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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호랑이굴

Autor: 미미안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11-03 21:43:41

“그럼 이제……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귓가가 웅 울렸다.

석진은 웃고 있었다. 눈에는 온기가 없었다.

여울도 웃었다.

“절 안 부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무님.”

석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잠깐.”

강솔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둘이 원래 알아?”

석진은 여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오래전에 알던 사이야.”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그렇지, 여울아?”

하여울.

혼자만 아직 5년 전에 서 있는 것처럼 부르는 이름이었다.

여울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때였다.

안쪽 문이 열리기도 전에 직원들이 먼저 움직였다. 비어 있던 상석의 의자가 반듯하게 당겨지고, 흐트러진 냅킨이 펴졌다.

“회장님 오십니다.”

강솔이 말을 멈췄다.

석진은 걷어 올렸던 셔츠 소매를 내렸다.

강건까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울도 따라 일어났다.

아무도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가 일어났다.

안쪽 문이 열렸다.

태강의 주인 , 강태환 회장이 들어섰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그런데 그가 몇 걸음 옮기는 동안 방금 전까지 사람 넷이 앉아 있던 다이닝룸이 순식간에 한 사람의 공간이 됐다.

직원들은 눈을 내렸다.

강솔은 입을 다물었고.

석진의 표정에서는 조금 전의 웃음이 사라졌다.

강건만 움직이지 않았다.

강태환의 시선이 딸을 지나 석진에게 닿고, 아들에게서 멈췄다.

마지막이 여울이었다.

낯선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이미 읽어본 서류를 실물과 대조하는 눈.

여울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먼저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대답은 없었다.

강태환은 여울을 그대로 세워둔 채 아들에게 물었다.

“니 옆에 있는 처자는 누고.”

강건이 한 치도 망설이지 않았다.

“제 아내입니다.”

강태환의 시선이 다시 여울에게 닿았다.

“뭐라꼬?”

“오늘 혼인신고 했습니다.”

잠깐.

정적이 식탁 전체를 눌렀다.

“애비한테 말도 없이?”

“미리 말씀드렸으면 달라졌습니까.”

강태환의 입꼬리 한쪽이 느릿하게 올라갔다.

“니가 장가가는 데 내 허락 받을 나이는 지났지.”

그가 상석으로 걸어가다 멈췄다.

“근데.”

어깨 너머로 아들을 돌아봤다.

“태강 간판 걸고 판 벌일 때는 내 귀에는 먼저 들어와야 되는 거 아이가.”

강건은 눈 하나 피하지 않았다.

“제가 선택한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웃음도 없었다.

강태환이 여울을 천천히 훑었다.

“그래.”

그 한마디가 허락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라모 니가 끝까지 책임져라.”

시선은 여전히 여울에게 있었다.

“쪽은 니가 팔아도, 값은 태강이 치르는 일 없게.”

사람 하나를 앞에 두고 값부터 따지는 말이었다.

강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럴 일 없습니다.”

“그 말 기억해라.”

강태환이 의자를 당겼다.

“앉자.”

그제야 모두가 앉았다.

여울도 자리에 몸을 낮췄다.

등 뒤가 서늘했다.

결혼한 지 몇 시간 만에 알 것 같았다.

이 집에서는 환영도 허락도 없었다.

버티는 사람만 남았다.

식사가 시작됐다.

접시와 커트러리가 맞부딪치는 작은 소리 외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석진이었다.

“형님, 축하드립니다.”

잔을 들어 올리는 얼굴은 다시 평온했다.

강건이 그를 바라봤다.

“축하해줄 줄은 몰랐네, 매제가.”

석진의 턱이 굳었다.

찰나였다.

강태환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하여울 씨.”

여울이 등을 폈다.

“네, 회장님.”

“기사에 난 그 비서 맞제?”

식탁 위의 공기가 다시 식었다.

“네. 하여울입니다.”

“세상 마이 좋아졌네.”

강태환이 짧게 웃었다.

“우리 집 문턱도 많이 낮아졌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아버지.”

강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와.”

강태환은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기를 한 점 잘라 입에 넣었다.

“니가 낮춘 문턱 아이가.”

씹고, 삼켰다.

그제야 여울을 봤다.

여울은 손에 힘을 더 줬다.

아팠다.

그래서 오히려 웃을 수 있었다.

“잘 버텨보겠습니다, 회장님.”

강태환의 포크가 멈췄다.

처음으로 여울을 제대로 보는 눈이었다.

몇 초가 길었다.

“그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버텨봐라.”

짧은 말이 이상하게 협박처럼 들렸다.

여울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식사가 중반을 넘겼을 무렵 강태환이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전략기획실 있다가 우리 건이 밑으로 갔다 카던데.”

여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기사만 본 게 아니었다.

회장의 눈에서 피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였다.

“변 서방.”

석진이 고개를 들었다.

“네, 회장님.”

“아까 보니까.”

강태환의 시선이 둘 사이를 한번 훑었다.

“아는 사이가?”

석진의 손이 아주 잠깐 굳었다.

“예전에 알던 사이입니다.”

“예전에?”

“네.”

“얼마나 예전인데.”

석진이 입을 열려는 순간 여울이 먼저 말했다.

“오래전입니다.”

시선들이 몰렸다.

여울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도 오늘 오랜만에 봤습니다.”

석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강태환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톡.

포크가 접시 위에 놓였다.

“그래.”

그가 등을 의자에 기댔다.

“지난 판 끝났으면 새 판에서는 새로 놀아야지.”

석진은 말이 없었다.

여울의 손바닥에는 손톱 자국이 깊게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스윽.

앞에 있던 와인잔이 옆으로 밀려났다.

대신 물잔이 가까워졌다.

강건이었다.

그는 여울을 보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다시 식탁을 보고 있었다.

여울이 물잔을 잡았다.

차가운 유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그제야 알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잔을 쥔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손바닥을 찌르던 손톱이 떨어졌다.

식사가 끝나자 강태환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고마 잘 묵었다.”

냅킨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다들 일 봐라.”

모두가 일어났다.

여울도 따라 일어섰다.

강태환이 다이닝룸을 빠져나가다 걸음을 멈췄다.

하필 여울 앞이었다.

“하여울 씨.”

“네, 회장님.”

“아까.”

강태환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잘 버텨보겠다 캤제.”

“네.”

여울은 이번에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강태환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이번에는 웃는 얼굴이 더 서늘했다.

“함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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