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뭐 하는 거야? 놔요.” 박민정이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유남준은 그녀를 더 꽉 안았다. 그의 손이 박민정의 작은 손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 우리 아기 다쳐.”말을 마친 후, 그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벌써 거의 3개월이 된 거 아니야? 오늘 산부인과로 가자.” 인제야 산부인과로 갈 생각을 하다니, 박민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했어요. 아기는 건강해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아기는 당신 아이가 아니에요.” 유남준은 신경 쓰지 않고 박민정을 안아 들어 계단을 올라갔다. “남준 씨, 내려놔요. 방에 안 갈 거예요.” 박민정이 그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유남준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박민정은 요즘 유남준이 점점 더 지나치다고 느꼈다. 유남준은 그녀를 안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았다.“말 들어.” 박민정은 말없이 혀를 찼다. 그가 눈이 멀었어도 체력적으로는 자신이 상대되지 않는다는 건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유남준에 대해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유남준은 그녀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 그녀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방을 나섰다. 서다희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차 문을 열었다. 차는 신림현에서 가장 호화로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국에서 가장 정상급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곳에 있었고 많은 장비도 갖추어져 있었다. 유남준은 한 장비에 누워 계속 치료를 받았다. 최근 그의 기억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그는 더욱 외로움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 기억이 회복되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박민정과의 과거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순간, 자신이 속았던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자신을 비웃는 눈빛과 말들이 떠올랐다.갑자기 눈을 번쩍 뜬 유남준의 얼굴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유 대표님, 괜찮으십니까?”의사가 급히 물었
유남준이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박민정도 계속 그를 괴롭히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할 뿐이었다.어떤 때는 서다희가 몰래 와서 그 일을 대신하기도 했다.오늘 저녁 식사를 할 때, 유남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저는 일자리를 구했어. 앞으로 집안의 지출은 내가 책임질게.”말을 마치고 그는 박민정이 자신에게 줬던 생활비 카드를 돌려주었다.머릿속에 이미 약간의 기억이 떠올렀으니 이 카드는 자신이 걱정돼서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박민정은 그가 건네준 은행 카드를 보며 그가 한 말을 의심했다.박예찬이 물었다."아저씨, 무슨 일자리 찾으셨어요?”유남준은 새로운 회사를 차리기 시작했는데 계속 치료를 핑계로 회사에 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했다."장애인 자선활동에 관련된 일이야."지금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이 핑계를 쓸 수밖에 없었다.식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박민정은 유남준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자선하는 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모두 회사의 명성을 위해서였다.이제 와서 장애인 자선활동에 관련된 일을 선택하다니, 정말 불가사의했다.지금은 그는 이미 변했고 전심전력으로 착하게 살았으니 박민정도 차차 그에 대한 인상을 바꾸기로 했다."당신이 하는 일은 돈이 얼마나 되겠어요, 제 카드를 쓰세요.”지금의 일상 씀씀이는 그녀에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전처럼 직업이 없던 그 가정주부가 아니었다."괜찮아."유남준은 카드를 탁자 위에 두고 젓가락질도 하지 않고 떠났다.박민정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가족이 함께 살면 생활비도 일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이 도리를 깨닫고 그녀도 은행 카드를 다시 가져왔다.다만 그녀는 카드 안의 잔액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그는 카드 안의 돈을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내일은 크리스마스이다.박민정은 이미 진서연과 상의해 이번 곡의 첫 공개는 국내에서 하기
