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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Author: 경옥
계연수는 황급히 부정하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애초에 품어선 안 될 생각들을 억지로 끊어 내고 싶었다. 그런데 심서준이 몇 마디 말만 던졌을 뿐인데도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려 버렸다.

얼굴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이제는 그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후작께서 아까 말씀하신… 작은 걸 버리고 큰 흐름을 살리는 수를 어떻게 두는 건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심서준은 천천히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짙게 가라앉은 눈빛이 그녀를 붙들었다.

“답은 찾았느냐?”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에 계연수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처럼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아직은요…”

심서준은 그녀 얼굴 위로 천천히 번져 가는 붉은 기운을 바라보았다.

은근히 사람을 홀리는 눈빛도, 그의 소맷자락을 붙든 손가락이 조금씩 움켜쥐어지는 움직임도, 전부 그녀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의 다음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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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894화

    부의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계연수를 끌어안은 심서준의 손이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가늘게 떨렸다.그는 아이를 애타게 기다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계연수가 두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그 아이가 자신과 계연수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벅찬 감정이 거센 물결처럼 밀려들었다.그제야 심서준은 깨달았다. 자신 역시 두 사람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그럼에도 얼굴에는 평소와 같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미간을 찌푸리고 부의에게 물었다.“혹시 진맥을 잘못한 것은 아니냐?”부의가 황급히 대답했다.“희맥만큼은 소인이 절대로 잘못 짚지 않았습니다.”심서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물었다.“부인의 몸은 어떠하냐? 언제쯤 깨어날 수 있는 것이냐?”부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답했다.“부인께서 정신을 잃으신 것은 심신을 지나치게 소모하신 데다, 회임으로 기혈이 아래로 몰리면서 태기가 다소 불안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쉬면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태를 보하는 약을 몇 첩 드시면 차츰 회복하실 것입니다. 몸에 큰 이상은 없으시니 오늘 안에는 깨어나실 듯합니다.”심서준은 계연수의 서늘한 손가락을 꼭 쥔 채 부의에게 서둘러 약을 달이라고 명했다. 이어 방 안의 시녀들까지 모두 물러나게 했다.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방 안은 금세 적막해졌다.심서준은 품에 기댄 계연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모든 일이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에게도 곧 혈육이 생긴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길고 단정한 손가락이 계연수의 온기 어린 뺨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창백한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남아 있는 것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다시 저릿하게 아파 왔다.계연수가 아이를 품고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견디기 어려웠다.기쁨인지 두려움인지, 심서준 자신도 지금의 감정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눈에는 오직

  • 주문춘귀   제893화

    계연수는 멀어져 가는 심정우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저토록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그녀는 복사나무 숲에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천천히 주방으로 향했다.사실 계연수는 오늘 아침 눈을 뜰 때부터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 정신이 안개에 잠긴 듯 온종일 몸이 나른하고 몽롱했다.이런 증상은 이틀 전부터 아침마다 되풀이되고 있었다. 요 며칠 부쩍 바쁘게 지낸 탓이려니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은 속까지 메슥거리고 가슴도 이유 없이 두근거렸다.그래도 주방만큼은 직접 살펴야 했다. 집안의 큰 경사를 앞둔 만큼 어느 한 곳에서도 실수가 생겨서는 안 되었다.이튿날 심정우의 혼례가 열렸다.계연수는 화청에 앉아 손님들을 맞이하던 중 등에 차가운 땀이 배어드는 것을 느꼈다. 곁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대꾸하기조차 버거울 만큼 정신이 아득했다.그런 줄도 모르는 부인들은 연신 그녀를 칭찬했다.“부인께서 이토록 많은 연회를 도맡아 치르면서도 작은 실수 하나 없다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노부인께서 늘 칭찬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계연수는 얼굴에 봄볕처럼 온화한 미소를 띤 채 평소와 다름없이 나긋나긋하게 응대했다. 그 많은 칭찬 속에서도 조금도 들뜨거나 거만해하지 않고, 시종 고요하고 차분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본래도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으나, 온갖 찬사 앞에서도 눈썹 끝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은 사람들의 호감을 더욱 깊게 했다.손보경은 계연수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자리에서도 누구보다 능숙하게 사람들과 어울렸을 그녀였으나, 오늘은 유난히 말이 없었다. 그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거는 이도 없었다.점심 연회가 한창일 무렵, 계연수는 최민정을 비롯해 평소 가깝게 지내던 부인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러던 찰나, 눈을 한 번 깜박였을 뿐인데 돌연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계연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다행히 곁에 있던 최민정이 재

