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빛이 사라질 때 어두운 것도 안 보이는 건 이상하지 않다.”“반드시 이상한 건 아니지. 하지만 이 비유가 남쪽 현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야.”“알다.”서화는 다시 그림을 바라봤다. 생각해야 할 것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만약 빛 안쪽의 어두운 형태가 다른 공간에 있는 물체라면, 빛은 그 물체를 보여주는 창처럼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반사나 굴절 현상이라면 바위나 수면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두 경우 모두 빛이 사라지면 어두운 형태가 함께 사라질 수 있었다.“그럼 빛이 있을 때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아직 모른다.”“응.”서화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그날 그녀는 오래된 나루 그림을 꺼내지 않았다. 어두운 형태가 실제 다른 공간에 있는 물체라면 조선의 구조물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그 형태가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지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했다.그날 저녁 카시안은 서화가 연구실 창가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화는 유리 장식을 기울여보면서 나무가 보였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여러 번 살펴보고 있었다. 카시안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다가왔다.“무슨 실험이야?”서화는 고개를 돌렸다.“나무가 없어지는 거.”카시안은 창밖을 바라봤다. 나무는 분명 그 자리에 있었다.“안 없어지는데?”서화가 웃었다. “그렇지. 그런데 이 유리로 보면 안 보일 때 있다.”그녀는 유리 장식을 기울여 보여주었다. 카시안은 서화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유리 표면의 반사광이 달라지자 나무의 일부가 흐릿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남쪽의 빛 때문에?”“응. 에드윈이 보여줬다. 빛 너머에 물건 있어도, 빛 없어지면 안 보일 수 있다.”“그럼 남쪽에 보였던 건 진짜 다른 공간일 수도 있겠네.”서화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췄다.“그럴 수도 있다.”카시안은 그녀의 말투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렸는지 희미하게 웃었다.“확실하다고는 안 하네.”“아직 아니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라면 왜 마지막까지 남아 보였을까.반대로 실제 다른 물체라면 왜 윤곽이 일정하지 않았을까.두 질문 모두 답이 없었다.에드윈은 기록지 마지막에 적었다.발광 현상과 어두운 형태의 출현 시점은 대체로 일치함. 형태 변화는 주변 수면 변화와 일부 동반되나 일관되지 않음. 독립된 물체의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음.그는 관측자들에게 장비를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오늘 얻은 것은 확실한 답이 아니라 이전보다 자세한 변화의 순서였다. 하지만 그 차이만으로도 다음에 어떤 것을 비교해야 할지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조선의 돌아터에서는 도겸이 며칠 전 찾아왔던 노인의 증언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나루 기둥과 흰 돌 사이에 낮은 발판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노인은 그것이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물이 빠지면 아래쪽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사라졌는지, 누가 치웠는지는 알지 못했다. 도겸은 그 말만으로 과거의 구조물을 복원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옛 나루를 관리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살폈다.그 과정에서 작은 사실 하나가 확인되었다.나루의 수리 기록에는 오래전 낮은 발판을 철거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발판은 배가 정박하는 주요 시설이 아니라 물건을 잠시 옮겨놓거나 밧줄을 정리하던 보조 시설이었으며, 나무가 썩어 위험해졌기 때문에 제거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철거 당시의 정확한 모양이나 치수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노인이 말했던 위치와 대체로 일치했다.도겸은 기록을 가져와 강무진에게 보여주었다.“발판이 실제로 있었던 건 맞습니다.”강무진이 낡은 문서를 들여다봤다. “그렇다면 노인의 기억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군요.”“그렇다고 그날 빛이 발판 때문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발판은 오래전에 없어졌으니까요.”“그럼 왜 이런 걸 확인하는 겁니까?”도겸은 잠시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풍경과 예전에 있었던 풍경을 구분하려고요. 