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국 나와 아처린의 발걸음이 다시 향한 곳은 저잣거리 중심가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은 서아리노 상점이었다.
나는 아처린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아공간의 틈새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이틀 전처럼 ‘라이칸스로프’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순도 높은 마정석 하나를 슬그머니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상점 카운터에 있던 여자 종업원은 훨씬 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희를 믿고 거래하러 다시 와주셨군요. 여기 있습니다! 자, 은화로 바꿔 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금화로 드릴까요?"
"금화로 주세요."어차피 은화도 제법 수북하게 있고 아처린도 들고 다니기 무겁기도 하니 그리 말을 건넸다.
카운터 위에 짤랑거리는 기분 좋은 마찰음과 함께 정갈하게 올려진 것은, 무려 금화 4개였다
그날 오후.결국 나와 아처린의 발걸음이 다시 향한 곳은 저잣거리 중심가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은 서아리노 상점이었다.나는 아처린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아공간의 틈새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이틀 전처럼 ‘라이칸스로프’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순도 높은 마정석 하나를 슬그머니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그러자 상점 카운터에 있던 여자 종업원은 훨씬 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희를 믿고 거래하러 다시 와주셨군요. 여기 있습니다! 자, 은화로 바꿔 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금화로 드릴까요?""금화로 주세요."어차피 은화도 제법 수북하게 있고 아처린도 들고 다니기 무겁기도 하니 그리 말을 건넸다.카운터 위에 짤랑거리는 기분 좋은 마찰음과 함께 정갈하게 올려진 것은, 무려 금화 4개였다."뭐야. 가격이 늘었네?"옆에 서 있던 아처린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여자 종업원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미리 정갈한 문체로 적어둔 메모지를 펴서 보여주었다."저희 길드장님께서 워낙 귀하고 순도가 완벽한 마정석을 가져다주셨다며 감탄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혹여 이 훌륭한 손님이 다시 찾아오시거든, 다음에는 무조건 금화 2개를 더 얹어드리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메모를 확인한 순간, 내 입꼬리가 참지 못하고 씰룩거리며 얼굴 전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보통 상인들이라면 물건의 귀함을 알면서도 손님의 처지를 이용해 값어치를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안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값을 주다 못해 덤까지 얹어주는 이 신용이라니.역시 제국 최고의 가문이자 캔돔 가문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길드는 상도의의 차원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더없이 훈훈해졌다.
뜨거운 김을 피워 올리며 깨끗하게 씻고 나오자, 침대 위에서 작은 손으로 눈가를 비비적거리며 막 깨어나고 있는 마리가 보였다.잠기운이 가시지 않아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볼과 멍한 눈망울이 어찌나 고운지.아처린은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애정을 참지 못하고 가만히 다가가 그녀의 말랑하고 따스한 뺨 위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어머, 아린. 어제는 계속 미지근한 물만 나오더니······ 지금은 뜨거운 물이 잘 나오나 봐?"아처린은 차마 방금 전 욕실 배관에 제 마력을 불어넣어 겨우 물을 데워놓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우듯 대충 얼버무렸다."아, 글쎄. 잠깐 나오더니 지금은 다시 미지근한 물만 나오는 모양이더라고."마리는 그의 말에 별다른 의심 없이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탁자 위에 놓인 아침용 사과를 집어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소리와 함께 달콤하고 상큼한 사과 향이 방 안 가득 퍼져나갔다."이 사과 진짜 맛있다."우물거리며 사과를 먹는 그 작은 입모양조차 사랑스러워, 아처린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를 그렸다. 그와 동시에 이 초라하고 삐걱거리는 여관 따위는 미련 없이 서둘러 빠져나가, 마리에게 더 깨끗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그때, 사과를 씹던 마리가 아처린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아린, 왜 그래? 표정이 되게 좋아 보이네?"당연한 일이었다. 마법력이 완전히 없는 인간인 줄로만 알았는데, 드디어 마력이 조금씩 발휘되기 시작했으니까 좋지 않겠는가.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물을 데우는 데 성공한 사실만으로도 가슴 밑바닥에서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고 있었다.하지만 마리가
깊은 밤, 라이신은 묘한 마력의 잔상에 이끌려 대공저 결계 앞으로 걸어 나왔다.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일렁이다 스러진 은빛 마력의 색이 너무나도 신경에 걸렸다.'도르하르 사람들은 대개 이런 식의 마력 결을 갖고 있기는 한데······.'할 로드도 그랬고, 세실리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저택 주변을 기웃거리던 다른 도르하르 출신 마법사들도 더러 있었지만, 방금 전 느껴졌던 마력은 궤가 달랐다.지독할 정도로 순도가 높으면서도, 기이할 만큼 향취가 배어 있지 않아 도리어 선득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였다."라이신."한밤중에 대공저 결계 앞에 홀로 서 있는 라이신이 신경 쓰였는지, 바아르가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곁에 섰다."아, 전하."이제 그는 '각하'가 아닌 '전하'였고, 그가 입은 제복 또한 대공의 것이 아닌 제국 황태자의 것이었다.칠흑처럼 캄캄한 검은 제복 위로 찬란한 금빛 자수가 묵직하게 수놓아져 있었고, 어깨 너머로 늘어진 망토 역시 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듯 금빛으로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한밤중인데도 홀로 찬란하게 빛나는 남자를 보며, 라이신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냥, 저택이 안전한지 결계를 조금 살펴보고 있었어요."그러자 바아르가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방금 서아리노가 다녀갔어. 누군가 키요리타 산맥의 '라이칸스로프' 마정석을 들고 상점에 나타났다고 하더군.""어머! 정말인가요?""그래, 참 다행이지. 네 마력을 안정시킬 약을 더 조제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바아르는 안도감이 섞인 숨을 내쉬며 라이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라이신 역시 한껏 환하게 웃어 보였지
