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토요일 아침.송유지는 알람 없이 눈을 떴다.창밖은 이미 밝았고.옆에는 채도하가 아직 누워 있었다.유지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9시 26분.오늘 일정은 하나뿐이었다.저녁 7시, 도하 회식.그 전까지는.아무것도 없었다.유지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여보.”“응.”“일어나요.”도하가 눈도 뜨지 않았다.“왜.”“9시 반이에요.”“그래서.”유지가 잠깐 멈췄다.“그러게.”도하가 작게 웃었다.“오늘 뭐 정한 거 없어.”“응.”“그럼 더 자.”유지는 천장을 보다가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30분만.”“응.”둘이 다시 거실로 나온 건 10시가 훌쩍 넘어서였다.유지는 냉장고를 열었다.“뭐 먹어요?”“아무거나.”“그 말 제일 싫은데.”“그럼 네가 먹고 싶은 거.”유지는 냉장고 안을 한참 봤다.“나가서 먹을까요?”도하가 물었다.“어디.”유지가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그리고 웃었다.“또 정하려고 했네.”“응.”“그럼 일단 나가요.”“좋아.”둘은 정말 목적지 없이 집을 나왔다.유지가 왼쪽을 보다가 오른쪽을 봤다.“어디로 가지.”도하가 말했다.“발 가는 데.”“그게 제일 어려워요.”“연습한다며.”“알겠어요.”유지는 결국 가까운 골목 쪽으로 걸었다.얼마쯤 지나자 작은 식당 하나가 보였다.사람도 적당히 있었다.유지가 입구 앞에서 멈췄다.“여기?”“응.”“검색 안 해도?”“들어가.”유지가 웃었다.“진짜 많이 과감해졌다, 나.”식사를 마치고 나오자.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었다.아직 회식까지 한참 남았다.유지가 물었다.“이제 뭐 해요.”“걷자.”“또?”“싫어?”“아니.”둘은 근처 공원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유지는 도하 손을 잡았다.“여보.”“응.”“오늘 본사 미팅 안 간 거.”“응.”“생각보다 하나도 안 궁금해요.”도하가 옆을 봤다.“진짜?”“응.”“무슨 얘기 했는지도?”유지는 잠깐 생각했다.“월요일에 자료 보면 알잖아요.”도하가 웃었다.“잘
돌아온 열셋째 날.송유지는 아침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다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채도하가 물었다.“왜.”“본사에서 연락 왔어요.”“자문?”“응.”유지는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8주 자문 시작 전.참여 지역 담당자들과 가볍게 인사하는 사전 미팅을 이번 주 토요일에 잡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도하가 달력을 봤다.“그날 우리 비워둔 날 아니야?”“맞아요.”둘 다 잠깐 말이 없었다.유지는 다시 메시지를 봤다.필수 참석이라는 말은 없었다.가능한 경우 참석 요청.딱 그 정도였다.도하가 물었다.“갈 거야?”유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예전 같았으면 갔을 것 같아요.”“지금은.”“음.”유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안 가도 될 것 같은데.”“그럼 안 가.”“너무 쉽게 말한다.”“필수 아니라며.”“응.”“3주 쉬기로 했고.”유지가 웃었다.“맞네.”유지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토요일은 기존 개인 일정이 있어 참석이 어렵습니다. 정식 시작 전 공유 자료로 확인하겠습니다.전송.끝이었다.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잠깐 멍하니 있었다.도하가 물었다.“후회돼?”“아니.”“그럼.”“신기해서.”“뭐가.”“저 이런 거 거절할 수 있었네요.”도하가 웃었다.“원래 할 수 있었어.”“안 했던 거지?”“응.”그 말이 정확했다.도하가 출근한 뒤.유지는 일부러 자문 자료를 열지 않았다.대신 미용실에 다녀왔다.머리를 조금 다듬고.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점심도 먹었다.그러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잠깐 웃었다.해외에 있을 때는.하루의 대부분이 송 리드였다.지금은.그냥 송유지인 시간이 더 길었다.그게 좋았다.오후 늦게.도하에게 전화가 왔다.“여보.”“응.”“토요일.”유지가 바로 물었다.“왜요.”“회사에서 저녁 일정 하나 잡힐 수도 있대.”유지 걸음이 멈췄다.“그날?”“응.”이번에는 유지 쪽이 조용해졌다.도하가 말했다.“아직 확정은 아니고.”“중요해요?”“새
