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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作者: 이야기보따리
다음 날 아침.

소예지와 박시온은 이른 아침부터 보석 가게로 향했다. 정장 차림의 소예지가 직원에게 다가가자 직원은 역시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소예지는 자신을 고이한의 비서라고 소개하며 보석 구매 영수증을 찍어서 경비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직원은 곧바로 그녀를 매니저실 문 앞까지 안내했고 잠시 후 소예지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직원이 심유빈이 구매한 여섯 세트의 보석 영수증을 꺼내 보여주자 고객 서명란에는 분명히 고이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소예지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사진을 찍은 뒤 이어 직원에게 부탁해 영수증 사본을 받아서 밖으로 나왔다.

보석 가게 밖으로 나오자 박시온이 소예지가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 증거라면 법정에서 분명히 너한테 유리한 협상 카드가 될 거야.”

정오가 가까운 시각, 소예지가 저택으로 돌아오자 최현숙이 궁금한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젯밤엔 어디 있었니?”

“친구한테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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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8화

    우산 아래에는 고이한과 소예지 둘뿐이었다.빗방울이 젖은 땅을 두드리는 동안 직원들은 비석을 세우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그사이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직원 한 명이 고이한에게 다가와 말했다.“고 대표님. 먼저 돌아가셔도 됩니다. 여기는 마무리하려면 한 시간 넘게 더 걸릴 것 같습니다.”고이한은 고개를 끄덕인 뒤 소예지를 바라봤다.“우리 먼저 내려가자.”소예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우산을 쓰고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소예지는 걷는 내내 자신도 모르게 우산을 고이한 쪽으로 조금 더 기울였다.그러자 고이한이 손을 뻗어 우산 손잡이를 받아 들었다.“내가 들게.”짧은 말이었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힘이 실려 있었다.고이한이 우산을 받아 들자 자연스럽게 소예지 쪽으로 기울였다. 덕분에 소예지는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의 한쪽 어깨는 그대로 빗속에 드러났다.두 사람은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산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다 소예지의 발이 순간 미끄러지자 고이한이 곧바로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붙잡았다.그 뒤로 그는 팔을 풀지 않은 채 소예지를 감싸고 산길을 끝까지 내려갔다.장례식장으로 돌아온 두 사람에게 직원이 깨끗한 수건을 건넸다. 소예지가 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빗물을 닦는 동안 고이한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 남았다.마침 업무 전화가 걸려 오자 소예지는 전화를 받기 위해 바깥 정원으로 나갔다.통화를 하던 중 무심코 시선을 돌린 그녀의 눈에 정원 한쪽에 서 있는 고이한이 들어왔다.그는 벽에 기대 선 채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빗안개와 뒤섞여 그의 모습을 흐릿하게 감쌌다.문득 외로워 보였다.그런데도 쉽게 무너질 사람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 어떤 비바람이 닥쳐도 묵묵히 버텨 낼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그런 고이한의 강인함은 그가 가진 지위나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쉽게 꺾이지 않는 의지와 단단한 내면이 지금까지 그를 버티게 해 온 힘이었다.소예지는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7화

    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있어요.”“좋아. 그럼 그때 다시 연락하자. 나도 이제 가봐야겠어. 오후에 수업이 있거든.”양정화를 배웅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소예지 씨.”소예지는 놀라 뒤를 돌아봤다.검은 정장을 입은 윤하준이 서 있었다. 그 옆에는 하종호도 같은 차림으로 서 있었다.하종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이에요. 소예지 씨.”“하준 씨, 종호 씨. 오랜만이에요.”소예지도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하종호가 윤하준에게 말했다.“그럼 넌 소예지 씨랑 어머니 얘기 좀 나눠. 난 먼저 갈게.”윤하준이 소예지를 바라봤다.“바빠요?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윤하준은 어머니의 근황을 이야기했다.그의 미간에는 깊은 걱정이 어려 있었다.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이제 그의 곁에 남은 가족은 조카 이안과 어머니뿐이었다.그래서 윤하준은 무엇보다 어머니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의사들이 새로운 치료 방안을 마련했어요. 다음 주부터 시작할 거예요.”윤하준의 목소리는 낮았고 피로가 묻어 있었다.“다만 효과가 어떨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대요.”소예지는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제 연구도 아직 핵심 데이터 몇 가지가 더 필요해요. 최대한 빨리 돌파구를 찾아볼게요. 아주머니께도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럴 거예요. 난 믿어요.”윤하준이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빛에는 굳은 믿음이 어려 있었다.잠시 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이한이랑은... 잘 지내요?”소예지는 눈을 내리깔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윤하준은 어느 정도 짐작한 듯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난 이한이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어요.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요. 한번 마음먹은 건 쉽게 바꾸지 않아요. 특히 소예지 씨와 관련된 일이라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고마워요, 하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6화

