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태가 나타나자 이소연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김만태는 가끔 연예 주간지나 경제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안동 김씨의 고위층인 그를 이소연을 비롯한 직원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시카 다이지의 비서가 단 한 통의 전화만으로 이렇게 거대한 인물을 불러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김 비서는 김만태가 오자 신이 나서 허둥지둥 달려가며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만태 도련님, 제 얼굴 좀 보세요! 필러가 다 터질 지경이에요! 진주 재단 사람들이 너무 지나쳤어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해요!”김 비서는 말하다 울먹이기까지 했다.김만태는 차가운 눈빛으로 한마디 던졌다.“진주 재단 사람들 참 대단해. 다이지 도련님 일행은 김 수장님의 귀빈인 걸 몰라? 감히 수장님의 귀빈까지 때려? 오늘 이 일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누가 손댔어? 당장 무릎 꿇고 다이지 도련님께 사과해. 그리고 스스로 한 손 부러뜨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 일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이소연을 비롯한 직원들은 겁에 질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맞아. 오늘 이 일은 무릎 꿇고 사과하고 손 하나 부러뜨리지 않으면 안 끝나.”김만태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무심코 물었다.“누구지?”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김예훈과 김청미를 본 순간 그는 얼어붙은 듯 멈칫하더니 곧 눈가가 격하게 경련을 일으켰다.김예훈은 냉담한 표정으로 김만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김만태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김만태, 네 꼴이 점점 말이 아니구나. 예전엔 그래도 김씨 사걸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이제는 남 밑에서 주먹이나 써 주는 신세가 됐어? 대체 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김현민이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써? 너희 할 일 없어?”김예훈의 언행에 이시카 다이지 일행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하나같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어디서 굴러 들어온
김 비서는 울먹이며 말했다.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해 마치 큰 손해를 본 사람처럼 안쓰러웠다.하지만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자 금세 방금 전의 까칠하고 냉철한 태도로 돌아갔다.“기다려 봐, 감히 날 때려? 만태 도련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너부터 처리할 거야! 오늘 일은 누구도 절대 빠져나가지 못해!”이 순간 김 비서는 이시카 다이지가 뒤를 봐주자 완전히 오만하고 제멋대로 굴었다.김예훈이 막 무언가 말하려 하자 이소연이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저기, 그만하세요. 일이 더 커지면 안 돼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해고 될 수도 있어요!”이소연은 이시카 다이지가 누구를 부른 건지는 몰랐지만 도련님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진주에서는 안동 김씨의 사람일 수 밖에 없다,오늘 일이 안동 김씨의 사람이 오면 자신도, 김예훈도, 심지어 김청미도 큰일 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진주 사람인 그녀는 안동 김씨 2세들의 소란을 피우는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때 냉담한 표정의 김청미가 다가왔다. 그녀도 눈을 가늘게 뜨고 맞은편의 이시카 다이지 일행을 바라보았다.이소연은 김청미가 회사 고위층인 것을 짐작했지만, 정확한 신분은 몰라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보스님, 오늘 일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어요. 원래 일본 귀빈 접대가 제 담당이었는데 이렇게 된 건 모두 제 잘못이에요. 원칙대로 처리하세요.”김예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아무 문제 없어. 이소연 씨가 접대 담당이긴 하지만, 무례한 손님 상대할 때는 이소연 씨가 한 행동이 맞아.”이소연과 주변의 여성 직원들은 김예훈의 말에 살짝 놀랐다. 왜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하는지 의아했다.“하, 분수도 모르고...”김예훈의 말을 들은 이시카 다이지와 화려한 옷차림의 일행은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이 남자가 아직도 잘난 체하며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위로까지 하는 거야? 이미 자신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모르나? 다이지 도련님한테 한 번 찍히면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밥이
