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준은 그제야 진정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머리를 다시 살펴봤다.그러자 박민정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나도 안 아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굳이 상대해서 뭐 해요?”“그래.”유남준은 담담하게 답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이지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사실 박민정도 애써 쿨한 척 괜찮다고는 했지만 방금 눈앞에서 본 이지원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그런 눈빛은 진짜로 미친 사람 외에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될 만큼 충격적이었다.박민정은 돌아가기 전 원장에게 물었다.“혹시 이지원 씨는 평소에도 많이 폭력적이었나요?”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여기에 온 이후로는 말도 잘 듣고 다른 환자분들과도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약 그런 환자가 들어오면 오히려 자발적으로 피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제야 뭔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설마 방금 사모님께 손을 댔나요?”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안정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알겠습니다.”원장은 재빨리 간호사에게 알렸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제 지인도 이쪽 분야의 전문가 의사인데 이런 환자한테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곁에 있으면 좋다고 했거든요.”사실 원장도 진작에 김인우를 통해 이지원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하여 박민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답했다.“저희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곳을 빠져나왔고 원장은 그들이 떠나가자마자 이지원의 병실에 비교적 폭력 성향이 센 환자를 안배해 뒀다.박민정이 차에 올라타자 유남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때 보였어? 이지원이 진짜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어?”그러나 박민정은 대답 대신 그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 되물었다.“남준 씨는 어땠는데요?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그러자 유남준
청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병원 문 앞에서.박민정은 가녀린 몸에 수척한 손으로 병원 임신 테스트 보고서를 들고 있었는데 보고서에는 임신이 아니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인데 아직도 임신 못 했어? 왜 이렇게 쓸모가 없니? 너 계속 임신 안 되면 유씨 일가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어. 그땐 우리 집안더러 어떡하라는 거야?”한수민은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차림에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삿대질했다.박민정은 두 눈이 퀭하고 가슴에 꽉 막혔던 그 말들이 결국 한 마디로 함축되었다.“미안해요.”“엄마는 미안하단 말을 원하는 게 아니야. 얼른 남준의 아이를 낳으란 말이야. 알겠니?”박민정은 목이 확 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혼한 3년 동안 남편 유남준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곁을 안 주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길까?한수민은 약해빠진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저를 닮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그녀는 차가운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남준이한테 여자 한 명 찾아줘. 걔도 그럼 너한테 고마워할 거 아니야.”박민정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친엄마란 자가 딸에게 지금 남편을 위해 여자를 찾아주란 말이나 내뱉고 있다니.그녀의 마음에 순간 찬바람이 휘몰아쳤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박민정의 머릿속엔 온통 엄마의 마지막 말만 감돌았다.문득 귓가에 굉음이 한바탕 울렸다.그녀는 자신의 병이 더 심해진 걸 알고 있다.이때 문득 휴대폰 문자 벨 소리가 울렸다.유남준의 3년을 하루 같이 보낸 문자였다.“오늘 밤 집에 안 가.”결혼한 이 3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집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없다.아내인 그녀를 터치한 적은 더더욱 없고.3년 전 신혼 첫날밤에 유남준이 했던 말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너희 집안에서 감히 사기 결혼을 감행했으니 넌 인제 평생 고독하게 살 각오해.”평생 고독하게 살라고...3년 전 박씨 일가와
「남준 오빠, 그동안 잘 못 지냈죠? 그 여자 안 사랑하는 거 알아요. 우리 오늘 밤 만나요. 오빠 너무 보고 싶어요.」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박민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택시 타고 유남준의 회사로 가는 길에서 박민정은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봤다. 비는 그칠 새도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유남준은 그녀가 회사로 찾아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올 때마다 박민정은 뒷문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까.유남준의 전담 비서 서다희도 그녀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오셨어요, 민정 씨.”