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청담동 최고급 오피스텔의 현관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하아, 하아……!"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친 강민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두 눈에는 극도의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 핏발이 서 있었다.
"오, 오빠? 갑자기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오늘 지안이랑 상견례…… 꺄악!"
실크 슬립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시던 유라가 비명을 질렀다.
민우가 다짜고짜 다가가 탁자 위에 놓인 와인병과 글라스를 바닥으로 쳐서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쨍그랑-!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붉은 와인이 대리석 바닥을 피처럼 적셨다.
"너, 너…… 서지안한테 무슨 말 했어."
민우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유라의 어깨를 틀어쥐었다.
"아, 아파! 오빠 미쳤어? 내가 지안이한테 무슨 말을 해! 나 최근에 걔 얼굴 본 적도 없는데!"
"거짓말하지 마! 네가 입을 안 놀렸으면 지안이가 어떻게 아는데! 싱가포르 차명 계좌 150억! 그리고 네년 명의로 사준 이 빌어먹을 오피스텔까지, 서지안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알고 있었다고!"
"……뭐, 뭐라고?"
유라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지, 지안이가 그걸 다 안다고? 말도 안 돼. 그걸 걔가 어떻게 알아? 장부는 오빠네 회사 금고에 있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내가 묻잖아! 네가 뒤에서 딴주머니 차려고 서지안한테 정보 흘린 거 아니냐고!"
짝-!
민우가 이성을 잃고 유라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아악!"
바닥에 나뒹군 유라가 헝클어진 머리를 부여잡고 악을 썼다.
"이 미친 새끼야! 내가 미쳤다고 내 밥줄을 끊어? 이 오피스텔 내 명의로 되어 있는데, 서지안이 알면 나까지 무사하지 못할 거 뻔히 알면서 내가 왜 그딴 짓을 해!"
유라의 발악에 민우는 그제야 헉헉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끝났어…….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아버지가 싹 다 들었어. 내일 아침에 검찰이랑 감사팀에 자료 넘긴대. 서 회장 그 노인네 눈빛 봤어? 날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것 같았다고. 대산건설은 이제 끝이야. 아니, 내 인생이 끝났어!"
민우가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항상 여유롭고 다정했던 재벌 2세의 가면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시궁창에 처박힌 쥐새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유라는 부어오른 뺨을 감싸 쥔 채, 덜덜 떠는 민우를 내려다보았다.
'서지안이 파혼을 선언했다고? 그것도 내 존재까지 다 까발리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서지안은 언제나 제 손바닥 위에 있는 멍청하고 순진한 온실 속 화초였다. 적당히 불쌍한 척, 위로해 주는 척 연기만 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던 호구.
그런데 그 서지안이, 뒤에서 자신들의 숨통을 끊을 칼을 갈고 있었다니.
'아니야. 서지안은 마음이 약해. 내가 울면서 매달리면 분명 흔들릴 거야. 강민우가 강제로 협박해서 만났다고, 나는 억지로 당한 거라고 둘러대면…….'
유라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침몰이 확정된 강민우라는 배에 계속 타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오빠. 정신 차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유라가 목소리를 깔고 차갑게 말했다.
"일단 오빠는 회장님한테 가서 무조건 빌어. 횡령은 회사 자금난 막으려고 어쩔 수 없이 한 거라고 해. 그리고 서지안은…… 내가 만나볼게."
"네가 지안이를 만나서 어쩌게! 네년 얼굴 보면 지안이가 당장 남은 정까지 다 털어버릴 텐데!"
"가만히 앉아서 죽을 거야?! 어떻게든 변명이라도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유라가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서로의 몸을 탐하며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던 두 남녀는, 이제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 난 추악한 짐승들로 변해 있었다. 진흙탕 속의 비참한 발악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시각.
성북동에 위치한 지안의 프라이빗 펜트하우스.
지안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차가운 샴페인을 잔에 따랐다.
몸에 얇게 감기는 블랙 실크 슬립 한 장만 걸친 채였다.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하얀 쇄골을 타고 흘러내려, 깊게 파인 가슴골 사이로 사라졌다.