“김 비서님, 오늘 일은 전부 제 잘못이에요. 모든 일은 저 하나 때문에 벌어진 거예요. 절 고소하시든 잡아가시든 상관없어요. 제가 다 책임지겠어요.”이소연은 조금은 두려웠지만 당당히 가슴을 펴고 이시카 다이지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모든 일은 진주 재단과 정의감에 나서 준 이분과 상관없어요.”“이 사람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정할 일도 아니고 진주 재단이 결정할 일도 아니야. 설령 김태훈과 김현민이 와도 결정할 수 없어!”이때, 콧수염을 기른 이시카 다이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분노에 찬 김 비서에게 진정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그리고 뒷짐을 진채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특유의 오만함을 풍겼다.“오늘 이 일은 나만 결정할 수 있어!”이시카 다이지는 이시카 그룹을 대표해 수없이 많은 외교 협상에 나섰다. 그는 수많은 약소국의 여배우들과 잠자리를 같이했고 상류층 아가씨들을 협박했으며 중동의 석유 왕자들과도 의형제를 맺었다.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를 추대하였고 그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진주에 와서도 이전 진주 재단의 사람들은 그를 따라다니며 아첨했다.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새로 부임한 사장이 자기에게 무례한 것도 모자라, 일반 직원까지 그를 무시했다.그때 이시카 다이지는 음산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분명히 말해 줄게. 오늘 여기 있는 단 한 놈도 빠짐없이 책임지게 될 거야! 나, 이시카 다이지가 한 말이야!”말이 떨어지자 그의 곁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싸늘한 눈빛으로 김예훈을 노려보았다. 그와 이소연 일행은 큰일 날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그래? 고작 일본인이 감히 우리나라 땅에서 까불어? 그리고 우리한테 책임지게 하겠다고? 좋아. 나 오늘 여기에 있을 테니 사람 불러. 재간이 있다면 날 제압해서 네 앞에 무릎 꿇게 해봐. 그렇게 못하면 당신들은 전부 끝장이야!”김예훈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이시카 다이지를 길가의 벌레처럼 여기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이런 태도에 이시카 다이지의 얼굴은 마
한 여직원이 더는 참지 못하고 김 비서한테 손가락질하며 따졌다.“여긴 우리나라 땅이야. 당신들이 뭐라고 여기서 건방을 떨어?”“어? 감히 말대꾸해? 이년아!”김 비서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무슨 자격이냐고? 우리 일본인은 신분이 우월하고 이시카 그룹 제품이 전 세계에서 잘 팔리기 때문이지. 그리고 내가 한마디만 하면 너희는 끝장이니까. 왜? 기분 나빠? 기분 나쁘면 날 때려. 네가 나를 때릴 수만 있다면, 너를 인정해 줄게!”말하면서 김 비서는 오른쪽 얼굴을 여직원 앞에 내밀며 도발하는 자세를 취했다.짝!김예훈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김 비서를 한 대 쳤다.“이런 이상한 요구는 처음 들어. 다들 들었지? 이 사람이 나보고 때리라고 했어. 내가 지금 때렸는데, 후과는 엄중해?”우월감에 찌든 김 비서는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내팽개쳐졌고,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으며 얼굴에는 새빨간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그녀는 완전히 멍해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이곳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감히 손을 댈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시카 그룹 사람들은 늘 자사 제품이 전 세계에서 잘 팔린다는 자만심에 가득 차서 제멋대로 행동했다.이런 대우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지고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진주 재단이 세계적으로 퇴출당하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김 비서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김예훈을 가리키더니 분노 어린 웃음을 지었다.“개자식! 감히 나를 때려!”짝!김예훈은 또 뺨을 한 대 날렸다. 김 비서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어때? 느낌 안 왔어? 한 대 더 맞을래?”김예훈은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으며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한 대 더 맞을래? 내가 사람 뺨 때리는 데는 꽤 능숙하거든.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때려 줄게!”이 말에 현장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거의 모든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김예
