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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말을 지우거든, 입맛을 지우시오. 

Autor: 데이지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8-17 15:54:40

“정채향이라… 그 아이, 어릴 적 우물가 옆에서 자주 놀았지.”

“어미는 소문이 좀 있었소. 어느 양반댁 도령이 반해

가리킨 이름이라 하였고, 그러나 끝내 그 도령은 돌아오지 않았소이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남의 집 짚신을 꿰매며 컸지요.”

이현은 무겁게 숨을 들이켰다.

“허면 그 어미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작은 묘 하나를 가리켰다.

‘무명(無名). 단지, 향기 좋았던 여인으로 기억되기를.’

묘비엔 이름도 없고, 오직 향이라는 글자만 남아 있었다.

이현은 묘 앞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읊조렸다.

“그대는, 그 어미의 향을 이어 이 궁 안에 숨을 퍼뜨렸던 사람이오.”

“허니, 피가 없다고 하여 그 숨조차 없었다 말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는 작은 흙을 한 줌 뜨고, 그 안에 떨어진 봄꽃 한 조각을 조심스레 접었다.

그 시각, 궁에서는 중전이 내관을 불러 은밀히 전하고 있었다.

“왕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지 않다.”

“헌데 사람들은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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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하, 오늘은 어떤 맛을 원하시옵니까?   END. 국이 없어도 따뜻한 날, 그대와 나란히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국이 끓지 않았다.수라간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솥은 조용히 비워져 있었다.그러나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날은 정채향이 처음으로 ‘국을 끓이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조용히 궁 밖으로 나왔다.머리에 쓴 흰 비단 건은 궁녀의 표식이 아니었고,몸에 두른 저고리와 치마는 수라간의 규범이 아니었다.그녀는 오늘, 사람으로서의 하루를 살기로 했다.그곳은 한강 어귀의 평지였다.봄볕이 내려앉은 들녘,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이는 보리밭 너머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이현이었다.

  • 저하, 오늘은 어떤 맛을 원하시옵니까?   96. 오늘 느낀 마음이 진했기에

    봄이 왔다. 아주 조용히, 마치 오래 기다린 손님처럼.새벽 공기엔 이른 쑥 내음이 섞여 있었고,골목의 아이들은 손에 마른 국수발을 쥔 채 뛰어다녔다.궁궐의 수라간에도 봄의 빛이 스며들었다.정채향은 여전히 국을 끓이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바쁘거나 절박하지 않았다.이젠 그녀 혼자만이 국을 끓이지 않았다.그녀는 이제 ‘가르치는 자’가 되었고,국을 끓이는 법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담는 법을 나누는 이가 되었다.열일곱의 젊은 궁녀 하나가 솥 앞에서 서툰 손짓으로 국자를 휘젓다곁눈질로 채향을 바라봤다.“…낭자, 이거 너무 진한 것 같사옵니다.”채향은 다가가 조

  • 저하, 오늘은 어떤 맛을 원하시옵니까?   95. 사랑이라는 국, 같은 상 위의 온기

    그날의 식탁은 정갈했다.금도 은도 없었고, 붉은빛 수라반도 아니었다.오직 나무로 짠 조촐한 상,상 위엔 하얀 사기 사발 두 개,그리고 국 하나가 놓여 있었다.채향과 이현은 그 상 앞에 마주 앉았다.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공기는 마치 모두가 지켜보는 듯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채향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국자 하나로 국을 퍼 이현의 사발에 담았다.맑고 잔잔한 국물 위로 얇게 저민 유자 껍질이 하나, 천천히 떠올랐다.이현은 말없이 그 사발을 들어 숟가락 하나로 국을 떴다.국물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 저하, 오늘은 어떤 맛을 원하시옵니까?   94. 이제 제가 옆에 있어도 되겠사옵니까

    수라간은 오랜만에 아침보다 먼저 불이 들어왔다.그 불은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인해 지펴진 것이었다.정채향이 돌아왔다.그녀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솥 앞에 섰고, 과거의 국자와는 다른 새로운 손의 무게로 국을 짓기 시작했다.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수라간의 공기마저 달라져 있었다.화로는 예전보다 낮은 불로 타올랐고,솥은 마치 그 주인을 기억하듯 조용히 숨을 죽이고 끓기 시작했다.그녀가 처음 손에 든 재료는 멥쌀이었다.쌀은 그녀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조용히 불을 받아들였고, 그 위에 채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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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은 그날도들꽃 냄새를 안고 마당을 건넜고, 햇살은 초가지붕 위에서 오래 머물렀다.채향은 작은 초가의 뒷간 뒤편, 외양간과 연결된 작은 부엌에서 국을 짓기 시작했다.이곳엔 아무도 없었다.기록도 없고, 명령도 없고,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조차 없었다.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끓여본 적 없는 국을 끓이려 했다.그녀 자신을 위한 국. 그 국엔 다른 이의 기호도, 타인의 체질도, 나라의 운명도 담기지 않았다.다만 그녀가 살아온 나날, 잊지 못했던 순간들,울음 삼키던 새벽의 찬물 같은 기억,그 모든 것이 쌀 한 줌에 스며 있었다.쌀은 전날 밤 미리 씻어 밤새도록 맑은 물에 불려

  • 저하, 오늘은 어떤 맛을 원하시옵니까?   92. 국을 담지 않아야 완성되는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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