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전처의 브랜드가 세계를 사로잡았다: Kabanata 1 - Kabanata 10

21 Kabanata

1화. 완벽한 부부의 불완전한 결혼(1)

“이혼하고 싶어요.”서도겸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결혼 삼 년 만에 아내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이유가 뭡니까?”해원은 웃었다.“당신은 내가 없어도 괜찮잖아요.”“…….”“그런데 저는요.”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결혼반지를 내려다보았다.“당신 곁에 있으면, 자꾸 제가 없어져요.”그날 서도겸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도 쉽게 놓아준 여자가, 언젠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서라도 되찾고 싶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그리고 이로부터 육개월 전.***결혼기념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해원뿐이었다. 정확히는, 결혼 삼 주년을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한 사람도, 오늘 하루를 기다린 사람도 그녀뿐이었다.오후 일곱 시. 식탁 위에는 두 사람분의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도겸이 좋아하는 안심 스테이크와 버섯 수프. 작은 꽃병에는 흰 장미 세 송이가 꽂혀 있었고, 접시 옆에는 해원이 직접 고른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해원은 마지막으로 촛불을 켰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아직 연락은 없었다.‘조금 늦나 보다.’그녀는 익숙하게 생각했다. 서도겸은 바쁜 사람이었다. 태성그룹의 장남이자 태성어패럴의 대표. 하루에도 수십 건의 보고를 받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분 단위로 움직이는 남자. 해원은 그런 남자의 아내였다.결혼한 지 삼 년. 그녀는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그래도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삼 년 전 오늘, 도겸은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날의 도겸은 평소보다 조금 더 다정했고, 해원은 그 작은 다정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그래서 오늘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도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오후 여덟 시 십 분.촛불이 절반쯤 줄어들었다.해원은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메시지를 보낼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 짧게 문장을 적었다.[오늘 몇 시쯤 오세요?]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회의 중입니다. 늦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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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완벽한 부부의 불완전한 결혼(2)

식탁을 정리하는 데는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네 시간이 넘도록 준비하고 기다렸던 저녁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치우는 데는 고작 십 분이면 충분했다.해원은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 서서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했다. 접시 위에는 도겸이 좋아하는 안심 스테이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굽기 정도까지 신경 써서 준비한 음식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소스도 따로 만들었다.해원은 포크로 식어 버린 고기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버리면 그만이었다. 도겸의 말대로.하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아까웠다. 비싼 고기가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며 혼자 행복해했던 자신의 마음이.해원은 결국 고기를 밀폐 용기에 담았다. 수프도 버리지 못하고 냉장고에 넣었다.혹시 내일 아침에는 먹어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작은 기대를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해원은 냉장고 문을 닫고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탁 위에 남은 선물 상자를 집어 들었다. 짙은 남색 포장지에 은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해원은 손끝으로 리본을 한 번 쓸어내린 뒤 침실로 향했다.도겸은 침대 옆에 앉아 태블릿으로 업무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도겸 씨.”“네.”그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해원은 잠시 기다렸다.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하지만 도겸은 여전히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먼저 상자를 내밀었다.“이거요.”그제야 도겸이 고개를 들었다.“뭡니까?”“결혼기념일 선물이에요.”도겸의 시선이 상자로 향했다.“아.”그는 상자를 받아 들었다.“고맙습니다.”해원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가 선물을 받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도겸은 포장을 풀어 넥타이핀을 확인했다.“괜찮네요.”“마음에 드세요?”해원이 조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네. 잘 쓰겠습니다.”그는 상자를 닫아 서류 가방 옆에 두었다. 그리고 다시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그뿐이었다.해원은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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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잊고 있던 이름(1)

같은 시각. 태성어패럴 대표이사실. 도겸은 보고서를 읽다가 책상 한쪽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발견했다. 어젯밤 해원이 건넨 넥타이였다. 그는 잠시 상자를 바라보다가 뚜껑을 열었다. 넥타이 아래에는 작은 카드가 들어 있었다.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골랐어요.] 짧은 문장 아래에는 해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겸은 카드를 내려놓았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저 아내가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했을 뿐이었다. 그때 현석이 들어왔다. “대표님, 오늘 오후 일정에 변경이 있습니다.” “말 하세요.” 현석은 일정을 확인하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사모님께서 어제 준비하신 저녁은...” “그 얘기는 왜 하지?” 도겸이 고개를 들었다. 현석은 말을 멈췄다. “아닙니다.” “개인적인 일까지 보고할 필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석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도겸은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해원은 기다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약속이 미뤄져도 화를 내지 않았고, 자신이 바빠도 이해해 주었다. 무엇이든 괜찮다고 했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아서 챙겨 주었다. 도겸은 그런 해원이 편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 자신의 일에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 그러니 앞으로도 별다른 변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넥타이 상자를 서랍 안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 강해원은 식탁 위에 놓인 커피잔을 내려다보았다. 맞은편 의자는 비어 있었다. 도겸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은 회의가 많다는 말만 남긴 채였다. 해원이 차려 둔 아침 식사는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 어젯밤 도겸에게 건넸던 선물은 지금쯤 회사 어딘가에 놓여 있을 터였다. 그가 열어 보았는지, 카드에 적힌 문장을 읽어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해원은 식탁를 정리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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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잊고 있던 이름(2)

