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심태숙도 알고 있었다. 지금 끝까지 백씨를 감싸려 든다면 계연수와 맞서는 셈이었다.그렇게 계연수의 앞을 가로막았다가, 훗날 백씨가 정말 이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지면 자신까지 공범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죄 또한 더 무거워질 터였다.지금은 그조차 백씨가 정말 손을 댔는지 알 수 없었다.심태숙은 잠시 갈등하다 계연수를 바라봤다.“제수씨의 심정은 알겠소. 헌데 넷째 형수가 의심스럽다 해도, 사람을 이리 묶어 두어서는 안 되오. 아직 죄가 밝혀진 사람도 아니지 않소.”계연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묶어 두지 않으면 형수님께서 또 무슨 수로 증거를 없애실지 모릅니다. 아주버님, 오늘 형수님을 묶어 둔 제 처사가 잘못되었고, 훗날 형수님의 결백이 밝혀진다면 아까 드린 말씀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심태숙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계연수가 말을 이었다.“아주버님께서는 이제 관아에 나가 보십시오. 며칠 안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진상을 밝히겠습니다. 형수님께서 이곳에 갇혀 계신다는 사실도 밖에 알리지 않겠습니다. 저희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관아로 모시게 되더라도 밖에는 병환으로 쉬고 계신다고 할 테니, 형수님의 명예가 훼손되지는 않을 겁니다.”심태숙은 계연수의 눈을 마주했다. 순간 그 시선을 똑바로 받아 내기가 어려웠다.부군의 태도가 누그러지는 것을 본 백씨는, 그가 정말 계연수의 뜻대로 하게 두려는 것 같자 곧바로 울부짖었다.“저를 이리 대하는 건 부군까지 업신여기는 겁니다! 부군은 엄연히 후작의 넷째 형님이잖아요. 계연수가 무엇이기에 감히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심태숙은 눈을 감았다. 속으로 득실을 따져 본 끝에, 백씨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수씨는 아이를 낳자마자 이런 일을 당했소. 마음이 온전할 리 없지 않소. 어제 집안일을 맡아 주관한 사람은 당신뿐이었으니, 의심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정말 하지 않았다면 두려워할 것 없소. 제수씨도 사리를 아는 사람이니, 우선 여기 머무
심태숙이 말했다.“제수씨, 무슨 일이든 말로 풀면 되지 않소. 이럴 것까지는 없소. 아이가 바뀌었으니 다급한 심정은 알겠으나, 마음만 급하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오.”계연수는 고개를 내려 제 손을 바라봤다가, 여전히 뉘우칠 줄 모르는 백씨의 가증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줄곧 억눌러 온 감정은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순간 제 몸조차 뜻대로 가눌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백씨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계연수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때 방 어멈이 호위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심태숙은 호위들을 보고 멈칫하더니 계연수를 돌아봤다.“제수씨, 또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계연수는 천천히 손을 풀고 몇 걸음 물러섰다. 의자에 앉은 뒤에도 심태숙의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호위들에게 곧바로 명을 내렸다.“큰부인을 다시 묶고 입을 막아라. 관아로 데려갈 것이다.”심태숙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제수씨, 이건 지나치오.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소. 관아에 가더라도 증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니오.”백씨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심태숙을 향해 울부짖었다.“저 좀 살려 주십시오! 계연수가 실성했습니다. 제 아이가 정말 바뀌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잖아요. 그래도 저를 형수라 부르는 사람인데, 어찌 이런 패륜을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심태숙 역시 계연수가 지나치다고 여겨 호위들을 막으려 했다.그러나 심서준이 남겨 둔 호위들은 오직 계연수의 명만 따랐다. 무예가 뛰어난 건장한 호위들을 심태숙이 당해 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백씨를 묶었다.심태숙이 노한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봤다.“제수씨, 기어이 이토록 모질게 굴겠다는 것이오? 증거 하나 없이 넷째 형수를 관아로 끌고 가겠다니. 이 일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제수씨를 어찌 말하겠소?”계연수는 차가운 눈길로 그를 마주했다.“아주버님께서 잘못 아셨습니다. 형수님을 곧바로 관아에 데려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폐하를
