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당신은 내가 없어도 괜찮잖아요.” 3년 동안 남편의 아내로 살았다. 그의 식사를 챙기고, 그의 일정을 기다리고, 그의 무심함을 이해하면서. 그러는 동안 강해원은 자신의 꿈을 잊었다. 그래서 이혼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작은 작업실에서 시작한 그녀의 브랜드는 조금씩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를 넘어 세계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을 때, 전남편 서도겸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무심하게 지나쳤던 여자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이었는지. “다시 시작할 수 없겠습니까?” 모든 것을 가진 남자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졌다. 하지만 해원은 더 이상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대표님, 이제 와서 왜 그러세요?” 그녀의 세상은 이미 그가 없는 곳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View More“이혼하고 싶어요.”
서도겸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결혼 삼 년 만에 아내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해원은 웃었다. “당신은 내가 없어도 괜찮잖아요.” “…….” “그런데 저는요.”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결혼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당신 곁에 있으면, 자꾸 제가 없어져요.” 그날 서도겸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도 쉽게 놓아준 여자가, 언젠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서라도 되찾고 싶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로부터 육개월 전. ***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해원뿐이었다. 정확히는, 결혼 삼 주년을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한 사람도, 오늘 하루를 기다린 사람도 그녀뿐이었다. 오후 일곱 시. 식탁 위에는 두 사람분의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도겸이 좋아하는 안심 스테이크와 버섯 수프. 작은 꽃병에는 흰 장미 세 송이가 꽂혀 있었고, 접시 옆에는 해원이 직접 고른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해원은 마지막으로 촛불을 켰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아직 연락은 없었다. ‘조금 늦나 보다.’ 그녀는 익숙하게 생각했다. 서도겸은 바쁜 사람이었다. 태성그룹의 장남이자 태성어패럴의 대표. 하루에도 수십 건의 보고를 받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분 단위로 움직이는 남자. 해원은 그런 남자의 아내였다. 결혼한 지 삼 년. 그녀는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삼 년 전 오늘, 도겸은 그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날의 도겸은 평소보다 조금 더 다정했고, 해원은 그 작은 다정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래서 오늘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도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 오후 여덟 시 십 분. 촛불이 절반쯤 줄어들었다. 해원은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메시지를 보낼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 짧게 문장을 적었다. [오늘 몇 시쯤 오세요?]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회의 중입니다. 늦습니다.] 해원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단 두 문장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네. 기다릴게요.]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뒤이어 다른 메시지가 올까 싶어서였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있습니다.] 아니면. [많이 기다렸습니까?] 그런 말 한마디라도. 하지만 휴대전화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해원은 천천히 화면을 껐다. *** 오후 아홉 시 사십 분. 스테이크는 이미 식어 있었다. 해원은 접시를 전자레인지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너무 오래 데우면 고기가 질겨질 것 같아 시간을 짧게 맞췄다. 수프도 한 번 더 끓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우스워졌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몇 번이나 데우고 있는 걸까. 그녀는 식탁 위의 선물 상자를 바라보았다. 짙은 남색 포장지에 은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도겸이 평소 사용하는 브랜드의 넥타이핀이었다. 선물을 고르기 위해 매장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너무 화려하지 않을 것. 그의 정장에 잘 어울릴 것. 매일 사용해도 질리지 않을 것. 도겸이라면 분명 이런 디자인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해원은 그가 선물을 받고 아주 조금이라도 웃어 주기를 바랐다. 그것뿐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늘 그리 크지 않았다. *** 오후 열한 시 이십 분. 현관문이 열렸다. 해원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어요?” 서도겸이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넘겨져 있었고, 짙은 눈동자는 서류 위의 글자 하나까지 놓치지 않을 듯 날카로웠다. 뚜렷한 눈썹 아래로 길게 뻗은 눈매와 오뚝한 콧대, 선이 분명한 턱선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얼굴이었다. 누가 보아도 시선을 빼앗길 만큼 잘생긴 외모였지만,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과 타인을 압도하는 눈빛 탓이었다. 태성그룹의 장남이자 태성어패럴의 대표이사. 서른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대기업을 이끄는 남자에게 외모는 그저 타고난 장점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빈틈없는 판단력과 냉철한 카리스마였다. “아직 안 잤습니까?” “네.” 해원은 웃었다. “저녁은요?” “먹었습니다.” 그녀의 미소가 잠깐 멈췄다. “아... 드셨어요?” “회의가 늦게 끝나서 임원들과 식사했습니다.” 도겸은 재킷을 벗으며 물었다. “왜요?” 해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거실 너머 식탁으로 향했다. 촛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차갑게 식은 음식과 마주 놓인 두 개의 접시. 그리고 작은 선물 상자. 도겸이 잠시 식탁을 바라보았다. “손님이 왔었습니까?” 그 순간. 해원은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아니요.” “그럼?” 