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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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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622화
하지만 은주가 이렇게 눈빛을 반짝이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자, 영호는 차마 끼어들 수가 없었다. 가슴 한쪽이 쓰라렸지만, 묵묵히 은주의 말을 끝까지 듣기만 했다.“참 신기하지? 영호 씨를 만나기 전까지 난 결혼은 속박이라고만 생각했어. 사랑의 무덤이라고.” “우리 엄마 아빠 사이는 정말 좋지만... 그런 사랑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자기를 만나고 난 뒤에는 모든 게 달라졌어.”“우리 두 사람은 분명히 엄마 아빠보다 더 행복하게 살 거야. 나중에 아이는 둘을 낳을 거야. 오빠하고 여동생으로.” “오빠는 태권도를 배우게 해서 여동생을 지켜주게 하는 거야. 여동생은 바이올린도 배우고 그림도 배우고... 좋아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게 해 줄 거야.”“아이들한테 대단한 걸 바라진 않아. 그저 좋아하는 걸 하면서 건강하게, 행복하게 크기만 하면 돼.”영호가 씩 웃었다.“바보, 아들 딸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첫째가 딸일 수도 있잖아?”“딸을 먼저 낳아도 그래도 괜찮아. 우리 둘의 아이라면 분명 행복할 거야.”은주의 따뜻한 말에 영호의 눈가도 붉어졌다.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영호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정말 몰랐다.‘처음부터 꿈을 좇겠다고, 내가 위험한 곳으로 자청해서 오지만 않았더라면...’‘그럼 부상을 입지도 않았을 거고...’‘은주와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었을 텐데...’생각하면 할수록, 영호는 자신만 생각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은주 씨... 미안해. 내가 고집만 부리지 않았어도, 이렇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주가 급히 그의 말을 막았다.“왜 미안해? 이런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일인데 누군가는 해야지. 그리고... 자기가 나한테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인지 모르지?” “자기가 해온 일들은 정말 큰 의미가 있어. 얼마나 많은 가정을 지켜냈는데. 영호 씨는... 영웅이야. 알겠지?”영호는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은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621화
허둥지둥 간병인의 뒤를 따라간 은주는, 예혜안이 다시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간병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서은주 씨, 환자분은 젊었을 때 큰 충격을 많이 받으셔서, 지금은 정신이 자주 흐트러지세요.”“가끔은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금방 또 못 알아보곤 하지요. 그래도 아주 온순하신 분이니까 너무 놀라지 마세요.”은주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저도 알고 있어요.”그저 마음만 아팠다. ‘어머님은 이 세상에 남은 영호 씨의 유일한 가족이야.’‘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조차 영호 씨를 알아보지 못했어.’‘그럼 그동안 영호 씨는... 어떻게 혼자서 버텨왔던 걸까?’‘마음이 무너졌을 때, 억울하거나 슬플 때... 도대체 누구에게 기댔을까?’생각할수록 마음이 타들어 가면서, 은주의 눈가도 점점 붉어졌다.그렇게 영호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와서 병실 문을 열었을 때, 마침 그가 눈을 떴다.영호의 시선을 마주한 은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갔다. 원래는 살짝 안아주고 싶었지만, 상처가 아플까 봐 걱정이 되어 결국 은주는 조심스럽게 영호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그런 은주의 모습을 보자, 영호가 오히려 긴장한 듯했다.“왜 그래? 혹시 우리 엄마 때문에 놀랐어? 미안해... 내가 괜히 가보라고 해서.”은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게 아니야. 나 어머님하고 정말 잘 지냈어. 어머님이 나를 알아보시고 말씀해 주셨어. 자기가 매번 올 때마다 내 얘기를 한다고... 나를 자기 ‘미래의 아내’라고 소개했다고.”영호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머쓱한 듯이 웃었다.“오늘은... 정신 상태가 꽤 좋으셨나 보네. 은주 씨를 알아보실 줄은 몰랐어.”영호의 온몸에 난 상처들을 보자, 은주는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영호 씨... 퇴원하면 우리도 결혼하자. 응?”갑작스러운 말에 영호의 미소가 굳어지면서, 다른 손은 이불을 살짝 움켜쥐었다.“갑자기 왜 결혼 얘기야?”결혼 얘기를 꺼내자, 은주의 얼굴엔 금세 설레는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620화
