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황실 기사단장이 되었을 때 서둘러 일을 시작하느라 친구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리오나는 오랜만에 아카데미 동기들과 모이는 자리에 나갔다.
원래 황실기사단장이 되면 집안에서 축하파티를 열지만, 브릭 가문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리오나는 집안사람 중 누구도 축하해 주지 않았으나, 편지로 축하를 건네준 친구들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약속 장소는 아카데미 시절 자주 갔던 수도 외곽에 있는 찻집이었다. 야외 좌석이 탁 트여 있어 인기가 많은 집이었다.
집을 벗어나면 좋았다. 아버지의 지긋지긋한 클레이와 비교를 안들어도 되어도 좋으니 말이다.
수도를 벗어난 찻집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리오나는 오랜만에 입은 드레스가 불편한 듯 치맛단을 올렸다. 항상 바지를 입고 생활하다 보니 치마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봄에 어울리는 연분홍색 치마를 입은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주변에서 그녀를 알아보고 힐끗힐끗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녀는 시선이 익숙하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찻집 안으로 들어갔다.
룸안에 들어가자 4~5명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미 나누고 있었다. 리오나는 검술를 전공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난 탓에 시기와 견제를 한몸에 받아, 검술 학부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했다. 거기에 셀론 가문의 눈치를 보느라 더 그랬다. 그래서 그녀는 오히려 타 전공 학생들과 더 친했다.
“리오나, 오랜만이야.”
“밥은 먹고 다녀? 황실 기사단 정말로 힘들다고 하던데.”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하는 황실 기사단이었다. 간혹 성격은 제쳐두고 실력만 갖춘 귀족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일을 해야 하다 보니 단장은 신분이 높고 실력도 좋아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리오나를 눈여겨본 황제가 그녀의 졸업과 동시에 단장으로 임명한 이유였다.
“일하는 거 쉽지 않아.”
얼마전 왔던 공작가의 방계 혈통 자식이 생각났다. 건들거리고 깐죽거려서 실력행사하고 나서야 겨우 입을 닥쳤다.
“와 진짜 쉬운 게 없어. 어릴 적에는 후계자 수업이 어렵더니, 직장 생활도 그거 못지 않게 힘들어.”
리오나의 한숨 섞인 말에 일하는 이들은 모두 공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계자 수업을 받은 이들은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 시키는 일을 하는 것도 힘든가?”
“당연하지. 상사 눈치 보며 제 몫까지 다하는 게,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아니야!”
거기에 최종 상사는 셀론 후작이었다. 아버지의 라이벌이자, 자신을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셀론 후작가였다.
“나도 이전에는 새로운 거 생각하고 이끌어가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다 힘들어!”
리오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후계자도 해보고 밑에서도 일한 리오나의 말에 누구 하나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둘 다 해봤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총사령관께서 황실 기사단에 직접 다녀가셨다며?"
“맞아. 이틀 전이었지.”
리오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를 회상했다.
재수 없는 그 녀석을 만났지.
클레이 셀론.
“그 녀석이 와서 더 기분이 별로였어.”
리오나의 그 녀석이 누구인지 다들 알았다.
“괜찮았어?”
리오나는 친구들이 클레이 욕을 같이 해주길 바라지 않았다. 이 친구들 중에서 클레이와 그럭저럭 잘 지내는 애들도 있으니까.
그래도 친구들은 자신을 알았다.
클레이가 같이 왔다는 것만으로 괜찮냐고 물어보는 아이들, 그래서 좋았다. 자신이 그를 만나 힘들어하고 감정적으로 쏟아내는 것을 아니까.
“뭐, 어릴 때처럼 싸우진 않아서 괜찮아.”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나는 클레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친구, 헤세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리오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셀론 보좌관은 어땠어?”
“아, 여전히 재수가 없었지.”
그러자 헤세나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아, 그렇구나.”
“무슨 일 있어?”
“사실 말이야.”
헤세나는 리오나의 눈치를 살금살금 보다가 말을 꺼냈다.
“셀론 보좌관님께 고백했어.”
“뭐!”
리오나는 헤세나를 좋아했다. 절친한 친구였고 먹을 것을 양보하며 예쁘게 웃어주는 친구였다. 그런 그녀가 재수없는 클레이에게 고백한 것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 녀석에게?
사람마다 제 취향이 있다지만, 어째서 하필이면!
하지만 이런 생각을 그대로 말해 버리면 헤세나에게 실례가 된다. 그렇기에 리오나는 말을 아꼈다.
“ 아, 사실 고백했다가 거절당했거든.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니 역시 나에게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
헤세나는 기운이 없었다.
“그래도 많이 좋아했는데!”
리오나는 울컥했다.
클레이 주제에 헤세나를 거절하다니.
