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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잊힌 시간의 증인

last update 게시일: 2026-10-24 07:00:53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한태준의 머릿속은 조금도 조용해지지 않았다.

꺼진 TV 화면 위로 민서아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늦었지만 진실을 말하겠다던 떨리는 목소리, 그 말을 듣던 세린의 흔들리던 눈빛까지 선명했다.

모든 것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태준의 안에서는 더 많은 것들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세린은 자신이 버려졌다고 믿고 있었다. 유학을 떠난 태준이 연락을 끊었고, 변했으며, 결국 다른 삶을 선택했다고. 세린이 자신을 바라보며 쏟아 냈던 원망의 말들은 단 하나도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태준의 가슴 어딘가에는 정반대의 감정이 박혀 있었다.

명확한 기억은 아니었다. 장면도, 대화도, 얼굴도 없었다. 다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만 남아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믿어야 했던 사람의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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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큰일인데.”정우가 낮게 중얼거렸다.세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뭐가요?”그는 잠시 세린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나도 똑같아서요.”그 말에 세린의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조금 전까지는 자신만 헤어지는 걸 아쉬워하는 게 아닐까 싶어 민망했는데, 정우도 같은 마음이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정우는 그녀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었다.“혹시 나랑 조금만 더 있고 싶어요?”그 질문에 세린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입을 열기만 하면 자신의 마음이 전부 드러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토록 망설여지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정우는 서두르지 않았다.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대답을 재촉하는 기색보다 기대와 설렘이 담겨 있었다. 그 사실이 세린에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네.”겨우 들릴 만큼 작은 대답이었다.정우는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뭐라고 했어요?”“들었잖아요.”“잘 못 들었는데.”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세린은 민망해진 얼굴로 그를 흘겨봤다.“정우 씨, 너무해요.”“한 번만 더 말해 주면 안 돼요?”“왜 자꾸요?”“듣고 싶어서요.”정우는 웃으며 덧붙였다.“세린 씨가 나랑 더 있고 싶다고 하는 말, 아마 오래 기억할 것 같거든요.”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세린은 결국 항복하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 전 남자친구가 돌아왔다!   제69화. 조금만 더 이대로

    정우의 품에 기대어 있던 세린은 한참 만에 고개를 조금 들었다.차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창밖에서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세린의 귀에 가장 또렷하게 들리는 건 정우의 심장 소리였다.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대고 있으니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불안과 혼란도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태준의 집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답답했다. 십 년 동안 품어 왔던 오해가 풀렸다는 사실도, 서아의 임신을 둘러싼 소동도 아직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그런데도 정우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만큼은 모든 것을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세린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그제야 조금 진정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다른 문제가 생겼다.너무 가까웠다.정우의 손이 자신의 등을 감싸고 있었고, 고개를 조금만 움직여도 그의 턱이 머리카락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조금 전까지는 위로받는 데 정신이 팔려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느껴지기 시작했다.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었다.세린은 괜히 민망해져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정우가 그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팔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하지만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벌써 도망가요?”세린은 고개를 들었다.정우는 웃고 있었다. 평소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미소였지만, 오늘은 그 안에 조금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도망가는 거 아니에요.”“아닌데. 방금 나한테서 멀어지려고 했잖아요.”“그건 너무 오래 안겨 있었으니까요.”“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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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세린을 한참 바라봤다.그녀의 손바닥 아래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행동을 할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세린이 당황할까 봐, 혹시 자신을 부담스럽게 느낄까 봐 마음을 드러내는 일조차 조심스러웠으니까.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지 않았다.세린이 자신의 손을 거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이 정우에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그는 천천히 세린의 손을 내려놓았다.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턱 끝에 손을 가져갔다. 억지로 고개를 돌리려는 동작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봐 달라는 듯, 눈을 마주하고 싶다는 듯한 가벼운 손길이었다.“세린 씨.”“네.”겨우 대답이 나왔다.정우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이제는 그 사람 말고 나 봐 줘요.”너무 조용한 말이었다.그런데 세린에게는 어떤 고백보다도 크게 들렸다.정우의 엄지가 그녀의 볼 끝을 조심스럽게 쓸었다.“세린 씨 울게 만든 사람 말고.”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세린 씨 웃게 해 주고 싶은 사람 봐요.”세린의 눈가가 다시 뜨거워졌다.태준이 자신을 일부러 상처 입혔던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거짓말에 속았고, 자신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지난 십 년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세린은 오랫동안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이제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 날도 있었다.그런 날마다 자신을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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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세린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그동안 정우는 언제나 자신이 세린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렸고,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기다렸으며, 언젠가 두 사람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달라지기를 바랐다.그런데 세린도 자신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는 말은, 적어도 그녀에게 자신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했다.정우는 세린의 손을 조심스럽게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세린 씨.”세린이 눈을 들었다.“내 앞에서 꼭 괜찮은 사람일 필요 없어요.”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엉망이어도 되고, 울어도 되고, 아파도 돼요.”정우는 엄지손가락으로 세린의 손등을 천천히 문질렀다.“흔들려도 괜찮아요.”세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 말이 이상하게도 아주 오래전부터 듣고 싶었던 말처럼 느껴졌다.언제나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고 이후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 자신 때문에 걱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다.그래서 조금만 몸이 나아져도 괜찮다고 말했다. 마음이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잊을 거라고 웃었다.그러나 정우 앞에서는 자꾸 그 모든 다짐이 무너졌다.정우는 웃고 있는 자신보다 울고 있는 자신을 더 오래 지켜본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보여 주기 싫었던 초라한 모습까지 알고 있으면서, 지금도 곁에 남아 있었다.