오래된 증언에는 지금 남아 있지 않은 물건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강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남쪽 바다에서 관측된 어두운 형태가 기존의 바위나 항구 시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은 순간, 서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에드윈이 가져온 자료에는 세 관측자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작성한 그림과, 발광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기록한 주변 지형의 윤곽이 겹쳐져 있었다. 무너진 돌기둥의 위치도, 물에 잠긴 낮은 받침대의 높이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 그런데 세 사람이 공통으로 기록한 가장 아래쪽의 어두운 형태는 어느 구조물에도 정확히 대응하지 않았다. 서화는 그 부분을 한참 바라보다가 자신이 두 번째 거리선에 섰던 날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빛의 아래쪽에는 낮고 기다란 그림자가 있었다. 그녀는 조선의 나루를 떠올렸지만, 그곳이 정말 조선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었다.“그러면 저건 아르데시아에 있는 물건이 아니다?”서화가 묻자 에드윈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어. 우리가 확인한 건 현재 남아 있는 구조물의 단순한 그림자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뿐이야. 빛 자체가 어두운 형태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수면 아래에 있는 걸 굴절시켜 보여주는 걸 수도 있어. 아직 확인하지 못한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고.”“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그린 배경 그림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건 분명해.”서화는 종이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검은 선 하나와 낮은 그림자가 만들어낸 모양은 여전히 무엇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기둥 같기도 하고, 낮은 담장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형태에 익숙한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자신이 보고 싶은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어진다는 것을 서화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그녀는 종이를 조금 돌려 그림을 다시 보았다. 방향을 바꾸자 낮은 그림자는 더 이상 나루의 발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길쭉하게 퍼진 어두운 부분일 뿐이었다.“다음에는 어떻게 확인하다?”에드윈은 다른 종이를 펼쳤다. “빛이 나타나는 동안 같은 위치에서 그 형태의 경계가 어떻게 달라지
그녀는 에드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내가 돌아갈 길이라고 확인하려면, 결국 무엇을 봐야 한다?”에드윈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통과 가능한 폭과 높이, 경로의 안정성, 반대편 환경의 확인까지 기존 기준은 있었다. 그러나 빛 안쪽의 명암만으로 반대편을 알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반복되면서, 그 기준들을 어떤 순서로 확인할 것인지 다시 고민해야 했다.“적어도 지금처럼 어두운 형태 하나만 보고는 안 되겠지.”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나도 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음까지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정말 조선의 산과 강이 보이면 자신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풍경이라면 아무리 흐릿해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 본 것이 닮은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날 저녁 카시안은 서화가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그림을 살펴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세 장의 그림을 나란히 놓고 서로 다른 부분에 작은 표시를 하고 있었다. 카시안은 방해하지 않으려고 문가에 잠시 서 있었지만, 서화가 먼저 그를 발견했다.“카시안. 이거 봐라.”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그림을 가리켰다. 세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빛을 보았는데도 내부의 어두운 부분을 조금씩 다르게 그렸다는 설명이었다. 카시안은 한동안 그녀의 말을 듣다가 그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그럼 어느 게 맞는 거야?”“아직 모른다.”서화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하지만 같은 시간에 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세 사람 다 아래쪽 어두운 것 봤다.”“그건 이전보다 분명해졌네.”“응. 그런데 그게 뭔지는 모른다.”카시안은 그림을 내려놓았다. “네가 직접 가고 싶진 않아?”서화는 잠시 침묵했다.“가고 싶다.”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그런데?”“지금 가도 내가 아는 건 별로 안 늘 것 같다.”카시안은 그 대답에 희미하게 웃었다. 서화는 그가 왜 웃는지 묻지 않았다. 처음 남쪽에 갔을 때 자