카페에서 마주 앉은 민지는 해원의 얼굴을 살피더니 먼저 물었다.“무슨 일 있어?”“왜?”“너 표정이 이상해.”“내 표정이 어때서.”“괜찮은 척하는 표정.”해원은 웃으려다 말았다.민지는 오래된 친구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것이 있었다.“요즘 생각이 조금 많아졌어.”“도겸 씨 때문이야?”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만으로도 민지는 어느 정도 알아들은 듯했다. 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커피잔을 내려놓고 물었다.“너는 요즘 행복해?”해원은 눈을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갑자기?”“갑자기 아니야. 나 예전부터 궁금했어. 너 결혼하고 나서는 하고 싶다는 얘기를 거의 안 하잖아.”“내가 뭘?”“디자인.”민지가 단호하게 말했다.“너 진짜 기억 안 나?”“뭘?”“너 졸업 작품 발표했을 때 교수님이 뭐라고 했는지.”“…….”“네가 언젠가 자기 이름 걸고 브랜드 만들면 제일 먼저 투자하고 싶다고 했잖아.”해원이 작게 웃었다.“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그러니까.”민지는 웃지 않았다.“그렇게 잘하던 애가 왜 이제는 자기 재능까지 과거형으로 말하냐고. 네 브랜드 만들 거라고, 언젠가는 네가 디자인한 옷을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걸 보고 싶다고. 그랬던 애가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를 안 하더라.”해원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그냥... 결혼하고 나니까 상황이 달라졌잖아.”“결혼하면 달라지는 거 많지. 그런데 네가 하고 싶은 걸 전부 미뤄야 하는 건 아니잖아.”“도겸 씨도 바쁘고, 나도 집안일을 해야 하고. 지금 당장 뭘 시작하기에는...”말끝이 흐려졌다. 민지는 재촉하지 않았다. 한참 뒤, 해원이 작게 웃었다.“나 사실 오늘 예전 스케치북을 찾았어.”“정말?”“응. 오랜만에 봤는데, 아직도 좋더라.”그 말을 하면서 해원은 자신이 조금 놀랐다. 아직도 좋다는 말. 너무 오래 입 밖으로 내지 않아 잊어버린 줄 알았던 감정이었다.“다시 해 보고 싶어?”해원은 곧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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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백유라’라는 여자(1)

태성어패럴 대표실.서도겸은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 흐트러짐 하나 없는 차림이었다. 단정하게 넘긴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짙은 눈동자는 서류의 작은 숫자 하나까지 놓치지 않을 듯 날카로웠다. 빈틈없이 잘생긴 얼굴에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무표정이 걸려 있었다.똑똑.노크 소리와 함께 최현석이 들어왔다.“대표님, 다음 시즌 캠페인 관련해서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도겸은 시선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말하세요.”“백유라 씨 측에서 다음 시즌 캠페인 관련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대표님 참석을 원한다고 합니다.”그제야 도겸이 보고서에서 시선을 뗐다.“시간 잡으세요.”“이번 주 목요일 오후로 조율해 보겠습니다. 백유라 씨 측에서는 대표님과 직접 논의하고 싶은 사안이 있다고 합니다.”“구체적인 안건은?”“캠페인 방향과 계약 조건 전반이라고 합니다. 세부 내용은 미팅 전에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도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자료 먼저 받아 보세요. 검토할 가치가 있는 내용이면 직접 참석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현석은 태블릿을 확인하다가 문득 덧붙였다.“백유라 씨는 이번 시즌에도 단독 캠페인 모델로 계약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성과가 좋으면 연장하면 됩니다. 개인적인 친분과 계약은 별개니까요.”“네, 대표님.”현석이 물러나려던 순간이었다.“아.”도겸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백유라 씨가 지난번에 요청한 자료는 전달됐습니까?”현석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백유라. 도겸이 그녀의 일을 직접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유라는 태성어패럴의 주요 캠페인을 담당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업무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조금 자연스럽고, 그렇다고 다른 관계라고 단정하기에는 모호한 거리. 그 애매한 친밀함이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어제 전달했습니다. 백유라 씨 측에서도 확인했다고 합니다.”“그럼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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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백유라’라는 여자(2)