  • 전 남자친구가 돌아왔다!   제66화.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서

    차 안은 조용했다.엔진은 이미 꺼져 있었고, 창밖에서는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에 희미하게 번졌지만, 세린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이상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정우의 숨소리인 것 같았다.조금 전까지 태준의 집에서 쏟아졌던 혼란과 충격이 이제야 뒤늦게 몸 안으로 밀려들었다. 십 년 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을 알게 되었고, 태준과 함께 울었으며, 민서아의 임신 고백까지 들어야 했다.그 모든 일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속은 여전히 울렁거렸다. 차가 멈춘 뒤에도 몸은 아직 그 집에 남겨진 것처럼 긴장을 풀지 못했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장 힘든 건 따로 있었다.정우였다.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오늘 하루만 해도 정우에게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었다. 한태준이라는 이름 하나에 흔들리는 모습도, 애써 숨기고 싶었던 과거도, 자신조차 아직 정리하지 못한 감정의 잔해들까지.그런 모습을 전부 보여 주고도 정우가 지금 자신의 옆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미안했다.차라리 화를 내거나 실망했다고 말해 주었다면 덜 괴로웠을까.세린은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맞물리자 차갑게 식은 피부가 서로 닿았다.그때였다.“손 차가워요.”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세린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정우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은 아니었다. 걱정이 너무 깊어 오히려 말수가 줄어든 사람의 얼굴이었다.

  • 전 남자친구가 돌아왔다!   제65화.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합니까

    “저는.”세린의 입술이 떨렸다.“그게 아니라.”“그게 아니면 뭔데요.”정우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힘이 실렸다.크게 화를 내는 것도, 다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오래도록 참아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세린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정우는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언제나 차분하던 얼굴이 굳어 있었고, 말을 고를 때마다 턱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그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기억을 더듬어 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세린 씨가 나한테 미안해하는 이유.”정우가 낮게 물었다.“정말 나 때문이에요?”세린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아니면.”그의 손이 핸들을 쥔 채 미세하게 떨렸다.“아직도 그 사람한테 흔들리는 자기 자신이 미안한 거예요?”세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질문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자신이 왜 태준의 집으로 갔는지, 왜 그곳에서 울었는지, 왜 태준이 붙잡았을 때 곧바로 밀어내지 못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아니, 어쩌면 설명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랐다.정우가 더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고, 자신이 여전히 태준에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두려웠다.그런데 정우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하.”그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나는요.”정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세린 씨가 나한테 거짓말하는 건 견딜 수 있어요.”세린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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