백씨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이 고요해졌다.계연수는 눈을 감았다.백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심문해서 벽월이 내 시녀라는 걸 밝혀낸들 어쩔 것이냐? 양아도 내 사람이라고 치자. 그래도 내가 시켰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태후의 사람들이 온갖 수를 써서 양아를 매수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 태후가 어머님 곁의 시녀를 매수했다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냐?”계연수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고 소란스럽게 파고들었다.그녀는 눈을 뜨고 백씨를 바라봤다.“형수님,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제 아이가 있는 곳만 알려 주시면, 형수님께 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백씨가 곧바로 말을 잘랐다.“동서,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동서 아이가 어디 있는지 어찌 알겠느냐? 더구나 아이가 바뀌었다는 건 어떻게 안다는 것이냐? 내가 봤을 때는 아이 둘을 안고 나왔다. 동서가 실성해서 모두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믿는 것 아니냐?”그 말을 듣고 계연수는 알았다. 백씨는 끝내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아이를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속에서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며 백씨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백씨는 정말 자신을 마음대로 짓밟아도 되는 사람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분노할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백씨의 말이 끝나자 계연수의 입에서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형수님께서 스스로 택하신 겁니다. 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형수님도 목숨으로 갚으셔야 할 겁니다.”계연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씨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편히 지내실 생각은 마십시오. 아무리 스스로를 속이며 그 증거들은 하찮다고 여기셔도, 다른 사람들까지 바보는 아닙니다. 이 일의 시비를 가리는 것은 형수님이 아닙니다. 형수님께 그만한 힘도 없고요. 끝없는 욕심이 어떤 대가로 돌아오는지,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그날을 기다리십시오.”백씨가 눈을 크게 뜨고 계연수를 바라봤다.“무슨 뜻이냐?”계연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다른 뜻은 없습니다. 피로 진
백씨는 계연수가 무슨 수로 벽월을 의심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아이를 관아로 보냈으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벽월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계연수는 말없이 백씨의 반응을 지켜봤다.실은 벽월을 관아로 보내지 않았다. 아직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백씨의 입에서 진실을 끌어내는 일이었다.백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빠르게 오갔지만, 정작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계연수가 심태숙에게 말했다.“아주버님, 잠시 밖에 나가 계시겠습니까? 형수님과 단둘이 몇 마디 나누고 싶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심태숙도 이제 백씨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계연수는 어째서 갑자기 벽월을 거론했을까.그는 의심과 당혹이 뒤섞인 눈으로 백씨를 살피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심태숙이 나가자 계연수는 방 어멈에게 문을 닫게 했다. 그리고 백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의 냉랭한 어조는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형수님, 양아는 제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갔습니까? 태후께 넘겼습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보냈습니까?”“혹시…”계연수는 창백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그 뒤의 말은 잇지 못했다. 태후가 제 아이를 해치려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지금은 다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구하고 싶었다.손난로를 움켜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지금 아이가 있는 곳을 알려 주셔서 제가 당장 찾을 수만 있다면, 형수님께서 하신 일은 더 묻지 않겠습니다. 분가도 그대로 하겠습니다. 부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큰방에 절반을 드리지요.”계연수는 제 뜻을 굽히고 있었다. 백씨가 순순히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는 아이가 더욱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백씨를 가만히 바라봤다.“형수님도 어머니이시지 않습니까. 부디 저를 가엾게 여겨 주십시오.”
