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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Author: 경옥
그녀는 만약 상대가 미색을 탐하는 자라면, 만약 그가 자신을 거칠게 대하거나 품행이 단정치 못한 자라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내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본 심 후작은 그녀의 예상을 초월했다.

그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에게서는 냉철하고도 예리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귀티가 흐르고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지는 사람이었다.

손보경도 고귀한 출신이지만 심 후작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겸손해지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술에 취한 뒤에도 흐트러짐 없이 우아한 자세, 고결하고 맑은 얼굴에 추태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눈빛에 떠오른 약간의 취기와 진한 술냄새만이 그가 확실히 취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도 그는 그녀의 옷깃조차 건들지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과 고결함은 사람을 그에게 빠지게 만드는 독약처럼 저도 모르게 그의 앞에 굴복하게 되고 그의 마음속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게 만들었다.

적어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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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1222화

    계연수는 시녀를 시켜 답을 전하게 했다. 몸이 불편해 만나기 어렵다는, 그나마 예의를 갖춘 거절이었다.밖에서 기다리던 이수옥과 심소연은 계연수가 자신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상했다.최씨는 만나 주면서 자신들은 보려 하지 않는다니.전갈을 전하러 나온 시녀마저 냉담한 표정이었다. 헛걸음한 이수옥은 불쾌했으나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심소연을 데리고 돌아섰다.방 안에서는 계연수가 위 집사에게 당부를 마친 뒤 은빛 베개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곁에 선 방 어멈이 목소리를 낮췄다.“셋째 며느님과 셋째 아가씨께서 이때 찾아오신 걸 보면, 선처를 청하러 오신 게 아닐까요?”계연수의 입가에 찬 웃음이 스쳤다.“선처라니. 그 아이들까지 탓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야지.”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어떤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잘해 줄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방 어멈은 가슴이 덜컥했다. 부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밖으로 나온 심소연은 인적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물었다.“오숙모께서는 왜 저희를 만나지 않으실까요?”이수옥이 답했다.“일부러 그러시는 거겠지요.”그러고는 심소연을 바라보았다.“생각해 보세요. 이제 오숙부도 돌아가시고 맏아들마저 잘못되었잖아요. 저희를 억눌러 놓지 않으면 오숙모께서 무슨 수로 이 집안에서 입지를 지키시겠어요?”“속으로는 저희까지 어머님처럼 관아에 끌려가기를 바라실지도 몰라요. 그래야 이 부저를 혼자 마음대로 하실 수 있지 않겠어요?”심소연은 들을수록 두려워졌다. 당장 아버지에게 가서 대책을 의논하려 했다.하지만 도중에야 아버지와 큰오라버니 모두 관아에 나가고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셋째 오라버니는 오전까지 부저에 있었으나, 중간에 한 차례 나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에는 의논할 사람 하나 없었다.심소연이 다시 이수옥을 바라보았다.“오숙모께서 정말 그렇게까지 하실까요?”이수옥이 입술을 다물었다가 말했다.“그야 저도 모르지요. 헌데 생각해 보세요. 오숙부

  • 주문춘귀   제1221화

    최씨는 이수옥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 웃음이 터질 뻔했다.그녀는 이수옥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정말 어머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기를 열심히 빌거라. 아니면 끝까지 조사하다가 동서도 연루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이수옥은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그 일이었다.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튀면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없을지 몰랐다.설령 화를 면하더라도 시어머니가 잘못되면, 앞으로 이 부저는 계연수가 좌우하게 될 터였다. 자신들은 그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이수옥이 최씨를 바라보았다.“형님은 걱정도 안 되세요?”최씨는 소매를 여미며 이수옥에게 눈길을 주었다.“아까도 말하지 않았더냐. 나는 양심에 거리낄 게 없으니 걱정하지 않는다.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이나 전전긍긍하는 거지.”그 말을 끝으로 최씨는 이수옥이 어떤 표정을 짓든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서 가 버렸다.이수옥과 심소연은 한동안 그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았다.심소연이 이수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형수님은 지금 오숙모와 가까우시니 두렵지 않으신가 봐요. 저희는 어쩌죠?”“저희도 지금 오숙모를 뵈러 갈까요?”심소연의 생각은 단순했다. 한시라도 빨리 계연수의 환심을 사야 했다.마음속으로 아무리 원망스럽고 화가 나도 소용없었다. 당장 무사히 이 일을 넘기고, 앞으로도 부저에서 부귀를 누리며 살려면 계연수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아버지도 어젯밤 엄하게 당부했다. 어머니에게 일이 생기고 오숙모의 아이마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번 일로 부저가 큰방 손에 들어올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헛된 기대는 품지도 말라며, 이제 유일한 살길은 계연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큰방의 나머지 식구들만큼은 너그러이 봐주기를 바랄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심소연과 이수옥이 이곳에서 최씨를 기다리며 소식을 캐물을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은 계연수가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이수옥은 계연수에게 찾아가 살갑게 구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정확

