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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당신이 모르는 나의 시간(2)

Author: 노에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0 04:42:53

해원이 메시지를 확인한 것은 작업실 근처 카페에서였다. 그녀는 원단 봉투를 옆에 놓고 잠시 쉬고 있었다.

[오늘 저녁 일정 있습니까?]

해원은 조금 의외라는 듯 화면을 바라보았다. 도겸이 먼저 저녁 일정을 묻는 일은 흔치 않았다.

[아니요. 특별한 일정은 없어요.]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그럼 같이 식사합시다. 일곱 시쯤 들어가겠습니다.]

해원은 잠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네. 기다릴게요.]

***

저녁 일곱 시 십 분.

도겸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귀가했다. 해원은 식탁에 저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오셨어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얼마 안 늦으셨어요.”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다만 오늘은 도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 바쁩니까?”

해원이 젓가락을 멈췄다.

“저요?”

“네.”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밖에 나가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서요.”

해원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요.”

도겸은 물잔을 내려놓았다.

“디자인 공부를 다시 한다고 들었습니다.”

순간 해원의 손끝이 멈췄다.

“...누구한테요?”

“백유라 씨가 우연히 만났다고 하더군요.”

해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까?”

“네. 조금씩 다시 해 보고 있어요.”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해원은 도겸을 바라보았다. 그 질문이 조금 낯설었다.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예전에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 도겸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었다. 해원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직 별로 이야기할 만한 게 없어서요.”

“그렇습니까.”

“네. 그냥 공부하는 정도예요.”

도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해원은 조용히 웃었다.

“괜찮아요.”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제가 해 보고 싶어요.”

그 말에 도겸의 눈빛이 잠시 멈췄다. 해원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나중에 정말 필요해지면 말씀드릴게요.”

도겸은 더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해원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준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반가웠다. 다만 지금은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꿈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으니까.

***

밤 열한 시.

해원은 책상 앞에 앉아 원단을 펼쳤다. 연회색 원단 위로 손바닥을 천천히 움직였다. 오늘 정숙과 함께 수정한 패턴이 옆에 놓여 있었다. 해원은 원단 위에 패턴지를 올리고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첫 번째 작품. 결혼 후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옷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가위를 들었다. 사각. 날카로운 가위 끝이 원단을 가르며 지나갔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기분 좋았다.

해원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민지: 첫 작품 완성하면 나부터 보여 줘. 알았지?]

해원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응. 제일 먼저 보여 줄게.]

그리고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

도겸은 다시 책을 펼쳤다.

아내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는 여전히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결국 책을 덮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지 않게 된 것이. 마지막으로 해원을 품에 안았던 밤이 언제였는지조차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도겸은 침대 옆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해원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 날 밤. 도겸은 평소보다 늦게 귀가했다. 회식 자리에서 마신 술 때문인지 몸이 조금 나른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거실에서 해원이 일어났다.

“오셨어요?”

“네.”

“술 드셨어요?”

“조금 마셨습니다.”

해원은 그의 얼굴을 살폈다.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괜찮습니다.”

“꿀물이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씻고 쉬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도겸은 침실로 향하는 해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녀는 그가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도겸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해원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흩어져 있었고, 얇은 잠옷 아래로 가느다란 어깨선이 드러나 있었다.

도겸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내였다. 삼 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았고, 같은 침대를 사용했던 여자. 그런데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결혼 초에는 해원이 먼저 그의 품으로 파고들곤 했다. 잠들기 전이면 자연스럽게 팔을 감아 왔고, 도겸은 그런 아내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던 은은한 향기. 자신의 가슴에 닿던 따뜻한 체온. 그런 것들이 문득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겸은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해원 씨.”

“네?”

“벌써 잡니까?”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요.”

“그렇습니까.”

잠시 후 조명이 꺼졌다. 해원은 평소처럼 등을 돌리고 누웠다.

도겸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들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해원 씨.”

“...네?”

그의 손끝이 해원의 허리께에 닿았다. 얇은 잠옷 너머로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해원의 몸이 순간 굳었다. 도겸은 그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오늘은...”

잠시 말을 멈춘 도겸이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이렇게 있어도 되겠습니까?”

일 년 만이었다. 남편이 먼저 자신을 끌어안으려 한 것은. 해원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녀는 기쁨보다 먼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도겸의 손이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기려던 순간. 해원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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