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63화

Author: 윤지
사실 유남준은 박민정이 외국에서 전문적인 작곡가로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민정은 유남준이 아직 눈치챘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실 박민정이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유남준이 꾹 참고 물어보지 않는 것이었다.

유남준은 박민정이 두 번이나 거절하자 정말 그 연하남에게 홀린 게 아닌지 걱정했다.

이튿날, 날이 밝기도 전에 유남준은 회사로 나가 서다희에게 에리라는 연예인을 조사하라고 했다. 그렇게 유남준은 박윤우를 회사에 데리고 오겠다는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서다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표님, 에리 최근에 귀국한 스타예요. 우리 회사로 초대할 예정이었는데?”

유남준은 그제야 왜 에리라는 이름이 그렇게 익숙했는지 떠올랐다.

“진척은 있어?”

서다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에리는 다른 남자 연예인과 달랐어요. 아직 뭘 원하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유로운 걸 좋아하고 속박받기 싫다면서 거절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미 사람을 보내 조사하고 있으니 취미 생활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남준은 에리를 데려올 수 있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

서다희가 멈칫하더니 에리의 근황을 줄줄 읊었다.

“현재 남녀를 막론하고 SNS 팬만 5,000만이 넘어요. 트위터는 거의 억이 넘는 팔로워가 있고요. 데이터가 조금 진실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같은 연령대의 다른 남자 연예인들과 비겨도 에리처럼 팬덤이 막강한 사람은 없어요.”

유남준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우리 회사에서 직접 에리와 같은 영향력을 가진 연예인을 만들어내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최소 3년은 걸릴걸요? 근데 시간과 정력이 너무 많이 걸려요.”

서다희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대표님이 언제부터 연예인을 만드는 데에 신경 쓰기 시작한 거지?’

유남준은 일할 때 효율을 따지는 편이었다. 어느 연예인의 가치가 높으면 바로 데려오는 식으로 말이다.

“생긴 건 어때요?”

유남준이 물었다.

“빼어나죠. 개인적으로 국내의 그 어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64화

    유남준은 부하에게 엄격한 편이었지만 인색하지는 않았다. 강연우의 직급을 한 단계 올려주었고 월급도 따블로 올려주었다.강연우의 차가운 얼굴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방을 나서기 전 끝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대표님, 하랑이 혹시 김씨 집안으로 시집 가나요?”강연우는 유남준이 김인우와 절친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유남준도 강연우에게 비밀로 할 생각이 없었다.“네, 이미 약혼했어요.”이를 들은 강연우의 눈빛이 살짝 이상해졌다.“대표님, 하랑이 사모님과 친구 사이인 거 아시죠?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김인우 씨한테 조하랑과 결혼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해 주세요.”유남준은 강연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원인은 딱히 물어보지 않았고 그저 차갑게 쏘아붙였다.“강 변호사, 우리는 그저 상하급 관계일 뿐이에요.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여할 생각이 없어요.”“조하랑 씨가 김인우와 결혼하는 게 싫다면 둘이 직접 얘기하세요.”유남준이 제일 극혐하는게 다른 사람의 감정에 끼어드는 일이었다.이를 들은 강연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 강연우가 가자마자 서다희가 불만을 늘어놓았다.“대표님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하나?”“요즘 너무 한가하지? 응?”유남준이 이렇게 물었다.서다희가 바로 입을 다물더니 계속 업무를 이어갔다.유남준도 고개를 숙인 채 업무에 매진했다. 집에서 박윤우가 심술을 부리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 채 말이다.“흥, 나빴어. 사기꾼이야!”박윤우는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도우미가 유남준은 이미 회사에 갔다고 알려줬다.도우미는 전에 정림원에서 박윤우를 챙기던 통통한 여자였다.“윤우야, 왜 그래?”박민정은 곡을 쓰러 가고 없었다. 도우미가 약이 잔뜩 오른 박윤우를 보며 물었다.박윤우는 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어떤 사람한테 사기를 좀 당해서 그래요.”“누가 감히 윤우한테 사기를 쳐? 누군지 말해주면 내가 바로 응징해 줄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65화