“영호는 분명히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지. 그 사람과 결혼해서... 남은 인생을 따뜻하게 보낼 거라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주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어머님, 저랑 영호 씨... 저희는 진짜 잘 지내고 있어요.”예혜안은 부드럽게 은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그래, 나도 알아. 너희 둘이 얼마나 행복한지... 딱 보면 알 수 있어.”아들은 엄마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다.올 때마다 영호의 눈빛은 빛났고, 은주 이야기를 꺼낼 때는 얼굴에 행복이 그대로 드러났다.“어머님, 식사 먼저 하세요.”괜히 식사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은주가 조심스레 말했다.“나는 다 먹었어. 배도 별로 안 고프고... 같이 아래로 내려가서 산책 좀 할까?”고개를 끄덕인 은주는 예혜안의 휠체어를 밀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요양병원의 환경은 꽤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조금 붐비는 느낌이 들었다.한 명의 간병인이 여러 환자를 돌보다 보니 세심하게 챙기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다.은주는 천천히 휠체어를 밀면서 예혜안에게 말을 건넸다.“어머님, 영호 씨 이번 일만 끝나면 저희 결혼하려고 해요. 결혼하면... 어머님도 저희랑 같이 지내요. 저희 둘이 모실게요. 네?”예혜안은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나는 이제 나이도 많고... 너희를 도와줄 수도 없어. 오히려 너희한테 짐만 될 거야.”“여기가 훨씬 편하고 좋아. 친구들도 있고, 돌봐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걸음을 멈춘 은주가 예혜안 곁에 쪼그린 채 앉았다.“어머니가 왜 짐이에요? 영호 씨 유일한 가족인데... 저희가 당연히 모셔야죠.”예혜안은 대답 대신 멀리 있는 작은 복숭아나무를 바라보았다.“저 복숭아나무 말이야...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매일 봤는데, 참 천천히 자라더라고. 우리 영호는 금방 커버렸는데...”은주는 잠시 멈칫했다.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예혜안의 눈빛이 갑자기 텅 빈 듯 흐려졌다.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619화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님은 감정 기복도 거의 없어서, 과격한 행동도 하지 않으세요. 누군가를 때리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고요.”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어머님은 식사 후에 보통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보통 식사 후에는 아래 잔디밭을 산책하시죠. 원하시면 좀 있다가 같이 다녀 오셔도 돼요.필요하시면 언제든 저를 부르시면 되고요.”기본적인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은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직원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를 떠났다.복도는 조용했다.은주는 영호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면서, 식당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자신이 알고 있는 영호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혜안이라는 이름 하나뿐.처음 영호가 어머니 성을 따랐다고 했을 때도 은주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집이라는 그 공간이 영호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혜안.부드러운 이름이었다.태어났을 때부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만나지만 않았어도...’‘어머님도 평범하고 따뜻한 삶을 사셨을 텐데.’은주는 조심스럽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소리도 크게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숨소리까지 가다듬었다.하지만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든 예혜안과 시선이 마주쳤다.그 눈을 보는 순간 은주는 숨이 멎는 듯했다.영호와 너무나도 똑같은 눈!닮은 걸 넘어서 마치 판박이인 듯했다.은주가 미처 인사하기도 전에, 예혜안이 먼저 수저를 내려놓으면서 미소를 지었다.“아가씨, 누군지 알겠어.”뜻밖의 말에 은주는 순간 굳어버렸다.영호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상상했지만, ‘안다’라는 말은 없었다.은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절 아세요?”예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너 은주지.”영호의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은주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어머님, 제 이름... 영호 씨가 말씀드렸어요?”예혜안은 그녀가 마음에 드는 듯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618화