조선의 돌아터에서는 도겸이 직접 목격했던 발광 현상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그날 한연화와 강무진이 함께 본 빛은 흰 돌 바로 위가 아니라 조금 떨어진 수면에서 나타났었다. 세 사람이 각자 그린 그림을 대조하자 가느다란 밝은 선이 있었다는 점은 같았지만, 물에서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에 대한 기억에는 차이가 있었다. 도겸은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손가락 몇 마디쯤 떨어진 허공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한연화는 조금 더 낮게 보았고, 강무진은 높이보다 물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도겸은 세 사람의 그림을 한 장으로 합치지 않았다. 대신 각각의 기록을 원래대로 남겨두고,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표시한 별도의 지도를 만들었다. 한연화는 그가 땅에 작은 표식을 놓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지난번에도 셋이 같은 것을 보지 않았느냐?”“같은 빛을 보았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모양으로 보았다는 뜻은 아니지요.”“그게 중요한 차이니?”“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서 있던 자리가 달랐으니까요.”한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래전 친정에서 배웠던 자수의 도안을 떠올렸다. 같은 꽃을 수놓아도 실의 방향과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곤 했다. 물 위의 밝음 역시 그렇게 보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날 세 사람이 본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그러면 다음에는 각자 서 있던 자리도 적어야겠구나.”도겸이 웃었다. “예. 어머니가 먼저 보신 순간도요.”그들은 기존 금지선을 그대로 둔 채 관측자의 위치만 기록했다. 흰 돌은 건드리지 않았고, 수면 가까이 내려가 새로운 표식을 세우지도 않았다. 강무진은 나루 기둥에서 수위가 얼마인지 확인했고, 한연화는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부는지 살폈다. 모두 같은 빛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현장에 억지로 변화를 만들지는 않았다.그날은 아무런 발광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대신 돌아터에는 조금 뜻밖의 일이 생겼다.저녁 무렵 한 노인이 나루를 지나가다가 최
남쪽 관측지에서 올라온 두 장의 그림을 나란히 놓은 순간, 윤서화는 두 사람이 정말 같은 것을 보았는지부터 의심했다. 그림의 바깥 윤곽은 거의 같았다. 물 위로 솟아오른 가느다란 빛, 가운데가 조금 벌어진 형태, 아래쪽에 짙게 드리운 어두운 부분까지 서로 닮아 있었다. 그러나 빛 안쪽의 어두운 형태가 움직였다는 부분에서는 기록이 갈렸다. 왼쪽에 서 있던 관측자는 기다란 그림자가 옆으로 옮겨갔다고 적었고, 오른쪽 관측자는 그림자는 그대로인데 그 주변의 밝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적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를 바라본 사람들이 남긴 기록치고는 쉽게 넘길 수 없는 차이였다.에드윈은 두 그림의 아래에 관측자가 서 있던 위치를 표시했다. “둘 중 하나가 잘못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어. 한 사람에게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실제 풍경에서도 일어나거든.” 그는 창가에 놓인 작은 촛대를 가져와 탁자 가운데 세웠다. 그리고 서화에게 맞은편 의자에 앉아 달라고 한 뒤, 촛대 뒤에 책 한 권을 놓았다. 서화의 자리에서는 촛대가 책등 가운데에 겹쳐 보였지만, 에드윈이 옆으로 두 걸음 움직이자 촛대는 책의 가장자리를 가리는 것처럼 보였다.“촛대가 움직인 건 아니야. 책도 그대로고. 달라진 건 내가 보는 자리뿐이지.”서화는 두 그림을 다시 살폈다. “그런데 남쪽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해진 자리 그대로였다.”“맞아. 그래서 더 중요한 거야.”에드윈은 촛대와 책 사이에 얇은 유리판을 세웠다. 유리판의 각도가 바뀌자 촛대의 반사된 모습이 책등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서화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멈췄다. 자신의 자리에서도 반사된 촛대가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촛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유리에 비친 모습만 달라지고 있었다.“빛이 변하면 움직이지 않은 물건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다.”“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남쪽의 빛이 유리처럼 반사하는지, 아니면 정말 다른 공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