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주원길이 이토록 방대한 장부를 미리 조작해 놓을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라면, 병력을 점검할 때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평부진 성안에서 사람을 긁어모아 병사로 위장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러나 허위 병력을 올려 군량과 급료를 착복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람 하나를 만들어 내 그 몫을 받아 가는 것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핵심은 군적부에 이미 사라진 사람의 이름을 계속 남겨 두는 것이었다.그 사람은 전사한 군사일 수도 있고, 도망자나 병으로 죽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어떤 경우든 주원길이 그 허위 정원을 유지하려면 장부상으로는 그 사람에게 계속 녹봉과 군량미, 포목과 솜을 지급해야 했다.그렇게 빼돌린 물품과 은자는 결국 어떤 명목으로든 장부에서 처리해야 했다. 운반이나 보관 중 생긴 손실로 없애거나, 실제로 지급한 것처럼 기록을 남겨야 했다.전사한 군사라면 전사 기록과 유가족에게 지급한 위로금 내역, 가족이 이를 수령했다는 증빙이 있어야 했다.병으로 죽었다면 병사 보고서와 의관의 진단 기록, 관을 지급받은 증서가 남아 있어야 했다.도망친 군사라면 탈영 보고서와 체포 공문, 병부에서 해당 병력을 정원에서 삭제한 절차가 필요했다.주원길은 이런 문서까지 모두 위조했을 것이다.하지만 백 명분의 문서를 조작하는 것과 만 명분의 문서를 조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손을 거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감추어야 할 흔적도 늘어나고, 그만큼 빈틈이 생길 가능성도 커졌다.심서준의 손에는 조정에서 발급한 감합이 있었다. 평부진 총병부를 비롯하여 그 아래에 속한 모든 관아가 주고받은 공문을 열람할 권한을 증명하는 문서였다.군령과 군정보고, 정문, 차첩, 수본, 패표와 관첩까지 모든 문서는 서리와 경력, 첨사와 참의 등 여러 관리의 손을 거쳐야 했다.그중 단 한 장이라도 고치려면 반드시 관련된 다른 문서에도 손을 대야 했다.이는 거대한 거미줄과도 같았다.한쪽의
주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대인께서는…”심서준은 고개를 숙인 채 피곤한 미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우선 장부를 뜯었다가 다시 묶은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거라.”그제야 주예는 심서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장부의 내용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머금은 종이와 장정을 묶은 실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못한다.이 장부들 가운데 상당수가 최근에 다시 제본된 것이라면, 원래 장부를 뜯어 내용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컸다.주예는 즉시 사람들을 이끌고 장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이경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밤이 깊었지만 심서준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희미한 등불 아래 탁자 앞에 앉아 군량, 마초 장부와 병력 정원을 하나씩 대조했다.평부진의 규정에 따르면 병사 한 명에게 매달 지급되는 군량은 쌀 석 되었다.장부에 기록된 일 인당 월 지급량은 두 되 아홉 홉에서 석 되 한 홉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전체 평균을 내면 정확히 석 되었다.이번에도 숫자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졌다.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심서준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문득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마침 그때 주예가 다가와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장정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장부들은 진짜인 듯합니다.”심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지친 듯 두 눈을 감았다.“장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주예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심서준은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변경의 군량과 군사의 급료에는 호부에서 내려보낸 은자와 지방 창고의 저장량, 은자로 환산해 지급하는 절색과 현물로 지급하는 본색, 각지로 운반하는 과정까지 얽혀 있다. 해마다 조정에서 내려보낸 은자가 얼마인지, 실제로 현지에 도착한 양이 얼마인지, 창고에서 손실된 물량은 얼마나 되는지, 절색과 본색은 어떤 비율로 환산되었는지까지 따져야 하지. 그 과정은 셀 수 없이 많고 복잡하다. 어느 한 단계도 매번 완벽하게
이수옥은 멍하니 심정우를 바라보았다.앞으로 살짝 굽은 등과 아래로 내려간 단정한 눈매가 평소보다 유난히 지쳐 보였다.이수옥은 심정우가 이렇게 빨리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일 줄 몰랐다. 그토록 오랫동안 버티던 사람이 너무도 쉽게 양보하자 오히려 믿기 어려웠다.그녀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당신이 제 요구를 받아들인 건… 제가 오숙모를 찾아가 귀찮게 할까 봐서인가요?”심정우는 고개를 저었다.“오숙모 때문만은 아니오. 당신이 할머니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는 것도 원하지 않소.”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이건 우리 처소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오. 우리 부부의 일로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할 이유는 없지 않겠소? 무엇보다 내가 당신에게 미안한 짓을 한 것도 사실이오. 그동안 당신의 처지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심정우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잘못을 하나씩 돌아보듯 말했다.“나는 이제 혼인한 사람이오. 예전처럼 혼자 자유롭게 살던 때와는 다르지. 그런데도 여전히 예전처럼 행동했고, 부군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소.”심정우가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자, 이수옥의 온몸에 가득했던 사나운 기세와 원망은 눈 녹듯 사라졌다.문득 자신이 악을 쓰는 여인처럼 느껴졌다.심정우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의 마음과 반응을 얻어 내려고 한 걸음씩 몰아붙였다.찬찬히 돌이켜 보면 심정우는 줄곧 자신에게 양보해 왔다.처소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이수옥의 뜻대로 하게 두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시녀가 있으면 누구든 바꿀 수 있었고, 방 안을 어떻게 꾸미든 간섭하지 않았다. 창호지의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것으로 바꾸어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결국 이수옥이 견디지 못한 것은 자존심의 상처였다.심정우가 감히 자신을 싫어하고, 여인으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분했던 것이다.그러나 이제 심정우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나자 이수옥의 마음도 한결 누그러졌다.비록 한 달에 하룻밤뿐이라 해