그 무섭도록 밀도 높은 소유욕에 얼떨떨해하던 것도 잠시, 내 발밑에 놓인 바구니에서 피어오른 따스한 음식 냄새가 공기를 타고 코끝을 스쳤다.아처린의 몸이 딱 굳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낮춰 커다란 바구니를 내려다보았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들과 달콤한 향이 가득한 바구니를 보더니, 그 오만하던 이마가 찌푸려졌다."뭐야······.""응?""내가 아까 음식에 입도 대지 않고 자버리니까······ 나 먹이려고 이런 걸 구하러 나갔던 거야?"다행히 바구니 속의 맛있는 냄새가 그의 사나운 경계심을 눈 녹듯 가라앉혀 준 모양이었다.여전히 불안함으로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그의 탄탄한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제국을 호령하고 도르하르 제국민을 학살하던 이 대단하고 오만한 남자가, 오직 나 하나를 기다리며 밤새 어둠 속에서 안달복달했다니."응, 너 먹일 음식 좀 구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아린."이러다가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내 모든 순간이 진실은 하나도 없는 거짓말로 가득 차 버릴 것만 같았다.내 나지막한 거짓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처린의 눈빛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조금 전까지 미쳐 있던 불안과 소유욕은 어디 가고,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보물을 바라보는 듯한 짙은 밀도의 열기가 그의 눈동자에 차올랐다.그는 턱 끝을 들어 올린 채, 오만한 군주처럼 나를 내려다보면서도 그 눈빛 속에는 오직 나만을 향한 지독한 애정이 나를 사정없이 매만졌다."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어?"그가 낮게 긁히는 음성으로 속삭이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뺨을 천천히 문질렀다. 뜨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숨마저 죽여야 했다. 다름 아닌 라이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나는 당황한 마음을 누르며 은빛 마력을 한층 더 짙게 끌어올렸다. 완벽히 모습을 숨겼다고 생각했으나, 라이신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마법사였다.비록 내 모습이 시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정적 속에서 묘하게 일그러지는 마력의 미세한 흐름을 귀신같이 감지해내고 있었다."누구인지 모르지만, 도르하르 사람이라면 겁먹지 말아요."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음성인지. 순간 당장이라도 모습을 드러내고 그간의 자초지종을 전부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하지만 그녀는 이제 제국의 황태자비였고, 내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이자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냥 이대로 숨기는 편이 서로를 위해 나았다."혹시 일자리나 잠자리를 아직 못 구한 거라면 이곳으로 와요. 아, 잠깐만요."말을 마친 라이신은 갑자기 무지갯빛 마력을 활활 일으켰다. 그리고 허공에 은은한 궤적이 그려지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바구니 하나가 내 앞에 툭 떨어지듯 나타났다.바구니 너머로 구수한 풍미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주방에 있는 음식을 멀리서 소환 마법으로 가져온 모양이었다."이거 가져가서 먹어요. 도르하르 분들은 모두 은밀한 투명화 마법을 잘 쓴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번에는 마력조차 잘 감지되지 않네요. 하지만 난 알아요. 바로 내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요. 절대로 해치지 않을 테니 가져가서 드세요."이렇게 은밀하고 정교한 소환 마법이라니.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고위 마법을 가볍게 구사하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핑 돌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라이신 님, 우리가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이런 인생을 살 줄 몰랐
그날 밤 우리가 묵게 된 곳은 서아리노 상점의 숙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고 좁다란 여관이었다.방 안에는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 하나와 작은 목재 탁자뿐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시작된 아처린의 발작을 급히 가라앉히는 게 우선이었기에, 그를 부축한 채 더 멀리 이동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여관 아래층에 딸린 식당의 음식 역시 보잘것없고 가짓수도 몇 되지 않았다. 둔탁한 목재 접시 위에 놓인 것은 미지근하게 식은 삶은 감자 몇 덩이와, 베이컨은커녕 소금에 바짝 절여져 퀴퀴한 냄새가 나는 딱딱한 육포 몇 조각이 전부였다.작은 그릇에 담긴 묽은 수프 역시 고기 한 점 없이 성의 없이 썰어 넣은 당근과 양파 조각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아처린은 포크를 들고 수프를 몇 번 휘적거리기만 할 뿐, 선뜻 입에 대지도 않더니 숟가락과 포크를 내려놓았다."아린, 괜찮아? 입맛이 안 좋은가 보네."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으며 그의 얼굴을 살피자, 아처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여기 음식은 별로야."하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런 척박한 서민들의 음식을 접해보지 못했을 테니 그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억지로 먹이다간 탈이라도 날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다."내일은 서아리노 상점에 다시 가자.""그래, 거기가 차라리 나았어. 마리, 나 좀 잘게."제국 최고의 검사이자 오만했던 황태자가 이토록 무기력하게 피곤해하다니.조금 전에 들었던 '바아르'라는 이름이 그에게 얼마나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주었는지 새삼 실감이 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저려왔다.***식당에서 올라온 뒤, 차라리 키요리타 산맥 오두막에서 가져온 말린 고기와 물을 그에게 주고 난 뒤 대충 씻고 그를 침대에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