돌아온 열두째 날.송유지는 아침부터 이상한 장면을 보고 있었다.채도하가 식탁에 앉아.휴대전화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한 번.두 번.세 번.유지가 결국 물었다.“여보.”“응.”“뭐 고민해요?”“아니.”“아닌 사람이 왜 5분째 같은 화면만 봐요.”도하가 잠깐 유지 쪽을 봤다.“티 나?”“엄청.”유지는 맞은편에 앉았다.“말해봐요.”도하는 잠시 망설이다 휴대전화를 내려놨다.“오늘 저녁에.”“응.”“새 프로젝트 팀 사람들이랑 식사 있어.”“회식?”“비슷해.”“그게 왜 고민이에요?”“배우자 동반 가능하대.”유지 눈이 조금 커졌다.“저요?”“응.”이번에는 유지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여보는 제가 갔으면 좋겠어요?”도하도 잠시 멈췄다.예전 같으면.“네가 괜찮으면.”그렇게 말했을지도 몰랐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응.”짧고 확실했다.유지 눈이 조금 커졌다.“진짜?”“응.”“왜.”“소개하고 싶어서.”유지는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숨기지 못했다.“누구한테.”“같이 일할 사람들한테.”“저를?”“응.”유지가 웃었다.“그럼 갈래요.”도하도 아주 조금 웃었다.“알겠어.”저녁 약속은 7시였다.유지는 오후까지 자기 일을 봤다.8주 자문 사전자료도.오늘은 40분만.그리고 노트북을 닫았다.예전 같으면 저녁 약속 직전까지 자료를 붙들고 있었겠지만.오늘은 그러지 않았다.오후 5시가 조금 넘자.옷장을 열었다.잠깐 고민하다가.너무 격식 있지도.너무 편하지도 않은 옷을 골랐다.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하던 중.도하에게 메시지가 왔다.—나 출발.유지는 바로 답했다.—저도 준비 끝.—데리러 갈게.—회사 근처 아니에요?—맞아.—저 혼자 가도 되는데.잠시 뒤.—내가 가고 싶어.유지는 화면을 한참 보다가 웃었다.—그럼 와요.6시 20분.도하가 집에 도착했다.유지는 현관 앞에서 그를 보자마자 물었다.“왜 진짜 왔어요.”“말했잖아.”“왔다 갔다 힘들잖아요.”“괜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송유지는 눈을 뜨자마자 옆을 봤다.채도하가 있었다.별것 아닌데.괜히 웃음이 났다.도하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왜.”“뭐가요.”“웃잖아.”유지는 이불을 조금 끌어올렸다.“그냥.”“출장 갔다 와서?”“응.”도하가 그제야 눈을 떴다.“2박 3일이었어.”“알아요.”“근데.”“그래도 없었잖아요.”도하가 잠깐 유지 얼굴을 보더니 웃었다.“그건 맞네.”아침 식탁에는 어젯밤 그대로 둔 캐리어가 보였다.유지가 커피를 마시다 물었다.“저거 오늘 정리할 거예요?”“퇴근하고.”“제가—”말이 나오다 멈췄다.도하가 바로 봤다.유지는 입을 다물었다가 웃었다.“안 도와줄게요.”“잘했어.”“아니, 좀 섭섭하네.”“왜.”“한 번쯤은 도와달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도하가 커피를 마셨다.“필요하면 말할게.”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게 맞지.”도하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유지는 자기 노트북을 켰다.8주 자문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하지만 오늘 본사에서 사전 오리엔테이션 자료 하나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정식 업무는 아니었다.말 그대로.미리 확인할 자료.도하가 재킷을 입으며 물었다.“오늘 또 공부해?”“공부 아니거든요.”“자료 본다며.”“한 시간만.”“진짜?”유지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딱 한 시간.”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끝나면.”“응?”“회사 말고 다른 거 해.”유지가 웃었다.“요즘 제 생활관리까지 하네.”“누가 해야 될 것 같아서.”“채도하.”도하가 나간 뒤.유지는 정말 한 시간만 자료를 봤다.이번 자문의 첫 번째 대상 지역.기존 보고서에는 운영 지연이 반복된다는 설명이 있었다.예전 같으면.어디서 막히는지 먼저 분석했을 것이다.이번에는 달랐다.유지는 질문을 적었다.이 팀이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누구의 결정에서 일이 가장 오래 멈추는가.직원들이 공식 절차보다 개인에게 묻는 일이 무엇인가.그리고 마지