본인이 얼마나 못난 놈인지 자각을 못하는 게 맞았다.
클레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헤세나를 위로했다.
“더 좋은 남자들은 많아!”
그러자 헤세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을 거야. 그 눈부신 금발과 초록 눈동자를 따라올 남자는 없어.”
헤세나의 말을 들은 리오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그 놈 얼굴이 좀 되지만 그것 말고 뭐 볼 게 있다고?
작위를 받아봐야 고작 후작이고, 기껏 해봐야 재상인데!
“…….”
아니 물론 브릭 가문도 그정도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클레이에 대해 곱씹어 볼수록 리오나의 불쾌감은 짙어질 뿐이었다.
셀론 가문인 주제에, 검술만 쓰던 주제에 행정 명문가인 브릭 가문에 도전하는 클레이.
그 존재가 잘못된 거다.
‘아 진짜. 능력 좋고……그래서 더 짜증난다고!’
인정할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라이벌인 주제에 잘나서 더 재수가 없었다.
“정략결혼으로 혼담이 오가고 있는데, 그래도 아카데미 시절 첫사랑이라 고백한 거야. 거절당할 건 알고 있었어.”
헤세나의 감정어린 섞인 목소리가 클레이에 대한 미련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녀의 이런 말에 리오나는 더 분노했다.
이렇게 예쁘고 착한 헤세나를 거절하다니.
헤세나는 예쁘고 거기에 집안도 좋았다. 명문있는 백작가의 딸이었다.
그런데도 거절을?
물론 거절은 상대방의 자유지만! 클레이가 거절한 거라 기분이 나빴다.
리오나는 차인 친구를 달래주었다.
다른 친구들도 헤세나를 위로했다. 정략 결혼을 앞둔 친구들은 더 이해가 잘 되었는지 헤세나의 눈물에 같이 글썽거렸다.
집으로 돌아온 리오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찬 남자도 저렇게 울었을까.”
며칠 전 누군가를 찼다.
얼굴과 이름은 기억할걸.
리오나는 그 남자가 클레이의 친구인 것도 전혀 모른 채 그렇게 그 일을 넘겼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채 말이다.
과거의 결투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후대에 와서는 가문에서 결투를 허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현 황제는 가문 간에 분쟁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곤 했다. 그렇다 보니 결투는 더더욱 없었다.황제가 즉위하고 10년간 이곳을 방문한 이는 없다.결투장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다 보니 관리도 잘 하지 않은 듯했다.결투에 질 경우 상대방이 치러야 할 것들을 계약서에 적는 게 보통이지만 두 사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구두로 했을 뿐이다.뭐 상대방이 지고 나서 안 지켜도 상관없었다. 결투에 진 사실만으로 분해서 평생 패배감에 곱씹으며 살아갈 것을 잘 알고 있었다.리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클레이 셀론은 약속은 잘 지키지. 재수 없는 놈이지만 자기가 한 말은 기억을 잘하지.’클레이 또한 리오나의 성격을 아는 듯, 그녀가 패배하면 반드시 약속을 이행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둘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패널티에 대해서는 서로 말하지 않았다.결투장 옆에는 작은 건물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니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자욱했다.벽에는 마법총이 몇 개 걸려 있었다.세월이 지났어도 마법총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보존 마법이 걸려 있어 몇백 년이 지났음에도 총에는 녹 하나 슬지 않았다.그들은 마음에 드는 마법총을 골랐다. 리오나는 딱 봐도 투박하고 잘 나갈 것 같은 것으로, 클레이는 장신구가 있는 화려한 총으로 골랐다.‘꼭 자기 같은 걸로 고르네.’리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대결의 방법은 단순했다.결투장에서 다섯 발자국 반대편으로 걸은 다음에 결투장에 빛이 꺼지면 돌아서 총을 쏘면 되는 일이었다.리오나는 반사신경에 자신 있었다. 자신의 속도를 따라올 사람은 제국에 드물었다.“어서 시작하죠?”리오나의 말에 총을 보고 있던 클레이가 싱긋 웃었다.“얼른 당신의 비참한 꼴을 보고 싶군요.”“우와, 말하는 꼬라지하고는.”그러면서도 리오나는 입
“당연합니다. 당신의 친구인데 왜 제가 마음을 받아줘야 합니까?”그의 단호한 말에 리오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거절한 이유의 핑계를 저에게 두지 마시죠. 헤세나가 도대체 왜 마음에 안 드신 겁니까?”“나는 당신 주변의 사람들하고는 엮이기 싫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다 해도 거절했을 겁니다.”클레이는 딱 잘라 말했다.뭐 그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헤세나가 얼마나 좋은 아가씨인데.”로이나는 서늘하게 말하는 클레이의 태도가 싫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클레이는 피식 웃었니 도리어 로이나에게 물었다.“당신이야말로 그 말할 자격이 없을 텐데요.”“왜요?”“당신도 내 친구의 교제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당신 친구가 내게요?”로이나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자신이 언제 클레이 친구들을 거절했단 말인가?“누가 고백을 했는데요.”“카일이 했습니다.”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클레이 친구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이틀 전에 고백한 기사입니다.”