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익숙한 이목구비와 그 얼굴, 그 사람은 바로 백아영이 전에 5년이나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 오재문이었다!2년 전 오재문이 바람을 피운 탓에 헤어지게 됐고 이번 생에 더는 볼 일이 없을 거로 여겼는데 이런 시기에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놀란 것도 잠시, 백아영은 금세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물었다.“네가 병 보이려고?”그녀는 돈이 시급했기에 역겨운 마음도 뒤로 하고 인간쓰레기 같은 오재문을 치료하기로 했다.“네가 돈이 급해서 여기저기 일거리를 찾는다는 소문을 들었어. 아영아, 나 아직 너한테 미련이 남아있거든. 그냥 내가 도와줄게.”오재문은 그녀 앞에 다가와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나랑 다시 만나. 그럼 바로 원하는 대로 돈을 줄게.”백아영은 울화가 치밀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며 모든 기대를 걸었는데 오재문에게 기만당하고 농락까지 당하다니!그녀는 혐오에 찬 표정으로 그의 손을 내리쳤다.“꿈 깨!”오재문은 웃음기가 굳어지고 금세 사악한 표정으로 바뀌었다.“백아영, 넌 백씨 일가에서 쫓겨나고 평판까지 흐려져 이젠 모든 걸 잃었어. 대체 뭘 믿고 아직도 거만한 척이야? 너 여기 온 거 결국 다 돈 때문이잖아!”그는 옷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한 뭉치 꺼내 백아영의 얼굴에 톡톡 내리쳤다.“나 이젠 남아도는 게 돈이야. 네가 서비스만 잘해주면 이 돈 전부 너 줄게. 물론 내 애인이 되고 싶다면 그땐 달마다 백만 원씩 줄 거야. 나 그럴만한 능력 돼.”차가운 돈뭉치로 얼굴을 맞으니 귀싸대기를 맞은 것보다 더 치욕스러웠다.백아영은 눈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한때 왜 이런 인간쓰레기를 만난 것인지 후회가 사무치게 밀려왔다. 그녀는 심지어 의사로 번 돈으로 그의 대학 뒷바라지까지 해줄 생각이었다.다만 오재문은 돈을 벌어 인생 역전을 하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었다!“오재문, 너 정말 역겨워!”백아영은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한편 오재문은 절대 그녀
“아쉽네, 이렇게 예쁜 애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진작 딴 사람이 낚아챘겠지.”구민기는 많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이성준의 낯빛이 확 어두워지고 주먹을 너무 세게 쥔 나머지 뼈마디가 마찰하는 소리까지 났다.그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백아영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백아영은 갑자기 다가온 남자에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을 똑바로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성준아, 너였어.”이성준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 힘을 너무 세게 준 탓에 백아영은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이성준이 혐오에 찬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백아영, 네가 감히 이런 곳에 와?!”그런 줄도 모르고 그날 밤 그 여자가 백아영이 아닐지 우려했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백아영은 천하고 음탕한 여자일 뿐 절대 그날 밤 청순하고 깨끗했던 그 여자일 리가 없었다!백아영은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그제야 이성준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알아챘다. 헤이데이는 문란한 장소이고 그녀는 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딱 오해받기에 십상이었다.그녀는 얼른 해명에 나섰다.“성준아, 오해야. 나 여기 병 치료하러 온 거야.”이성준은 그녀를 잡아당기며 룸문을 힘껏 걷어찼다.어수선한 방안에 흥분을 일으킬 것 같은 꽃향기와 짙은 알코올 냄새가 가득 찼고 오재문이 한창 헝클어진 옷차림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이성준이 쓴웃음을 지었다.“이런 유흥 업소 룸안에서 술에 취한 남자를 병 치료한다고? 백아영, 내가 바보로 보여?”백아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당장이라도 오재문을 토막 내 머리째로 시궁창에 내팽개치고 싶은 심정이었다.비겁하고 천박한 이 남자는 항상 그녀를 해치고 있었다.“성준아, 내 말 진짜야. 저 인간이 일부러 딴마음을 품고 아픈 척하며 병이 발작했단 이유로 날 이곳에 불러왔어. 지금은 취한 게 아니라 내가 은침을 놔서 기절한 거야.”“증거 있어?”오재문에게 고의상해죄라는 뒷덜미가 잡히지 않기 위해 그녀는
