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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Author: 가하
강지찬을 보자 한빈의 엄마와 소희 모두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한빈 엄마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으로 눈앞의 강지찬을 보자 너무 놀라 종아리에 쥐가 나버렸다.

소희가 그녀를 부축하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강 대표님, 유진이 찾으러 오신 거죠? 대화 나누세요.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둘은 조금 전의 기세의 반도 못 편 채 강지찬의 눈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복도가 좁아 강지찬의 긴 다리로 반을 차지하자 한빈의 엄마와 소희는 벽에 바싹 붙은 채로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자 유진이 남은 반쪽 꽃병을 들고 따라왔다.

“거기서, 가지 마. 사과부터 해!”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한빈의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반드시 우리 엄마 아빠한테 사과해야 해, 그전엔 아무도 나갈 생각 하지 마!”

한빈의 회사가 규모를 넓히기 시작한 뒤로 그 집 어미는 유진이네 집안을 업신여겼다. 유진의 부모님에게 말할 때도 항상 고고한 태도로 뭐라도 되는 양 굴었었다.

전에는 유진이네 가족도 일일이 대꾸하기 싫어했다. 두 집안이 알게 된 지도 몇 년인데 서로 어떤 사람들인지는 뻔히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빈의 엄마가 그녀를 모욕하는 것도 모자라 집까지 찾아와 자신의 부모까지 모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너 이...” 당장이라도 욕을 뱉으려던 한빈의 엄마는 곁눈질로 강지찬을 힐끗 보고는 ‘천박한 년’이라는 뒷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반나절 만에 한빈의 파트너들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고 투자비 회수는 물론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한빈이 힘들게 모아온 인맥과 자원들이 강지찬에게 척을 졌다는 이유만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들 가족도 강지찬을 찾아가 난동을 부리지는 못하겠으니 어쩔 수 없이 모든 화를 유진이 가족에게 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지찬의 등장은 예상도 못 했었다. 안 봐도 유진이 도와달라고 불렀을 게 뻔했다.

이 천박한 년, 역시 강지찬과 붙어먹은 게 확실했다.

강지찬은 재밌는 구경을 끝냈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못 들었어요?”

그 말에 두 여인은 화들짝 놀라 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강지찬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기에 그 앞에서까지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유진아...” 소희가 황급히 사과했다. “미, 미안해, 나랑 이모가...”

정유진이 냉랭하게 말을 끊었다.

“나한테 사과하지 말고 우리 엄마 아빠한테 사과해!”

옆에서 강지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손을 내리지 않은 채 꽃병을 든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손가락 마디가 새하얗게 질렸다. 그 모습마저 살짝 야해 보였다.

소희와 한빈엄마가 멈춘 것을 보고는 강지찬이 헛기침을 했다.

“뭘 기다리는 거예요?”

목소리에는 짙은 불쾌함이 녹아있었다. 온 서울 사람들이 강지찬이 한 성깔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소희는 황급히 정명학과 이명자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죄송해요. 제가 뭣도 모르고 헛소리만 해대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아직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한 한빈의 엄마에 소희가 바짝 붙어 말했다.

“한빈이를 생각해서라도...”

한빈의 엄마는 이를 꽉 깨물고 제 살점이 뜯겨나가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오늘은 제가 너무 했네요...”

유진은 또 차갑게 말을 끊었다.

“그걸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똑바로 사과하세요.”

한빈엄마는 큰 결심을 한 듯 말을 내뱉었다.

“미안합니다! 이제 됐지?”

집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한빈엄마가 씨익씨익 큰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 울렸다.

한평생 제 잘난 멋에 살더니 오늘에야 비로소 큰코다친 것이었다.

“앞으로 한 번만 내 엄마 아빠를 찾아와서 괴롭히기라도 하면...”

유진은 한빈엄마와 유진을 노려보며 독기 가득하게 말했다.

“내 목숨을 걸고 가만 안 둘 거에요!”

두 여인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아무 대꾸도 못 하던 정유진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했다.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놀랐는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정유진은 겨우 팔을 내렸고 이웃집 아주머니는 유진이가 다칠까 봐 얼른 꽃병을 낚아챘다.

강지찬은 눈썹을 찡긋거리더니 드디어 다리를 비켜주며 말했다.

“돌아가서 한빈 씨한테 얘기하세요...” 정유진을 보면서 말했지만, 소희와 한빈의 엄마를 향한 말이었다.

“...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둘은 이 말에 가슴이 철렁한 채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유진아 이분은...”

정명학은 의문스러웠지만, 마음속으로는 강지찬이 누군지 확신이 들었기에 표정이 저도 모르게 엄숙해졌다.

이명자는 감정을 추스르고 자신의 딸을 안쓰럽다는 듯 바라봤다.

아무도 강지찬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은 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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