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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손유신
소운금은 자신이 어떻게 승상부로 돌아왔는지 알지 못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눈밭에 쓰러졌던 것 같은데, 다시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따뜻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아가씨,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에 소운금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침상 곁에 있는 어린 시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서 이 아이는 자신의 곁을 지키는 시녀, 동이였다.

동이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말했다.

“아가씨, 저도 태자 전하께서 아가씨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하셨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분은 태자 전하시잖아요. 설령 지금 셋째 아가씨를 들이지 않더라도 훗날에는 어차피 첩을 거느리실 분인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몰래 뒷산에 올라가 절벽에서 뛰어내리시다니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다시는 아가씨를 못 뵙게 될 줄 알았단 말이에요. 흑흑…”

방 안은 어두웠다. 흔들리는 촛불을 통해 보아하니 이미 깊은 밤인 듯했다.

소운금은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너밖에 없어?”

동이는 눈물과 콧물을 훔치며 말했다.

“셋째 아가씨께서는 아가씨께서 절벽에서 뛰어내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기절하셨어요. 지금은 큰도련님도, 태자 전하도 모두 그쪽에 가 계시고요…”

소운금은 머리를 짚었다.

그랬다. 이 승상부에서는 모두가 소명월만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승상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승상은 늘 국사에 바빴다. 그래서 집안의 대부분 일은 장남이 처리하고 있었다.

지금 승상부에 살고 있는 주인은 고작 셋뿐이었다.

큰오라버니 소준연, 셋째 아가씨 소명월. 그리고 모두에게 미움받는 자신, 소운금.

그녀가 계속 말이 없자 동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가씨, 태자 전하 마음속에는 분명 아가씨가 있어요. 아가씨를 안고 돌아오실 때 태자 전하의 표정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아세요? 전하께서는 아가씨가 질투심에 충동적으로 그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선물까지 보내 주셨잖아요.”

동이는 바닥에 놓인 상자를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이번에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 그랬다면…”

“소운금, 깨어났구나?”

동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밖에서 초현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이는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일으켜 한쪽으로 물러났다.

곧 초현진이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와 침상 곁 의자에 앉았다.

“자, 일어나거라. 내가 부축해 주마.”

다정한 말투였다. 그러나 소운금은 오히려 불편했다.

그녀는 초현진이 내민 손을 가볍게 밀어내고 스스로 몸을 일으켜 침상 머리맡에 기대앉았다.

초현진은 잠시 멈칫했다.

그는 말없이 손을 거두었고, 얼굴도 한층 차갑게 굳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느냐?”

소운금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원래의 소운금이 그토록 깊이 빠져들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원주가 남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자 그녀의 가슴도 순간 먹먹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의 소운금이 아니었다. 더욱이 절대로 참고만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파혼합시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초현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언제까지 이렇게 억지를 부릴 셈이냐?”

“진심이에요.”

소운금은 담담하게 말했다.

“밤도 늦었으니 별일 없으시면 돌아가세요. 내일 동이를 시켜 파혼서를 보내 드릴 테니, 전하께서는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이상했다. 초현진은 눈앞의 여인이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의 소운금은 그를 보기만 해도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이렇게 무심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소운금, 본 태자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계속 이럴 생각이라면 본 태자가 매정하다고 원망하지 마라!”

“태자 전하께 제게 정이 있었던 적이 있긴 했습니까?”

소운금은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소명월이 넘어졌을 때 제 뺨을 때리신 것이 정이었나요? 아니면 소명월이 제가 독을 탔다고 말했을 때 억지로 사과하게 만드신 것이 정이었나요? 태자 전하께서 불구였을 때, 그녀는 혼사를 피하려고 일부러 숨어 버렸는데도 당신은…”

“그만!”

초현진이 버럭 소리쳤다.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소명월과 관련된 일만 나오면 그는 늘 진지했다.

“월이는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 그때 월이는 납치당했던 것이다. 신의께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살아 돌아오지도 못했을 거다! 삼 년이나 돌아오지 못한 것도 나를 치료하기 위해 의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온갖 고생을 겪고 힘들게 의술을 익힌 끝에 겨우 우리 곁으로 돌아왔는데, 넌 언니라는 사람이 왜 날마다 그녀를 모함하는 것이냐?”

눈앞에서 이성을 잃은 채 소리치는 남자를 보며 소운금은 비로소 원래의 소운금이 느꼈을 씁쓸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남자를 좋아했다니.

정말 역겨웠다.

다행히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소운금이 아니었기에, 그리 큰 슬픔은 느끼지 않았다.

“그토록 좋은 사람이고, 서로 그리도 애틋하다면 왜 측비로 들이려 하시죠?”

정곡을 찔린 듯 초현진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본 태자는 너에게 해 줄 만큼은 다 해 주었다! 네가 끝까지 이럴 생각이라면, 본 태자도 네 뜻대로 해 주마!”

소운금은 차갑게 웃었다.

“정말 제 뜻대로 해 주시는 건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건가요? 태자 전하께서 의리와 도리를 입에 달고 사시니 먼저 파혼을 입에 올리는 악역이 되기 싫으셨을 뿐이겠지요.”

“어쩌다 이렇게 비뚤어졌느냐?”

또다시 속내를 들킨 초현진은 그녀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혐오가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예전의 넌 순하고 착했다. 남을 몰아세우는 일도 없었지!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월이가 돌아온 뒤로는 먹고 자는 것밖에 하지 않더니, 이제는 몸집도 월이 둘을 합친 것만큼 불어났다! 어느 여인이 너처럼 행동한단 말이냐? 그리고 본 태자를 보아라. 설령 내가 월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해도 태자비 자리는 여전히 너를 위해 남겨 두었다. 그저 함께 시집오게 하겠다는 것뿐인데 어찌 이리 큰 소란을 벌인단 말이냐? 언니로서는 언니다운 온화함도 없고, 정비로서는 정비다운 도량도 없구나. 너는…”

“동이야, 종이와 붓을 가져오렴.”

소운금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동이가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직접 침상에서 내려와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파혼서를 써 내려갔다.

이후 초현진이 충격에 빠진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는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 저를 이토록 싫어하시니, 차라리 지금 여기서 이름을 적으시죠. 오늘부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겁니다. 저는 다시는 전하를 보지 않을 것이고, 전하께서도 다시는 저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 어떠신가요?”

사내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질질 끌고 우물쭈물하는 꼴이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초현진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다가, 탁자 위에 놓인 파혼서를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소운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 이름을 적어 주세요. 오늘부터 우린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겁니다.”

“진심이냐?”

초현진은 여전히 그녀가 홧김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소운금은 짜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빨리요.”

초현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소운금…”

“태자 전하께서는 서명하실 건가요, 마실 건가요?”

“너…”

초현진은 온몸을 떨 정도로 화가 났다.

“후회하지 마라!”

그 말을 내뱉은 그는 성급하게 이름을 적어 넣고는 붓을 내던진 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 버렸다.

문턱에 다다랐을 때, 그는 다시 걸음을 멈췄다.

“월이는 너 때문에 충격을 받아 울다가 기절했다. 네게 아직 양심이 남아 있다면 가서 한 번쯤은 봐 주는 게 맞지 않겠느냐?”

소운금은 비웃듯 말했다.

“저는 그 여자 때문에 절벽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는데, 정작 그 여자가 저를 보러 왔다는 말은 못 들었네요. 설마 전하 마음속의 소명월은 그 정도의 양심도 없는 사람인가요?”

초현진은 순간 휘청하더니 그 자리에서 얼굴이 먹물처럼 새까맣게 굳어 버렸다.

“좋을 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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