해원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자신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몇 번이나 음식을 데웠는지. 그런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도겸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해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저희 결혼기념일이에요.” 도겸의 손이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시선이 다시 식탁으로 향했다. “아.” 짧은 탄식. 그것이 전부였다.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해원은 그를 바라보았다. 도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미안합니다. 일정이 많아서 깜빡했습니다.” “...” “미리 말씀하지 그랬습니까.” 해원은 눈을 깜빡였다. 미리 말했어야 했을까.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고. 그러니 조금 일찍 들어와 달라고. 함께 저녁을 먹자고.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 달라고.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부탁했어야 했을까. “그랬으면 시간을 조정했을 텐데요.” 도겸의 말이 이어졌다. 해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차분했다. “제가 미리 말할 걸 그랬어요.” 도겸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그 질문에 해원은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아니에요.” 거짓말이었다. 오후 일곱 시부터 지금까지. 네 시간이 넘도록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 정말로 울어 버릴 것 같았다. “저녁은 드셨으니까 됐어요.” 해원은 식탁으로 향했다. “음식만 정리할게요.” 그녀가 접시를 집어 들자 도겸이 말했다. “내일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해원의 손끝이 멈췄다. “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버리세요. 늦었는데 피곤하겠습니다.” 도겸은 그렇게 말하고 침실로 향했다. 해원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버리세요.’ 그에게는 별 의미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식은 음식이니 버리라는 뜻. 그뿐이었다. 하지만 해원은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오늘 하루 종일 준비했던 것이. 그를 기다리며 품었던 기대가.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해원은 식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방금 올라온 기사가 떠 있었다. [태성어패럴 서도겸 대표, 톱모델 백유라와 함께한 비공개 만찬 포착] 사진 속 도겸은 익숙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백유라. 태성어패럴의 새로운 얼굴이자, 최근 도겸과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여자였다. 해원의 시선이 사진 아래 적힌 시간에 멈췄다. 오후 여덟 시 십 분. 자신이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 해원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식탁 위에는 차갑게 식어 버린 두 사람분의 저녁이 놓여 있었다. 그날 남편은 결혼기념일을 잊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와의 저녁 약속은 잊지 않았다.태성어패럴 본사 회의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형 스크린에는 해외 캠페인 계약서의 수정 조항이 띄워져 있었다. 백유라는 차분하게 서류를 넘겼다.“문제는 이 부분이에요.”그녀가 화면을 가리켰다.“현지 에이전시에서 제 초상권 사용 범위를 변경했어요. 기존에는 아시아 지역 광고에 한정되어 있었는데, 이번 수정안에는 유럽 온라인 플랫폼까지 포함되어 있거든요.”홍보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계약 조건을 확대하려는 것 같습니다.”“단순한 확대가 아니에요.”유라는 서류를 한 장 넘겼다.“이대로 계약하면 제 이미지가 다른 브랜드의 프로모션에도 간접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어요.”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도겸이 물었다.“대안이 있습니까?”유라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네.”그녀는 준비해 온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초상권 사용 범위를 지역이 아니라 매체별로 제한하는 거예요. 그러면 태성은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고, 저도 이미지 사용을 관리할 수 있어요.”도겸은 자료를 살폈다.“현지 에이전시가 받아들이겠습니까?”“받아들이게 만들어야죠.”유라는 미소 지었다.“제가 직접 협의할게요.”홍보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상대 측에서 추가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그 부분도 생각했어요.”유라는 또 다른 자료를 내밀었다.“제가 유럽 일정 중에 진행하기로 했던 개인 화보가 있거든요. 그 촬영을 태성 캠페인과 연계하면 추가 제작비를 줄일 수 있어요.”도겸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개인 일정을 조정하겠다는 겁니까?”“네.”“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유라는 고개를 저었다.“필요해요. 이번 캠페인은 저한테도 중요하니까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차분하게 덧붙였다.“저도 태성의 얼굴로 계약한 사람이잖아요. 제 역할은 제대로 해야죠.”도겸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유라는 오늘 한 번도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농담을 건네지도 않았고, 불필요하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저녁 일곱 시. 도겸이 예약한 곳은 조용한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해원은 안내받은 자리에 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조명과 정갈하게 놓인 식기. 창가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여기 예쁘네요.”“마음에 듭니까?”“네.”도겸은 메뉴판을 펼쳤다.“먹고 싶은 걸로 고르세요.”해원은 그를 바라보았다.“도겸 씨는요?”“저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그럼 제가 골라도 돼요?”“물론입니다.”해원은 메뉴판을 살폈다. 오랜만에 둘이서 외식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조금 설렜다. 도겸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두 사람 사이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서.식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겸이 물었다.“디자인 공부는 잘되고 있습니까?”해원이 고개를 들었다.“네. 