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번엔 내가 당신을 고용하죠.”
강서하는 법인카드를 손가락으로 밀어 돌려보냈다.
“싫어요.”
윤태오는 카드를 다시 가져가지 않았다.
“금액이 부족합니까?”
“돈 문제가 아니고, 의뢰가 겹쳐요. 오늘 당신 찍으라고 돈 준 인간이 따로 있는데 내가 당신 돈까지 받으면 양쪽에서 개새끼 되는 거잖아.”
“한쪽은 이미 당신을 속였는데.”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고.”
태오는 계약서를 접었다.
“그럼 고용은 취소하죠.”
서하가 의자를 밀다 멈췄다.
“이렇게 쉽게?”
“대신 하나만 약속해요.”
“뭔데.”
“오늘 찍은 원본, 지우지 마.”
서하의 눈이 그에게 돌아갔다.
“왜요?”
“22시 14분부터 22시 31분까지. 그 구간은 특히.”
정확한 시간이었다. 자신이 윤태오를 찍었고 누군가는 반대로 자신을 찍었다. 강해진 이름으로 잡힌 1807호까지 전부 그 시간 안에 엮여 있었다.
“그게 당신 알리바이라도 돼?”
“될 수도 있고.”
“뭘 했길래 알리바이까지 필요해.”
“그걸 지금 말하면 재미없잖아.”
“나랑 연애 예능 찍어요?”
“아까 내 셔츠 안까지 당겨 찍던데 비슷한 건가 싶어서.”
“또 그 소리.”
“싫어요?”
“아니. 더 해봐. 녹음해서 성희롱으로 돈까지 뜯게.”
“그럼 정확히 해야겠네. 난 당신한테 벗으라고 한 적 없어.”
“내가 언제 벗는댔어?”
“방금 더 해보라며.”
“말을.”
“아쉽네.”
“씨발.”
서하가 헛웃음을 터뜨리자 태오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향해 있었다.
“메모리카드.”
“아까 지우지 말라더니 이제 가져가게?”
“복사 상태만 확인할 겁니다. 싫으면 안 줘도 되고.”
“당신 성격이면 침대에서도 계약서부터 내밀겠네.”
“필요하면.”
“미친.”
“중간에 마음 바뀌면 끝낸다는 조항도 넣고.”
“거기까지 계약해야 돼?”
“당신 같은 사람은 어디까지 괜찮은지 정해두는 게 편하잖아.”
서하는 대꾸하지 않았다. 태오는 카드를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고, 손을 편 채 기다렸다.
결국 선택은 자신 몫이었다.
서하는 메모리카드를 뺐지만 바로 올려놓지는 않았다.
“이 안에 뭐가 있는데요.”
“지금은 내가 찍혀 있죠.”
“그건 알아.”
“나중엔 그게 문제가 될 겁니다.”
“얼굴값도 정도껏 해.”
“내 얼굴 얘기가 아니고.”
태오가 카드 쪽을 봤다.
“시간.”
서하는 몇 초 더 버티다가 카드를 그의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태오는 휴대용 리더기에 꽂아 사진을 빠르게 넘겼다. 그러다 22시 19분 사진에서 멈췄다.
“이거.”
“뭐가요.”
“시각 확인해요.”
“22시 19분 43초.”
“원본 그대로죠?”
“당연하지.”
“편집한 적 없고?”
“내 일 우습게 봐요?”
“그래서 당신한테 맡기려던 겁니다.”
그는 같은 시간대 사진을 몇 장 더 확인했지만 복사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안 가져가요?”
“당신이 갖고 있어요.”
“나 못 믿는다며.”
“내 쪽이 더 많이 털리니까.”
서하가 그를 봤다.
“누구한테.”
“아직 이름 붙이면 안 되는 놈들.”
“또 비밀.”
“당신도 많잖아. 6년째 찾는 사람 얘기부터 안 했고.”
서하의 손이 카드 케이스 위에서 멈췄다.
“그 얘기 함부로 하지 마.”
“그래서 이름은 안 불렀잖아.”
“존나 얄밉네.”
“그건 자주 듣습니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첫 의뢰인이었다.
[의뢰 취소합니다.]