목요일 오후 두 시.태성어패럴 본사 회의실.백유라는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다.오늘 그녀의 차림은 촬영 때와는 달랐다. 몸에 맞게 재단된 검은 재킷에 짧은 이너 톱, 허리선을 강조한 슬랙스를 매치했다. 재킷 아래로 드러나는 목선과 매끄럽게 떨어지는 실루엣이 세련된 인상을 만들었다.귀에는 작은 다이아몬드 이어링이 빛났고, 손목에는 얇은 골드 시계가 자리했다.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소재와 정확한 핏으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스타일이었다.긴 머리카락은 한쪽 어깨 앞으로 자연스럽게 넘겼다. 짙은 눈매와 선명한 입술은 여전히 강렬했지만, 메이크업은 촬영 때보다 절제되어 있었다.유라는 회의실 벽면에 걸린 태성어패럴의 지난 시즌 캠페인 사진을 살펴보았다.자신이 모델로 참여한 광고였다. 사진 속 유라는 붉은빛이 감도는 드레스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감과 도발적인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기다리셨습니까?”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유라가 돌아보았다. 서도겸이 회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짙은 남색 정장에 검은 넥타이. 단정하게 정돈된 검은 머리카락과 무심한 표정, 곧게 뻗은 어깨까지. 유라는 그를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대표님.”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오랜만이네요.”도겸은 자연스럽게 악수를 받았다.“지난 행사 이후로는 처음이군요.”“그때는 인사만 하고 가셨잖아요. 제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세요?”유라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도겸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자리에 앉았다.“행사 일정이 길어져서 먼저 나왔습니다.”“알아요. 대표님이 바쁜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유라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그래서 오늘은 제대로 이야기하려고요.”회의가 시작되자 유라의 분위기도 달라졌다.그녀는 다음 시즌 캠페인 기획안을 펼쳐 보이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단순히 유명한 얼굴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어떤 소비자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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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익숙해진 기다림

한해원은 식탁 위에 놓인 국그릇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이 오르던 국은 어느새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해원은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오후 여섯 시 십이 분.[오늘은 저녁 집에서 드세요?]그녀가 보낸 메시지였다. 답장은 없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서도겸은 바쁜 사람이었고, 업무 중에는 개인적인 연락을 거의 확인하지 않았다.결혼한 지 삼 년. 해원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녁을 준비할 때마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혹시 오늘은 일찍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혹시 오늘은 함께 식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작은 기대가 매번 그녀를 식탁 앞에 앉혀 놓았다.그때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해원은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저녁 약속이 생겼습니다. 먼저 드세요.]짧은 문장이었다. 해원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답장을 입력했다.[네. 알겠어요. 너무 늦지 마세요.]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그녀는 결국 맞은편에 놓인 빈 식기를 치웠다. 한 사람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데에는 익숙해졌지만, 두 사람분의 식사를 한 사람분으로 줄이는 일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서울 강남의 한 프라이빗 레스토랑.서도겸은 맞은편에 앉은 백유라를 바라보았다.“이번 캠페인 콘셉트는 마음에 드십니까?”“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요.”유라가 와인잔을 가볍게 돌렸다. 촬영장에서 보여 주었던 화려한 모습과 달리, 오늘의 그녀는 검은색 실크 블라우스에 몸에 꼭 맞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길게 흘러내린 짙은 갈색 머리카락과 붉은 입술이 은은한 조명 아래 더욱 선명해 보였다.“그런데 도겸 씨.”“말씀하세요.”“우리 이렇게 식사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요.”도겸은 잔을 내려놓았다.“요즘 일정이 많았습니다.”“알아요. 도겸 씨는 늘 바쁘잖아요.”유라가 매력적으로 웃었다.“그래도 오늘은 시간 내 주셨네요.”“캠페인 관련해서 정리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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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조금씩 달라지는 일상

