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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은 ‘나’바라기
전남편은 ‘나’바라기
Author: 블루

제1화

Author: 블루
“공주님, 얼른 신발 신자. 늦겠다!”

바쁜 아침, 시간에 쫓기는 윤혜니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

“싫어!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나래는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틀며 말랑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아이고, 우리 착한 아가. 오후에 엄마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 사 줄게. 딸기 맛이야.”

혜니는 온갖 방법을 다 써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낮췄다.

달콤한 회유가 통하자 나래는 마지못해 조그만 발을 내밀었다.

혜니는 잽싸게 신발을 신기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내 소새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연아, 살려줘! 나 늦을 것 같아. 잠깐만 내 자리 좀 봐 줘. 금방 갈게!”

[알았어.]

겨우 어린이집 앞에 도착한 혜니는 나래를 차에서 내려 주다가 책가방 지퍼가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손을 뻗어 잠그려는데 안쪽에서 딱딱한 사진 한 귀퉁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혜니가 꺼내자 사진 속에는 한인우의 잘생긴 얼굴이 있었다.

혜니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숨까지 멎은 듯했다.

‘이 사진이 왜 여기 있어?’

“이 사진 어디서 찾았어?”

혜니의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게 떨렸다.

나래가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저씨 엄청 잘생겼잖아! 엄마, 우리 반 친구들은 다 아빠가 있어. 나도 이 아저씨가 내 아빠였으면 좋겠어!”

혜니의 가슴이 꽉 막혔다.

두 사람은 이혼한 지 4년이었다. 한인우는 이미 자기 가정을 꾸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로 행복하게 살지도 몰랐다.

혜니는 사진을 책가방에 다시 넣고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을 삼켰다.

아이를 어린이집 안으로 들여보낸 뒤 차에 오르자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새연이 외쳤다.

[어디야? 늦으면 큰일 나. 오늘 회사에 대형 사건이 터졌어.]

“무슨 일인데?”

[회사 인수됐어. 왕 대표가 지분 정리하고 세계여행 간대. 새 대표님이 곧 오시고.]

혜니는 3초 동안 멍해졌다.

“바로 갈게.”

...

오전 9시, 태유그룹 본사 앞.

대표이사 비서실 비서들과 각 부서 임원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공기는 조용했지만 팽팽했다.

검은 롤스로이스 팬텀이 건물 앞에 미끄러지듯 멈췄다.

수행 비서가 문을 열자, 최고급 슬림핏 정장 바지에 감싸인 긴 다리 하나가 먼저 밖으로 나왔다.

곧게 뻗은 바지선에는 주름 하나 잡혀 있지 않았다.

이어 큰 키의 남자가 몸을 낮춰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하이엔드 맞춤 정장을 입고 있었다.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

마치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주인공인 양 완벽한 몸이었다.

남자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타고난 귀티와 압도적인 분위기가 정면으로 밀려와, 보는 이들을 그대로 무릎 꿇게 할 것만 같았다.

남자가 긴 다리로 로비 안에 들어서자, 환한 조명이 그의 얼굴 전체를 비췄다.

주변의 공기마저 그대로 멎어 버린 듯했다.

신임 대표는 숨이 막힐 만큼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아무도 감히 고개를 들어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부대표 엄준이 가장 먼저 웃으며 다가갔다.

“대표님, 환영합니다.”

인우는 대답하지 않고 사람들을 훑었다. 눈빛이 차갑게 멈췄다.

‘한 명이 부족하네.’

“10분 뒤 회의. 본부장급 이상 전원 참석.”

말을 남긴 인우는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임원들이 흩어져 위층으로 뛰어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때, 다급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혜니는 바람처럼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조금만 더 늦었거나 몸이 아주 조금만 더 무거웠어도 문틈에 끼일 뻔했다.

“아!”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혜니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듯 인우의 품에 부딪혔다.