    박윤우는 한수민이 가져온 선물을 보며 궁금한 척했다.“이거 비행기 모형이에요?”“맞아. 할머니가 열어줄게.”“네.”한수민은 아이가 참 달래기 쉽다고 생각했다. 박윤우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한수민은 비행기 모형을 꺼내 박윤우에게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할머니가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알려줄까?”박윤우는 모형을 받아 들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날개가 한수민의 눈을 찔렀다.“아이고!”미처 피하지 못한 한수민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할머니, 괜찮아요?”박윤우가 그제야 발견했다는 듯 물었다. 한수민은 그가 실수로 그랬다고 생각해 손을 흔들었다.“괜찮아.”박윤우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내 리모컨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더니 한수민의 머리 위로 이리저리 조종했다.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던 한수민은 두통을 느꼈다.“윤우야, 비행기 밖으로 조종해 볼까?”“네.”박윤우가 리모컨을 조종하더니 실수인 척 한수민의 얼굴을 향해 비행기를 조종했다.한수민이 황급히 피했지만 비행기가 높게 묶은 머리를 사정없이 헝클어 놓았다. 옆에 있던 도우미가 이에 웃음을 터트렸다.“어머, 죄송해요. 할머니. 제가 조종이 서툴러서...”박윤우가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한수민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도우미를 힐끔 째려보며 말했다.“뭐가 우습다고 그렇게 웃는 거예요?”도우미는 한수민의 기세에 눌려 바로 입을 닫았다.한수민은 그제야 박윤우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윤우야, 이 장난감은 탁 트인 공간에서 놀아야 해. 일단 가지고 있다가 다음에 할머니랑 나가서 노는 거야. 어때?”“그래요.”박윤우가 비행기를 끄는 척하면서 다시 리모컨을 건드렸고 비행기는 다시 한수민의 얼굴로 돌진했다.한수민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손으로 막았지만 얼굴과 손이 긁혀서 상처가 나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모습이 참으로 처참했다.“아이고, 너 이 녀석...”한수민이 꾸짖으려는데 박윤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할머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66화

    곡을 쓰던 박민정도 비명을 듣고 의아한 표정으로 거실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한수민이 거실에 있는 게 보였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 손으로 박윤우를 손가락질했다.“너 일부러 그랬지?”한두 번이면 그럴 수 있다 쳐도 이번은 아니었다.박윤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할머니, 왜 그래요?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도우미가 박윤우 앞을 막아섰다.“아주머니, 윤우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얼마나 착한 아인데 그래요.”한수민은 믿지 않았다.“이거 분명 알코올이지 빨간약이 아니에요. 지금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고요.”“윤우 아직 유치원도 안 갔어요. 어떤 게 빨간약이고 어떤 게 알코올인지 어떻게 알아요?”도우미는 앞에 선 노인네가 만만치 않음을 발견했다.할머니로서 손주를 용서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한수민은 도우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박윤우는 고작 네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다.하지만 박윤우가 자기 얼굴을 망쳤다는 생각에 그에게 전혀 호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됐어요. 상대하기도 귀찮네. 민정이는 어디 갔어요?”한수민도 이제 슬슬 지쳤다. 도우미가 대답하려는데 박민정이 밖에서 들어오며 차가운 표정으로 한수민을 쏘아봤다.“무슨 일로 오셨어요?”한수민은 박민정의 차림새를 쭉 훑어봤다. 오른쪽 얼굴에 아직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아우라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한수민은 박민정에게 자세를 숙이기 싫었지만 앞으로 영원히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민정아, 오해하지 마. 엄마는 그냥 네 상처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온 거야.”“괜찮아요. 죽을병도 아니잖아요.”박민정은 얼굴에 난 상처가 한수민이 딸이라고 끔찍이 아끼는 윤소현이 저지른 짓이라는 걸 떠올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일 없으면 나가줄래요?”한수민이 멈칫하더니 물었다.“너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이 세상에 나올 일도 없었겠지. 좋은 마음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67화