유남준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사모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그녀는 항상 떳떳하지 못한 존재니까.박민정이 휴대폰 주러 회사까지 찾아오자 유남준은 미간이 확 구겨졌다.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점심 도시락, 서류, 옷, 우산까지 유남준이 놓친 걸 전부 회사로 보내온다.“말했잖아, 일부러 내 물건 주러 회사 안 와도 된다고.”박민정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미안해요, 깜빡했어요.”언제 기억력이 이렇게 나빠졌지?아마도 이지원이 보낸 문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그랬나 보다.유남준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떠나기 전 박민정은 고개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남준 씨, 아직도 이지원 씨 좋아해요?”유남준은 요즘 들어 박민정이 참 이상했다.자꾸 뭘 까먹지 않나, 이상한 질문만 해대질 않나, 그의 아내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다.유남준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렇게 심심하면 뭐라도 할 일 좀 찾아.”박민정은 결국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녀도 전에 일자리를 구해봤지만 유씨 일가 어르신들이 그녀가 얼굴을 내비치면 가문의 체면만 깎는다고 단호하게 차단해 버렸다.유남준의 어머니 고영란은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쏘아붙였다.“너 정녕 온 세상에 알릴 생각이니? 우리 남준이가 청력에 문제 있는 장애인 아내를 찾았다고?”장애인 아내라...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최대한 바삐 돌아쳤다.먼지 하나 안
“아직 제대로 된 사랑도 못 해봤죠? 남준 오빠는 나랑 있을 때 밥도 직접 차리고 또 내가 아플 땐 제일 먼저 달려왔어요. 나한테 했던 가장 달콤한 말은 바로 ‘지원아, 난 네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 이 말이었어요... 오빠가 민정 씨한테는 사랑한다는 말 한 적 있어요? 전에 나한테 엄청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오빠 유치하다고 항상 틱틱거렸거든요...”박민정은 묵묵히 들으며 이 3년 동안 유남준과 함께한 나날들을 되새겨보았다.그는 단 한 번도 음식을 차려본 적이 없다.그녀가 아플 때 관심의 말 한마디조차 없다.사랑한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박민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할 얘기 다 했어요?”이지원은 흠칫 놀랐다. 그녀가 너무 차분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사람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것만 같아서인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그렇게 박민정이 떠난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왠지 모르게 이지원은 지금 이 순간 꼭 마치 박씨 일가의 후원을 받던 가난한 고아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박씨 일가의 귀한 따님 뒤에서 이지원은 영원히 웃음 팔이 피에로 역할이었다....박민정이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12년이나 좋아했던 남자인데, 한때 그녀도 아이처럼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했었는데...박민정은 문득 또다시 두 귀가 아파서 보청기를 빼내더니 그제야 선홍빛 핏물이 고인 걸 발견했다.그녀는 습관처럼 보청기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는 옆에 내려놓았다.잠이 오질 않아 휴대폰을 가져와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상단 스토리에 이지원 계정이 보란 듯이 초록색 테두리로 되어 있었다.클릭해 보니 박민정을 ‘친한 친구 리스트’에 넣어 오직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첫 장은 대학교 때 이지원과 유남준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둘은 나란히 서 있었고 유남준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두 번째 장은 둘의 카톡 대화 내용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유남준은 너무나도 상냥한 말투로 이
인제 보니 아빠는 유남준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걸 진작 알아챘나 보다.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유씨 일가와 계약을 체결했고 박민정도 소원대로 유남준에게 시집갈 수 있었다.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만약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남동생과 엄마도 계약을 위반하지 않을 텐데...박민정은 재산 양도 수속을 전부 장 변호사에게 건넨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길옆에서 이지원의 홍보 포스터들을 보게 됐다.포스터 속 그녀는 더없이 눈부시고 아름답고 해맑은 모습이었다.‘이젠 놓아줄 때가 됐어. 남준 씨도 나도 자유를 되찾아야지.’두원 별장에 도착한 그녀는 짐 정리를 마쳤다.결혼한 3년 동안 그녀의 짐이라곤 고작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갔다.이혼합의서는 작년에 이미 장 변호사에게 부탁해 작성해달라고 했다.유남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자괴감이 들고 마음이 약해진다.그녀는 진작 알아챘다. 둘 사이의 감정은 조만간 끝이 닿는다는 걸, 그래서 일찌감치 떠날 채비를 했다...저녁 시간, 유남준의 문자는 없었다.박민정은 용기 내어 그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오늘 밤 시간 돼요? 당신한테 할 얘기 있어요.」상대는 한참 동안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박민정은 어두운 얼굴로 생각했다.‘이젠 문자로 답장하는 것조차 싫은가 보네. 내일 아침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어쩌겠어.’그 시각 유앤케이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 안.유남준은 문자를 확인하곤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절친 김인우가 소파에 앉아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끝내 못 참고 물었다.“민정 씨 문자야?”유남준이 묵인했고 김인우는 거리낌 없이 비난해 댔다.“이 귀머거리가 진짜! 제가 정말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도 된 줄 아나? 어딜 감히 남편을 감시해? 남준아, 너 설마 걔랑 평생 시간 끌려는 건 아니지? 박씨 일가는 인제 아무것도 아니야. 걔 남동생 박민호는 회사도 운영할 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라고. 얼마 안