남자의 정장 원단 아래로 닿아 온 가슴팍은 단단하고 뜨거웠다.

인우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휘청이는 혜니의 허리를 안정적으로 붙잡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혜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동안 품에 안기는 법이라도 배웠나 보지?”

‘이 목소리...’

혜니가 고개를 들자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눈앞에 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의 잘생긴 얼굴.

선명한 윤곽과 높게 뻗은 콧대.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만큼 익숙한 얼굴이었다.

혜니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놀란 나머지 숨마저 멎을 것 같았다.

‘뭐야, 이게?’

‘한인우!’

‘내 전남편...’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건데?”

인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끝자락에는 옅은 조롱마저 묻어 있었다.

혜니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황급히 손을 떼었다.

서둘러 몸을 바로 세운 혜니는 어색하게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입고 있던 오피스룩의 재킷 자락을 괜히 한 번 잡아당겼다.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

사실 혜니는 어젯밤에도 인우의 꿈을 꾸었다.

...

은행나무 아래, 매트, 별빛, 이혼하던 날의 마지막 작별.

혜니가 울부짖었고, 인우는 뜨거운 숨을 귓가에 뿌리며 끝을 정하는 건 자신이라고 했다.

“한인우, 이제 그만해.”

혜니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마음까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인우는 낮게 숨을 내쉬며 혜니를 내려다보았다.

뜨거운 기운이 가까이 닿았지만, 인우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게 소리칠 힘은 남아 있네.”

담담한 말투였다.

그 안에는 다정함도, 미련도, 위로도 없었다.

이혼을 말한 건 혜니였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붙잡을 기회를 요구한 건 인우였다.

두 사람 모두 그게 끝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둘 중 누구도 누구에게 빚진 건 없다고, 그렇게 믿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혜니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흐려졌던 정신이 단번에 맑아졌고, 혜니는 급히 인우의 어깨를 밀어냈다.

“잠깐만. 이건 아니지!”

인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둠 속에서 마주친 인우의 깊은 눈동자는 서늘했다.

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언제 끝낼지는 내가 정해.”

혜니는 떨리는 숨을 삼키며 물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생기면 어떡해?”

인우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위자료에서 10만 원 더 쳐줄 테니까, 그걸로 사후피임약이나 사.”

그 한마디가 더 잔인하게 들렸다.

혜니의 눈가가 붉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어 오른 감정이 끝내 목소리로 터져 나왔다.

“너 진짜 최악이야!”

인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코끝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인우는 비틀린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최악을 못 알아보고 결혼했던 사람이 너야.”

듣는 순간, 혜니는 숨이 턱 막혔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아팠다.

분명 상처 주려는 말인데, 끝내 놓지 못한 집착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인우는 하루 낮과 밤을 꼬박 혜니와 보내고, 혜니의 세상에서 사라졌다.

대학 시절 마음을 확인했던 은행나무는 끝내 이별의 장소가 되었다.

...

띵-

최상층에 도착했다.

소새연과 박미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혜니의 심장이 세게 내려앉았다.

‘새 대표가 한인우라니...’

‘이혼할 때 빈손으로 나가며 모든 돈을 나에게 남기고 떠난 남자가...’

‘겨우 4년 만에 수천억 원대 태유그룹을 인수했다니...’

‘세상이 미친 걸까, 내가 미친 걸까?’

혜니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새연 곁으로 달려가 섰다.

자리를 맞추고, 허리까지 곧게 폈다.

인우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서늘한 시선이 비스듬히 비서들을 스쳐 지나갔다.

대표이사 비서실의 비서 세 명은 모두 눈에 띌 만큼 외모가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혜니는 단연 돋보였다.

인우는 담담히 말했다.

“저는 한인우입니다. 지금부터 태유그룹 대표이사직을 맡습니다. 커피에는 설탕을 넣지 않습니다. 향수 냄새를 싫어합니다. 부하 직원의 지각도 싫어합니다. 모두 잘 기억하세요.”