‘나 인제 끝장이야. 악마 같은 이 인간에게 입맞춤하다니, 이제 곧 아래층으로 내던져버리겠지?’그녀를 구하던 중 갑작스러운 키스에 이성준은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겁에 질린 백아영과 달리 그는 솜사탕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촉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이 느낌은 그날 밤 그 여자한테서만 받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딱 한 번으로 그를 미치게 만들었는데 백아영이...“나, 절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백아영은 황급히 뒤로 물러가며 발코니 구석에 서서 그와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저 새가 넝쿨에 얽혀버려서 구하려고 한 것뿐이야.”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당황하고 쑥스러워하는 청초한 그 얼굴은 마치 한 떨기 꽃잎처럼 아름다울 따름이었다.이성준은 잠시 넋을 놓아버렸다.다만 그녀가 저질렀던 만행을 되새기자 또다시 증오가 밀려왔다. 청순하고 예쁜 이미지는 결국 다 거짓이었다.그는 차갑게 시선을 돌리고 넝쿨에 얽힌 새를 쳐다봤다. 얽혀버린 넝쿨이 어느덧 반쯤 풀렸다.이성준은 난간 위로 올라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뛰어 내려왔다.그는 손을 펼쳐 작은 새를 날려 보냈다.백아영은 의외라는 듯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깔끔하게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 실로 멋있을 따름이었다.게다가 마냥 차가울 줄 알았던 이 남자가 선뜻 작은 새를 구해주다니.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그래, 이성준은 사실 그렇게 차갑고 나쁜 사람이 아니야. 단지 내게만 편견을 갖고 있어서 그래.’...그날 밤, 백아영은 낯선 번호로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온 후에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너머로 오재문의 용서를 비는 소리가 들려왔다.“아영아, 내가 잘못했어. 병만 치료할 수 있다면 4천만 원 바로 줄게!”백아영은 예상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내일 아침 9시, 성서 라이트 클럽에서 만나.”라이트 클럽은 식사와 레저를 동시에 즐기는 고급 클럽이었다.도심과 멀리 떨어진 성서 구역이라 위치가 비교적 은밀하고 만약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이성준은 어두운 얼굴로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라이트 클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백아영이 있다는 룸에 도착하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로 문을 뻥 차버렸다.이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짝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룸 안에서 오재문은 속옷에 한쪽 다리를 끼고 있었고, 백아영은 반대편에서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이는 누가 봐도 정사를 마친 후의 광경이었다.안 그래도 언짢은 이성준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사실 클럽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단지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백아영이 얼마나 더럽고 끔찍한 여자인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방탕한 성격은 아무리 타일러도 결국 고쳐지지 않았다!“성, 성준아?”백아영은 어안이 벙벙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여기에는 왜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지?게다가 지금 이 상황은...속옷을 반쯤 걸쳐 입은 오재문을 본 그녀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성준아, 절대 오해하지 마. 저 사람이 서지 않는다고 해서 나한테 치료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야. 봐봐, 치료할 때 쓰는 은침도 있잖아? 방금 치료를 끝냈거든...”백아영은 은침을 꺼내 이성준에게 보여주었지만 이성준은 ‘탁’ 쳐내면서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고 밖으로 질질 끌어내 곧장 차에 태웠다.이성준은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로 명령했다.“출발해, 본가로 가.”그 말을 들은 백아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 타이밍에서 본가에 찾아가 이영철을 만난다면 이혼밖에 더 있지 않겠는가! 이성준의 와이프라는 신분을 박탈당하는 순간 이성준은 그녀를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성준아, 나 진짜 치료만 해줬다니까? 바람피우지도 않았고, 가문에 먹칠하는 짓도 안 했어! 다짜고짜 이러는 건 좀 아니잖아!”“다짜고짜?”이성준이 냉소를 지었다.“백아영, 지금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결백을 증명할 수 있겠어?”“당연하지! 요즘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 오재문이 여기저기 수소문하러 다닌다는 거 조