박민정은 제 방으로 돌아가 약을 한 움큼씩 퍼먹었다.귓등을 만져보니 손끝에 피가 잔뜩 묻어나왔다.순간 의사의 당부가 뇌리를 스쳤다.“박민정 씨, 사실 많은 질병의 악화는 환자의 기분과 관련이 있어요. 반드시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고 낙관적인 태도로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합니다.”낙관적이라, 말이 쉽지.박민정은 최대한 유남준의 말을 되새기지 않으려고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두 눈도 질끈 감았다.날이 어렴풋이 밝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약이 작용했는지 청력도 조금은 회복됐다.그녀는 창밖에 쏟아지는 햇빛을 넋 놓고 한참 바라봤다.“비 그쳤네.”한 사람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은 단 한 가지만이 아니다.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쌓이다가 결국 사소한 일로 폭발하게 된다. 그건 차가운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일이 될 수도 있다.오늘 유남준은 외출하지 않았다.이른 아침부터 소파에 앉아 박민정이 사과하고 후회하길 기다렸다.결혼생활 3년 동안 그녀도 종종 화낼 때가 있었다.하지만 매번 울고 난 후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사과했다.이번에도 별다를 것 없다고 굳게 믿는 유남준이다.박민정은 세안을 마치고 평소처럼 어두운 톤의 옷을 입고 나왔는데 캐리어와 서류도 손에 들고 있었다.그녀가 서류를 건넨 순간 유남준은 이혼합의서라는 몇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남준 씨 시간 될 때 연락해요.”그녀는 담담하게 이 한마디만 내뱉고는 캐리어를 끌고 문밖을 나섰다.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갰다.박민정은 그 순간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유남준은 이혼합의서를 손에 쥐고 소파에 앉은 채 온몸이 돌처럼 굳었다.그는 한참 넋 놓고 있었다.박민정의 뒷모습까지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야 그녀가 떠났다는 걸 알아챘다.다만 그 답답함도 한순간일 뿐, 그는 곧장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집 나간 걸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듯싶다.어차피 그의 전화 한 통, 말 한마디이면 박민정은 얌전히 옆에 돌아와 여느 때보다 살갑게 대할
업무상의 문자 말곤 지금까지 꼬박 하루가 지났는데 박민정은 그에게 사과의 전화나 문자 한 통도 없다.“언제까지 참는지 두고 봐!”유남준은 휴대폰을 옆에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냉장고 문을 연 순간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음식 외에 갖가지 한약들이 들어 있었는데 대충 하나 꺼내 보니 ‘불임 치료, 1일 5팩’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불임 치료...유남준은 고약한 한약 냄새를 맡으며 전에 박민정의 몸에서 났던 약 냄새가 이 한약이란 걸 깨달았다.그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제아무리 약을 먹는다고 임신이 될까?유남준은 가차 없이 약을 내던지고 인제야 그녀가 화난 연유를 알 것만 같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침실로 들어간 그는 푹 휴식을 취했다.박민정이 없으니 앞으론 돌아오고 싶을 때 마음껏 돌아와도 된다, 일부러 그녀를 피하지 않아도 된다.그날 밤 유남준은 아주 잘 잤다.오늘은 절친 김인우와 함께 골프 치러 가는 날이다.하여 아침 댓바람부터 옷방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나왔는데 습관처럼 오늘 집에 안 온다는 말이 튀어나왔다.“나 오늘...”박민정은 이젠 집에 없다. 앞으론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골프장.유남준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흰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잘생긴 얼굴이 오늘따라 더 자상해 보였다.훤칠한 체구에 골프장에 서 있으니 영화배우를 방불케 했다.스윙 한 번에 홀인원이다.절친 인우가 옆에서 칭찬을 남발했다.“남준이 오늘 컨디션 좋은데. 너 무슨 좋은 일 있어?”박민정이 유남준과 이혼하려는 일은 어제에 걸쳐 주변 사람들이 거의 다 아는데 김인우가 모를 리 있을까?그저 유남준의 입으로 한 말을 직접 들어야 진작 밖에서 기다린 이지원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으니 슬쩍 떠본 것이다.유남준은 물 한 모금 마시고 넌지시 대답했다.“별거 없어. 그냥 민정이랑 이혼하려고.”두 귀로 직접 들었지만 김인우는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유남준의 절친으로서
이전 같으면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미세한 소리가 들렸으니까.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둔 쓰디쓴 약을 입에 물었다.어제는 3년 동안 지낸 두원 별장에서 나와 먼저 본가로 돌아갔는데 문 앞에서부터 엄마와 동생 박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왜 저런 쓸모도 없는 딸을 낳았지? 3년 동안 남준이가 글쎄 걔를 건드리지도 않았대! 온전한 여자도 아닌 주제에 이혼할 생각까지 해?”분노에 찬 한수민의 말이 예리한 칼날처럼 박민정의 심장을 난도질했다.엄마 눈엔 대체 어떤 여자만이 온전한 사람일까? 박민정은 알지 못했다.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 혹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자?동생 박민호의 말이 더 한심했다.“누나는 우리 집안 사람 같지 않다니까요. 다들 그러는데 유남준 첫사랑이 돌아왔대요. 