“네, 대표님.”

한인우의 시선이 혜니에게 닿았다.

“윤혜니 씨?”

혜니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내 이름을 모른다고? 뇌혈관이라도 막혔어?’

“네, 대표님.”

인우는 손목에 찬 고가의 시계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1분 지각했네. 이번 달 개근 수당과 성과급, 전부 삭감.”

혜니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라고?’

‘본보기로 잡는 거야?’

‘내가 그 본보기야?’

‘나를 희생양 삼아서 기강 잡겠다는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혜니는 결국 이를 악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억울해도 삼켜야 했다.

혜니는 엄마도 부양해야 했고, 나래도 챙겨야 했다.

무엇보다 이 직장을 잃을 수는 없었다.

인우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자료를 보니까, 이혼 경력이 있던데.”

‘이 망할 인간, 일부러 이러는 거지?’

혜니는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혼 사유는?”

인우가 이어서 물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부하 직원의 사생활을 캐묻는 취미는 없지만, 내 곁에 둘 사람이라면 적어도 흠 잡힐 일은 없어야 하니까.”

‘이제 대놓고 사적인 감정으로 괴롭히겠다는 거야?’

혜니는 망설임 없이 또렷하게 대답했다.

“부부 관계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인우의 눈빛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맞지 않았다고?’

‘하루에 다섯 번도 부족했다는 건가?’

‘그 정도면 세상 어떤 남자도 윤혜니 마음에 들 수 없겠네.’

인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아이는?”

“없습니다.”

“좋군.”

인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혜니는 그런 인우를 한 번 바라보았다.

‘좋긴 뭐가 좋아.’

‘그때 남겨 놓은 네 ‘보물’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어!’

“됐어. 회의 있습니다.”

인우가 새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 비서, 따라와.”

“네, 대표님.”

새연은 기쁜 얼굴로 회의록을 적을 노트를 챙기러 갔다.

...

결국 회의는 세 시간이나 이어졌다.

새연의 키보드는 불꽃이라도 튈 듯 쉴 새 없이 두드려졌다.

‘우리 새 대표님... 확실히 칼 같고 무서운 사람이야.’

회의 석상에서 인우는 고위 임원 세 명을 해고했고, 엄준 부대표까지 정리했다.

세 시간 뒤, 새연은 영혼이 빠진 얼굴로 돌아왔다.

심지어 몸무게가 1kg은 빠진 기분이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역시 재벌 남주는 일 중독자야. 무서워. 근데 우리 새 대표님은 금욕적인 느낌이라 그쪽은 엄청 셀 것 같아.”

혜니가 멈칫했다.

‘이 말은... 틀리진 않지.’

‘하지만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야.’

“혜니야, 네 전남편은 부부생활 안 맞았다며? 우리 새 대표님 한번 노려봐. 분명 장난 아닐걸.”

새연이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거기까지만 해. 내가 감히 넘볼 분이 아니야.”

혜니는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을 잘랐다.

계단 모퉁이에 서 있던 인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감히 넘볼 분이 아니라고? 이미 다 알면서.’

예전의 혜니는 저렇게 조심스러운 척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인우에게 고백했었다.

“한인우, 넌 윤혜니만의 남자여야 해!”

그렇게 한인우는 윤혜니만의 남자, 남편이 되었다.

그런데 결혼 2년 만에 혜니는 사랑이 식었다며, 인우가 가난하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 서류가 눈앞에 놓인 그 순간, 인우는 깨달았다.

윤혜니라는 여자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

새연이 혜니를 쿡 찔렀다.

“히히, 혹시 오늘 밤 소개팅 상대가 엄청 잘생긴 거 아니야?”

새연이 장난스럽게 혜니의 팔을 툭 건드렸다.

“응, 뭐. 나쁘진 않아.”

혜니는 대충 대답했다.

‘소개팅?’