이어 2번째 문자가 들어왔다.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전부 삭제해주세요. 삭제 확인 후 의뢰비의 3배를 추가 지급하겠습니다.]
서하는 화면을 다시 읽었다.
태오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삭제하래요?”
“당신이 보냈어요?”
“내가 보냈으면 3배 같은 쪼잔한 금액 안 부릅니다.”
“재수 없어.”
3번째 메시지가 왔다.
[메모리카드도 폐기해주세요.]
이건 의뢰 취소가 아니었다. 흔적을 없애달라는 요구였다.
서하는 메시지를 캡처한 뒤 카드를 케이스에 넣었다.
“이제 알겠어요?”
“뭘.”
“왜 저 시간을 남겨야 하는지.”
“누가 당신 흔적을 지우고 있다?”
“지우는 것보다 나쁘죠.”
“뭔데.”
“바꾸고 있어요.”
태오가 22시 19분 사진을 가리켰다.
“내가 1807호에 없었던 걸로.”
“근데 당신은 있었잖아.”
“그래서 원본이 필요한 겁니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 번호는 발신자 표시가 없었다.
사진 1장이 첨부돼 있었다.
서하는 파일을 열었다.
1807호.
촬영 시각은 22시 19분 43초.
자신이 찍은 사진과 정확히 같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창가가 비어 있었다.
윤태오가 사라져 있었다.
서하는 휴대전화와 메모리카드를 번갈아 봤다.
두 사진을 나란히 띄웠다. 커튼 주름도 같았고 테이블 위 와인잔 위치도 같았다. 검은 원피스 여자의 팔 각도까지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딱 하나, 윤태오뿐이었다.
“합성?”
“그렇게 단순하면 좋겠는데.”
“원본 시간까지 맞췄잖아.”
“그래서 당신 카드가 필요한 거고.”
“이게 뭐야.”
태오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됐네.”
“뭐가.”
“당신이 찍은 걸 누가 먼저 고치고 있잖아.”
그가 메모리카드 케이스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원본만은 절대 지우지 마.”
“강해진 씨를 3일 전에 봤어요.”여자의 말이 끝난 뒤에도 강서하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어디서요.”“SERIN LAB 건물 뒤편.”“혼자였어요?”“차에 타는 것까지만 봤어요. 얼굴은 확실해요.”사진만으로는 부족했다.6년 동안 너무 많은 가짜를 봤다.서하는 사진을 복제해 보관한 뒤 여자에게 더 묻지 않았다.대신 문재경에게 연락했다.“1812호 송출 다시 살릴 수 있어?”“왜.”“우리가 미끼가 될 거야.”“또?”“이번에는 저쪽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해.”재경이 욕을 삼켰다.“뭘 흘리려고.”“윤태오가 MIRROR 원본을 나한테 넘긴다는 소문.”맞은편에 있던 태오가 말했다.“그리고 우리가 다시 호텔에 들어간다?”“응.”“밀회처럼?”“그래야 물겠지.”태오가 잠깐 서하를 봤다.“어디까지 연기할 건데.”“카메라가 붙을 만큼.”“그게 어디까지냐고.”서하는 가방을 닫았다.“현장에서 내가 정해.”“당신 혼자?”“싫어?”“아니. 중간에 나한테도 물어봐.”그 말에 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날 밤 11시 20분.둘은 다시 루멘 호텔에 들어갔다.이번 객실은 1815호.박유진이 과거 비인가 카메라 점검 기록이 있던 방으로 골라줬다.문이 닫히자 재경의 음성이 이어폰으로 들어왔다.―신호 아직 없음.서하는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태오에게 다가갔다.“재킷 벗어.”“명령입니까.”“연기.”“둘이 차이가 점점 없어지는데.”“입 닥치고.”태오가 재킷을 벗었다.서하는 일부러 그의 셔츠 깃을 정리했다. 카메라가 있다면 둘이 가까워졌다는 장면부터 물어야 했다.―신호 하나 잡힘.재경 목소리가 들렸다.서하는 태오 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오른쪽 천장.”“봤어.”“보지 마.”“당신만 보고 있잖아.”“그 말도 연기지?”“그건 아닌데.”서하가 그의 가슴을 손끝으로 밀었다.침대 가장자리까지.태오가 앉자 서하는 바로 앞에 섰다.“지금부터 좀 더 붙을 거야.”“괜찮아.”“허리 잡아.”태오