재미있어요.”“그렇습니까.”“요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예전에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나고요.”도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렇게 좋아했습니까?”해원은 조금 놀란 듯 웃었다.“네. 정말 좋아했어요.”도겸은 잠시 생각했다. 결혼 전 해원이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계속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해원의 눈빛이 밝아졌다.“정말요?”“본인이 좋아하는 일 아닙니까.”“…네.”해원은 작게 웃었다.“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좋네요.”도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해원이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것이 언제였을까.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섰을 때였다. 도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최현석이었다.“네, 최 실장님.”—대표님, 죄송합니다. 급하게 확인하실 일이 생겼습니다.“무슨 일입니까?”—백유라 씨가 참여하는 해외 캠페인 계약 건입니다. 현지 에이전시에서 조건을 변경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도겸의 표정이 굳었다.“계약서 보내 주세요.”—네. 그런데 백유라 씨 측
백유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서도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앞으로 제 아내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마세요.’‘제 아내와 관련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유라는 천천히 와인잔을 내려놓았다.“도겸 씨.”—네.“혹시 화나셨어요?”—화가 난 건 아닙니다. 다만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저는 사모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요.”—그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해원 씨가 원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만나실 필요는 없겠죠.유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사모님이 뭐라고 하셨어요?”—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유라 씨와 저는 업무로 만나는 사이입니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업무로 만나는 사이. 유라는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함께 해외 행사에 참석한 적도 있었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뒤 둘이서 축하한 적도 있었다. 도겸은 언제나 선을 지켰다. 그런 남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라는 자신만큼은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고작 한해원 때문에.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유라는 손가락으로 와인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알겠어요.”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제가 생각이 짧았네요.”—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앞으로 조심할게요. 사모님께도 불편하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고 전해 주세요.”—알겠습니다.“그리고 도겸 씨.”—말씀하세요.유라는 잠시 숨을 골랐다.“저희 사이도 괜히 오해받지 않게 조심해야겠네요.”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라는 작게 웃었다.“그럼 다음 회의 때 뵐게요, 대표님.”통화가 끝났다. 유라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대표님. 일부러 그렇게 불렀다. 그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업무적인 관계로 돌아가 줄 생각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유라는 천천히 소파에 등을 기댔다.“좋아요, 서도겸 씨.”그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그렇게 선을 지키고 싶다면...”잠
오후 세 시. 청담동의 한 호텔 라운지.백유라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원이 들어서자 그녀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사모님, 여기예요.”“안녕하세요.”“갑자기 연락드렸는데 와 주셔서 감사해요.”“아니에요.”해원은 맞은편에 앉았다. 유라는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연한 베이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스커트. 화려한 장신구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에 거슬릴 만큼 단정했다.“지난번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세요.”“그런가요?”“네. 요즘 디자인 공부하시느라 바쁘시죠?”해원은 조금 놀랐다.“기억하고 계셨네요.”“그럼요. 사모님이 직접 옷을 만드신다고 하셔서 인상 깊었거든요.”유라는 웃으며 커피잔을 들었다.“도겸 씨도 알고 계세요?”“네.”“아, 말씀하셨구나.”해원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 정확히는 자신이 말한 것이 아니었다. 도겸은 유라에게서 그 사실을 들었다. 유라는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사실 도겸 씨가 사모님 이야기 잘 안 하시거든요.”해원의 손이 멈췄다.“그러세요?”“네. 워낙 사적인 이야기 안 하는 분이잖아요.”유라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저랑은 오래 알고 지내서 그런지 가끔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시지만요.”해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마치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아, 맞다. 어제 사진 보셨어요?”“...네.”“아휴, 댓글 때문에 정말 놀랐어요.”유라는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사람들이 도겸 씨랑 저를 자꾸 엮더라고요.”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혹시 사모님, 저 때문에 불편하셨어요?”그 질문은 지나치게 다정했다. 그래서 오히려 대답하기 어려웠다. 해원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업무 때문에 함께하신 거잖아요.”“그렇죠.”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제가 괜히 신경 쓰여서요. 도겸 씨가 워낙 표현이 없는 분이라 사모님이 오해하실까 봐.”해원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제가 오해할 일이 있나요?”유라의 미소가 잠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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