너무 멋있으면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유남준은 갑자기 연지석을 떠올렸다. 그는 서다희에게 물었다."연지석은 살아 있어?""중상을 입었지만 부하들이 그를 데려가서 지금은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서다희가 대답했다.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죽지 않았다니 정말 팔자가 기네.'박민정의 신곡 발표는 실시간 검색어 5위에 올랐고 많은 협력업체들이 협력을 요청했고 그녀에게 곡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진서연은 협력업체에 답장을 보내며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보스님, 방금 윤소현 쪽에서 소식이 왔는데 곡을 듣고 너무 마음에 든다면서 독점적으로 사려고 합니다."윤소현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녀는 얼마 전 그녀가 춤추는 동영상을 본 게 생각났다."독점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오케이."진서연이 단번에 승낙했다.그러더니 또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었다."참, 그 누군지 모를 분께서 직접 만나 직접 협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그 사람은 정말 포기하지 않았다.하지만 박민정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안 가요.""하지만 그는 당신이 가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어요.""하늘에 떡이 떨어지지는 않아. 서연아, 착실하게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거야.""알겠습니다, 보스님."솔직히 말해서, 진서연은 그 미스터리한 사람이 왜 대표님을 만나자고 고집하는지 알고 싶었다. 어쨌든 그는 100억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이렇게 많은 돈은 딱 봐도 하찮은 역할이 아니었다.하지만 박민정이 싫어하니 계속 말하기도 힘었고 상대방을 우호적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는 이미 박민정이 발표한 곡의 판권을 샀다.윤소현이 돌아온 후 회사로부터 독점 판권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이 곡은 제가 독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현수민이 그녀의 곁으로 걸어와서 물었다."소현아, 왜 그래? 누가 널 화나게 했어?"윤소현은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말했
유남준은 호산 그룹의 CEO로서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박민호는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차를 몰고 호산 그룹 건물로 갔다.그는 유남준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대표실 비서와 통화한 후 유남준이 그를 위층으로 올려보냈다.하지만 대표실에 앉아 있는 사람이 형부 유남준이 아니라 유남준의 쌍둥이 동생 유남우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형부."박민호가 유남우를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유남우는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무슨 일로 날 찾았어?""형부, 저에게 돈을 좀 지원해 주세요. 저는 박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습니다."박씨 가문은 한때 박민호의 할아버지가 작은 공장으로부터 일으켜 세웠고 할아버지는 한때 진주시에서 가장 부유한 북부 신화가 되었다.하지만 아버지의 손에 맡겨져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다가 그에게 넘겨져서 결국 파산했다.그는 달갑지 않았다.'왜 할아버지는 신화를 만들 수 있는데 나 혼자서는 안 되는 걸까.'유남우는 그가 돈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서인 홍주영을 통해서 박민호에 대해 알아보았고 지난여름 유남준과 결혼한 후 유남준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안타깝게도 유남준은 줄곧 그를 싫어했고 그를 전혀 돕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찾아올 줄이야."형부, 당신이 진심으로 우리 누나에게 잘해주는 거 알아요. 만약 당신이 저를 후원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저는 반드시 누나에게 이혼을 하지 말라고 설득할 거예요."그는 전에 여러 번 유남준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이번에 또 온 것은 역시 저번에 유남준이 박민정을 위해서 나선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남자로서 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그 여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유남우는 훤칠한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묵묵히 들었다."네 누나보고 와서 나한테 말해라고 해. 그러면 도와줄게.""좋아요, 제가 바로 누나를 찾으러 갈게요."그는 더 머물 겨를도 없이 바로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가 떠나자 홍주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박민정은 유남준의 말을 오해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유남준에게 정민기의 업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려주었다. 혼자서 열 명이나 때릴 수 있고 성깔이 조금도 없고 일을 많이 하지만 말은 적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갖가지 장점이 가득하다는 것을 들은 유남준은 더욱 이 사람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모두 나가라고 하세요. 저는 낯선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박민정이 말했다.'도대체 낯선 사람을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못생긴 사람을 싫어하는 건지.'유남준은 감히 묻지 못하고 이 그들을 먼저 떠나게 했다.그녀가 동의하지 않으니 유남준은 정민기 쪽에서 손을 쓰기로 결정했다.박민정은 이 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한편 박민호는 어머니로부터 박민정의 주소를 전해 듣고 신림현으로 떠났다.