인우의 눈빛이 더 차갑게 식었다.

‘나한테는 미련이 조금도 없다는 거구나.’

‘내가 없는 동안 다른 남자도 꽤 많이 만났겠지.’

“윤 비서. 커피 한 잔 가져와.”

계단 쪽에서 인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여자는 동시에 흠칫 놀랐다.

대표실이 있는 최상층은 복층 구조였다.

대표실은 위층, 비서실은 아래층에 있었다.

“네.”

‘한인우... 왜 직접 내려온 거지?’

혜니는 속으로 이상했지만, 여전히 서둘러 탕비실로 향했다.

잠시 뒤, 혜니는 문을 두드리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대표님, 커피입니다.”

인우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커피 타는 솜씨는 늘었는데, 머리는 오히려 나빠졌네.”

탁!

두툼한 보고서 한 뭉치가 책상 위로 내던져졌다.

“이 보고서에 오류가 있어. 다시 확인해. 끝나면 나한테 가져오고.”

혜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분명 전에 꼼꼼히 검토했던 보고서였다.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

“대표님, 어느 항목에 문제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인우의 표정이 더 차갑게 굳었다.

“윤 비서가 한 실수를, 내가 직접 짚어 줘야 하나?”

혜니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혹시... 내일 드려도 될까요?”

이 보고서는 급한 자료도 아니었다.

“하...”

인우가 짧게 웃었다.

“윤 비서. 일 다 끝내기 전엔 퇴근할 생각 하지도 마.”

‘그렇게 소개팅에 가고 싶어?’

‘꿈도 꾸지 마.’

혜니는 끝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받아쳤다.

“대표님, 지금 일부러 저를 괴롭히시는 거잖아요.”

인우가 느릿하게 시선을 들었다.

“괴롭힌다고?”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을 던졌다.

“내가 어느 정도인지, 윤 비서가 모를 리 없잖아.”

혜니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이 개 같은 인간... 진짜 일부러 나 엿 먹이는 거야!’

그때 인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수리 옥션에 가서 목걸이 하나 받아와.”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했다.

“절대 잃어버리지 마. 잃어버리면 윤 비서의 평생 연봉으로 갚아도 못 갚을 테니까.”

혜니가 멈칫하더니 곧바로 말했다.

“대표님, 그렇게 귀한 물건이면 직접 가서 받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예 손대지 않는 게 제일 안전했다.

건드리지 않으면 사고도 나지 않을 테니까.

인우의 눈매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런 것까지 전부 내가 할 거면, 비서는 왜 두지?”

그가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내 속이나 뒤집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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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30화

    “강제후 본부장, 본인이 직접 정예 인력으로 팀원 다섯 명 더 뽑으면 돼.”제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은 진지했다.“네, 대표님.”인우의 시선이 이번에는 새연에게 향했다.“소 비서는 프로젝트팀 지원을 맡아. 모든 진행 상황은 대표실로 직접 보고하고.”“네, 대표님.”새연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확 번졌다.회의실 안은 조용했다.남성도 프로젝트는 투자 규모만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사업이었다. 인우가 태유그룹을 맡은 뒤 처음으로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였으니, 중요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혜니는 인우가 제후를 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중책을 맡길 줄은 몰랐다.마지막으로 인우가 발표했다.“이달 말, 프로젝트팀 전원은 남성도로 현장 답사를 간다.”회의가 끝나자 혜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그래도 회사 일에 사감은 안 섞었네. 그 정도 그릇은 되나 보지.’...비서실로 돌아오자 새연은 행복한 새처럼 거의 뛰어오를 기세였다.“너무 좋아! 앞으로 강제후 본부장이랑 마주칠 일이 많아지겠네!”새연은 들뜬 얼굴로 혜니의 팔을 붙잡았다.“혜니야, 화 안 나지?”새연은 옆에 있던 미나도 바라보았다.“미나야, 너도 화 안 나지?”새연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무실에 제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혜니는 웃었다.“화 안 나. 프로젝트 잘 따라가.”미나는 아쉬운 얼굴로 턱을 괴었다.“대표님... 완전 사랑의 큐피드 아니야? 사람들 인연 이어주려고 내려오신 줄 알았네. 내 인연은 언제쯤 이어주시려나?”혜니의 가슴이 세게 움츠러들었다.‘아, 속셈이 여기 있었구나.’인우는 새연과 제후를 엮어 주려는 것이었다.‘쯧쯧, 그 미친놈...’미나가 다시 물었다.“혜니야, 내일 네 생일이잖아. 어떻게 보낼 거야?”“다 같이 회전식 레스토랑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살게.”혜니가 웃으며 말했다.“진짜?”새연이 맨 먼저 벌떡 일어났다. 손발 다 들어 찬성하는 표정이었다.그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혜니는 전화를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9화