    조미란은 곁눈질로 소예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확인했다.그러자 더욱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제 사촌 형부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도 병문안을 갔었거든요. 그분의 마지막 소원이 이한이가 자식 복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가능하면 아들을 셋 낳으라고까지 하셨어요. 적어도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옆에 있던 사모님이 자연스럽게 맞장구쳤다.“그렇긴 하죠. 이렇게 큰 집안인데 아들이 하나도 없으면 아무래도 그렇잖아요.”“그런데 벌써 십 년이 다 돼 가는데 그 유언도 아직 이루지 못했어요. 게다가 제가 듣기로는 이번에 돌아가신 어르신도 마지막까지 고씨 집안에 아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대요. 남자 손주도 바라셨고요. 이러다 아이를 더 못 낳으면 먼저 세상을 떠난 두 분 모두 한을 품고 가신 셈이잖아요.”조미란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하지만 소예지가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소예지는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최현숙의 마지막 말은 자신도 직접 들었다.하지만 고이한의 아버지 역시 비슷한 유언을 남겼을 줄은 몰랐다.사모님이 말했다.“괜찮아요. 고 대표님도 아직 젊은데 아들 낳는 게 뭐 어렵겠어요? 원하면 계속 낳으면 되죠.”그녀는 조미란이 너무 걱정한다고 생각했다.고씨 집안 정도라면 셋은커녕 열 명이라도 부족함 없이 키울 수 있을 터였다.조미란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모르시나 봐요. 제 형님도 그것 때문에 얼마나 속을 끓이는데요. 이한이가 아이를 더 낳는 데 별 관심이 없대요. 이혼한 지도 삼 년이나 됐는데 그동안 다른 여자를 만난 적도 없고요.”사모님이 웃으며 말했다.“남자는 나이가 좀 들어야 생각이 달라지기도 해요. 지금은 젊어서 그렇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바뀌면 얼른 아이 잘 낳을 만한 여자 찾아서 서두를 수도 있죠.”조미란은 곁눈질로 소예지가 여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 확인했다.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소예지 같은 전처가 길을 막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5화

    잠시 뒤 임씨 집안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 소예지는 딸의 손을 잡고 고이한에게 다가갔다.고이한은 몸을 낮춰 딸의 손을 잡았다.“아빠랑 가서 증조할머니께 향 올리자.”고하슬은 아빠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고 소예지도 곁에서 함께했다.고이한은 딸이 향을 피우는 걸 도와준 뒤 세 번 절하게 하고 향로에 향을 꽂도록 했다.소예지도 같은 방식으로 최현숙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그때 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슬이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고하슬도 고씨 집안의 일원이니 지금은 아빠 곁을 지키는 게 맞았다.“그럼 나는 밖에 나가 있을게.”고이한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예지는 아직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오늘도 그저 조문객의 한 사람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소예지가 돌아서 나간 뒤 고하슬은 아빠의 손을 잡고 함께 조문객들에게 인사했다.찾아온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어린 고하슬에게 향했다. 그중에는 몇 초씩 더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그 눈에는 호기심과 아이를 가늠하려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채 앞으로 남다른 삶을 살아갈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는 시선이었다.물론 고이한이 딸을 곁에 세운 데에는 분명한 의미도 담겨 있었다.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선언과도 같았다.고하슬이 앞으로 자신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어린 고하슬도 아빠 옆에 서자 제법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데도 불안해하거나 겁먹지 않았다.작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아빠를 따라 조문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가는 손님들을 배웅했다.소예지는 이미 밖으로 나와 있었다.바깥에는 조문객들이 잠시 쉴 수 있도록 의자와 간단한 음식이 마련돼 있었다.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소예지에게 향했다.진가영의 사촌 남동생인 방재근의 아내 조미란이었다.조미란은 소예지를 실제로 처음 보는 순간 내심 놀랐다.검은색 긴 원피스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4화

