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여의도 에이펙스 코퍼레이션 본사 최상층.
통유리창 너머로 한강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차태경의 대표실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최고급 가죽 소파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서늘한 긴장감과, 어젯밤의 농밀했던 열기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지안은 다리를 꼰 채,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천천히 넘겼다.
정갈한 명조체로 인쇄된 서류의 맨 위에는 [혼인 계약서]라는 다섯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계약 기간 2년."
지안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기간 동안 '갑' 차태경과 '을' 서지안은 대외적으로 완벽한 부부로서 기능한다. 갑은 을이 서그룹을 온전히 장악할 수 있도록 에이펙스의 자본과 정보력을 전면 지원하며, 을은 갑이 요구하는 서그룹 내의 특정 사업권 입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
지안이 서류의 다음 장을 넘기며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제4조. 쌍방은 계약 기간 동안 철저한 정조의 의무를 지며, 외부의 스캔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생활을 엄격히 통제한다. 위반 시 위약금은 귀책사유를 제공한 측이 자신이 가진 지분의 50%를 상대에게 양도한다."
지안은 서류를 테이블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자신을 여유롭게 관찰하고 있는 차태경을 똑바로 응시했다.
"조건은 완벽하네요. 이 정도 위약금이면, 서로 등에 칼 꽂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그런데……."
지안의 얇고 긴 손가락이 서류의 마지막 장, 특약 사항 부분을 톡톡 두드렸다.
"이 특약 조항은 대체 뭔가요?"
태경이 입가에 나른한 미소를 띠며 소파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그가 긴 다리를 꼬며 지안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어느 부분 말이십니까, 예비 아내님."
"특약 제1항. '계약 기간 동안 두 사람은 반드시 한 집에서 거주하며, 대외적인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동일한 침실을 사용한다.' 방금 전까지 완벽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조건을 나열해 놓고, 갑자기 동일한 침실이라니요? 이건 명백한 사생활 침해 아닌가요?"
"사생활 침해라."
태경이 낮게 웃음소리를 냈다. 그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테이블 위로 깍지를 꼈다. 맹수가 사냥감을 향해 거리를 좁히는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이 풍겼다.
"서지안 본부장. 당신이 쳐내야 할 쓰레기가 강민우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나? 서그룹 내에 당신이 후계자가 되는 걸 껄끄러워하는 늙은 너구리들이 한 트럭이야. 당신 할아버지인 서 회장님조차도, 당신이 나와 진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지 아니면 회사를 삼키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는 건지 끊임없이 시험하려 들 텐데."
태경의 짙은 눈동자가 지안의 목덜미로 향했다. 어젯밤 자신이 남겨둔 붉은 잇자국이 스카프 너머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있었다.
"각방을 쓰는 쇼윈도 부부 흉내를 내다가 하우스키퍼나 고용인들 입에서 말이 새어 나가면, 그땐 계약이고 뭐고 다 휴지조각이 되는 겁니다. 완벽하게 속이려면, 우리부터 완벽한 부부가 되어야지."
"그렇다고 한 침대까지 쓸 필요는……."
"어제 내 밑에서 그렇게 울어대더니, 이제 와서 내숭이라도 떨겠다는 건가?"
태경의 노골적인 도발에 지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젯밤 펜트하우스 식탁 위에서 벌어졌던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정사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성을 놓아버리고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매달렸던 자신의 헐떡임까지도.
"……알겠어요. 까짓거 한 침대 쓰죠. 어차피 남녀 사이의 일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운 건 아니니까."
지안이 핸드백에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좋아. 그 당돌한 태도."
태경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각, 사각.
지안이 거침없이 서류의 마지막 장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챙겨 온 인감도장을 붉은 인주에 꾹 눌러 서명 옆에 선명하게 찍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공범이네요."
지안이 계약서를 태경 쪽으로 밀어주었다.
태경 역시 서슴없이 자신의 서명과 도장을 찍었다. 2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두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위험한 계약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짐은 챙겨뒀나."
태경이 뚜껑을 닫은 만년필을 재킷 안주머니에 꽂으며 물었다.
"당장 오늘부터 들어오라는 건가요?"
"당연하지. 이미 당신 펜트하우스 앞에 내 차 대기시켜 놨어. 강민우 파혼 건으로 기사 터지기 시작하면 기자들이 벌떼처럼 당신 집 앞으로 몰려들 텐데, 언제까지 거기 숨어 있을 생각이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파혼을 선언하고, 강민우와 유라의 비리를 고발한 이상 서그룹과 대산건설 사이의 진흙탕 싸움은 언론의 먹잇감이 될 것이 뻔했다.
"가죠. 어차피 챙길 짐도 별로 없으니까."
지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옥 같은 전생을 끝내고, 스스로 쟁취해 낸 새로운 삶. 그 삶의 첫 번째 무대가 차태경의 집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피를 끓게 만들었다.
