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신탁청의 회신은 다음 날 아침 도착했다.
솔은 마차 안에서 접힌 종이를 다시 펼쳤다.준경은 맞은편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계약은 오늘 조사 중에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준경이 시선을 돌렸다.“오늘만?”“예.”짧은 침묵이 흘렀다.솔은 다음 줄을 읽었다.“공작님은 신탁청 안까지 동행하실 수 있습니다.”“조사실은?”솔이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준경이 코웃음을 쳤다.“못 들어오게 했구나.”“예.”“마지막은.”솔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예언은 필요하면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준경의 얼굴에서 남아 있던 여유가 사라졌다.“하나도 제대로 받은 게안 일어났습니다. “수레입니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신탁청 직원 하나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수레가 출발했습니다.”솔이 고개를 들었다.“지금요?”“예. 준비가 일찍 끝나 예정 시간보다 먼저 출발했습니다.”준경의 표정이 굳었다.솔이 바로 물었다.“어느 길로 갔습니까?”직원이 잠깐 숨을 골랐다.“왼쪽으로 간다고 들었습니다.”솔의 손끝이 멈췄다.좁은 산길.큰 돌.흔들리던 오른쪽 바퀴.쏟아지던 상자.사라지던 사람.“멈춰야 합니다.”신탁청 실무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성문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이미 지났습니다.”방금 들어온 직원이 말했다.“조금 전에 성문을 통과했다고 합니다.”준경이 바로 몸을 돌렸다.“말 준비해.”신탁청 쪽에서도 곧바로 사람들이 움직였다.솔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준경이 돌아봤다.“넌 여기 있어.”“사고가 나는 곳을 제가 봤습니다.”“방금 대가 치렀어.”“공작님도 마찬가지잖아요.”준경이 입을 다물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솔은 그대로 덧붙였다.“어디서 사고가 나는지 압니다.”준경이 솔을 잠깐 바라봤다.“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예.”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복도 끝에서 이미 말발굽 소리가 들
오른쪽 길.“아닙니다. 한 번 더 보겠습니다.”상대는 바로 허락하지 않았다.“지금 상태로 가능합니까?”“예.”“알겠습니다.”솔은 오른쪽 길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뗐다.손끝이 아까보다 차가웠다.주먹을 한 번 쥐었다.아직 움직였다.아직 볼 수 있었다.솔은 눈을 감았다.⸻이번에는 들판이었다.길은 넓었다.산길처럼 비탈도 없었고, 바퀴가 걸릴 만한 큰 돌도 보이지 않았다.수레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마부가 고삐를 잡고 있었다.뒤에는 호위 둘이 말을 타고 따랐다.별일은 없었다.솔은 조금 더 보았다.수레가 작은 다리를 건넜다.다리를 무사히 지나고,다시 평평한 길로 들어섰다.그때였다.덜컹.솔의 시선이 수레 아래로 향했다.바퀴 하나가 흔들렸다.아까와 같은 쪽이었다.덜컹.한 번 더.이번에는 바퀴가 옆으로 꺾였다.수레가 갑자기 기울었다.마부가 몸을 돌렸다.말이 놀라 옆으로 뛰었다.수레가 그대로 넘어졌다.뒤따르던 호위 하나가 미처 피하지 못했다.솔이 눈을 떴다.숨이 턱 막혔다.탁자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속이 거칠게 뒤집혔다.차가움이 손끝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팔을 타고 올라왔다.
신탁청의 작은 조사실 안에는 실무관 두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폐성에서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지만 보면 됩니까?”“아니.”탁자 위에 얇은 서류 한 장이 놓였다.“얼마나 달라졌는지 본다.”“본인은 알고 있습니까?”“모르는 것 같더군.”잠깐 침묵이 흘렀다.“무리시키지는 마십시오.”“당연하지.”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두 사람의 대화가 멈췄다.곧 문이 열렸다.솔이 들어왔다.⸻“예언입니다.”솔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바라봤다.“지금요?”“예.”대답은 짧았다.솔은 잠깐 뒤를 돌아봤다.들어올 때 닫힌 문이 보였다.그 너머에는 준경이 있었다.혼자 있지 마.신탁청에 오기 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솔이 물었다.“문을 열어두면 안 됩니까?”“안 됩니다.”“공작님이 밖에 계십니다.”“알고 있습니다.”“그런데도요?”“예.”솔은 잠깐 상대를 바라봤다.더 설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알겠습니다.”자리에 앉았다.“무엇을 보면 됩니까?”상대가 접어놓은 지도를 펼쳤다.작은 마을 하나와 그곳으로 이어지는 두 길이 보였다.한쪽은 산을 끼고 돌았고, 다른 한쪽은 들판을 가로질렀다.“오늘 오후에 수레 한 대가 이 마을로 갑니다.”손가락이 마을을 짚었다.
