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점심때.진춘심은 집에서 따로 요리하지 않았다.혜니와 경서를 데리고 근처에서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 식당으로 갔다.창가 쪽에 있는 넓은 테이블까지 미리 잡아 두었다.밖이 훤히 보이는 자리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에 사는 장 여사가 남자 두 명과 함께 들어왔다.두 남자는 모두 반듯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키도 크고 인상도 깔끔했다.혜니와 경서는 서로를 한번 바라봤다.둘 다 잠깐 굳었다.‘이 분위기...’‘설마 소개팅?’‘한 명씩 정확하게 짝까지 맞춰 온 거야?’진춘심은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머, 언니. 얼
늘 장난기와 여유가 떠돌던 윤모의 눈이 완전히 어두워졌다.경서는 윤모를 밀어냈다.“다 먹었으면 얼른 가.”윤모는 그릇을 들어 남은 해장국을 한 번에 마셨다.그런데 경서가 어이없게 바라보는 앞에서 갑자기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흰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어 소파 위에 던졌다.단단하게 갈라진 가슴과 복근이 그대로 드러났다.꾸준히 운동해온 몸에는 힘이 꽉 차 있었다.“뭐 해!”경서가 경계하며 물었다.“씻을 거야.”짧게 답한 윤모는 경서의 방으로 곧장 들어갔다.욕실 문까지 열고 들어가 버렸다.불투명 유리 너머로 덩치 큰
깊은 밤.아파트 초인종이 길고 날카롭게 울렸다.잠을 깨운 소리에 경서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다.가운 하나를 걸친 채 문을 거칠게 열었다.밖에는 민찬이 비틀거리는 남자를 힘겹게 부축하고 있었다.사람을 화나게 할 만큼 잘생긴 얼굴은 술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윤모였다.“뭐 하자는 거예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아세요?”경서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민찬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윤모가 팔을 뿌리쳤다.몸을 비틀거리며 억지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진한 술 냄새가 확 퍼졌다.“하경서, 잘 들어.”“너 상민이랑 만나는 거 안 돼
조라는 살길을 찾은 사람처럼 상민을 올려다봤다.“내 목숨... 지켜 줄 수 있어?”상민은 담뱃재를 가볍게 털었다.“네가 얼마나 쓸모 있느냐에 달렸지.”조라는 이를 악물고 자기 패를 꺼냈다.“봉정이가 사람을 죽인 증거가 있어...”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실에서는 큰불이 났다.불길이 내부를 전부 집어삼켰다.곧 봉정이도 소식을 들었다.조라가 화재로 죽었고 시신조차 온전히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커피잔을 들던 봉정이의 손이 아주 조금 멈췄다.가슴이 철렁했다.‘사고야?’‘아니면 누가 일부러?’하지만 금세 생각을 바꿨
경서는 윤모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올려 대놓고 도발하듯 웃었다.경서도 제정신은 아니었다.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사람이었다.“왜, 심 대표. 내 말이 그렇게 어려워?”턱을 살짝 들었다.도도한 표정은 자존심 센 고양이 같았다.“나랑 상민 오빠, 이미 잤다고.”“친구 여자한테 손대면 안 된다는 기본 정도는 알지?”경서는 일부러 ‘친구 여자’라는 말을 또박또박 강조했다.“지금 심 대표가 나한테 이러는 거 소문나면 상류층 사람들이 널 어떻게 보겠어?”“심씨 집안이 N시에서 웃음거리 되는 건 싫을 거
“응.”경서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안전벨트를 맸다.차는 하씨 저택으로 향했다.도착한 뒤 경서는 안전벨트를 풀었다.먼저 상민 쪽으로 몸을 기울여 볼에 빠르게 입 맞췄다.그러고는 문을 열어 차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불이 환하게 켜진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답답함이 밀려왔다.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본 경서의 걸음이 멈췄다.윤모였다.윤모는 거실의 상석에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마치 이 집 주인 같았다.아버지 하동승은 잔뜩 웃는 얼굴로 직접 차까지 따라 주고 있었다.비위를 맞추는 모습이 눈에 거슬릴 정도였다.
혜니는 기분이 확 상해 곧바로 말했다.“대표님, 비서가 세 명이나 있잖아요. 박 비서에게 동행하라고 하셔도...”‘아무리 그래도 나만 붙잡고 끝까지 갈아 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인우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한마디를 던졌다.“윤 비서가 대표야, 내가 대표야?”“그야 당연히 대표님이십니다.”혜니는 이를 악물고 두 글자를 짜냈다.‘악덕 자본가.’“47분 남았어.”인우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덧붙였다.혜니는 토끼보다 빠르게 뛰쳐나갔다.‘젠장...’집까지 가는 데 30분.화장하고 옷 갈아입는 데 17분.목을
게다가 혜니를 따로 태그까지 해 두었다.주소 하나.연락처 하나.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쓸데없는 말은 단 한 글자도 없었다.혜니는 체념한 듯 가방을 움켜쥐고, 곧장 택시를 잡아 그 주소로 향했다.차 안에서도 머릿속은 계속 윙윙거렸다.반년 전 재계약한 근로계약서에 경업금지 약정이 끼어 있었을 줄은 몰랐다.일방적으로 퇴사하면 회사에 43억 원대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했다.혜니의 평생을 갈아 넣어도 갚을 수 있을지 모를 돈이었다.혜니는 지금 미칠 듯이 울적했다.어렵게 도착한 곳은 수리 옥션이었다.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
혜니는 그 순간 생각했다.인우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이제 이 남자는 깨끗하지 않다고.인우가 돌아왔을 때, 인우는 그저 일이 바빴다고만 말했다.그 외에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혜니는 이혼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혜니의 눈가는 무섭도록 붉어져 있었다.하지만 이를 악물고 끝내 눈물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한인우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다음 날, 혜니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인우의 호출이 내려왔다.혜니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문이
“아!”혜니의 몸이 그대로 허공에 떴다.시야가 뒤집히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인우가 혜니를 단번에 어깨에 둘러멘 것이다.단단한 어깨가 몸을 눌러 와 아플 정도였다.“뭐 하는 거야! 내려놔, 한인우!”혜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공중에 뜬 두 다리가 허둥지둥 버둥거렸다.우진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그러다 혜니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서야, 온몸이 움찔 굳었다.한인우.소문으로만 듣던 A국 금융계의 거물.수십 조 원대 자산을 손에 쥔 남자였다....혜니는 끌려가는 내내 버둥거렸다.하이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