심정우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일에는 경중과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오. 오숙모는 아이까지 가진 몸이니,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라도 곁에 있어야 제때 도울 수 있지 않겠소?”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이수옥을 바라보았다.“그런 일을 두고 이렇게 생떼를 쓰다니.”이수옥이 싸늘하게 비웃었다.“정말 누군가 곁에서 도와야 했다면 큰형님도 계시잖아요. 왜 반드시 당신이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달려가야 하죠?”심정우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의자에 앉았다.“큰형은 공무가 많아서 함부로 휴가를 낼 수 없소. 나는 군영에서 내 일을 대신 맡아 줄 사람을 구해 두었으니 비교적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고.”이수옥은 이제 심정우가 자신과 말다툼하는 솜씨마저 제법 늘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더는 이 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심정우를 붙잡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이수옥은 곧장 다가가 그의 곁에 앉았다.“이번 일을 보니 매달 나흘이나 닷새 정도는 집에 돌아올 수 있겠네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날마다 집에 들어오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어요. 헌데 앞으로는 한 달에 적어도 사흘은 반드시 돌아와야 해요.”이수옥은 심정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그리고 그 사흘 동안은 제 방에서 주무세요.”심정우는 깜짝 놀라 가슴을 감싸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당신… 지금 무슨…”이수옥은 그의 과도한 반응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말했다.“안심하세요. 저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저한테도 좋은 혼처가 얼마나 많았는데요. 제가 좋아서 당신에게 시집온 줄 알아요?”심정우는 맥이 풀린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럼 대체 원하는 게 무엇이오?”이수옥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아이를 원해요. 제게 아이만 하나 낳게 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단 하루도 집에 돌아오지 않더라도 간섭하지 않을게요.”그녀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굳었다.“헌데 이마저
계연수는 이 모든 일이 심서준이 오래전부터 깔아 둔 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바깥에서 태후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진 것도 심씨 가문의 죄를 벗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태후가 이미 지은 죄 위에 또 하나의 죄를 보태, 더는 황제조차 감싸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었다.당시 수많은 조정 대신이 태후를 탄핵했지만, 황제는 올라온 상소를 모조리 눌러 버렸다.결국 황제는 모자간의 정과 효도를 저버리지 못했다. 그런 황제를 두고 태후를 완전히 끌어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조정 대신들이 모두 격분하여 더는 침묵하지 못할 만큼 끔찍한 죄를 태후가 자신의 손으로 저지르지 않는 한,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기는 어려울 터였다.대청 안에서는 다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가 오갔다.심씨 노부인이 심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정우야, 오늘은 너도 수고가 많았다. 헌데 벌써 며칠째 군영을 쉬었으니 더 자리를 비우는 것도 좋지 않겠구나. 어서 군영으로 돌아가거라.”심정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괜찮습니다. 내일 돌아가도 늦지 않습니다.”심씨 노부인은 날이 갈수록 듬직해지는 손자를 바라보며 내심 흐뭇해했다.제 어미인 백씨보다 훨씬 반듯하고 믿음직하게 자라고 있었다.솔직히 심씨 노부인은 백씨가 심정우의 앞길에 영향을 미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심정우는 타고난 심성이 올곧았다. 이제 백씨 가문의 형편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심씨 가문은 반드시 그를 위해 앞날을 제대로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심정우는 아직 젊었다.앞으로 군영에서 이삼 년만 더 지내며 성정과 무예를 갈고닦은 뒤 변경으로 나간다면, 공을 세울 기회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심정우가 장수로서 자리를 잡는다면 그것은 그 자신뿐 아니라 심씨 가문에도 큰 경사가 될 일이었다.어느덧 밤은 깊어 집 안도 조용해졌다.심씨 노부인은 계연수가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피곤할까 염려했다. 계연수에게 먼저 돌아가 쉬라고 이른 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물러나게 했다.계연수는 송학원으로 돌아왔다.눈에
심정우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군영에서 허송세월하지 않고 착실히 자신을 단련한 모양이었다.계연수와 함께 궁을 나온 궁녀들은 황후와 황제가 내린 하사품을 뒤편의 마차에 차곡차곡 싣고 있었다.짐을 모두 옮기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계연수는 마차 안에서 휘장을 살며시 걷고 심정우에게 물었다.“군영 생활은 힘들지 않았느냐?”심정우는 가지런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괜찮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게으름만 피우려고 했고, 훈련이 고되다며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헌데 이제는 제가 다른 사람들을 훈련해야 하지 않습니까. 정작 저한테 제대로 된 실력이 없으면 수하들이 어떻게 저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정신없이 무예를 익히고 있습니다.”심정우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제는 눈을 가리고도 오 장 밖의 과녁을 맞힐 수 있습니다.”계연수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실력이 갈수록 느는구나.”심정우는 계연수의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맑고 담담한 얼굴에는 부드럽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어려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계연수와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심정우는 감히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마침 하사품을 옮기는 궁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무예를 제대로 익힌 다음에는 변경으로 가고 싶습니다. 유격장군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공을 세워 볼 생각입니다. 저는 계속 경성에만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그 말에는 전과 다른 결의가 담겨 있었다.계연수는 따뜻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뜻이 크구나. 계속 노력한다면 훗날 정말 장군이 될지도 모르겠다.”심정우가 뜻밖이라는 듯 멈칫했다가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거기까지는 감히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계연수는 농담으로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어째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냐? 너는 뜻도 있고 능력도 있다. 이제는 끝까지 노력할 끈기까지 생겼으니,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계연수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