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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4화

작가: 이야기보따리
밤이 되자 소예지는 임재석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내일 아침 10시에 임원 회의가 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한 시간 정도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소예지는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참석하죠.”

소예지는 연구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덟 개 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는 여성 기업가이기도 했다.

그날 밤, 그녀는 MD의 일상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임재석이 보내온 재무 보고서를 열어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이후 온라인으로 그와 보다 구체적인 상황까지 확인했다.

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깔끔하게 재단된 진한 파란색 정장에 심플한 진주 귀걸이를 매치해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고하슬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그녀는 곧바로 차를 몰아 호텔로 향했다.

호텔 조식당에서 소예지는 마치 일반 투숙객처럼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총지배인과 한 명의 조수가 동석해 있었고 두 사람은 소예지가 호텔의 음식과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는지 은근히 눈치를 살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소예지는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회의실 안에 있던 열여섯 명의 고위 임원들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소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상석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뜻밖의 인물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이한이었다.

그는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여전히 조금 창백해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고 대표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임재석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고이한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한 번 기침한 뒤, 다소 쉰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그의 등장으로 회의실 분위기는 한순간 팽팽하게 굳어졌다.

고이한은 호텔의 주요 주주 중 한 명이었지만 연례 주주총회를 제외하면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소예지는 담담하게 시선을 들어 기침을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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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예지는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을 띄운 채,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내가 다시 결혼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꼭 당신에게 알려줄게.”띵.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소예지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직후 억눌러왔던 고이한의 거친 기침 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 울려 퍼졌다.정오 12시.소예지의 차가 윤화 그룹 본사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오늘부터 윤하준은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그의 얼굴빛은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 보였고 깁스를 풀어낸 팔은 아직 약간 굳어 있었지만 일상적인 움직임에는 무리가 없는 상태였다.소예지는 차에서 내려 운전석을 돌아 조수석 문을 먼저 열어주었다. 그 순간, 윤하준은 잠시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살짝 감동한 표정으로 웃었다.“이 정도는 제가 할 수 있는데요.”소예지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완전히 회복될 때까진 제가 챙기기로 했잖아요.”윤하준은 그녀의 차에 몸을 실으며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진 그녀의 향기를 느끼고는 무의식중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윤하준이 예약해 둔 식당은 회사 근처에 있었고 소예지는 불과 10분 만에 레스토랑 주차장에 도착했다.“윤 대표님, 오셨군요. 자리는 이쪽입니다.”직원들이 모두 윤하준을 자연스럽게 알아보는 것을 보니 그가 이곳의 단골임은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오늘 그가 함께 데려온 아름다운 여성은 직원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겼다.윤하준은 설명하듯 말했다.“보통 이 레스토랑에 자주 와요. 회사랑도 가깝고 제 입맛에도 잘 맞거든요.”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렇군요.”“오늘 아침에는 MD에 계셨나요?”윤하준이 다시 물었다.“벨모아 호텔에서 조찬 회의가 있었어요. 거기서 바로 온 거예요.”윤하준은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고 대표도 거기 있었나요?”“네. 고 대표도 왔었어요.”“보아하니 고 대표가 예지 씨 회사 일에 유독 신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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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한은 손끝으로 벨벳 케이스를 천천히 어루만졌다.그의 시선이 조용히 소예지를 향했다.소예지는 말없이 손을 뻗어 그의 손에서 케이스를 가져오며 담담하게 말했다.“고맙습니다.”고이한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졌고 그 눈동자 깊은 곳에서 짙은 어둠이 스쳐 지나갔다. 임재석이 아직 보고를 재개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 고이한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 규칙적인 리듬에는 분명한 불쾌감이 실려 있었다.임재석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히 보고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후의 회의 분위기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고이한의 질문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회의실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짙게 깔렸다.다행히 임재석은 풍부한 보고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고 안정적인 어조를 유지했지만 회의가 끝날 무렵 그의 이마에는 옅은 땀이 맺혀 있었다. 다른 고위 임원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눈치 보듯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그 순간, 고이한이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한 손으로 회의 테이블을 짚었고 손가락 마디에는 힘이 과하게 들어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숨소리마저 점점 거칠어졌다.하지만 소예지는 끝까지 묵묵히 서류를 정리하고 있을 뿐,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고 대표님!”임재석이 걱정스레 다가왔다.“제가 병원에 모셔다드릴게요.”고이한은 손을 들어 사양하며 여전히 무심한 태도의 소예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잠시 복잡하게 흔들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회의실을 떠났다.소예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늘 회의는 분명 업무를 위해 참석한 자리였지만 고이한은 회의 내내 모든 흐름을 장악하며 자신의 본능적인 통제 욕구를 여실히 드러냈다.“소 대표님, 방금 고 대표님 결정에 대해 다른 의견은 없으십니까?”임재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예지는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가 제시한 방안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벨모아의 미래 방향이었다.