“먼저 왔다는 건 눈치가 빠른 사람이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을 거야.”김예훈은 담담히 말했다.“그도 분명히 알아챘을 거야. 3시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 합작을 중단할 거라는 걸.”“왜?”김청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선배와 맹정남이 맺은 약속에 따르면 하루 안에 대리권을 따내지 못하면 바로 짐 싸서 나가야 해.”“오히려 겁내야 할 사람은 너 아니야?”“내가 겁난다고 누가 그래?”김예훈은 태연하게 말했다.“난 그냥 대리권을 따내겠다고 했지. 누구한테서 따내겠다고 한 적은 없어. 그가 오지 않으면 이번 일은 정말로 결렬될 수도 있어. 하지만 괜찮아.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내일 아침 이시카 그룹의 회장님께서 내 앞에 무릎 꿇고 대리 계약을 부탁하게 될 걸?”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예훈을 보며 김청미는 처음으로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뭔지 깨달았다.말하는 사이 둘은 어느새 여직원들 앞까지 걸어갔다.그때였다. 금테 안경을 쓴 비서처럼 보이는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거만하게 말했다.“당신들이 제법 인간처럼은 보이는데 진주 재단의 책임자지? 오늘 아침 당신들이 사람 시켜 다이지 도련님한테 오늘 오후 3시까지 안 오면 협력 취소한다고 했지? 장난하는 거야? 아니면 머리가 나쁜 거야? 우리 이시카 그룹 가전 제품이 전 세계에서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알아? 우리 다이지 도련님의 신분은 자그마한 진주 재단이 감히 모욕할 급이 아니야. 심지어 안동 김씨여도 자격 없어! 우리가 오늘 제시간에 온 이유는 이 계약은 너희가 원하든 말든, 무조건 체결해야 해. 조건은 간단해. 진주 재단은 우리 이시카 제품을 한국내의 모든 대리권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가격, 수량, 연간 판매 목표는 전부 우리가 정해! 매년 순이익의 90%는 우리가 가지고 10%는 너희가 가져, 알겠어? 알겠으면 지금 당장 이 계약서에 서명해. 아니면 진주 재단은 망하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와 계약 안 하면 우리 그룹은 진주 재단을 전 세계에서 완전히 퇴출하게 할 거
오후 3시, 김예훈과 김청미 두 사람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진주 재단 접대실에 도착했다.김예훈은 일본인들의 기세를 꺾고 싶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3시로 약속했으면 정확히 3시에 도착해야 한다. 이건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규칙 중 하나다.아직 접견실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안에서 뺨을 세차게 후려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짝!“멍청한 놈! 감히 우리 이시카 대표님을 여기서 5분이나 기다리게 해! 너희 진주 재단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3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최소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해 있어야 하는 거 몰라? 너희 나라 사람들은 시간 약속 하나 제대로 못 지키니, 원동에서 우리 발밑에 짓밟히며 사는 수밖에 없는 거야! 앞으로 3분만 더 준다고 김청미한테 전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김청미는 물론이고 진주 재단 전체가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김예훈과 김청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김예훈의 판단대로라면 이시카 그룹이 진주 재단보다 이번 협상을 더 절실하게 바라고 있을 것이다.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시카 그룹은 훨씬 더 낮은 자세로 나와야 맞다. 왜냐하면 이시카 그룹이 부탁하는 처지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이시카 그룹의 태도를 보니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접대실에서 나온 김예훈은 진주 재단의 여성 직원들이 뺨을 맞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맞은편에는 일고여덟 명의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가 거만한 모습으로 있었다.그들 중심엔 조그맣고 콧수염이 난 일본 남자가 있었다.스물세네 살쯤 되어 보였고 키도 그리 크지 않았으며 체격도 평범했지만 표정은 마치 세상 모든 게 자기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김청미는 빠르게 자료를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시카 다이지. 이시카 가문의 직계 후계자 중 한 명이자, 이번 계약의 실무 책임자야. 젊은 혈기에 권력도 실세도 대단해. 게다가 이시카 가문의 직계 신분 외에도 모끄 가문의 외문 제자라서 평소에 제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