“아!”그 남자의 이름이 카일이었구나.클레이는 이런 리오나를 보고 화가 나는 듯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다.“어떻게 고백한 사람 이름도 기억 못합니까?”“그럴 수도 있죠.”리오나도 할 말이 없었다. 말문이 막히며 아무런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섬주섬 변명을 꺼내 보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기가 찬 대답이었다.“저는 그래도 기억은 했습니다.”이번 다툼은 자신이 질 것 같았다.“고작 브릭 가문이면서, 카일의 교제를 거절하다니, 당신은 분수를 모릅니다.”그의 말에 리오나는 화가 났다.“거절은 내 마음이죠. 그래도 저는 당신 친구라는 이유로 거절 안했습니다. 당신보다 내가 낫군요.”물론 알았으면 약속 장소에도 안 나갔을 것이지만.자신도 클레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자신은 되지만 클레이는 안되는 거다.클레이 셀론이니까.“브릭 단장님. 당신에게 카일이 아깝습니다. 그 성실하고
초봄이기에 바람은 서늘했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강한 바람이 부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리오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걸었다. 황제가 집무실에 잠시 들리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무슨 일이지?’최근에 큰일은 없었는데.클레이가 시비 건 거 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은 굳이 떠들고 다니지 않았기에 황제가 알 리 없었다.자신이 그에게 딴지를 걸고, 그가 자신을 거슬리게 하고. 가문 간의 사소한 다툼이야 늘 있는 일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니 지금의 부름이 그 일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리오나가 황제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시종이 문을 열어 주었다.안에 들어가니 샹들리에가 보였다.벽에는 명화가 걸려 있었고, 창가엔 아직 겨울 커튼이 그대로였다. 화사한 봄보다는 여전히 겨울이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집무실이었다.안은 고요했다. 황제와 시녀 몇 명만 있었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황제는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리오나가 들어오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 황제의 청색 머리칼은 단정한 단발의 형태로 정돈되어 있었다. 푸른 콧수염을 밀지 않고 멋스럽게 다듬었다. 턱에는 수염을 남기지 않고 민 것과 달리 말이다.추위를 잘 타는 황제는 오늘도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봄 옷을 입은 리오나와 달리 말이다.“드높은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리오나는 예법에 어긋남 없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제복을 갖추어 입었기에 그녀의 모습은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기사 그 자체였다. 시녀들은 그녀의 모습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어릴 적 한 번쯤 검사를 꿈꿨던 귀족들에게 리오나는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시녀들 중에는 오직 리오나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이곳의 일을 자원한 이들도 있었다.황제 데블렌은 그녀에게 손짓했다.“가까이 오너라.”데블렌의 진한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찬찬히 살핀 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최근 무슨 일 없었나?”“없었습니다, 폐하. 그런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그녀의 말에 한숨을
황실 기사단장이 되었을 때 서둘러 일을 시작하느라 친구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리오나는 오랜만에 아카데미 동기들과 모이는 자리에 나갔다.원래 황실기사단장이 되면 집안에서 축하파티를 열지만, 브릭 가문에서는 어림도 없었다.리오나는 집안사람 중 누구도 축하해 주지 않았으나, 편지로 축하를 건네준 친구들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약속 장소는 아카데미 시절 자주 갔던 수도 외곽에 있는 찻집이었다. 야외 좌석이 탁 트여 있어 인기가 많은 집이었다.집을 벗어나면 좋았다. 아버지의 지긋지긋한 클레이와 비교를 안들어도 되어도 좋으니 말이다.수도를 벗어난 찻집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리오나는 오랜만에 입은 드레스가 불편한 듯 치맛단을 올렸다. 항상 바지를 입고 생활하다 보니 치마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봄에 어울리는 연분홍색 치마를 입은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주변에서 그녀를 알아보고 힐끗힐끗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그녀는 시선이 익숙하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찻집 안으로 들어갔다.룸안에 들어가자 4~5명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미 나누고 있었다. 리오나는 검술를 전공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난 탓에 시기와 견제를 한몸에 받아, 검술 학부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했다. 거기에 셀론 가문의 눈치를 보느라 더 그랬다. 그래서 그녀는 오히려 타 전공 학생들과 더 친했다.“리오나, 오랜만이야.”“밥은 먹고 다녀? 황실 기사단 정말로 힘들다고 하던데.”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하는 황실 기사단이었다. 간혹 성격은 제쳐두고 실력만 갖춘 귀족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일을 해야 하다 보니 단장은 신분이 높고 실력도 좋아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리오나를 눈여겨본 황제가 그녀의 졸업과 동시에 단장으로 임명한 이유였다.“일하는 거 쉽지 않아.”얼마전 왔던 공작가의 방계 혈통 자식이 생각났다. 건들거리고 깐죽거려서 실력행사하고 나서야 겨우 입을 닥쳤다.“와 진짜 쉬운 게 없어. 어릴 적에는 후계자 수업이