    박민정은 도우미에게 앞으로 한수민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자기 친자식도 인정하지 않는 한수민이 손주라고 인정할까?...한편, 집으로 돌아간 한수민은 아직도 아랫배가 아팠다. 박민정이 그냥 밀쳤을 뿐인데 왜 배가 아픈 거지?병원에 가보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가셨고 이에 박민정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병실에 있는 티브이를 켜자마자 윤소현이 춤추는 영상이 재생되었다.티브이 속 화려한 딸을 보며 한수민은 너무 기뻤다.박민호가 경고장을 두둑이 갖고 들어오더니 한수민에게 건네주었다.“엄마, 이거 누나가 보낸 경고장인데요? 예전 박씨 가문의 재산을 그대로 반환하라고 적혀 있어요.”한수민이 멈칫하더니 경고장을 받아서 들었다. 기소장을 카피본을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박민호의 말이 맞았다.“박민정 이년이 기어코 나랑 맞서겠다는 거지?”“엄마, 그때 나한테 윤씨 집안에 돈 빌려주면 윤씨 집안에서 두 배로 갚는다면서요? 지금 윤씨 가문이 얼마나 강해졌는데 돈 돌려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 회사 하나 차려야죠.”박민호는 아직도 허황한 꿈에 빠져 있었다.한수민이 박민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아들, 그 돈은 이미 윤석후 아저씨 가져다줬어.”“앞으로 아저씨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일해. 그리고 너희 누나도 글로벌 댄서잖니, 앞으로 모든 재산은 다 너희 누나 몫이 될 거야.”박민호도 윤소현이 한수민과 윤석후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수민이 이 정도로 편애할 줄은 몰랐다.“엄마, 나도 엄마 아들이에요. 왜 소현 누나한테만 그렇게 신경 쓰는 건데요? 엄마 감옥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찾아온 적 있어요?”한수민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소현이는 공인이잖니. 나 보러 왔다가 기자들한테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떡해? 그리고 너는 너희 언니랑 비길 게 못 되지. 너희 누나는 나보다 더 잘났어. 앞으로 정씨 집안의 재산도 전부 너희 언니 몫이 될 거야. 그러니 말만 잘 들으면 너한테도 잘해줄 거야.”박민호는 한수민이 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68화

    박민호가 차에서 내리자 조수석에 앉은 비서 홍주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도련님, 저도 이 사람 조사한 적 있어요. 회사 관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바움 그룹을 3년 관리하는 동안 본전도 못 건졌다고 들었어요.”“뒤에 남준 도련님이 인수하고 나서야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합니다. 바움 그룹 자금을 다른 사람에게로 빼돌릴 생각도 했다던데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죠.”홍주영은 박민호가 너무 오냐오냐하게 큰 재벌 2세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대표라는 타이틀만 바라보는 사람인지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언젠가는 탕진하고 말 것이다.유남우가 좌석에 기댄 채 중얼거렸다.“돈 버는 거 바라지도 않았어.”이 말에 홍주영이 더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홍주영은 유남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말은 적게, 행동은 많이 하는 걸 좋아했다.“도련님, 최근 IM 그룹에서 우리 회사 연예인을 전부 데려가고 있습니다.”“회사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알아냈어?”홍주영이 고개를 저었다.“아직입니다. 그냥 외국 회사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의 프로젝트도 거의 IM에 빼앗긴 적이 있다고 합니다.”유남우는 너무 피곤해 미간을 주물렀다. 홍주영은 유남우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호산을 접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중요한 프로젝트를 대거 빼앗긴 것도 모자라 연예인들도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었다.“도련님, 만약 정씨 집안에서 협력 의사를 보인다면 주주들도 도련님께 아쉬운 소리를 하지는 못할 거예요.”“응, 알고 있어.”유남우가 윤소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윤소현이 유남우가 걸어온 전화를 보더니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저녁에 밥 먹자.”“그래요.”윤소현은 전화를 끊고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유남우가 처음으로 먼저 찾아온 게 다 정수미 덕분이라고 생각했다.백스테이지에서 딸의 공연을 지켜보던 정수미가 윤소현이 춤출 때 사용한 곡을 들으며 마음이 움직였다.“이 곡 듣기 좋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69화