말끝을 흐린 은주는, 어쩐지 죄책감이 들면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게다가... 자기한테 피해를 준 사람이 원래 나잖아...”영호가 그녀의 손을 더 힘껏 잡으면서 말했다.“바보, 그런 소리 하지 마. 자기는 나한테 행운을 데려다 준 사람이야. 원래부터 내 ‘행운’이었고.”두 사람이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을 나누면서 정겨운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병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네 사람은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바로 그때, 의사가 들어왔다.붕대를 교체할 시간이 된 것이다.상처의 감염과 유착을 막기 위해서 하루에도 여러 번 붕대를 갈아야 했다.영호 등의 상처는 살이 온통 짓이겨져 있는 데다가, 곳곳에 괴사된 조직도 있었다.약을 바르기 전에 그 썩은 살을 메스로 도려내야 했다.게다가 상처의 회복을 위해서 마취조차 할 수 없었다.약을 교환할 때마다, 영호는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하지만 은주는 알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인지.영호는 은주가 걱정할까 봐 고통을 견뎠고, 은주는 영호가 더 걱정할까 봐 눈물도 삼켰다.서로를 위해서 억지로 강한 척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가슴이 먹먹해졌다.약 교환을 마친 이른 오후, 영호는 금세 지쳐서 잠이 들었다.그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하자, 은주는 간병인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한 뒤 영호가 알려준 요양병원으로 향했다.미래의 시어머니를 만나 뵙기 위해서.도착했을 때는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두리번거리는 은주를 발견한 요양병원 직원이 곧장 다가왔다.“저, 혹시 누구 찾으세요?”은주는 예의 바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예영호 씨 여자친구예요. 오늘 예영호 씨가 사정이 생겨서 올 수가 없어서, 제가 대신 어머님을 뵈러 왔어요.”‘예영호’라는 이름을 듣자, 직원의 눈빛이 금세 반짝거렸다.“아, 예 형사님 여자친구시군요?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세요!”“어머님은 지금 식당에서 식사 중이세요. 제가 안내해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617화
영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다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서장이 몇 마디 더 인사를 건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끼어들지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서서 듣기만 했다.서장이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모습을 본 영호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데, 자신이 먼저 물을 필요는 없었다.사람들이 모두 병문안을 마치고 나가자, 은주는 예의 바르게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했다.1층 로비에 도착해서 대부분 차에 올랐을 때, 막내 형사가 은주를 보면서 망설이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의문이 든 은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왜요? 하실 얘기가 있어요?”그 어린 형사는 영호가 이 팀으로 온 뒤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료였다.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잘 맞아서, 두 사람은 곧바로 형제처럼 지냈다.은주가 묻자, 잠시 머뭇거리더던 형사가 찡그린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형수님... 괜히 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요. 영호 형이 우리 팀으로 올 때... 혹시 누구한테 잘못 보인 거예요?”은주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무슨 말이에요?”하지만 막내 형사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못 들은 걸로만 하세요. 오늘은 먼저 가 볼게요. 나중에 또 올게요.”그 말만 남긴 뒤, 막내 형사는 황급히 차에 올라 떠났다.은주도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그 말이 그냥 던진 말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결국 영호 씨가 이 팀으로 오게 된 건 말 그대로 ‘원인’이 있어.’‘신세준과 신씨 가문. 더 정확히 말해서 H시 시장인 임국봉을 건드렸기 때문이야.’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은주는 심장이 바짝 조여 드는 듯했다.‘설마... 영호 씨가 이렇게 된 게 정말 신씨 집안 때문인 거야...?’은주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지금은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야...’자신을 억지로 진정시켰다.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으면서 병실로 들어갔다.은주와 영호만 있게 해 주려고, 다른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