누나가 이혼 안 해도 조만간 그 집에서 내쫓길 거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뒷일을 고려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얼마 전에 최명길 대표의 아내분이 돌아가셨잖아요. 우리 누나가 비록 청력에 문제 있긴 하지만 80이 넘은 영감탱이에겐 횡재나 다름없죠...”박민정은 그 말들을 되새기며 두 눈이 퀭해졌다.그녀는 애써 단념하려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유남준인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장 변호사님이라고 적혀 있었다.「민정아, 양도협의서를 유남준 씨한테 보내줬는데 태도가 썩 친절치 못했어. 앞으로 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박민정은 장명철에게 답장을 보냈다.「수고하셨어요, 명심할게요.」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한참 넋 놓고 있었다.자신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전부 유남준에게 준 건 얼마나 고상해서가 아니다.단지 그에게 너무 많이 신세 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결혼 전의 계약서대로 거액의 재산을 그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게 참 유감스러웠다. 아마 평생 결혼 사기죄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가야 할 듯싶다.박민정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도 전혀 배고픈 줄 몰랐다.그저 주위가 너무 조용하니 이런 정적이 두렵게 느껴졌다.보청기도
유남준은 그제야 진정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머리를 다시 살펴봤다.그러자 박민정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나도 안 아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굳이 상대해서 뭐 해요?”“그래.”유남준은 담담하게 답했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이지원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사실 박민정도 애써 쿨한 척 괜찮다고는 했지만 방금 눈앞에서 본 이지원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그런 눈빛은 진짜로 미친 사람 외에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될 만큼 충격적이었다.박민정은 돌아가기 전 원장에게 물었다.“혹시 이지원 씨는 평소에도 많이 폭력적이었나요?”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여기에 온 이후로는 말도 잘 듣고 다른 환자분들과도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약 그런 환자가 들어오면 오히려 자발적으로 피하더라고요.”박민정은 그제야 뭔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설마 방금 사모님께 손을 댔나요?”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안정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알겠습니다.”원장은 재빨리 간호사에게 알렸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제 지인도 이쪽 분야의 전문가 의사인데 이런 환자한테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곁에 있으면 좋다고 했거든요.”사실 원장도 진작에 김인우를 통해 이지원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하여 박민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답했다.“저희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곳을 빠져나왔고 원장은 그들이 떠나가자마자 이지원의 병실에 비교적 폭력 성향이 센 환자를 안배해 뒀다.박민정이 차에 올라타자 유남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때 보였어? 이지원이 진짜로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어?”그러나 박민정은 대답 대신 그를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다 되물었다.“남준 씨는 어땠는데요?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요?”그러자 유남준
간호사가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원장한테 말했다.“원장님, 이지원 씨를 데려왔습니다.”그러자 원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민정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저는 이만 나가볼 테니까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저를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그렇게 대기실 안에는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고 유남준과 박민정은 말없이 이지원을 빤히 바라보았다.이지원은 아직 두 사람을 보지 못한 듯 그저 고개를 수그린 채 자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입으로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오빠, 진짜 나랑 결혼할 거야? 민정이가 알고 날 괴롭히면 어떻게 해?”박민정은 너무 어이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이지원!”이지원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누구세요?”“내가 누구인지 기억 안 나? 나야, 민정이.”그녀의 이름이 들리는 순간 이지원은 순간 겁을 먹은 얼굴로 빌기 시작했다.“민정아,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않을게. 나도 많이 반성했으니까 한 번만 봐주라. 더 이상 거짓말도 하지 않을게... 우리 한때는 친구였잖아?”그리고 박민정의 손을 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난 윤소현 씨처럼 감옥에 들어가기 싫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연예계에서만 활동하면서 살 테니까 제발 나 한 번만 살려줘.”그녀의 간절한 애원에도 박민정의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아직 덜 미쳤나 보네!”이지원은 순간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더니 박민정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아니야! 넌 지금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내가 진짜 박민정이라고!”박민정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그러자 이지원은 차갑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네가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이지원이잖아!”그리고 당장에라도 눈앞의 박민정을 때리려고 했다.“빌어먹을 X, 널 죽여버릴 거야!”다행히 옆에