    그 뒤로 고이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소예지도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의 집에는 가지 않았다.밤 열 시쯤 고이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오늘은 별장에 안 들어가. 본가에 있을게.]소예지는 한동안 그 메시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마음이 복잡했다.고하슬은 이미 잠들었지만 소예지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내일은 최현숙의 장례식이었다.눈을 감으면 생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최현숙은 늘 인자하고 너그러웠다. 소예지에게 단 한 번도 모질게 굴거나 불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그래도 한편으로는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그것 역시 고이한이 내린 결정이었다.억지로 생명을 연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지막을 맞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최현숙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품위를 지킨 채 떠날 수 있었다.그러다 문득 최현숙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다시 떠올랐다.어둠 속에서 소예지의 눈빛이 흔들렸다.마음속에는 어느새 또렷한 생각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이한 같은 사람이라면 아들을 낳아 줄 여자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여자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그러니 최현숙의 마지막 바람을 이루어 주는 편이 맞았다.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고하슬에게 검은색 원피스를 입혀 주었다.처음으로 온몸을 검게 차려입은 고하슬이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엄마. 우리 오늘 어디 가요?”소예지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딸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하슬아. 오늘은 엄마랑 왕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갈 거야. 잘 보내 드리고 오자. 괜찮지?”고하슬이 잠시 소예지를 바라보다 물었다.“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처럼 돌아가신 거예요? 이제 앞으로는 영원히 못 만나요?”소예지는 순간 멈칫하며 딸을 바라봤다.고하슬의 눈에도 슬픔이 어려 있었다.“저 왕할머니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생각할 거예요.”옆에서 듣고 있던 양희순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3화

    고이한은 몸을 낮춰 딸과 눈을 맞췄다.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딸을 향한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났다.“학교 공부는 어때? 숙제는 있어?”“네! 저 다 할 수 있어요.”고하슬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한층 더 의젓해진 모습이었다.그때 양희순이 다가와 물었다.“대표님. 제가 국수 한 그릇 끓여 드릴까요?”고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부탁드릴게요.”소예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고이한이 딸과 조금 더 함께 있기를 바랐고 고하슬도 지금은 아빠 곁에 있어 주었으면 했다.지금 고이한에게는 마음을 붙들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딸은 앞으로 고이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터였다.양희순이 국수를 끓여 가져오자 고이한은 딸과 함께 조금씩 먹었다.밤 열 시가 되자 고이한은 딸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혀 주었다.“아빠. 저한테 이야기 하나 해 주시면 안 돼요?”고하슬이 부탁하자 고이한이 소예지를 바라봤다.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슬이랑 조금 더 있어 줘.”소예지는 고이한이 안방에서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두고 서재로 나와 잠시 앉아 있었다.어느덧 열 시 이십 분이었다. 내일도 학교에 가야 하니 이제는 고하슬을 재울 시간이었다.고이한은 집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한 찻집 2층 VIP실에는 하종호와 윤하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세 사람이 이곳에 모인 건 차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종호와 윤하준은 그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의 곁을 지켜 주러 온 것이었다.이럴 때는 어떤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오랜 친구 사이에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고이한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룸 안에는 은은한 조명만 켜져 있었다.고이한은 창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윤하준은 말없이 차를 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요한 침묵만 이어졌다.하종호와 윤하준의 시선이 이따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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