이성준의 힘이 어찌나 센지, 백아영은 뒤로 밀려나 차 문에 쿵 하고 부딪혔다. 이내 등에서 통증이 밀려왔다.따끔거리는 느낌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드는 반면, 이성준이 그녀에게 기회를 주기는커녕 조사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차 세워요! 얼른!”백아영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리가 있겠는가! 변명해도 소용이 없으면 삼십육계 줄행랑이다.다만 차는 여전히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고, 그녀의 애원 따위 통하지 않았다.이내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차 문을 벌컥 열었다.운전 중인 위정이 깜짝 놀라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멈추기도 전에 백아영은 이미 훌쩍 뛰어내렸다.땅바닥에 10여 바퀴나 데굴데굴 굴러서 드디어 멈춰선 그녀의 몸에 군데군데 다친 흔적이 역력하며 피가 흥건했다. 비록 통증 때문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결국 이를 악문 채 바닥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뭐야? 영화 찍어? 형수님 장난 아닌데?”구민기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토록 무모한 여자라니, 정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이성준은 착잡한 얼굴로 백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젓가락처럼 깡마르고 가녀린 여자는 옷이 흙과 피로 얼룩진 채 비틀거리며 도망갔다.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이성준의 마음은 이루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짠했다.그러나 몇 번이고 남자를 몰래 만나서 그런 짓거리를 한다는 생각만 떠올리면 역겹기 짝이 없었다. 이처럼 방탕하고 더러운 여자는 밖에 돌아다녀봤자 공기를 오염시키는 일밖에 더 있지 않겠는가!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본가에 연락해서 붙잡아 오라고 해.”“네.”위정은 즉시 전화를 걸면서 차를 몰았다.조수석에 앉은 구민기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아영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여태껏 두 번 만난 새로운 형수님은 항상 다른 남자와 함께했는데 겉보기에는 음탕하기 그지없었다.다만 그동안 무수히 많은 여자를 봐 온 사
저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오재문과 백채영이 싸늘한 얼굴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채영아, 넌 정말 잔머리는 타고난 것 같아. 먼저 백아영이 음탕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이성준에게 심어주고 나중에 강도를 만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죽임까지 당하게 해? 물론 이성준이 그녀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너무 늦겠지. 백아영이 죽고 나면 이성준의 와이프가 될 사람은 너뿐일 테니까.”사실 백채영은 오재문과 백아영의 첫 만남부터 계획했다.그녀는 표독한 얼굴로 말했다.“이성준의 와이프는 나야. 백아영은 단 하루라도 이성준의 와이프가 될 자격이 없어.”백아영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목표였다....“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도 몰라? 당신들은 사형에 처할 거야!”백아영은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팔을 움켜쥐고 힘겹게 뒤로 물러섰다.남자는 극악무도하게 웃으며 말했다.“여기 CCTV도 없고 지나가는 차량도 없는데 우리가 죽였다는 건 어찌 알겠어?”“이년아, 넌 오늘 죽었어!”네 남자가 백아영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피하거나 도망칠 기회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날카로운 나이프를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백아영은 깊은 절망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이때, 눈 부신 헤드라이트가 번쩍였고, 너무 밝은 나머지 사람들은 눈조차 뜨기 힘들었다.곧이어 역광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네 남자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그제야 상대방을 식은 죽 먹기로 쓰러뜨린 카리스마남의 잘생긴 얼굴이 백아영의 눈에 들어왔다.싸늘한 눈빛과 무심한 표정, 그는 다름 아닌 이성준이었다!그가 다시 돌아오다니? 심지어 그녀를 구하기 위해??하지만 백아영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비록 지금은 구사일생이지만, 그녀를 구해준 이성준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당장은 살려줬을 뿐, 이혼하고 나면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이성준은