    혜니의 머리가 3초쯤 정지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망했어! 사람을 잘못 봤어!”‘왜 하필 제후 씨였어?’혜니는 제후의 젖은 검은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물방울이 매끄러운 턱선을 따라 굴러내리더니, 물에 젖어 색이 짙어진 셔츠 깃 안으로 스며들었다.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그 존재감은 화면을 뚫고 나올 만큼 강했다.경서는 옆에서 거의 넋을 놓고 있었다.혜니의 뺨이 확 달아올랐다. 뜨거운 기운이 목덜미에서 귓가까지 번졌다.“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혜니는 겨우 목소리를 되찾고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저는 다른 사람인 줄 알고...”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물을 한 번 닦아 냈다. 검은 눈동자는 조용히 혜니를 바라보고 있었다.눈빛은 깊었다. 감정을 읽기 어려웠지만, 혜니는 제후가 분명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누가 갑자기 물벼락을 맞고 기분이 좋겠는가?“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혜니는 그 말만 남기고 곧장 침실로 뛰어갔고, 장롱을 뒤져 새 목욕타월을 꺼냈다. 이어 다시 바람처럼 돌아와 제후의 품에 밀어 넣었다.“빨리 닦으세요!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수건은 크고 부드러웠다. 막 빨아 햇볕에 말린 듯 폭신한 감촉이 느껴졌다.제후는 수건을 받아 들었다.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을 닦는 동작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했다.제후가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공기 중으로 번졌다.아카시아꽃 향기였다.맑고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였다.“괜찮습니다. 오히려 시원하네요. 오늘 밤이 조금 후텁지근했거든요.”제후의 첫마디는 혜니의 죄책감을 절반 이상 씻어 냈다.물기에 젖은 제후의 목소리에는 살짝 낮은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깊고 듣기 좋았다.제후는 머리를 반쯤 말린 뒤, 수건을 팔 위에 걸쳤다. 시선은 혜니에게 닿아 있었다.“혜니 씨가 답장이 없어서 걱정됐어요. 무슨 일 생긴 건 아닌가 해서 올라와 봤고요. 다음부터는 꼭 도어락 화면 확인하고 문 여세요.”“네...”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8화