  • 주문춘귀   제892화

    어느덧 심정우의 혼례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그날 오전, 계연수는 방 안에 앉아 문지기가 가져온 청첩들을 살펴보다가 뜻밖에도 사씨 가문에서 보낸 것 하나를 발견했다.의아한 마음에 꺼내 자세히 읽어 보니, 사옥현이 이명유를 정실로 맞는다는 청첩이었다. 혼례 날짜는 공교롭게도 심정우의 혼례 바로 다음 날이었다.계연수의 머릿속에 문득 지난번 보았던 이명유의 불룩한 배가 떠올랐다.용춘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사씨 가문에서 감히 이런 청첩까지 보내다니요. 낯짝도 두껍습니다.”계연수는 청첩 위에 정갈하게 적힌 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아하고 고운 필체로 보아 여인이 쓴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이명유가 일부러 자신에게 보이려고 직접 쓴 모양이었다.아무리 사씨 가문이라 해도 굳이 청첩을 보내 자신을 도발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터였다.계연수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사씨 가문의 일 따위에는 진작부터 관심을 끊은 지 오래였다.그녀는 시녀에게 청첩을 가져다 버리라 이른 뒤, 용춘을 바라보며 담담히 웃었다.“어찌 되었든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리지 않느냐?”용춘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과연 더없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한쪽은 눈도 마음도 먼 위선자였고, 다른 한쪽은 총애를 다투기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 여인이었으니. 차라리 두 사람이 혼인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애꿎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을 테니까.그렇게 생각하니 용춘의 속도 조금은 풀렸다. 다만 두 사람이 마땅한 벌을 받게 되리라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말이라,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았다.계연수는 용춘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옅게 웃었다. 사옥현과 이명유는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사실 사씨 가문의 처지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옥현은 좌천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쫓겨났으며, 경성 사교계에서도 사씨 가문의 존재감은 이

  • 주문춘귀   제891화

    심정민은 본래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사람됨은 올곧았다. 다만 조정의 일을 지나치게 중히 여긴 나머지 집안일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고, 여인 역시 그에게는 그리 중요한 존재는 아닌 듯했다.초닷새가 되자 계연수는 심서준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갔다.고씨는 이제 안색이 제법 좋아져 있었다. 딸을 보자 무척 반가워하며 손을 붙잡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이 집은 다 좋은데, 혼자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적적하구나. 그래서 전에는 고씨 가문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잘 가지 않는다. 네 큰외숙모가 워낙 분수를 모르고 구니 말이다.”계연수는 어머니가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는 듯해 안도했다. 예전처럼 걸핏하면 서신을 보내 ‘그래도 한 가족이지 않느냐’는 말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놓였다.고씨는 계연수의 손을 더욱 꼭 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제야 알겠구나. 사람마다 저마다 타고난 인연이 따로 있는 것을. 이제 어미는 너만 생각하며 살련다.”그러고는 속에 쌓아 두었던 말을 풀어놓듯 계속해서 말했다.“네 큰외숙모는 하운이가 영국공부에서 호강하며 산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지만, 정작 백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언제 한 번 그 아이를 찾아오기라도 했느냐? 제 돈으로 산 물건을 시댁에서 보내 준 것처럼 떠벌리며 애써 허세를 부리지 않느냐. 네 둘째 외숙모가 그 거짓말을 알면서도 들추지 않은 건, 큰 명절을 앞두고 괜히 집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였을 뿐이다. 그러니 보아라. 이쪽에서 매달려 성사시킨 혼사가 어디 그리 좋기만 하겠느냐?”계연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큰외숙모네 이야기를 더 보태지는 않았다. 대신 어머니에게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고씨는 고개를 저었다.“내 걱정은 하지 말거라. 이곳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다.”그러다 문득 눈시울을 붉히며 계연수의 손을 다정히 쓸어내렸다.“무엇보다 네가 후작과 정답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마음