  • 주문춘귀   제1220화

    이제 최씨도 그 말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오숙모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자신을 의심했다면 진작 조사했을 것이다. 노부인을 잘 돌봐 달라며 맡기지도 않았을 터였다.최씨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나는 오숙모께 잘못한 일이 없다. 설령 의심하신다 해도 떳떳이 해명할 수 있고.”그러고는 미간을 좁히며 이수옥을 바라보았다.“그보다 동서는 무슨 근거로 오숙모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것이냐?”이수옥은 최씨가 대뜸 자신을 따져 물을 줄은 몰랐다. 낯빛이 조금 굳더니,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미친 게 아니면 뭔가요? 오숙모께서 하신 일을 보세요. 지금 부저가 무슨 꼴이 됐나요? 어머님을 옥에 보내고 한집안 식구들을 뿔뿔이 흩어 놓으시면, 그걸로 잘된 건가요? 결국 보복하려는 것뿐이잖아요. 더구나 어머님께서 결백하시면 어쩌려고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관아 사람들을 불러 잡아가게 하셔도 되는 거예요?”최씨가 싸늘하게 웃었다.“오숙모께서 뭘 어쨌다는 것이냐? 누군가 동서 아이를 해치는 날이 와도, 동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갈 수 있겠느냐? 오숙모께서는 늘 시비를 분명히 가리셨다. 억울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실 분이 아니야. 정 어머님이 억울하시다고 생각하면, 동서가 관아에 가서 북을 치고 호소하거라. 정말 그렇게 한다면 나도 동서를 다시 보겠다.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함부로 떠들면, 동서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는 셈이지.”이수옥이 오숙모를 미쳤다고 했을 때부터 최씨의 속에서는 분노가 치밀고 있었다.조금 전 마주한 계연수의 수척한 얼굴이 눈에 선했다. 제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던 손길도 생생했다. 병이 깊어 몸이 눈에 띄게 여위었고, 아이를 잃은 슬픔조차 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미쳤다니.그만큼 쏟아 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최씨가 이를 악물었다.“내 눈에는 지금 동서가 더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구나. 지금 내게 한 말은 오숙모께도 그대로 전해 드릴 테니, 그때 가서 직접 말씀드려 보거라

  • 주문춘귀   제1219화

    최씨는 제 팔에 매달린 심소연의 손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이제 와 살갑게 구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한때는 이런 친밀함을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오숙모 곁에서 오래 지내며 깨달았다.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잃을까 불안해해야 하는 정이라면, 굳이 붙들고 있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심소연은 이수옥이 들어온 뒤로 자신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더니 조금이나마 이용할 구석이 생기자 다시 다가왔다. 최씨는 그런 태도가 이제는 지겹기까지 했다.아무리 자신이 맏형수라 해도 이런 식으로 필요할 때만 찾는 것은 싫었다.예전 같으면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살폈겠지만, 이제는 망설이지 않았다. 최씨는 제 팔을 붙든 심소연의 손을 밀어냈다.심소연은 뜻밖의 행동에 움찔하더니, 놀란 눈으로 최씨를 올려다보았다.최씨는 그 시선을 덤덤히 마주했다.“오숙모께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무엇이 두려운 것이냐?”묘하게 가시가 돋친 말에 심소연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만 같았다.언제나 자신을 상냥하게 대하던 형수님이 어째서 저토록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가.자신들은 같은 큰댁 식구가 아닌가. 한집안 사람이 아닌가. 최씨에게는 오숙모보다 자신이 더 가까운 사이여야 하지 않겠는가.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소연이 멍하니 물었다.“형수님, 왜 그러세요?”최씨가 눈살을 찌푸렸다.“나는 처음부터 걱정하지 않았다. 오숙모가 어떤 분인지 아니까. 아무 까닭도 없이 죄 없는 사람에게까지 화풀이하실 분이 아니잖니. 나도 걱정하지 않는데, 너는 무엇이 그리 걱정이란 말이냐?”심소연은 말문이 막혔다.그때 곁에 있던 이수옥이 미간을 좁히며 다가왔다.“형님께서 오숙모와 가까우신 건 알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비꼬실 것까지 있나요? 큰도련님이나 셋째 도련님이나 모두 큰방 사람이잖아요. 저희에게 일이 생기면 형님도 무사하지 못하세요.”“저희야 당연히 그런 일은 알지도 못했지요. 헌데 바깥사람들이 그 말을 믿어 주겠어요? 더구나 오숙모께서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나오시는데, 정말