“없습니다. 그대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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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예지는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아무도 그 사람한테 억지로 오라고 한 적 없어.”오늘 이 회의는 고이한이 있든 없든,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이서연은 그 말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이한을 언급할 때마다 소예지의 말끝에는 늘 가시가 박혀 있었다.이서연은 그제야 자신이 들었던 소문들이 모두 헛소리였다는 걸 깨달았다.‘다들 소예지랑 고 대표가 재결합할 마음이 있다던데... 내가 괜히 오지랖 부린 거였네.’이서연이 사무실을 나간 뒤, 소예지는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녀는 곧장 양정화에게 전화를 걸었다.“교수님, 병원 쪽에 부탁해서 아버지 마지막 건강검진 보고서를 저한테 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물론이지. 그런데 갑자기 왜 그게 필요해?”“별일은 아니에요. 그냥 한 번 보고 싶어서요.”소예지는 이유를 더 설명하지 않았다.“그래. 그럼 내가 병원에 전화해 볼게.”십여 분쯤 지나, 소예지의 이메일로 건강검진 자료가 도착했다. 그녀는 곧바로 파일을 열어 아버지의 마지막 건강검진 보고서를 확인했다. 그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그것은 5년 전의 검사 기록이었다.보고서 속 아버지의 건강 수치는 전반적으로 정상 범위였고 중등도의 빈혈을 제외하면 RH- 음성 희귀 변이형 혈액병에 대한 그 어떤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소예지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아버지는 아니었다.‘그렇다면 아버지가 메모에 남겼던 그 희귀 혈액병은 그냥 적은 정보였던 걸까?’‘아니면 주변에 그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던 걸까?’가족이 아니라면 굳이 더 깊이 파고들 이유는 없었다.오후가 되자 주현우가 소예지를 찾아왔다. 다음 주에 편정우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MD를 방문해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니 그 주에는 절대 휴가를 내지 말아 달라는 당부였다.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강준석의 사무실을 찾았다. 강준석은 이번에 M국으로 출국해 국제 교류회에 참석 중이었다.“소예지, 왔구나. 나도 마침 너를 찾으려던 참이었어!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642화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고 고이한은 정신을 가다듬은 채 준비 프로젝트 보고를 듣고 있었지만 간간이 억눌린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소예지는 고개를 숙인 채 회의 내용을 차분하게 기록하고 있었다.그때 고이한이 문득 입을 열었다.“소예지 씨, 안전성 테스트 계획에 대해 어떤 제안이 있습니까?”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소예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회사는 3단계 방어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보고서 15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고이한은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보고서의 15페이지를 넘겼다.그 이후로는 별다른 돌발 상황 없이 회의가 마무리되었고 참석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주현우는 고이한의 상태가 신경 쓰이는 듯 다가와 말을 건넸다.“대표님, 감기 걸리신 것 같네요?”“네. 비를 조금 맞았더니...”고이한이 짧게 대답하자, 주현우가 다시 물었다.“병원은 가보셨어요?”“이따가 가려고 합니다.”주현우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멈칫했다.‘이 사람, 감기에 걸리고도 회의까지 참석하고 아직 병원도 안 갔다고? 진짜 일벌레는 따로 없네...’잠시 고민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소예지에게 말을 꺼냈다.“소예지 씨, 잠깐 시간 괜찮으시면 대표님 병원에 좀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소예지는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바빠서요.”그녀는 그 이유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굳어졌다. 주현우는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한 번 했다.“아, 그렇군요! 그럼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고이한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불쾌함이 스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직접 갈 겁니다.”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회의실을 나섰다. 주현우 역시 뒤따라 나서려 했지만 그때 소예지가 그를 불러 세웠다.“부대표님, 앞으로 업무 외의 사적인 일로는 부탁하지 말아 주세요.”차분하지만 분명한 말투였다. 소예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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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슬아, 아빠가 빨리 옷 갈아입을 수 있게 집에 보내드리자.”소예지는 딸에게 그렇게 말했다. 딸의 효심을 도와주는 셈이기도 했고 동시에 고이한을 자연스럽게 떠나보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아빠, 빨리 할머니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어요!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요.”고하슬의 말에 고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딸의 작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알았어. 아빠 먼저 갈게.”고이한이 떠난 뒤, 소예지는 딸에게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먹이고 혹시 비에 젖은 곳은 없는지 살피며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저녁이 되자 그녀는 직접 국수 두 그릇을 삶아 두 모녀가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걱정이 사라진 듯,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이 흘러갔다.이튿날 아침, 출근길에 나선 소예지의 차량 뒤로 경호차 한 대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임재석의 지시 앞으로 한 달간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호팀이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소예지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MD 회의 소식을 받았다. 지난 한 주 동안 뇌-컴퓨터 프로젝트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었고 이제 계획이 본격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라는 보고였다.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 일주일 동안, 많은 사람들이 소예지가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이서연 역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여행 다녀온 거야?”“아니. 친구가 다쳐서 일주일 동안 돌봐주느라.”“와, 소중한 친구인가 봐.”소예지는 웃기만 할 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이서연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자, 네 거.”두 사람은 커피를 들고 나란히 회의실로 향했다. 업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던 중, 마침 회의실 문이 열리며 안채린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소예지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이서연을 보자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한때는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요즘은 완전히 소예지 편이 된 듯 보였다.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꽤 엄숙했고 최근 해외 출장 준비로 바빴던 강준석도 회의에 참석해 있었다. 그는 소예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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