태경의 거처는 한남동 유엔빌리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단독 저택이었다.
높은 담장과 곳곳에 설치된 CCTV, 그리고 입구에서부터 험악한 인상의 경호원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은 흡사 요새와도 같았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검은색 마이바흐가 저택 현관에 멈춰 서자, 지배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다가와 정중하게 차 문을 열었다.
"내 아내 될 사람이다. 인사해."
태경이 차에서 내린 지안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소개했다. 지배인의 눈에 순간 놀란 기색이 스쳤지만, 이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모님. 저택의 관리를 맡고 있는 최 집사라고 합니다. 불편하신 점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아직 이르네요. 서지안이라고 부르세요."
지안이 딱딱하게 대꾸하며 태경의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선 지안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넓고 차가운 대리석 바닥, 블랙과 그레이 톤으로 통일된 모던하고 무거운 가구들, 그리고 사람의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스산한 인테리어까지.
"집이 아니라 무슨 갤러리나 무덤 같네요."
지안이 거실 중앙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온기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쉬고 잠만 자면 되는 공간이지."
태경이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최 집사. 오늘부터 이 집안의 모든 고용인들은 오후 6시 이후로 본채 출입 금지다. 청소나 식사 준비는 그전에 다 끝내놓고 무조건 별채로 퇴근하도록. 내외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 해서 말이야."
"네, 회장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사모님의 짐은 마스터룸으로 옮겨두겠습니다."
최 집사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오후 6시 이후 고용인 전원 퇴근.
그 말은 즉, 이 넓고 적막한 저택에 밤이 되면 자신과 차태경, 단둘만 남게 된다는 뜻이었다.
"긴장되나?"
태경이 소파에 기대어 지안을 올려다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긴장이라니요. 기대가 된다고 해두죠. 차태경이라는 남자의 밑바닥이 대체 어디까지일지."
지안은 태경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도도한 걸음으로 2층 계단을 향했다.
밤 10시.
고요하게 가라앉은 저택의 2층 마스터룸.
지안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가운을 걸친 채, 킹사이즈 침대 옆 화장대 앞에 앉아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침실 역시 태경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무채색으로 가득했다. 넓은 공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침대는 두 사람이 눕고도 한참이 남을 만큼 거대했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지안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강민우를 무너뜨리기 위해 악마의 손을 잡았다. 복수는 순조롭게 시작되었고, 이제 내일이면 서그룹 내에서도 그녀의 입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차태경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짐승과 이 위험한 동거를 시작해야 했다.
달칵-.
그때, 침실 문이 열리고 씻고 나온 태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젖은 흑발을 쓸어 넘기며 허리에 수건 하나만 아슬아슬하게 두른 차림이었다. 넓고 탄탄한 어깨, 조각처럼 갈라진 복근 위로 미처 닦아내지 못한 물방울들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몸 곳곳에 남은 크고 작은 흉터들이 그의 거칠고 위험했던 과거를 말해주는 듯했다.
지안은 화장대 거울을 통해 그 야성적인 나신을 훔쳐보다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놀라. 내 몸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태경이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털며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가운이라도 좀 입고 나오죠. 눈 둘 곳이 없네요."
"눈 둘 곳이 없으면, 눈치 보지 말고 대놓고 감상하면 되잖아."
태경이 걸음을 멈추고 지안의 등 뒤로 다가왔다. 거울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그의 크고 뜨거운 손이 지안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더니, 가운의 깃 사이로 드러난 하얀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지안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어제는 짐승처럼 덤벼들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얌전할까."
태경의 얼굴이 지안의 목덜미로 느릿하게 다가왔다. 비누 향과 섞인 짙은 체취가 훅 끼쳐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를 간질이자, 지안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찌릿한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피곤해요. 짐 챙기느라 기운도 다 뺐고……."
지안이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태경의 손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태경은 밀려나는 대신, 지안의 가운 허리끈을 단숨에 풀어버렸다.
"아앗……!"
벌어진 가운 사이로 얇은 실크 슬립 차림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태경은 거부할 틈도 주지 않고 지안의 허리를 낚아채 번쩍 안아 올렸다.
"차, 차태경! 뭐 하는……!"
"피곤하면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태경이 지안을 안고 침대로 걸어가 거칠게 눕혔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몸이 가라앉기도 전에, 태경의 단단한 몸이 지안의 위를 무겁게 덮쳐왔다.
"이건 계약에 없던, 흣……!"
말을 끝맺기도 전에 태경의 입술이 지안의 입술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어젯밤의 거칠기만 했던 키스와는 또 달랐다. 오늘은 더 깊고, 진득하며, 상대를 철저하게 녹여버리겠다는 듯이 집요했다. 그의 두꺼운 혀가 지안의 치열을 훑고, 여린 점막을 구석구석 문지르며 혀를 얽어왔다. 질척이는 타액이 뒤섞이며 숨이 막혀올 지음, 태경이 입술을 떼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계약서 제4항. 쌍방은 철저한 정조의 의무를 진다. 다른 놈 품에 안길 게 아니라면, 이 침대 위에서 네 몸을 채울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야."