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 모두 쉬고 있을 때였다.그는 찬바람을 맞으며 문을 두드렸다.잠들기 전에 박민정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이불 속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박민호는 패딩 점퍼를 입고 꽁꽁 싸매고 있었고 몸에는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그는 두말없이 집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그녀가 문 앞에서 가로막았다."여기서 뭐 해?”"들어가서 얘기해요."밖이 너무 추웠다.박민정의 두 눈은 그를 경계하며 쳐다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여기서 말해.”예전 같았으면 진작 그녀를 밀어냈을 텐데, 지금은 부탁이 있어서 문 앞에 서서 찬바람을 맞았다."누나, 나 좀 도와줄래요?”누나..."둘째 도련님, 저는 당신의 누나가 아닙니다. 그때 당신이 말한 것을 잊지 마세요. 저는 귀머거리여서 당신의 누나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어린애들이 하는 유치한 말이잖아요. 저는 신경도 안 썼는데 누나가 왜 신경 써요, 안 그래요?"박민호는 이렇게 말 하면서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멀쩡한 유씨 가문의 별장에 살지 않고 이렇게 초라한 곳에서 살다니, 정말 신기했다.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매우 순진한 척했다."누나, 박씨 가문
박민호는 그녀가 자신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잔소리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는 즉시 박민정의 어깨를 꽉 쥐었다."도와주기 싫은데 무슨 쓸데없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해?""누나를 믿을 수 없을 줄 알았어. 스스로 타락한 것을 달가워하면서 내가 너처럼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원해? 내가 말하는데 절대 안 돼! 나는 할아버지의 손자야! 나는 반드시 박씨 가문을 진흥시킬 거야. 그러나 넌 하씨 성을 가질 자격이 없어!"그는 말을 마치고 박민정를 힘껏 밀었다.그녀는 몇 걸음 물러서서 곧 넘어질 것 같았다.힘센 팔이 그녀를 잡았다."괜찮아? 유남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그녀는 그를 방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박민호는 유남준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부, 당신,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여기에 있으면서 왜 언니를 호신 그룹으로 불러서 당신과 이야기하게 했나요?"그는 눈앞의 사람이 그가 낮에 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유남준도 그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꺼져!"라고 차갑게 외쳤다.아까의 오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박민호는 밖으로 도망쳤다.그가 떠난 후, 박민정은 배가 살살 아팠는데 아마도 방금 태아가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었다."유남준 씨, 배가 아파요."그녀는 당황한 눈으로 유남준 무거운 옷을 움켜쥐었다.통증은 둘째였고 그녀는 너무 무서웠다. 아이가 혹시라도 사고를 당할꺼봐 말이다.그때 윤우와 예찬이도 하마터면 유산할 뻔했었다. 유남준은 그녀를 꼭 껴안았다."당장 병원으로 데려다줄게.""네."그가 전화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1분도 안 되어 근처 기사가 차를 몰고 왔다.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한 손으로 유남준의 옷을 집어 들고 다른 한 손은 배에 살며시 올려놓았다.임신한 사람만이 그 두려움을 알 수 있었다.'아가야, 너 절대 무슨 일 있으면 안 돼.'마침내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가 그녀에게 전면적인 검사를 했다..유남준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전화를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박예찬이 울고 있었다.박민정을 보았을 때, 그는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엄마, 엄마.”박민정은 순간 멍해졌다."예찬아, 왜 울어?”그녀는 지금까지 예찬이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박예찬은 이내 등을 돌리고 눈물을 깨끗이 닦은 뒤에야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는 박민정의 등 뒤에 있는 유남준을 보며, 마음속으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30분 전,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보니 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엄마 방도 유남준의 방도 아무도 없었다.그는 엄마가 유남준에게 납치된 줄 알고 자신을 잘못 돌봤다고 탓하며 울었던 것이었다.박민정에게 들켜서 그는 창피했다."화장실에 가다가 실수로 물이 눈에 들어갔어요."하운경의 진지하게 거짓말을 해댔다.박민정은 그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그녀는 예찬이가 혼자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 자기가 서러진 것을 보고 무서워서 울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자 박예찬이 물었다."엄마, 아저씨랑 이러고 어디 갔다 왔어요?”그녀는 걱정시키기 싫어서 거짓말했다."어디 안 갔어. 근처에 산책 좀 다녀왔어."'이렇게 추운 날에 산책을?'그는 거의 30분 동안 걱정했다.30분 동안 밖에서 산책했다고?박예찬은 유남준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나쁜 아빠가 설마 엄마를 속인 건 아니겠지?'엄마는 너무 착하고, 아빠는 잔꾀가 너무 많아.'유남준은 그의 시선을 느낀 듯 입술을 딸싹이더니 말했다."밖이 너무 추워서 차를 몰고 드라이브했어.”그는 일부러 이렇게 말하여 박예찬의 망상을 유도했다.'한밤중에 외로운 남자와 여자가 단둘이 차에 있다니.'그는 어린애지만 TV도 많이 보고 알아야 할 것들도 좀 알고 있었다.그는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꼈고 창피함도 무릅쓰고 말했다."아저씨, 오늘 밤 저와 함께 자면 안 돼요? 잠이 안 와요."나쁜 아빠와 엄마가 같이 자게 놔둘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싫어.""나는 혼자 자는 걸 좋아해.”"그럼 나중에 결혼하면 어떡해요
