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후, 웨딩숍.직원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고아린 씨, 오늘도 혼자 오셨네요?”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결혼 날짜를 확정한 이후로 지금까지 예식장 예약, 웨딩드레스, 반지, 청첩장 모든 걸 혼자 준비했다.그리고 전지훈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네가 알아서 해. 난 다 좋아.”하지만 그때 고아린에게 가정을 만들자고 약속하며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겠다고 말한 사람도 바로 전지훈이다.전신 거울 앞, 직원이 드레스의 주름을 매만지며 말했다.“이 드레스, 정말 고아린 씨를 위해 만든 것 같아요!”은은한 조명 아래, 웨딩드레스가 부드럽게 빛났고 옆구리가 트여있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따라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거울 속 고아린은 화장은 완벽했지만 눈빛은 공허했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말이다.“신랑분이 보시면 분명 놀라실 거예요.”직원이 감탄하듯 웃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저 무미건조할 뿐이었다.그러자 직원은 잠시 그녀를 살피더니 급히 말을 바꿨다.“아! 어제 프랑스에서 새로 들어온 신상 드레스가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가져올게요.”고아린이 말릴 틈도 없이 직원은 달려 나갔다.조용한 드레스룸 안, 고아린은 손바닥으로 드레스의 매끄러운 천을 천천히 쓸었다.무명지에 낀 반지가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전지훈이 반지를 끼워주던 그날의 말.“아린아, 내가 꼭 완벽한 결혼식 만들어줄게.”완벽한 결혼식?드레스 피팅조차 한 번 안 따라오는 신랑이 그걸 완벽이라 부를 수 있을까.전지훈은 고아린의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주던 순간 정말 두 사람의 미래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공지연을 떠올렸을까.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보낸 사람이 표시되어 있지 않는 익명 메일, 그 문자엔 영상 하나가 첨부돼 있었다.터치하는 순간, 피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화면 속, 전지훈의 차 뒷좌석에는 공지연이 그의 다리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붉은 드레스가 허벅지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고 입술로 그의 귓가를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