태경의 손이 지안의 얇은 슬립을 거칠게 밀어 올렸다.
"하아…… 하앗……."
맨살에 닿는 태경의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 소름 돋도록 뜨거웠다. 그가 슬립 너머로 가슴의 돌기를 엄지와 검지로 지그시 쥐고 비틀자, 지안의 허리가 반사적으로 활처럼 휘었다.
"아……! 차태경, 잠, 잠깐……."
"네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거. 꽤 듣기 좋군."
태경의 입술이 가슴골을 타고 내려가, 속옷 위로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입에 담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얇은 천이 타액에 젖어 살결에 달라붙으며 자극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지안은 두 손으로 시트를 꽉 움켜쥔 채, 입술을 깨물며 쏟아져 나오려는 교성을 억눌렀다.
하지만 태경은 그녀가 이성을 유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의 커다란 손이 어느새 지안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다, 속옷의 얇은 레이스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앗……!"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는 은밀한 곳에 태경의 긴 손가락이 닿았다.
여리고 예민한 점막을 지분거리며, 꼿꼿하게 선 돌기를 튕겨내듯 문지르자 지안의 다리가 흠칫거리며 벌어졌다.
"어제보다 훨씬 젖었네. 입으로는 밀어내면서, 여기는 벌써 날 받아들일 준비를 끝냈잖아."
태경의 질 낮은 농담에 지안의 얼굴이 수치심과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시, 시끄러워요…… 하읏, 거기, 아……!"
손가락 하나가 좁고 뜨거운 내벽 안으로 쑥 미끄러져 들어갔다.
지안의 내벽이 반사적으로 꽉 조여들며 그의 손가락을 물었다. 태경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굵은 핏대가 섰다. 그가 손가락을 천천히, 그러나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찌걱, 찌걱.
조용한 침실 안에 적나라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가락이 안쪽의 가장 예민한 곳을 정확히 긁어올리자, 지안의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아아아! 흐앙, 태, 태경 씨…… 하앗!"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교성에 태경의 눈빛이 짐승처럼 번뜩였다.
"방금 뭐라고 불렀지?"
"하아…… 그만, 제발……."
"다시 불러봐."
태경이 손가락을 빼내고,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거칠게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완전한 나체가 된 그의 거대한 중심부가 흉흉하게 부풀어 올라 지안의 허벅지를 찌르고 있었다.
그가 지안의 두 다리를 활짝 벌려 제 허리에 감게 하고는, 뜨겁게 달아오른 중심부를 그녀의 입구에 바짝 맞다 댔다.
"부르기 전까진 안 넣어줄 거니까."
선단이 민감한 돌기를 지그시 짓누르며 비비적거리자, 지안은 미칠 것 같은 갈증에 숨을 헐떡였다.
"차…… 태경…… 하아, 태경 씨…… 빨리……."
지안이 애가 타는 듯 허리를 비틀며 태경의 단단한 등 근육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착하네. 내 아내."
태경이 낮게 속삭이며, 허리에 강하게 힘을 주어 단숨에 밀어 넣었다.
"아악……!"
빈틈없이 꽉 들어차는 거대한 이물감과 찢어질 듯한 팽만감에 지안이 고개를 젖히며 비명을 질렀다. 좁고 뜨거운 내벽이 태경을 집어삼킬 듯 꽉 조여왔다.
"하아, 미치겠군. 서지안, 너 진짜……."
태경이 턱관절에 힘을 주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는 지안이 고통에 적응할 때까지 잠시 멈춰 기다려주며, 그녀의 이마와 눈가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이 거칠고 위험한 남자에게서 나오는 뜻밖의 다정함에 지안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괜찮아…… 움직여도 돼요."
지안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태경의 짐승 같은 폭주가 시작되었다.
퍽, 퍼억!
살과 살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마찰음이 침실을 가득 채웠다.
태경은 지안의 허리를 두 손으로 꽉 틀어쥔 채, 끝까지 빼냈다 깊숙하게 처박기를 반복했다.
"아앗! 하앙! 아아! 너, 너무 깊, 흣……!"
"하아, 서지안. 힘 빼. 나까지 끊어먹을 작정이야?"
태경이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거칠게 허릿짓을 이어갔다. 지안은 미친 듯이 몰아치는 쾌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의 단단한 복근이 부딪혀올 때마다 몸이 침대 헤드까지 밀려 올라갔고, 내벽의 가장 깊고 예민한 곳이 무자비하게 유린당했다.
"아앙! 차태경! 아! 거, 거기…… 하앗!"