이지원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은 유남준은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역시나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여자라 분명 이번에도 쇼한다고 생각했다.특히 이런 병은 정확하게 진단해 내기 어렵다.“그래, 같이 가자.”유남준이 단번에 가겠다고 하자 박민정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그에게 슬쩍 물어봤다.“이지원 씨가 신경 쓰여요?”순간 유남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뭐라고?”“남준 씨 첫사랑이었잖아요. 바로 가겠다는 걸 보니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면 걱정하는 건가?”말하다 보니 박민정도 슬슬 질투가 났다.그러자 유남준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답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예전에도 말했잖아, 난 그 여자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그런데 왜 신경이 쓰이고 걱정해?”박민정은 그의 단호한 발언에 그제야 마음이 살짝 놓였다가 다시 물었다.“그런데 왜 저랑 같이 가보려고 해요?”“단순 호기심.”그가 이런 일로 호기심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박민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러고 보니 그녀도 궁금하긴 했다.“빨리 먹고 가요.”“그래.”그렇게 박민정은 아침밥을 다 먹은 뒤 유남준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비록 집에 운전기사가 있지만 유남준은 박민정과 단둘이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했다.이지원이 지금 입원해 있다는 병원은 집과 살짝 멀었는데 차로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얼마간 달리다 보니 박민정은 저 멀리 하얀색 건물과 울타리 안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야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한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지원도 흰색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긴 머리는 헝클어진 채 한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이때 옆에 있던 환자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자 이지원은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정확하게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입구에 도착해보니 병원 원장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
이튿날, 아침 여덟 시쯤.박민정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남준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품 안에 가뒀다.“왜 벌써 깼어?”유남준의 나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지자 박민정은 난감한 얼굴로 그의 팔을 풀려고 했지만 역시나 어림도 없었다.하여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시 누워 그에게 말했다.“출근해야 하니까 빨리 이것 좀 풀어요.”그러자 유남준은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더 자도 돼.”회사 대표가 굳이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박민정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잠이 안 와요.”순간 유남준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이더니 벌떡 일어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 물었다.“그러면 우리 재밌는 놀이나 더 할까?”그의 말에 깜짝 놀란 박민정은 빠르게 다시 눈을 감았다.“아, 아니요. 그냥 잠이나 계속 자요.”그러자 유남준도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다시 누웠다.솔직히 오랜만에 이토록 개운하게 잤다.박민정은 그의 품 안에서 갇혀있는 상태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지만 유남준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해도 참아야 했다.아홉 시 반쯤 되자 박민정은 더는 누워있기 힘들어 유남준에게 거짓말했다.“남준 씨, 나 배고파요.”그러자 유남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러면 아침밥부터 먹자.”“네.”그제야 자유로운 몸이 된 박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남준네 셰프는 요리 솜씨가 아주 훌륭했고 아침부터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박예찬, 박윤우는 이미 학교에 갔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출근했다.박민정이 내려오는 모습을 본 셰프는 재빨리 그들이 먹을 아침밥을 다시 데워줬다.유남준은 그녀가 허겁지겁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한껏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네.”한창 맛있게 먹고 있던 이때, 갑자기 박민정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김인우’라는 이름을 본 유남준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재검사받아야 하는 건가?’박민정은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