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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율희
다음 날 오후, 웨딩숍.

직원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고아린 씨, 오늘도 혼자 오셨네요?”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결혼 날짜를 확정한 이후로 지금까지 예식장 예약, 웨딩드레스, 반지, 청첩장 모든 걸 혼자 준비했다.

그리고 전지훈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네가 알아서 해. 난 다 좋아.”

하지만 그때 고아린에게 가정을 만들자고 약속하며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겠다고 말한 사람도 바로 전지훈이다.

전신 거울 앞, 직원이 드레스의 주름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 드레스, 정말 고아린 씨를 위해 만든 것 같아요!”

은은한 조명 아래, 웨딩드레스가 부드럽게 빛났고 옆구리가 트여있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따라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거울 속 고아린은 화장은 완벽했지만 눈빛은 공허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말이다.

“신랑분이 보시면 분명 놀라실 거예요.”

직원이 감탄하듯 웃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저 무미건조할 뿐이었다.

그러자 직원은 잠시 그녀를 살피더니 급히 말을 바꿨다.

“아! 어제 프랑스에서 새로 들어온 신상 드레스가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가져올게요.”

고아린이 말릴 틈도 없이 직원은 달려 나갔다.

조용한 드레스룸 안, 고아린은 손바닥으로 드레스의 매끄러운 천을 천천히 쓸었다.

무명지에 낀 반지가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지훈이 반지를 끼워주던 그날의 말.

“아린아, 내가 꼭 완벽한 결혼식 만들어줄게.”

완벽한 결혼식?

드레스 피팅조차 한 번 안 따라오는 신랑이 그걸 완벽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전지훈은 고아린의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주던 순간 정말 두 사람의 미래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공지연을 떠올렸을까.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보낸 사람이 표시되어 있지 않는 익명 메일, 그 문자엔 영상 하나가 첨부돼 있었다.

터치하는 순간, 피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화면 속, 전지훈의 차 뒷좌석에는 공지연이 그의 다리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붉은 드레스가 허벅지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고 입술로 그의 귓가를 살짝 물었다.

“정말 웨딩드레스 보러 안 가? 혹시 화내면 어쩌려고?”

전지훈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화 안 낼 거야.”

“그렇게 확신해?”

“어차피 바보니까. 내가 뭐라 해도 다 믿잖아.”

그는 코웃음을 쳤다.

“고아린이랑은 7년 됐어. 그렇게 원하던 결혼식, 명함, 다 줬잖아. 회사 위해 결혼하는 게 더 이득이야. 드레스니 웨딩이니 신나서 알아서 준비하더라.”

전지훈은 말을 마치고 공지연에게 입을 맞췄다.

이윽고 입맞춤 소리와 숨소리가 섞여 불쾌한 물소리처럼 들렸다.

영상은 그 장면에서 끊겼다.

화면 속, 전지훈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가 있었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

고아린이 믿었던 결혼 전부 다 전지훈의 계산에 불과했다.

그가 속삭이던 사랑은 모두 연기였다.

거울 속 웨딩드레스 차림의 자신을 보자 고아린은 웃음이 터질 만큼 자신이 비참하고 우스워 보였다.

그녀는 베일을 벗어 던지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드레스의 긴 치맛자락이 발을 걸었지만 고아린은 멈추지 않았고 마치 탈출이라도 하듯 달렸다.

복도를 돌자 직원들의 속삭임이 귓가에 들려왔다.

“저 사람 또 혼자 왔대.”

“신랑은 한 번도 같이 안 왔다면서? 전화도 없다던데.”

“혹시 남의 남자 뺏은 불륜녀 아닐까? 요즘 그런 케이스 많잖아.”

“쉿, 그건 너무했다. 그래도 불쌍하긴 하네.”

고아린은 그 말에 숨이 막혀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세상에선 불쌍한 제3자로 보이고 있었고 7년 동안의 사랑은 그저 그런 비극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비틀거리며 돌아서던 고아린의 발끝이 드레스 자락에 걸렸다.

몸이 앞으로 기울며 균형을 잃는 순간 누군가의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고아린은 그대로 낯선 가슴팍에 안겨버렸다.

나무 향, 짙은 시더우드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내 고개를 들자 낯선 남자의 깊고 짙은 시선과 마주쳤다.

성북시 명문 강씨 가문의 후계자, 강서 그룹의 대표, 강도윤.

백 년을 이어온 재벌 가문, 정계와 재계 모두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름.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남자, 강씨 가문의 기둥 같은 인물, 감히 더럽힐 수 없는 존재.

냉정하고 절제된 미소에 한 번도 감정을 드러낸 적 없는 완벽한 남자.

강도윤의 모든 행동은 예법이었다.

그의 모든 옷차림은 규율이었다.

목의 타이, 소매의 문양 하나까지 모두 강씨 가문의 전통에 맞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렇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남자이기에 성북시의 모든 명문가 딸들이 강도윤을 동경했고 고백도 많이 했다.

하지만 29살이 된 그에게 단 한 명의 여자도 없었다.

강도윤은 마치 세속의 먼지조차 닿지 않는 고지의 꽃 같았다.

고아린은 그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는 고요한 호수 같았지만 깊은 어딘가에서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조심하세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가볍고 따뜻했다.

그제야 그녀는 두 사람의 자세를 인식했다.

자신의 손바닥은 강도윤의 가슴 위에 닿아 있었고 슈트 안쪽으로 전해지는 온기와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강도윤은 손으로 고아린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드레스의 트임 사이로 닿은 손바닥의 온기가 피부를 따라 번지자 뜨겁고 아찔했다.

그는 늘 그렇듯 검은 슈트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금빛 핀 하나가 조명 아래서 은은히 빛났다.

강도윤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고아린의 눈을 바라보다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고 그녀의 볼 또한 달아올랐다.

‘혹시 방금 직원들의 말을 들었을까? 이 남자도 날 그렇게 생각할까?’

완벽하고 고결한 강도윤의 세계에 자기 같은 여자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아린은 급히 몸을 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강 대표님.”

그녀는 급히 일어서다 드레스 자락에 또 발이 걸려 다시 휘청거렸고 강도윤은 다시 손을 뻗어 부축해 줬다.

“조심하세요, 고아린 씨.”

‘뭐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야?’

고아린이 어리둥절한 채 서 있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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