"여기? 여기가 좋아?"
태경이 지안이 느끼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더욱 거칠게 쳐올렸다.
"아아아! 갈 것 같아! 하아, 태경 씨, 나, 나……!"
"같이 가."
태경이 마지막으로 지안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기며 가장 깊은 곳에 쐐기를 박듯 강하게 찔러 넣었다.
"아아아악-!"
지안의 몸이 활처럼 휘어지며 절정에 달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리며 내벽이 파르르 떨리며 태경을 꽉 조여왔다. 태경 역시 짐승 같은 낮은 포효를 내뱉으며 지안의 안에 파열하듯 뜨거운 열기를 쏟아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만이 침실을 채웠다.
태경은 지안의 위로 무너지듯 엎드려, 그녀의 땀에 젖은 목덜미에 깊게 얼굴을 묻었다. 지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공을 떠돌던 두 손을 천천히 내려 태경의 땀벌창이 된 넓은 등을 쓸어내렸다.
비즈니스로 묶인 계약 결혼.
하지만 두 사람의 몸은 이미 그 어떤 부부보다 완벽하게 서로를 탐하고 결합해 있었다.
어두운 방 안, 창문 틈으로 스며든 달빛이 두 사람의 뒤엉킨 나신 위로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침 7시.
눈을 뜬 지안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끔찍한 근육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 태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절하듯 잠든 지안을 새벽에 다시 깨워 기어이 두 번이나 더 그녀를 취했다.
'미친 종마 같은 새끼…….'
지안이 속으로 욕을 씹어 삼키며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시트에 남은 온기로 보아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지안이 가운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침실을 나섰다.
1층 거실로 내려가자, 통유리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 아일랜드 식탁 앞에는, 방금 전까지 지안이 속으로 욕했던 그 남자가 서 있었다.
태경은 완벽하게 핏이 떨어지는 네이비 슈트 차림이었다.
어젯밤 침대 위에서 보았던 그 야만적인 짐승은 온데간데없고, 차갑고 오만한 에이펙스 코퍼레이션의 젊은 총수, 차태경만이 존재했다.
"일어났어?"
태경이 한 손에 에스프레소 잔을 든 채 지안을 돌아보았다.
테이블 위에는 최 집사가 미리 준비해 둔 듯한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왜 안 깨웠어요. 오늘부터 서그룹 본사로 출근해야 하는데."
지안이 허리 통증을 숨기며 꼿꼿한 걸음으로 다가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곤히 자고 있길래. 어젯밤에 내가 좀 무리하기도 했고."
태경이 지안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어 넘겨주며 나른하게 웃었다. 그 다정한 손길에 지안의 심장이 또 한 번 엇박자로 뛰었다.
이 남자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지옥으로 끌어내릴 듯 폭력적으로 몰아붙이다가도,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숨 막히는 다정함을 보여준다.
"강민우 쪽은 어떻게 됐나요."
지안이 급히 화제를 돌리며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네 예상대로야. 오늘 아침 9시부로 검찰이 대산건설 압수수색 들어갈 준비 마쳤어. 강 회장 노인네는 이리저리 연줄 찾아 전화 돌리느라 똥줄 타고 있고, 강민우는 서 회장님 바짓가랑이라도 잡겠다고 지금 서그룹 본사 로비에서 무릎 꿇고 대기 중이라더군."
태경이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강민우가 로비에 있다고요?"
지안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 쓰레기 같은 자식이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 하고 할아버지에게 매달릴 생각을 하다니.
"잘됐네요. 출근길에 직접 밟아주고 올라가면 되겠어."
"그럴 필요 없어."
태경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은 네가 서그룹에 출근할 일이 없을 테니까."
"네? 그게 무슨……."
"계약서 제1조 잊었나? 우리는 완벽한 부부로서 기능한다."
태경이 지안을 향해 깊고 짙은 눈빛을 보냈다.
"강민우 파혼 기사가 터지기 전에, 선수 쳐야지."
"선수를 치다니요?"
지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묻자, 태경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오늘 저녁, 호텔 신라에서 열리는 재계 자선 파티. 서 회장님을 비롯해서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찌라시 기자들 다 모이는 자리. 거기에 네가 파혼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나 차태경의 '아내'로서 등장하는 거야."
지안의 두 눈이 커졌다.
파혼 선언 하루 만에, 서그룹의 후계자가 재계의 검은손이라 불리는 에이펙스의 차태경과 결혼을 발표한다.
이것은 단순한 가십을 넘어, 서그룹과 대산건설, 그리고 에이펙스 코퍼레이션까지 얽힌 거대한 지각 변동의 시작이었다.
"준비해, 서지안. 오늘 밤, 대한민국 재계가 뒤집어질 테니까."
태경이 몸을 숙여 지안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것은 완벽한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맹수의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