출장 마지막 날.송유지는 아침부터 평소보다 조금 자주 시계를 봤다.채도하가 오늘 돌아온다.저녁 7시쯤 도착.집에는 8시 전.어제 들은 시간이었다.유지는 아침을 먹으며 혼잣말했다.“기다리지 말자.”그리고 바로 웃었다.“아니, 기다리긴 기다리는 건데.”오늘 하루를 전부 그 시간만 보면서 보내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오전에는 자문 자료를 조금 봤다.첫 회의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지만.이제 두 지역의 차이가 어느 정도 보였다.첫 번째 지역은 승인 단계가 많았다.두 번째 지역은 기준이 부족했다.유지는 한 줄씩만 적었다.지역 1 — 결정이 늦다.지역 2 — 결정이 흔들린다.그 아래.같은 방식으로 고치면 안 됨.거기까지 쓰고 파일을 닫았다.“됐어.”이번에도.결론까지 미리 만들지 않았다.점심 전.도하에게 메시지가 왔다.—마지막 일정 들어가.유지는 바로 답했다.—잘 끝내고 와요.잠시 뒤.—응.그걸로 끝이었다.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외출 준비를 했다.오늘은 집에만 있지 않기로 했다.근처 마트도 가고.점심도 밖에서 먹을 생각이었다.도하가 돌아온다고 해서.오전부터 저녁까지 현관만 볼 필요는 없었다.장을 보면서.유지는 자연스럽게 도하가 좋아하는 음료를 집었다.그리고 잠깐 멈췄다.“이건 괜찮지.”출장 준비를 대신해주는 것도 아니고.필요하지 않은 걸 억지로 챙기는 것도 아니었다.같이 마실 음료 하나.그 정도였다.유지는 장바구니에 넣었다.오후 3시 14분.도하에게서 사진이 왔다.역 전광판.그리고 짧은 메시지.—끝. 이제 간다.유지 입꼬리가 바로 올라갔다.—수고했어요.조금 뒤.—집에서 봐.유지는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집에서 봐.출장을 가기 전에는 별것 아닌 말이었다.그런데 직접 기다리는 쪽이 되고 나니.묘하게 좋았다.—응. 집에서 봐요.유지는 집에 돌아와 장을 정리했다.5시.6시.저녁을 먼저 먹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래서 정말 혼자 간단히 먹었다.일부러 양
출장 둘째 날 아침.송유지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손을 뻗었다가.옆자리가 비어 있다는 걸 다시 기억했다.“아.”어제보다 덜 낯설었다.휴대전화를 확인하니.채도하에게서 새벽에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오늘 첫 일정 8시.유지는 시간을 봤다.7시 12분.답장을 쓰려다가 잠깐 멈췄다.도하가 준비 중일 시간이었다.결국 짧게만 보냈다.—잘하고 와요.몇 분 뒤.—응. 너도 잘 쉬고.유지는 화면을 보며 웃었다.“저는 쉬는 게 일이네.”아침을 먹은 뒤.유지는 오늘 할 일을 종이에 적었다.자문 자료 30분.장보기.친구와 늦은 점심.끝.그 아래에 무언가 하나를 더 쓰려다가 펜을 멈췄다.“굳이?”종이를 그대로 냉장고에 붙였다.세 개면 충분했다.자문 자료는 정말 30분만 봤다.두 지역 모두 문제는 달랐지만.공통점 하나가 보였다.결정을 내리는 사람보다.결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유지는 문장 하나를 적었다.답을 주기 전에, 누가 답을 기다리고 있는지부터 확인.그리고 노트북을 닫았다.그 이상은 첫 회의에서 들으면 됐다.오후에는 친구를 만났다.친구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남편 출장 갔다며?”유지가 눈을 크게 떴다.“내가 말했나?”“어제.”“아.”“어때. 혼자 있으니까?”유지는 잠깐 생각했다.“생각보다 괜찮아.”“안 보고 싶어?”“보고 싶지.”“근데?”유지가 커피를 저었다.“보고 싶은 거랑 혼자 못 있는 건 다른 것 같아.”친구가 잠깐 유지 얼굴을 봤다.“오.”“왜.”“해외 갔다 오더니 진짜 좀 달라졌네.”유지가 웃었다.“다들 그 말만 해.”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흘렀다.회사도.도하도 아닌 이야기.최근 본 영화.새로 생긴 식당.친구의 회사 사람 이야기.유지는 두 시간 가까이 자기 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그 사실을 깨달은 건.친구와 헤어진 뒤였다.“진짜 안 했네.”혼잣말이 나왔다.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