서도겸이 출근한 뒤, 한해원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평소 같았으면 곧장 주방으로 향했을 것이다. 도겸이 마시고 간 커피잔을 치우고, 아침 식사에 사용한 그릇을 정리하고,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며 해야 할 일을 찾았을 테니까.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해원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봉투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서점에서 사 온 패턴 제작 서적이었다.그녀는 봉투에서 책을 꺼내 첫 장을 펼쳤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용어들이 눈에 들어왔다.다트, 절개선, 시접, 그레이딩.한때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말들이었다.해원은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났다.‘정말 오랜만이네.’결혼 전에는 하루 종일 작업실에 앉아 있어도 시간이 부족했다. 원단을 고르고, 패턴을 수정하고, 원하는 실루엣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만들었다. 완성된 옷을 마네킹에 입혀 놓고 바라보던 순간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했다.해원은 휴대전화를 들어 검색창에 몇 가지 단어를 입력했다.패션 패턴 실무 과정.의상 제작 소규모 클래스.디자인 프로그램 교육.화면에는 생각보다 많은 강좌가 나타났다.그중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소수 인원으로 진행되는 실무 중심 수업이었다. 패턴 제작부터 봉제까지 직접 해 볼 수 있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해원은 한참 동안 안내 페이지를 읽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수강 신청 버튼을 눌렀다.이름. 연락처. 수강 목적. 마지막 항목 앞에서 잠시 손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글자를 입력했다.[다시 옷을 만들고 싶어서.]신청을 마친 뒤에도 해원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아직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수업 하나를 신청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편이 두근거렸다.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사흘 뒤.해원은 작은 패턴 작업실 앞에 서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재봉틀과 커다란 작업대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원단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수업 들으러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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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당신이 오기로 했던 날(1)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밤.해원은 도겸이 서재에 들어간 뒤 자신의 방 한쪽에 작은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스케치 도구를 꺼내고, 오늘 수업에서 가져온 패턴지를 펼쳤다.연필을 쥔 손이 종이 위를 움직였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어깨선. 허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실루엣. 과하게 꾸미지 않아도 입는 사람의 분위기를 살려 줄 수 있는 옷. 해원은 한참 동안 스케치에 집중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마지막 선을 그은 뒤에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시계는 밤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평소 같았으면 도겸이 언제 서재에서 나올지 신경 쓰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녀는 완성된 스케치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이거... 꽤 괜찮은데?’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다. 해원은 스케치북을 덮지 않았다. 내일도 이어서 그리고 싶었으니까.서재에서 나온 도겸은 복도를 걷다 걸음을 멈췄다.방문 아래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문을 바라보았다. 아직 자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해원이 먼저 그의 서재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차를 가져다주거나, 피곤하지 않냐고 묻거나, 먼저 자겠다는 인사를 건넸을 테니까.그런데 오늘은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도겸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간. 그는 방문을 두드릴까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해원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었다. 그뿐이었다.도겸은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해원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한 사람은 익숙한 일상이 조금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시간을 되찾고 있었다.***토요일 오전.한해원은 거울 앞에서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고른 옷이었다. 크림색 블라우스에 차분한 베이지색 스커트.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단정하고 우아한 차림이었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잠시 바라보다 작은 미소를 지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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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당신이 오기로 했던 날(2)

“선배, 오랜만이에요.”“그러게. 얼굴 보기 정말 힘들다.”선배는 해원의 손을 붙잡고 웃었다.“네 작품, 안쪽에 걸어 놨어. 한번 봐.”해원은 그녀를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에는 여러 디자이너의 작업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옷과 드로잉, 원단 샘플, 작업 과정이 담긴 사진들.그리고 전시장 가장 안쪽. 해원의 작품이 있었다. 부드러운 아이보리색 원단으로 만든 드레스. 과장된 장식 없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실루엣이 특징인 옷이었다.몇 년 전,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시절에 만들었던 디자인을 다시 손본 것이었다.작품 아래에는 작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HAN HAEWON]해원은 그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누군가의 아내도, 태성그룹 며느리도 아닌. 그저 한해원.“어때?”선배가 물었다. 해원은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좋아요.”그녀는 진심을 담아 웃었다.“정말 좋네요.”***태성어패럴 본사.서도겸은 회의실에서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백유라와 캠페인 담당자들이 앉아 있었다.“이번 시즌은 기존 이미지와 차별화가 필요합니다.”마케팅 팀장이 화면을 넘겼다.“백유라 씨의 대중적 인지도는 충분합니다. 다만 브랜드 자체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촬영 콘셉트도 조금 달라져야겠네요.”“그렇습니다.”도겸은 화면을 바라보다 말했다.“지금 안으로는 차별점이 부족합니다. 수정해서 다시 보고해 주세요.”“알겠습니다, 대표님.”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세 시가 넘어서야 참석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유라는 의자에 앉은 채 도겸을 바라보았다.“도겸 씨.”“네.”“오늘 주말인데도 나오셨네요.”“확인할 일이 있었습니다.”“사모님은 괜찮으세요?”도겸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씀이십니까?”“남편이 주말에도 이렇게 일하니까요.”유라는 가볍게 웃었다.“저라면 조금 서운할 것 같아서요.”도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담담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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