"건배."
지안은 텅 빈 거실을 향해 잔을 들어 올리며 낮게 속삭였다.
입가에는 서늘하고도 짜릿한 승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민우가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던 그 비참한 얼굴. 전생에서 자신이 겪었던 지옥의 아주 작은 모서리조차 되지 않지만, 첫 단추로는 훌륭했다.
띠리릭-.
그때, 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펜트하우스의 정적을 깼다.
지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이곳의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그녀 자신뿐이었다. 강민우조차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철저한 프라이빗 공간.
지안이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의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 든 순간,
어둠 속에서 익숙하고도 짙은 스킨 향이 훅 끼쳐왔다.
"신혼집 보안이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어둠을 가르고 나타난 거대한 실루엣.
차태경이었다.
그는 재킷을 어깨에 대충 걸친 채, 나른한 걸음으로 지안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이 펜트하우스 소유주가 누군지 잊었나 보지? 에이펙스 명의로 된 건물인데 마스터키 하나쯤은 기본이잖아."
태경이 지안의 손에 들린 페이퍼 나이프를 슬쩍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도살은 잘 끝내놓고, 왜 이렇게 날이 서 있어. 남편 될 사람이 축하해 주러 왔는데."
"사생활 침해입니다. 당장 나가요."
지안이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태경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큰 보폭으로 다가와 지안의 코앞에 멈춰 섰다.
호텔 화장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두 사람의 숨결이 다시금 아슬아슬하게 얽혔다.
태경의 시선이 지안의 젖은 머리칼, 붉은 입술, 그리고 얇은 실크 슬립 아래로 노골적으로 비치는 가슴의 굴곡을 향해 진득하게 미끄러졌다.
"사생활?"
태경이 지안의 허리를 억센 팔로 감아채며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아아, 호텔 화장실에서 내 밑에 깔려 헐떡거리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벌써 사생활 운운하며 선을 긋기엔, 우리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간 거 아닌가?"
"읏…… 놔요."
지안이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냈지만, 태경의 팔은 오히려 더 강하게 지안을 옥죄었다.
태경의 크고 뜨거운 손바닥이 얇은 실크를 타고 내려가, 지안의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움켜쥐었다.
"하읏……! 차태경!"
"강민우 개새끼 표정 아주 볼만 하더군."
태경이 지안의 귓바퀴를 이빨로 살짝 깨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네가 그 새끼 뺨을 후려칠 때, 하마터면 룸 문 부수고 들어가서 박수 칠 뻔했어. 아주 완벽하게 잔인하더라고."
"당신이 원하던 결과잖아요. 내 가치를 증명했으니, 이쯤에서 손 떼고 내일 계약서나 준비…… 흣!"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태경의 입술이 지안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가 낮에 호텔 화장실에서 남겨두었던 붉은 잇자국 위를 다시 한번 집요하게 핥고 빨아들였다. 타액이 묻은 피부 위로 서늘한 공기가 스치자, 지안의 온몸에 찌릿한 소름이 돋았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지."
태경의 손이 슬립의 밑단을 잡고 천천히 허벅지 위로 쓸어 올렸다. 맨살에 닿는 거칠고 뜨거운 손가락의 감각에 지안의 호흡이 가빠졌다.
"너와 나. 우리는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끝날 수 없는 몸이라는 거."
"착각, 하읍……!"
태경이 지안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호텔에서의 키스가 경고의 의미였다면, 지금의 키스는 철저한 소유욕과 원초적인 정욕의 발현이었다.
태경의 두꺼운 혀가 지안의 입안을 예고 없이 침범해, 여린 점막을 구석구석 핥아 올리고 그녀의 혀를 옭아매어 거칠게 빨아들였다.
질척이는 타액 소리가 조용한 펜트하우스 거실을 음란하게 채웠다. 지안은 숨이 막혀 헐떡이면서도, 이상하게 그의 열기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전생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갈증이 솟구치고 있었다.