    박민정이 웃으며 말했다.“이 목숨으로 정 대표님의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 같은데요.”정수미는 박민정에게 이런 용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박민정, 아이 잘 살아 있잖아.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이는 누가 길러준대?”정수미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이미 한번 죽었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죽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딸을 찾아야 했다.박민정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비수가 정수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박민정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아이는 유씨 집안 핏줄이라 내가 죽어도 아무 영향은 없을 거예요.”정수미는 고통으로 미간에 식은땀이 잔뜩 맺혔다. 박민정이 혼자 복수하러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박민정은 정수미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직 박윤우와 박예찬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의 안전은 확보해야 했다. 하여 칼을 빼 들게 된 것이다.“정 대표님, 오늘 일은 그냥 교훈으로 삼아두세요. 딸을 지키는 건 문제 없지만 제 아이를 건드리는 건 절대 용납 못 해요.”“만약 다음이 있다면 전 제 모든 걸 걸고 덤벼들 거예요.”박민정은 이렇게 경고를 날리더니 칼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정수미는 이런 협박을 당한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아랫배를 움켜쥔 손에서 새어 나온 피를 보며 정수미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순간 정수미는 자기 딸이 박민정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윤소현도 마음이 모질긴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급하면 정말 다 같이 죽자고 덤벼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차에 앉은 정민기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부 지켜봤다. 여자인 박민정이 독하면 얼마나 독할까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정수미의 보디가드는 전문 업체에서 고용한 사람들이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들키는 날엔 정말 뼈도 추스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화풀이를 한 박민정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70화

    유남준이 박민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안돼. 내가 챙기고 싶어서 그래.”“그럼 혼자 챙겨요.”박민정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유남준이 힘껏 당기자 이내 그의 품속에 안기고 말았다.“안돼.”“가자. 밥 먹으러.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유남준은 어디서 배웠는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박민정은 갈 생각이 없었다.유남준이 박민정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박민정은 억지를 부리는 유남준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가요.”밖에서 외식한 적이 별로 없는 박민정이었기에 맛있는 집이 어딘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기에 주변을 둘러보던 박민정이 결국 사람이 적은 중식당을 골랐다.둘은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유남준은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박민정의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잘생긴 얼굴은 여전했기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죄송한데 사진은 찍지 말아 주세요.”하지만 그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찍으려 했다. 그러다 유남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바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박민정은 앞으로 유남준을 데리고 나올 때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씌워야겠다고 생각했다.앞이 보이지 않는 훈남은 앞이 보이는 훈남보다 더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예를 들자면 길거리에서 매우 잘생긴 훈남을 마주치게 되면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훈남을 마주친다면 사람들이 부담 없이 눈을 마주칠 수 있을뿐더러 아련함까지 더해져 더 복합적인 감정이 생길 것이다.웨이터가 룸으로 안내했다. 그들을 안내하던 웨이터도 놀란 듯한 눈빛이었다.박민정은 이 웨이터도 잘생긴 얼굴에 놀란 것이라고 생각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박민정이 모르는 게 있었다. 조금 전 웨이터가 유남우와 윤소현을 다른 룸으로 안내했기 때문이다. 두 룸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웨이터가 여러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571화

    이를 들은 박민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다.박민정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도움과 호의를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했다. 신세 지는 게 두려운 것 같았다.그래서인지 정수미와 윤소현이 아이를 해친 걸 알면서도 조하랑과 유남준에게 말하지 않았다.유남준은 박민정이 밥을 먹는 소리를 듣고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냉대를 받는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하여 유남준은 별로 먹지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박민정이 유남준의 손을 잡았다.“이제 가요.”유남준이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박민정은 넋을 잃었다.“안 가요?”설마 애처럼 심술부리는 건 아니겠지?유남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을 꼭 끌어안았다. 너무 꽉 끌어안아서인지 박민정은 숨을 쉬기가 힘들어 유남준의 팔을 두드렸다.“이거 놔요. 시도 때도 없이 왜 안고 그래요?”두 사람이 나가려는데 다른 룸의 문이 열렸다. 이웃 룸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윤소현과 유남우가 이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유남우의 걸음이 멈칫했다. 윤소현은 혀를 끌끌 찼다.“여기서 아주버님과 형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결혼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뜨겁대요.”유남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유남준도 끝내는 박민정을 놓아주더니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유남우와 윤소현을 마주치게 되었다.박민정은 순간 난감해졌다.윤소현은 유남준이 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할까 봐 먼저 입을 열었다.“아주버님, 형님, 밸런타인데이라고 나온 거예요?”유남준이 이를 듣더니 박민정이 선 쪽을 바라봤다. 박민정이 대답했다.“네.”윤소현은 박민정에게 과시라도 하듯 유남우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저랑 남우 씨도 그래서 나왔는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어요? 같은 레스토랑에서 만나고.”박민정은 차를 타고 조금만 더 나가도 이 두 사람을 마주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예의를 차리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유남준을 데리고 나가려는

Latest chapter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0화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9화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8화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7화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6화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5화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4화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3화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2화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