오기 싫은 날이 되었다. 리오나는 제복을 입고 황궁에 갈 준비를 했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장신구 중에서 휴대하기 간편한 것을 골랐다. 자주 차고 다니는 목걸이었다.목걸이를 찬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았다.목걸이 가운데에는 브릭 가문의 문양인 B모양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목걸이는 브릭 가문의 사람임을 인증하는 수단이기도 했다.채비를 마친 리오나는 마차에 올라 황궁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새벽에 나가서 다행이었다. 같이 같으면 또 클레이 이야기를 들었을테니 말이다.‘후우, 나도 차기 재상 소리를 들었으면 좋았으려나.’브릭 가문에 어울리지 않은 후계자.그녀를 평생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클레이 녀석은 집에서 인정받고 칭찬받겠지.”그래, 브릭 가문의 자리를 자치했으니 얼마나 칭찬받겠어.자신과 전혀 다르겠지.갑자기 서럽기도 했다.황실에 도착한 그녀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답답한 마음을 검으로 다스리고 싶었다.검을 좋아하는건 재능이 있어서기도 했지만 검을 뽑으면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기 때문이었다.연무장에서 정자세로 검을 휘두르며 훈련을 했다.어제 신고식을 치른 신입 기사들이 리오나의 훈련을 보고 있었다. 초봄의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살랑살랑 불어와 리오나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내렸다.서늘한 날씨지만 그녀는 더웠다.“자세가 좋군.”그리고 그녀의 뒤로 한 남자가 말했다. 짧게 자른 금발에 인상이 거친 남자였다. 그냥 보기에도 위압감이 있는 그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총사령관을 상징하는 문양이 망토에 새겨져 있었다.“총사령각하를 뵙니다.”카이사르 셀론.그의 녹색 눈동자가 리오나를 향했다. 라이벌 가문의 딸이 기사단장이 되었다고 했을 때 그가 분노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가끔 만나서 이것저것 트집을 잡은 적도 있었다. 처음에 기사단장이 되었을 때 얼마나 고생했던가.“연습에 열중하고 있더군.”약속한 시간보다 이르다. 총사령관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쳤다.도대체 무엇으로 혼을 내려고
1 라이벌과 신경전.“오늘따라 왜 이리 피곤하냐.”그녀의 검은색 단발이 살포시 움직였다. 파란 눈동자는 무척이나 서글서글했다.오늘도 힘들게 기사단을 훈련시키고 온 그녀였다. 거친 남자들이었고 말을 잘 안듣는 놈들도 있었기에 실력 발휘도 해야 했다. 피곤한 날이었기에 얼른 방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하지만 그날은 아버지와 저녁 식사가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꾸역꾸역 이끌며 식당으로 내려갔다.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가족은 아버지뿐이었다.아버지 가오덴의 파란 눈동자가 리오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쏙 닮은 외모 때문에 누가 봐도 부녀 지간임을 알 수 있었다.그는 식사를 그녀. 리오나에게 물었다.“왜 이리 기운이 없느냐?”“훈련이 힘든 날이었어요. 아무래도 신입들이 들어온 날이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어린 단장은 인정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건방진 놈을 교육한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놈이 한둘이 아니었던 게 문제였지.리오나의 말에 제국의 재상인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가문에 어쩌다 저런 기사 나부랭이가 태어난 건지 모르겠군.”가오덴은 리오나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 자신을 닮았으니까!그런데 왜 그녀는 시를 쓰지 못하고 문학을 잘 못하는 걸까. 문서 처리 능력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리고 빌어먹을 셀론 가문이 잘하는 재능을 타고 났다.아버지의 차가운 말에 리오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카르스키아 제국의 브릭 후작가와 셀론 후작가는 시조 시절부터 얽힌 유서 깊은 앙숙이었다.행정쪽 최고의 명문가인 브릭 후작가는 대대로 재상을 배출한 가문이었다. 그에 못지 않게 명문가인 셀론 후작가는 검술쪽으로 최고의 가문이었고 대대로 가주가 총사령관을 지냈다. 건국 공신이기도 한 두 가문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브릭 가문의 외동딸 리오나 브릭.그녀는 이 이름이 어울리지 않은 재능을 타고난 것이었다.“기사가 어때서요! 그리고 전 황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