신탁청의 회신은 다음 날 아침 도착했다.솔은 마차 안에서 접힌 종이를 다시 펼쳤다.준경은 맞은편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계약은 오늘 조사 중에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준경이 시선을 돌렸다.“오늘만?”“예.”짧은 침묵이 흘렀다.솔은 다음 줄을 읽었다.“공작님은 신탁청 안까지 동행하실 수 있습니다.”“조사실은?”솔이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준경이 코웃음을 쳤다.“못 들어오게 했구나.”“예.”“마지막은.”솔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예언은 필요하면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준경의 얼굴에서 남아 있던 여유가 사라졌다.“하나도 제대로 받은 게 없네.”틀린 말은 아니었다.솔은 종이를 접었다.“그래도 갑니다.”“알아.”준경은 한쪽 팔을 창틀에 걸쳤다.그러다 솔을 봤다.“지금 돌아가자고 하면?”“안 돌아갑니다.”“물어본 것뿐이야.”“저도 대답한 것뿐입니다.”준경이 잠깐 솔을 바라보다가 웃었다.“요즘 말이 좀 세졌네.”“공작님이 자꾸 그렇게 물으시니까요...”“내 탓이라고?”솔은 대답하지 않았다.마차가 속도를 줄였다.창밖으로 높은 석조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솔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준경이 그걸 봤다.“긴장돼?”“조금요.”“안
기다려주십시오“제가 가겠습니다.”솔의 대답이 떨어진 뒤에도 준경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식탁 위에는 아직 펼쳐진 공문이 놓여 있었다.준경은 솔을 보고 있었다.“네가 결정한 거라고 했지.”“예.”“후회 안 해?”솔은 잠깐 생각했다.“아직 가지도 않았습니다.”준경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그래. 그것도 맞네.”그가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공기가 아주 잠깐 느슨해졌다.그러나 그뿐이었다.“좋아.”준경이 말했다.“같이 가.”솔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렇다고 그냥 들어가진 않을거야.”준경은 식탁 위 공문을 손끝으로 두드렸다.“저쪽에서 원하는 대로 네가 혼자 가서 묻는 말에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예언하고. 그런 건 안 돼.”솔이 공문을 내려다봤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그럼 정하자.”준경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뭘 받아내야 하는지.”솔은 잠시 생각했다.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계약은 건드리지 못하게 해주십시오.”준경은 바로 대답했다.“그건 당연하고.”솔이 눈을 들었다.“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준경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이내 낮게 웃었다.“그래. 계속해.”“공작님도 같이 가셔야 합니다.”
다음 날 점심, 솔이 식당에 들어섰을 때 준경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솔은 맞은편에 놓인 접시를 보고 걸음을 조금 늦췄다.수프였다.어젯밤 준경이 먹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잠깐 생각하다 말했던 것이었다.“정말 준비하셨습니까?”준경이 고개를 들었다.“네가 먹고 싶다며.”“그냥 말씀드린 겁니다.”“그래서 준비했는데.”틀린 말은 아니었다.솔은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수프는 아직 뜨거웠다. 숟가락으로 한 번 저으니 김이 올라왔다. 솔이 조심스럽게 한 입 먹었다.준경이 물었다.“어때.”“맛있습니다.”“그게 끝이야?”솔이 그를 보았다.“무엇을 더 말씀드려야 합니까?”“어제는 그렇게 한참 고민하더니.”“먹고 싶은 것을 물으셨으니까요.”“그래서 먹고 싶던게 맞아?”솔은 다시 한 숟가락을 먹었다.“예.”준경이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솔은 못 본 척했다.식사는 그 뒤로 별다른 대화 없이 이어졌다.준경은 중간에 놓인 고기 접시에서 한 조각을 집어 자기 접시에 가져갔다. 솔은 잠깐 그것을 보다가 물었다.“그건 어떻습니까?”“먹어볼래?”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준경이 접시를 밀었다.솔은 고기 한 조각을 가져왔다.“제 접시도 있는데요.”“그건 다른 거잖아.”먹어보니 확실히 달랐다.솔이 한 번 더 손을 뻗자 준경이 그 모습을 보았다.“맛있어?”“예.”“그럼 더 먹어.”이번에는 솔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준경의 접시에서 한 조각을 더 가져왔다.조금 전까지 준경이 먹던 접시라는 것도, 허락을 다시 묻지 않았다는 것도 가져오고 나서야 생각났다.그래도 돌려놓지는 않았다.준경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저 자기 잔을 들었다.잠시 뒤 솔은 자기 앞의 빵을 반으로 갈랐다.한쪽을 먹다가 남은 반쪽을 준경 쪽으로 밀었다.준경이 그것을 내려다봤다.“왜.”“드실 겁니까?”“네 거잖아.”“배부릅니다.”“그러니까 나 먹으라고?”“싫으시면 두십시오.”준경은 잠깐 솔을 보더니 빵을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