  • 주문춘귀   제1218화

    계연수가 최씨에게 친정의 소식을 물은 것은 바깥사람들이 이번 일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최씨의 아버지는 호부상서였다. 소식이 빠를 테니, 그쪽 이야기를 들으면 바깥 분위기도 가늠할 수 있을 터였다.최씨는 계연수가 자신에게 친정의 편지가 왔다는 사실까지 짐작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숨길 생각도 없어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계연수가 오문 밖에 무릎을 꿇었던 일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형부에서 심씨 부저에 들이닥쳐 잡아간 사람이 백씨라는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최씨의 친정에서도 정확히 누가 잡혀갔는지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려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듣고 나자 계연수도 대강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계연수가 지친 듯 눈을 감았다. 줄곧 이어지는 기침에 최씨가 걱정스레 말했다.“오숙모께서도 몸을 잘 돌보셔야 해요.”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네 부군과 이수옥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최씨는 이번에도 숨김없이 이야기했다.심정민은 어제 오후 백씨가 끌려간 뒤로 줄곧 말이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평소처럼 관아에 나가기는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근심이 가득했다.최씨는 이제 심정민과 나눌 말도 없었다. 예전처럼 먼저 다가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한번 싫어지기 시작하니, 그토록 좋아하고 설레던 것들마저 모두 의미를 잃었다.이수옥 역시 최씨에게 별다른 말을 걸지 않았다. 온종일 심소연과 붙어 지냈고, 오늘 오전에는 친정에도 한 차례 다녀왔다.무엇 때문에 갔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했다. 형편을 살피고 대책을 의논하러 갔을 것이다.계연수는 그들의 반응을 듣고도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처소를 나서면서도 최씨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본 계연수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오숙모의 모습이었다. 여리고 온화한 얼굴에 병색과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눈에 밟혀 잊히지 않았다

  • 주문춘귀   제1217화

    그 목소리를 듣자 최씨는 오히려 더 서러워졌다.자신이 힘들 때는 오숙모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정작 오숙모가 이토록 큰일을 겪고 있는데,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눈앞의 초췌한 모습에 가슴이 더욱 아팠다. 최씨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떻게 하면 오숙모께 도움이 될까요?”계연수는 최씨가 이토록 마음 아파할 줄은 몰랐다. 본성이 참 착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최씨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나 대신 어머님을 잘 돌봐 드리거라.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된다.”최씨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오숙모. 노부인은 제가 정성을 다해 모실게요.”계연수도 최씨의 일 솜씨는 믿었다. 전에 맡긴 일들은 계속 돌봐 달라고 당부하고, 노부인께 문안 오는 사람도 끊이지 않을 테니 당분간은 너무 많은 이가 몰리지 않도록 하라고 일렀다.최씨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묻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다. 힘없이 반쯤 감긴 계연수의 눈과, 새하얀 옷깃에 잡힌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헐거워진 옷이 여윈 몸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최씨는 입술을 달싹였다. 친정어머니의 편지가 떠올라, 끝내 조심스레 물었다.“시어머님께서 천륜을 저버리는 짓을 하셨는데…… 오숙모께서는 저희도 원망하시나요?”저희라는 말에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했다. 큰방 식구들이었다.계연수는 최씨가 그런 질문을 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씨의 눈을 바라보았다.“나는 나를 해친 사람만 원망한다. 내게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까지 탓할 생각은 없어.”그 말을 들은 최씨는 잠시 멍해졌다. 마음속에 이는 감정이 아쉬움인지 기쁨인지, 자신도 분간할 수 없었다.어쩌면 내심 계연수가 큰방 모두를 탓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그러면 아버지도 심정민과의 화리를 허락할 테니까.하지만 화리한다는 것은 앞으로 아이 곁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었다. 최씨는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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