를 바라보다가 낮게 물었다."제가 감옥에 가도 상관없으십니까?"성호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그룹을 지키려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도현은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아버지는 자신의 무죄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진실을 확인할 생각조차 없었다. 누가 범인이든 그룹을 지킬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 자리에 자신을 앉히기로 결정한 것이다."저는 아버지 아들 아닙니까?"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한 번이라도 제 편을 들어 주시면 안 됩니까?"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도현은 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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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현은 다음 서류를 펼쳤다."어머니가 저택에 들어간 기록은요?"변호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경비실에서는 방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일부 영상이 저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일부라면 어느 부분입니까?""어머님이 현관으로 들어가신 뒤부터 나오실 때까지의 기록입니다."도현의 손이 멈췄다.대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 모습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저택 안에서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만 없다는 뜻이었다."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영상 저장장치의 원본과 접근 이력을 확인해야 합니다."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해 주십시오. 추측으로 누구를 범인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그는 어머니의 통장을 꺼냈다.낡은 표지 사이에는 작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도현이 변호사 비용.*정숙이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돈이었다."하지만 어머니가 그 집에서 무슨 일을 겪으셨는지는 반드시 알아야겠습니다."변호인은 서류철을 닫았다."그런데 도현 씨,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도현이 고개를 들었다."회장님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강성호가 아들을 부른 곳은 한성그룹 계열사 연수원 별관이었다.회장실이 있는 본사와 달리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장소였다. 도현은 변호인과 함께 도착했지만, 비서실장은 회장이 부자 사이의 대화를 원한다며 도현만 안으로 안내했다.회의실 문을 열자 강성호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예순아홉의 회장은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다. 회색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맞춤 양복의 소매 끝에는 값비싼 시계가 드러나 있었다.도현은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던 아버지가 바로 앞에 있었다."앉아라."성호는 아들의 상복을 한 번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현은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어머니 장례식에 왜 안 오셨습니까?"강성호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그 이야기를 하자고 부른 게 아니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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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현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빈소에는 밤새 향이 피어 있었고, 조문객들이 놓고 간 흰 국화가 영정 앞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국밥집 단골들과 시장 상인들은 정숙이 얼마나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지만, 정작 그녀의 아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남자는 조화 한 송이 보내지 않았다.도현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강성호의 이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면 적어도 한 번쯤은 찾아올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자신 때문에 평생 고생한 여자가 세상을 떠났다면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전화는 세 번째 시도 끝에 연결됐다."회장님 비서실입니다.""강도현입니다. 회장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대는 도현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으면서도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회장님께서는 현재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계십니다.""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 위치를 전해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비서실 직원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도현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영정을 바라보았다.사진 속 정숙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몇 해 전 도현이 억지로 사진관에 데려갔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정숙은 국밥집에서 일하다 왔다며 옷차림을 걱정했고, 사진사가 머리를 조금 만져 주자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엄마가 무슨 연예인이라고 이런 걸 찍니?**나중에 손주 생기면 보여 줘야지. 우리 엄마 얼마나 예쁜지.*그날 어머니가 웃던 모습이 떠오르자 도현은 목 안쪽이 뜨겁게 조여 왔다.잠시 후 직원이 돌아왔다."회장님께서는 조문이 어렵다고 하십니다."도현은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어렵다고요?""현재 그룹 상황이 좋지 않아 외부 노출을 자제하고 계십니다.""제 어머니 장례식에 오는 게 외부 노출입니까?"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도현은 한동안 숨을 골랐다."회장님께 다시 전해 주십시오. 이정숙 씨가 돌아가셨다고요. 회장님께 아무것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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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도현은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말씀하십시오.""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도현은 움직이지 않았다.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변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람을 잘못 확인한 겁니다. 우리 어머니는 국밥집에 계십니다."도현은 떨리는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붙잡았다."어제 저랑 통화했어요. 밥 먹으라고 하셨고, 가게 문 닫고 나가신다고 했습니다."그는 변호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우리 어머니는 저 혼자 두고 가실 분이 아닙니다."변호인의 눈가가 붉어졌다.도현은 그제야 자신의 말이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지 깨달았다.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제가 아직 아무것도 못 해 드렸습니다."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가게 그만두시라고 해도 싫다고 하셔서, 나중에 좋은 집 사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여행도 보내 드리고, 손주도 안겨 드리고……."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못 했는데……."변호인은 조심스럽게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병원에서 보관하던 소지품 일부입니다."도현은 한동안 봉투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안에는 낡은 통장이 들어 있었다.도현은 그것을 알아보았다.어머니가 늘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 두던 통장이었다. 자신이 드린 용돈을 쓰지 않고 모으신다는 걸 알고 몇 번이나 말렸지만, 정숙은 웃으며 나중에 쓸 데가 있다고 했다.도현은 통장 사이에서 접힌 종이를 발견했다.그것을 펼치자 삐뚤빼뚤한 글씨가 나타났다.*도현이 변호사 비용.*도현의 손이 멈췄다.어머니는 자신을 구하려고 평생 모은 돈을 들고 갔다.그 돈을 가방에 넣고 비를 맞으며 회장 저택까지 찾아갔다.자신이 평생 인정받고 싶어 했던 그 집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도현은 종이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떨었다."엄마……."그는 통장을 가슴에 끌어안았다."엄마, 왜 거길 갔어……."어머니에게 가지 말라고 했었다.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었다.그

  • 재벌가에서 버린 아들이 세계를 샀다   12화

    *도현이한테 가야 하는데.*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밥은 먹었을까.혼자 조사받으면서 얼마나 무서울까.정숙은 휴대전화를 꺼냈다.화면에는 도현의 부재중 전화가 남아 있었다.그녀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되지 않았다.다시 걸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정숙은 휴대전화를 가슴에 붙였다."우리 아들……."빗속으로 작은 목소리가 흩어졌다."엄마가 미안하다."그녀는 도현에게 미안했다.아버지 없는 아이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했고, 남들처럼 넉넉하게 키워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회사에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 알면서도 괜찮다는 말밖에 해 주지 못했다.그런데 오늘은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는데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정숙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큰길로 이어지는 경사로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그녀는 담장을 붙잡았다.가슴을 누군가 세게 움켜쥐는 것 같았다.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정숙은 가방을 놓치지 않으려고 팔에 힘을 주었다.그 안에는 도현의 변호사 비용이 들어 있었다.아들에게 줄 돈이었다.그 돈만큼은 잃어버리면 안 됐다.그러나 발이 미끄러졌다.정숙은 무릎부터 아스팔트에 부딪혔다.가방이 옆으로 떨어지고, 휴대전화가 손에서 미끄러져 배수로 근처까지 굴러갔다.정숙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빗물이 얼굴을 때렸다.그녀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휴대전화 화면이 켜져 있었다.**도현이.**정숙은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그러나 손끝이 허공을 더듬을 뿐이었다.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다가왔다.정숙은 입술을 움직였다."저기……."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차량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갔다.바퀴가 튀긴 빗물이 정숙의 얼굴을 덮쳤다.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우리 도현이, 밥은 먹었을까.*마지막까지 그 생각뿐이었다.정숙은 휴대전화 쪽으로 손을 뻗었다.*엄마가 조금만 더 살아야 하는데.*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는 걸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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