지안의 무의식적인 반응을 눈치챈 태경의 눈동자가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의 손이 어느새 지안의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을 어루만지다, 속옷의 얇은 천 너머로 중심부를 꾹 지눌렀다.
"아앗……!"
지안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교성이 터져 나왔다.
태경이 입술을 떼고 낮게, 그리고 지독하게 관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입으로는 선을 그으면서, 몸은 이렇게 솔직하잖아."
그의 긴 손가락이 속옷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는 은밀한 곳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흣, 아, 차태경…… 잠깐만, 하아……."
손가락이 예민한 점막을 지분거리고, 꼿꼿하게 선 돌기를 튕겨내듯 매만지자 지안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태경은 무너지는 지안의 몸을 안아 들어, 거실 중앙의 차가운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밀어내고 싶으면 지금 밀어내. 서지안."
태경이 지안의 두 다리 사이를 벌리고 서서, 오만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이대로 직진하면, 그땐 네가 울며불며 매달려도 절대 안 놔줄 거니까."
그것은 악마의 유혹이자 맹수의 선전포고였다.
지안은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위험하고, 폭력적이며, 동시에 압도적으로 매혹적인 수컷.
강민우와의 지루하고 위선적이었던 스킨십과는 차원이 달랐다. 차태경의 손길은 그녀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어두운 본능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누가 누굴 매달리게 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 아닌가요?"
지안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뻗어 태경의 목을 감아끌어 당겼다.
"큭."
태경의 입술 사이로 거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지안의 몸을 식탁 위로 완전히 눕히며, 짐승처럼 그녀의 목덜미와 쇄골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슬립의 어깨끈이 흘러내리고, 하얀 가슴이 태경의 거친 손아귀에 쥐여 희롱당했다. 방 안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친 숨소리와 농밀한 마찰음으로 가득 찼다.
이성은 날아가고, 오직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원초적인 열기만이 남은 밤이었다.
이것은 서지안이 선택한 파멸의 길이자, 악마와의 완벽한 동화였다.
다음 날 오전 10시.
서그룹 본사 로비에 위치한 VIP 전용 라운지 카페.
지안은 창가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화장으로 교묘하게 가리긴 했지만, 목덜미 언저리에는 어젯밤 차태경이 남긴 지독한 잇자국들이 희미하게 남아 그녀의 피부를 달구고 있었다.
'미친 짐승 같은 새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지안의 몸은 온통 붉은 낙인으로 가득했다. 뼛속까지 쑤셔오는 근육통에 지안은 속으로 태경을 수십 번은 욕해야 했다. 태경은 계약 체결을 핑계로 일방적으로 그녀의 몸을 취한 것이 아니라, 지안 스스로가 그를 원하게 만들고 완벽하게 길들여버렸다.
그 아찔했던 밤의 여운을 곱씹고 있을 때였다.
"지, 지안아……."
물기 어린,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지안의 상념을 깼다.
지안이 고개를 돌리자, 눈가를 붉게 물들이고 초췌한 몰골을 한 강유라가 서 있었다. 어젯밤 강민우에게 맞은 뺨은 두꺼운 컨실러로 덮었음에도 약간 부어올라 있었다.
지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듯 여유롭게 턱을 괴었다.
"앉아. 남들 보는데 청승떨지 말고."
지안의 차가운 태도에 유라는 흠칫 놀라면서도, 조심스럽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지안아. 나 상견례 이야기 들었어. 오빠가…… 아니, 강민우 본부장님이 파혼당했다고……."
유라가 두 손을 덜덜 떨며 지안을 향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안아, 오해야. 네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거야. 내가 그 오피스텔에 사는 건 맞지만, 그거 내가 내 돈 모아서 대출받아 산 거야! 강민우 본부장님이 사준 게 절대 아니라고!"
"그래?"
지안이 커피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건조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어쩌지? 어젯밤에 내가 심부름센터 시켜서 등기부등본이랑 계좌 거래 내역 다 뽑아봤는데. 네가 대출받은 은행, 싱가포르에 있는 '블루 호라이즌'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던데. 강민우가 비자금 빼돌린 바로 그 계좌."