계연수는 백씨가 몸을 피하는 모습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곁에 놓인 의자에 앉은 뒤, 심태숙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물었다.“아주버님, 형수님과 몇 마디 나누어도 되겠습니까?”심태숙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백씨를 바라봤다.“이 일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오. 결백하다면 제수씨에게 잘 설명하면 될 일이오. 제수씨도 아무 까닭 없이 당신을 억울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오. 묻는 말에 답하면 되오. 서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야기해 봅시다.”그는 백씨를 이끌고 맞은편에 앉았다.심태숙이 곁에 있으니 백씨도 조금은 기세를 되찾았다. 굳은 얼굴로 계연수를 노려보며 말했다.“오늘 나를 묶어 끌고 온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 근거도 없이 이런 수모를 당하고만 있을 줄 아느냐? 황후마마께 고해서, 동서가 심씨 부저에서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구는지 부인들 모두가 알게 할 것이다.”계연수는 그 말을 받아 주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겨를도 없었다.그저 백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양아는 형수님의 사람이지요?”백씨의 눈빛이 찰나 굳었다. 그러나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소리야? 양아는 어머님 곁에서 시중드는 시녀인데, 어째서 내 사람이라는 것이냐?”백씨는 곁의 심태숙에게 고개를 돌려 하소연했다.“부군, 보세요. 또 이렇게 저를 모함하잖아요. 동서 때문에 지금 집안 꼴이 어찌 되었습니까? 이 사람도 의심하고 저 사람도 의심하니, 이 집에는 떳떳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요? 양아는 십 년 넘게 어머님을 모셔 온 아이예요. 그런 아이까지 이리 모함하다니요. 제 사람이라고 하려거든 증거부터 내놓으라 하세요. 후작께서 돌아가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휘둘려야 하나요? 부군께서 나서 주세요.”백씨의 날카롭고 드센 목소리가 뜰 안을 가득 울렸다.심태숙도 계연수의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양아가 노부인에게 신임받는 시녀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백씨가 노부인 곁으로 들여보낸 아이도 아닌데, 어째서 백씨의 사람이라고 단정하는가.그가 미간을
더구나 이제 심서준도 죽고, 그의 유일한 적자마저 죽었다. 심씨 집안의 뒤를 이을 사람이 사라졌으니, 결국 모든 것은 심태숙을 거쳐 자신의 두 아들에게 돌아올 터였다.이 일만 아무도 모르게 묻어 버리면 되었다.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흠잡힐 곳은 없지 않은가.백씨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태후가 심서준을 증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제 뒤에는 여전히 태후가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태후는 어디까지나 태후였다. 아무리 큰일이 벌어져도 황실 사람이니, 계연수가 감히 어쩔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심서준은 자신에게도, 백씨 집안에도 너무나 매정했다. 자신도 이 울분을 한 번쯤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백씨가 심태숙을 바라봤다.“하지도 않은 일을 어찌 인정하란 말씀이세요? 저를 믿어 주세요. 저는 정말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요.”백씨는 심태숙의 소매를 꼭 움켜쥐었다.“어서 저를 데리고 나가 주세요. 계연수가 저를 이리 대하는데, 화도 나지 않십니까? 정녕 보고만 계실 겁니까?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아랫것들이 저를 어찌 보겠습니까? 부군의 체면은 또 어찌 되겠어요? 어머님께서도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잖아요. 저도 어머님을 돌봐야 하는데, 계연수가 이렇게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두실 건가요?”계연수의 아이가 없어져 자신들에게 이로울 뿐이라는 말은 지금 심태숙에게 꺼내서는 안 되었다. 그런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그가 당장 등을 돌릴 것이 분명했다.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심서준은 죽었고, 뒤를 이을 자손도 없었다. 노부인이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달리 도리가 없을 터였다.백씨는 다시 눈물을 쏟으며 목멘 소리로 말했다.“저는 그저 집안일을 잘 꾸려 갈 생각뿐이었어요. 평소 동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해도, 어찌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어요?”심태숙은 눈물로 얼룩진 백씨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럽게 우는 모습이 꼭 세상에 둘도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같았다.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듯 보였다.평소 사소한 계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