박예찬은 어리둥절했다.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지 못한 게 분명했다."나는 네 엄마를 해치지 않아. 그러나 말로는 증거가 없으니 네가 항상 나를 감시해."그러자 박예찬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약속해요. 제가 잘 감시할게요."이야기를 마친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하지만 그는 두세 살 때부터 혼자 잠을 자서 그런지 지금 옆에 다 큰 남자가 누워 있으니 정말 익숙하지 않았다.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이렇게 떠날 수도 없었다.'만약 아저씨가 그가 떠난 틈을 타서 엄마를 찾아가면 어떡해?'하룻밤을 겨우 견딘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민기와 함께 유치원으로 갔다.한편, 박민호는 밤새 도망쳤고 마음속으로는 두려웠다.분명히 유남준이 박민정을 찾으라고 했는데 왜 두 사람이 함께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어제 그의 살인적인 눈빛을 생각하면 그는 조금 두려웠다.그는 감히 호신 그룹에 가서 돈을 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갔다.공관 안. 현수민은 윤소현에게 선생님의 소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곧 귀국한다고 하니 곧 만날 수 있을 거야.""엄마, 대단해요.""당연하지, 누구 엄만데."그녀는 낙담한 얼굴로 돌아온 박민호를 보고 말했다."또 어디 가서 빈둥빈둥 놀았길래 밤새 돌아오지 않았어?" 그는 당연히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그냥 술이나 마시러 갔어요."한편 윤소현은 그를 나무랐다."민호야, 우리 윤씨 집안의 이름을 걸고 허세를 부리지 마. 우리 아버지가 알게 되면 널 혼낼 거야."그는 어젯밤에 유남준에게 겁을 먹었는데 또 윤소현에게 한바탕 협박받아 순간적으로 화를 냈다."윤소현, 네가 뭔데 감히 나를! 잊지 마, 나 박민호가 없으면 네 아버지는 여자한테 의지하는 쓸모없는 인간이란 걸!""짝!"현수민이 그의 뺨을 찰싹 때렸다."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네 방으로 가."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떠나려 하지 않았다.'분명 내가 친아들인데 왜 윤씨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
김인우는 유남준의 마지막 한마디까지 다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그러면 지금 하랑 씨가 형수님이랑 같이 있다는 거지?”“응.”김인우가 왠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아 유남준은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결혼 전에는 아무 여자나 끼고 놀아도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있는 마당에 좀 조심해야 하지 않겠어?”김인우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황당하다는 듯이 그에게 답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버릇 고친지가 언젠데, 예전의 내가 아니야.”“응, 그러면 다행이고.”“그러면 지금 하랑 씨는 병원에 있는 거야?”“응.”유남준은 대답하자마자 전화를 끊었는데 보아하니 오늘에도 독수공방해야 할 것 같았다.김인우는 그길로 빠르게 조하랑 보러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가는 길에 방금 유남준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설마 하랑 씨가 오해한 건가?’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더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자기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이 멍청한 놈, 그때 통화하는 걸 분명 옆에서 다 들었던 거야!”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이지원의 영상을 자기한테 보내라고 했다.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조하랑이 막 잠들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누구세요?”박민정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간호사인가? 내가 가볼게.”“응.”박민정이 슬리퍼를 신고 문어구에 다가가 문을 열어보니 눈앞에 김인우가 서 있었다.“형수님, 하랑 씨 여기에 있나요?”김인우는 다급하게 물었다.박민정은 그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살짝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제가 들어가도 될까요?”그러나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하랑은 김인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다가와 차갑게 말했다.“아니요. 민정아, 너는 일단 먼저 자. 내가 나가서 말할게.”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를 한번 쏘아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김인우도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하랑 씨, 진짜 오해예요.”그러나 조랑