  • 주문춘귀   제890화

    방 안에서는 한동안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 계연수는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 바람을 쐬려 밖으로 나왔다가, 회랑 아래에 홀로 서 있는 손보경을 발견했다.조금 전 분명 처소로 돌아가 쉬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손보경은 줄곧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이었다.계연수가 나오자 손보경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불렀다.“오숙모.”계연수는 대답 대신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밤하늘 아래로 흰 눈송이가 소리 없이 흩날리고 있었다.“그래.”그 짤막한 대답 뒤로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손보경은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의 처지는 꼭 이 풍경과도 같았다.몸은 심씨 가문에 들어와 있었지만, 마음과 신뢰는 그들 밖으로 철저히 밀려나 있었다. 등 뒤의 따뜻한 방 안에서는 어쩌면 자신을 어떻게 경계하고 막아 낼지를 의논하고 있을지도 몰랐다.그렇다고 물러설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앞에서는 태후가 한 걸음씩 다가오며 혈육의 정과 핏줄을 빌미로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손보경은 태후의 수단만으로 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린 심씨 가문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양쪽이 끝까지 맞서 싸운다면 어느 한쪽이 승리하기보다 함께 상처 입고 무너질 가능성이 컸다.그녀는 두 세력이 싸우기를 바라지 않았다.지금 태후의 뜻을 따르는 듯 보이는 행동도 그저 눈을 속이기 위한 거짓에 불과했다.그때 등 뒤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려왔다.방에서 나온 사람은 심한율이었다.회랑 아래에 서 있는 손보경을 발견한 그의 얼굴에도 옅은 놀라움이 스쳤다. 마침 자신이 먼저 자리를 빠져나와 손보경을 찾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진심이 아니더라도 당분간은 다정한 척하며 그녀의 속내를 알아내야 했다. 손보경이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부터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잠시 멈춰 섰던 심한율은 이내 손보경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팔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내가 데려다주마.”그는 계연수에게도 낮은 목소리로 먼저 물러가겠다

  • 주문춘귀   제889화

    침상 안의 움직임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잦아들었다.이튿날은 휴무일이었다. 심서준은 이튿날 조정에 나갈 일이 없으면 으레 절제하지 않았고, 오늘처럼 계연수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왔을 때는 더욱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결국 계연수는 온몸에 힘이 풀린 채 그의 품에 축 늘어졌다. 그러면서도 앞서 약속받으려던 일을 잊지 않고 힘겹게 물었다.“부군, 내일 진찰받으실 거지요?”충분히 만족한 사내는 무엇이든 들어줄 듯 너그러웠다. 심서준이 낮고 나른한 목소리로 응답하자 계연수는 그제야 흡족해하며 몸을 일으켜 씻으러 가려 했다.그러나 심서준이 그녀를 눌러 붙잡았다.“목욕은 아침에 하거라.”예전에는 늘 심서준이 직접 안아다 씻겨 주었다. 계연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어째서요?”심서준은 그녀를 품 안에 더욱 깊이 끌어안았다. 아직 거친 숨결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가 낮고 쉰 음색으로 울렸다.“아이를 갖고 싶지 않느냐? 조금 더 이대로 있거라.”계연수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심서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되물었다.“아이를 원하는 사람이 어찌 저뿐이겠습니까? 부군은 갖고 싶지 않으세요?”심서준도 아이를 원하기는 했다. 다만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혼인한 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다. 지금의 그에게 아이는 있어도 좋고, 조금 늦게 생겨도 상관없는 존재였다.더구나 요즘 들어 계연수와의 사이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심서준은 두 사람만이 누리는 지금의 나날이 몹시 좋았다. 자신도 아직 젊었으니, 벌써부터 아이 때문에 그녀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때가 생기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훗날 두 사람 사이에 조그마한 아이가 끼어들어 계연수의 관심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못내 심술궂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그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심서준은 끝내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기만 했다.*이튿날, 황후가 보낸 이름난 의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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