    “한 번만 더 답장해 봐. 내일 바로 강제후를 N시에서 사라지게 만들 테니까.”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파괴력은 엄청났다.혜니는 인우를 바라보았다. 충격과 불신이 눈에 가득 차올랐다. 이어 말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이 남자가 어떻게 내가 제후 씨랑 메시지 주고받는 걸 안 거지?’혜니는 차 안을 둘러보았다. 숨겨진 카메라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인우의 속셈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설마 그런 식으로 회사 일에 사적인 감정을 섞는 사람은 아니겠지.”“맞아.”인우는 이를 악문 듯 두 글자를 밀어냈다. 눈 밑의 음산한 기운은 더 짙어졌다.“강제후 본부장은 태유그룹의 핵심...”“윤혜니.”인우가 차갑게 혜니를 바라보았다.“강제후 편드는 말 한마디만 더 해 봐.”혜니는 화가 나 온몸이 떨렸다.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개X끼! 나한테만 이러지.’“앞으로 강제후랑 거리 둬.”인우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내가 정한 선 넘을 생각 하지 말고.”“왜?”혜니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 네가 내 뭐라도 돼?”“내가 가졌던 여자는 아무나 건드릴 수 없어.”인우가 차갑게 웃었다.“설령 내가 버렸다고 해도 남들이 주워 갈 자격은 없지.”그 말은 혜니에게 평생 다시 누구와도 결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처럼 들렸다.혜니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혜니는 갑자기 차갑게 웃었다.“그래? 그런데 어떡하지. 지난 4년 동안, 나... 남자 꽤 많이 만났는데?”인우의 손이 거칠게 뻗어 와 혜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눈 안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그 농담 재미없어.”인우는 제대로 화가 나 있었다.차가 갑자기 멈췄다. 김 기사가 또 한 번 큰 싸움을 막아 낸 셈이었다.“놔!”혜니는 힘껏 뿌리쳤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인우가 갑자기 몸을 기울여 다가왔다.고개를 숙인 인우는 혜니의 새하얀 어깨를 그대로 깨물었다.“한인우, 너 변태야? 아프다고!”혜니가 소리쳤다.김 기사는 놀라 허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7화

    “네가 시범 보여 달라며? 행동이 말보다 설득력 있잖아.”인우는 원하는 대로 됐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혜니는 말문이 막혔다.“한 대표님, 안녕하십니까.”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두 사람 뒤에서 들려왔다.인우와 혜니가 함께 고개를 돌렸다. 혜니는 깜짝 놀랐다.‘제후 씨가 왜 여기 있어?’‘혹시 방금 봤나?’제후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팔짱을 낀 채 두 사람 곁에 서 있었다. 여자는 정교한 메이크업에 우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천 대표, 안녕하십니까.”인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한 대표, 보내 주신 투자 계획안은 잘 검토했습니다.”천리야는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인우는 천리야의 말을 성의 있게 들었다. 이어 몇 가지 전문적인 용어로 답했다.혜니는 몹시 민망했다. 지금 이 와중에도 혜니는 여전히 인우의 품 안에 붙잡혀 있었다.마지막에 인우가 제후를 향해 말했다.“천 대표님께 잘 응대해 주세요. 태유그룹의 진심과 성의를 충분히 느끼실 수 있도록.”“네, 대표님.”제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억눌린 감정이 스쳤지만, 제후의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인우는 혜니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혜니는 뒤돌아볼 용기조차 나지 않고, 뒤통수가 화끈거렸다.인우는 혜니를 테라스로 데려갔다. 이어 난간과 두 팔 사이에 혜니를 가둔 채 내려다보았다.“한인우, 일부러 그런 거지?”“뭘 일부러 해?”인우는 모르는 척 물었다. 인우의 얼굴이 혜니 가까이 다가왔다. 또 기습이라도 할 것 같은 거리였다.혜니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지. 이 사람... 제후 씨가 나한테 고백한 걸 어떻게 알아?’사실 인우는 혜니가 밤에 국수 한 그릇을 끓였고, 그 위에 청경채가 몇 줄 올라갔는지까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진정이 사진까지 찍어 보냈기 때문이었다.‘감히 다른 남자한테 국수를 끓여 줘?’하나하나 다 기억해 둘 작정이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서 벌을 줄 생각이었다.“놔.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6화