김인우는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조하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식은땀이 맺힌 채로 급히 박예찬과 김훈에게 달려가 물었다.하지만 김훈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그가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리길 바랐다.“나도 몰라. 하랑이가 방에 없다고? 화장실 간 거 아니야? 화장실은 찾아봤어?” 김훈이 일부러 태연하게 말하자 김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거기도 없어요.”“그거 참 이상하네.”김훈은 걱정스러운 척하며 말했다.“그럼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냐? 어서 찾아봐야지. 지금 임신 중이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박예찬도 거들었다.“오늘 아줌마가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어요. 혹시 가출하신 거 아니에요?”그 말에 김인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곧장 조하랑을 찾아 나섰다.한편, 조하랑은 이미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박민정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둘은 정수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병실로 들어가 조용히 대화를 이어갔다.“하랑아, 너 그냥 이렇게 온 거야? 가족한테는 말 안 했어?”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응. 그냥 조용히 나왔어. 지금은 누구 얼굴도 보기 싫어.”“그래도 집에 한 통은 전화해. 안 그러면 걱정하실 텐데.”박민정이 말했다.“괜찮아. 다들 내가 자는 줄 알 거야. 내일 아침에 슬쩍 들어가면 돼.”조하랑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임신 후로 김인우와는 방도 따로 쓰고 있었기에 자신이 방에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알겠어.”박민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조심스레 물었다.“그런데, 하랑아. 너 아까 말한 그 여자, 혹시 누군지 짐작은 가?”조하랑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난 김인우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내가 남준 씨한테 한 번 물어볼게. 혹시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응, 좋아.”조하랑도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원치 않았다.박민정은 조하랑 앞에서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유남준도 막
조하랑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걱정 마, 민정아. 나 그냥 좀 화가 났을 뿐이야. 아직은 냉정해.”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기분이 나빠서 그래. 내가 지금 그 사람 아이까지 품고 있는데 저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어떻게 안 상하겠어.”박민정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잠시 후, 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민정아, 나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될까?”“당연하지. 내가 데리러 갈게.”박민정은 임신한 친구의 감정이 요동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걱정된 마음에 바로 나섰다.하지만 조하랑은 코끝이 붉어진 채 대답했다.“아냐, 이미 차 탔어. 지금 가는 중이야.”그녀는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김인우가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둘 수가 없었다.박민정은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던 지라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알겠어. 그럼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릴게.”“응, 고마워.”...한편, 김인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있는 꽃집을 발견했다.그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는 직접 차에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품에 형형색색의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돌아왔다.차에 다시 올라타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가자. 좀 빨리 가 줘.”예전에도 김인우는 여자를 위해 꽃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비서가 대충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꽃다발은 그가 직접 고르고 색을 맞춰 정성껏 고른 것이었다.운전기사도 그의 얼굴에서 어쩔 수 없이 번지는 미소를 보고는 감탄하듯 말했다.“사모님은 참 복도 많으시네요. 이사님께서 뭐든 다 챙기시니.”김인우는 입꼬리를 높이 올리며 웃었다.“당연하지.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 정도는 해야지. 사실 하랑 씨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도 난 여전히...”하지만 마지막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그는 조하랑을 보기 위해 한 걸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