"……!"
유라의 숨이 턱 막혔다.
"지, 지안아! 그, 그건……!"
"변명할 생각 마. 내 손에 강민우랑 네년이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물고 빠는 CCTV 영상까지 전부 들어있으니까."
지안이 핸드백에서 USB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탁 소리 나게 올려놓았다.
유라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더 이상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돌연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지안아! 내가 잘못했어! 흐흑, 내가 죽일 년이야!"
카페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유라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지안은 남의 시선을 극도로 신경 쓰는 성격이니, 이렇게 바닥을 기며 울고불고 매달리면 적당히 덮어줄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지안아, 내 말 좀 들어줘! 내가 오빠를 꼬신 게 아니야! 오빠가 억지로 나한테 접근한 거라고! 내가 거절하면 회사에서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당한 거야! 나도 피해자야, 지안아!"
유라가 지안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지안은 그런 유라를 쓰레기 보듯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전생에서도 이년은 똑같은 레퍼토리로 눈물을 흘렸고, 지안은 그 악어의 눈물에 속아 넘어갔었다.
"피해자?"
지안의 입술 사이로 조소가 터져 나왔다.
"강민우가 억지로 덮쳤는데, 오피스텔 명의는 네 이름으로 받고? 회사에서는 디자인 팀장으로 초고속 승진까지 했어? 아주 창녀가 따로 없네. 화대 치고는 너무 짭짤하게 챙긴 거 아니니?"
"지, 지안아…… 말, 말이 너무 심하잖아……."
"심해? 네년이 내 등 뒤에서 칼 꽂은 것보다 심할까?"
지안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가운 얼음물이 가득 든 잔을 유라의 얼굴을 향해 냅다 뿌려버렸다.
촤악-!
"꺄아아악!"
얼음물을 뒤집어쓴 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가 흠뻑 젖고 눈화장이 시커멓게 번진 꼴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이 경악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지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에서 우아하게 일어나 유라를 내려다보며 구두 앞코로 그녀의 어깨를 툭 밀었다.
"주제 파악해. 강유라."
지안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라운지를 울렸다.
"넌 내 친구였던 적 단 한 번도 없어. 학창 시절 내내 내 옷, 내 가방, 내 남은 음식이나 주워 먹고 살던 기생충이었지. 그래서 강민우까지 주워 먹고 싶었니? 내가 버린 쓰레기 한 번 주워 먹어보니까 맛있어?"
"서, 서지안…… 너, 너……!"
수치심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유라가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강민우 버렸으니까, 이제 네가 주워 가져. 단, 감방 면회는 네가 부지런히 다녀야 할 거야. 오늘 아침 9시부로 대산건설 비자금 150억 횡령 건, 서울중앙지검에 정식으로 고발장 들어갔거든."
"뭐……!"
"아, 참고로 네 이름도 횡령 공범으로 올렸어. 조만간 검찰 출석 요구서 날아갈 테니까, 조사받을 준비 단단히 해. 내 디자인 표절해서 팀장 달고 꺼들럭거리던 그 자리도 오늘부로 해고야. 보안팀 불러서 짐 싸서 쫓아낼 테니까, 내 건물에서 당장 꺼져."
지안은 바닥에 엎드려 경악하는 유라를 미련 없이 지나쳐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서지안! 서지안!! 이 나쁜 년아!! 네가 사람이니?!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뒤에서 유라가 악을 쓰며 발악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무사할 줄 아냐고?'
당연하지.
내 뒤에는, 강민우 따위는 발끝에도 못 미치는 압도적인 포식자가 버티고 있으니까.
지안은 핸드백 속에서 어젯밤 차태경이 남기고 간 서류 뭉치를 매만졌다.
[혼인 계약서].
그리고 그 밑에 선명하게 찍힌 차태경의 인감도장.
지안의 입가에 완벽한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이제, 지옥의 문을 닫고 새로운 제국을 세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