    옆에 있던 남자 하나가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한 대표님 품에 들어온 분답네요. 정말 보기 드문 미인이십니다.”혜니는 담담하게 한마디했다.“저는 그냥 한 대표님 비서입니다.”혜니는 곧바로 인우와 선을 그었다.인우가 혜니의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더했다.“잠시 실례하겠습니다.”인우는 혜니를 데리고 사람이 적은 구석으로 향했다.혜니는 바로 자신의 허리에 두른 인우의 큰 손을 떼어 냈다.“이렇게 붙잡지 마. 불편해.”인우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누가 너한테 이렇게 입으래?”혜니는 어이가 없었다.‘무슨 뜻이야?’“이거 네가 진 비서님 시켜서 보낸 드레스 아니야? 난 또 나가서 접대라도 하라는 줄 알았지.”인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인우는 그저 진정에게 가장 최신 디자인의 드레스 한 벌을 골라 혜니에게 보내라고 했을 뿐이었다.그런데 빌어먹을 진정이 이렇게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옷을 골랐을 줄은 몰랐다.그 시각, 침대 옆에 앉아 나래가 잠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정은 갑자기 몸을 떨었다.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했다.인우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계집애, 좀 더 성숙해졌네. 나무토막 같던 애가 제법 여자가 됐어.’인우는 외투를 벗었다. 체온과 은은한 시더우드 향기가 배어 있는 재킷이 그대로 혜니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자신감은 어디서 나와? 네가 그렇게 대단한 줄 알아? 누가 널 쳐다본다고.”혜니는 말문이 막혔다.“한 대표는 시력이 꽤 안 좋나 봐. 나한테 한 번에 100억 원을 부르다니.”혜니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윤혜니, 나 지금 네 상사야.”인우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흥.’‘말로 안 되니까 이제 직급으로 누르겠다 이거지.’‘진짜 엿 같네.’“대표님께서 이렇게 급하게 부르신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혜니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꼭 혜니여야 한다던 그 급한 일이 대체 뭔지 들어나 보자는 뜻이었다.인우는 느릿하게 소매 끝을 정리했다.“난 다른 여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5화

    혜니는 나래의 머리를 말려 주고 옷까지 입혔다. 그런 뒤 따뜻한 우유를 한 병 데워 나래가 침대에 누워 혼자 안고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야 혜니는 체념한 사람처럼 방으로 향했다.10분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혜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급스러운 금빛 슬립 드레스는 혜니의 가늘고도 균형 잡힌 몸매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는 느슨하게 틀어 올려져, 곧고 예쁜 어깨와 목선이 드러났다.혜니는 8센티미터 굽의 하이힐을 신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칼끝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혜니는 진정에게 주의할 점을 몇 가지 꼼꼼히 일러 준 뒤에 문을 열고 나갔다.집 아래에는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혜니가 차 문을 열자 김 기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제발 오늘 밤에는 문 세게 닫지 말아 주십시오, 윤 비서님.’‘또 그러시면 제가 수리비 청구서를 받아야 합니다.’‘그때는 정말 보기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혜니는 핸드폰을 꺼내 경서에게 카톡을 보냈다.[나 한인우한테 잡혀서 강제로 끌려가는 중이야. 조금 있다가 집으로 와서 나래 좀 봐 줘.]경서는 곧바로 책상을 뒤엎는 이모티콘을 보냈다.[미친! 그 쓰레기... 사람 맞아? 너 오늘 교통사고 났다며?]혜니는 입꼬리를 희미하게 당긴 뒤 답장을 썼다.[본인이 그러더라. 나 아니면 안 된대.][우웩! 완전 가스라이팅이잖아! 내가 사람 데리고 구하러 갈게!]경서의 답은 바로 도착했다.혜니는 화면을 바라보며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오지 마.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나래나 좀 봐 줘.][알았어.]...차는 결국 한적하고 은밀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 앞에 멈췄다.입구에는 낮고 묵직한 블랙 골드 톤의 대문이 있었다. 간판 하나 없었고, 유니폼을 입은 도어맨들만 양쪽에 공손히 서 있었다.혜니는 도어맨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카펫을 밟고, 구불구불 이어진 복도를 지나갔다.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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