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 이성준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줄이야!그와 동시에 수치스러움과 난감함이 몰려왔다. 그날 밤은 그녀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다.백아영은 이내 씁쓸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성폭행당한 건 이미 알고 있잖아.”“처음이야?”백아영은 민망한 나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고개를 돌리더니 한참 만에 우물쭈물 대답했다.“응.”순간 이성준의 눈이 반짝거렸다. 점점 어두워지는 그녀의 눈빛을 보자 다시 물었다.“몇 번 방이었는데?”만약 룸넘버까지 일치한다면 백채영이 거짓말했다는 뜻이다.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이성준은 숨이 가빠올 지경이었다.“그게...”백아영이 대답하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의사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급히 걸어들어왔는데,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사모님께서 임신하셨어요. 이미 6주에 접어들었고,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이성준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날 밤은 고작 4주 전에 불과했을 뿐, 아이가 벌써 6주가 되었다는 말은 백아영이 그전에 이미 다른 남자와 몸을 섞었고, 심지어 임신까지 했다는 것을 증명했다.그런 와중에 경포 호텔에서의 그날 밤이 첫 경험이라고? 정말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다.아까만 해도 그 사람이 진짜 그녀는 아닐까 하는 자기 생각이 무색하게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백아영, 내가 널 너무 우습게 봤나 봐.”이성준은 백아영의 청순하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자 울컥하는 마음에 분노가 점점 차올랐다.“더러운 씨를 배고 시집와서 아이를 빌미로 나한테 책임을 물으려는 건가? 그리고 우리 집 안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겠다는 거지? 계획이 어찌나 주도면밀한지 감탄밖에 안 나오네.”백아영은 병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녀가 애써 숨기려 했던 사실이 결국에는 폭로되는 순간이었다.“난 그런 생각 해본 적이 없어.”그녀는 난처한 나머지 고개
한편, 백채영은 집에서 건달들이 백아영을 죽이지 못해 한창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때, 창밖으로 누군가 뛰어 들어왔는데 다름 아닌 오재문이었다.그는 상처가 군데군데 나 있었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내 백채영을 발견하는 순간 곧장 달려들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채영아, 살려줘! 제발!”백채영은 깜짝 놀란 나머지 급히 그를 밀쳐내며 노발대발했다.“오재문, 지금 뭐 하는 거야? 몰골이 이게 뭐야? 저리 가!”“백채영! 네가 백아영을 죽여줄 사람만 찾아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성준한테 쫓기는 신세는 면했겠지! 그 사람들의 손에 잡히면 난 죽는다고.”공포에 질린 오재문의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나 좀 살려줘! 아니면 범인이 너라고 확 불어버린다? 만약 이성준이 네가 백아영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고 악랄한 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널 가차 없이 버리겠지?”“이...!”백채영은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그를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이를 본 박라희가 서둘러 백채영을 말렸다. 오재문이 지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박라희는 이 시점에서 그를 내쳤다가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달려들어 나중에 백채영마저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재문아, 일단 진정해. 입단속만 잘하면 반드시 네 목숨을 살려줄게.”박라희는 침착하게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일단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어.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른 곳으로 보내줄게.”백채영은 즉시 발끈했다.“엄마, 어떻게 우리 집에서 지내게 놔둘 수 있어요? 성준이가 알게 된다면 스스로 자백하는 꼴은 물론 나까지 연루될지도 모른다고요!”“넌 성준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너를 쉽게 의심하지는 않을 거야. 따라서 함부로 우리 집까지 쳐들어올 일은 없을 테니까 지금 당장은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야.”박라희는 차분하게 위로를 건넸다.“채영아, 이 일은 엄마가 알아서 처리할게. 넌 성준 씨와 어떻게 하면 더 사이좋게 지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