강해진의 마스터키.그걸로 접속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강서하는 서버 로그를 3개로 복제해 따로 보관한 뒤 노트북을 닫았다.“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네.”윤태오가 맞은편에서 말했다.“계정이 움직이는 거지 사람이 움직인다는 증거는 아니야.”“알아.”“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얼굴은 아닌데.”서하가 쏘아봤다.“내 얼굴 분석하지 말라니까.”“미안.”순순히 물러나는 게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이상했다.그때 NOCK 현관 벨이 울렸다.문재경은 아직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았다.서하가 인터폰을 확인하다가 멈췄다.“왜.”태오가 화면을 보려 하자 서하가 손으로 가렸다.“아는 여자.”“누군데.”“당신이랑 처음 1807 들어갔던 여자.”태오의 얼굴이 달라졌다.서하는 문을 열었다.여자는 6화에서 봤던 모습보다 수척했다. 검은 보안 밴드는 없었고 모자도 쓰지 않았다.“들어오세요.”여자는 태오를 발견하자 발을 멈췄다.“윤 대표님도 계시네요.”“왜 왔습니까.”“강 대표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서하가 의자를 내줬다.“그때는 당신이 윤태오 믿지 말라고 했죠.”“네.”“지금도 그래요?”여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휴대전화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화면에는 오래된 영상이 떠 있었다.호텔 객실.침대 맞은편 벽.그리고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여자.서하가 화면을 멈췄다.“본인이에요?”“네.”“몰래 찍힌 거고?”“3년 전부터.”여자가 두 손을 맞잡았다.“처음에는 전 남자친구가 찍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른 장소 영상까지 나왔어요. 호텔, 회사 휴게실, 아파트 주차장.”“MIRROR.”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이름을 알게 된 건 윤 대표님 덕분이에요.”서하가 태오를 봤다.“당신이?”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여자가 먼저 말했다.“저 사람 없었으면 전 아직도 협박당하고 있었을 거예요.”“어떻게 구했는데요.”“돈 내지 말라고 했어요.”서하의 눈썹이 움직였다.“협
KANG HAE JIN.개발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 강서하는 노트북을 닫고 싶었다.그런데 손은 반대로 움직였다.“재경아. HJ-Restore 개발 이력 전부 찾아.”문재경이 원격 화면을 열었다.“이미 뒤지고 있어. 이거 단순 복원툴 아니야.”“뭐가 더 있는데.”“후기 버전에 합성 탐지 모듈이 붙었어.”서하가 화면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HJ-Restore v2.4]손상 프레임 복원.[v3.1]영상 간 얼굴 일치도 분석.[v3.6]합성 프레임 탐지.[v3.8]원본 추정값과 생성값 분리 표시.윤태오가 말했다.“그러면 강해진은 가짜 영상을 만드는 모델을 만든 게 아니라.”“가짜를 찾는 모델을 만든 거네.”재경이 맞장구쳤다.“원래 목적은 거의 확실히 그쪽이야. 깨진 영상을 복원하면서 새로 생성한 픽셀이 원본처럼 취급되면 증거 가치가 박살 나니까.”서하는 50화 딥페이크 영상을 다시 띄웠다.누군가는 그 기능을 반대로 사용했다.가짜를 찾기 위한 알고리즘을 뜯어내서, 탐지하기 어려운 가짜를 만드는 데 써먹었다.“언니 코드 훔쳐간 거야?”재경이 대답을 미뤘다.“그럴 수도 있고.”“다른 가능성은.”“직접 넘겼을 수도 있어.”서하의 손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태오가 재경을 봤다.“확정 아닌 말은 조심하죠.”“나도 확정이라고 안 했습니다.”“둘 다 그만.”서하는 소스 주석을 열었다.오래된 개발 메모가 수십 개 남아 있었다.[복원은 사실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추정 프레임은 반드시 원본과 분리할 것.][탐지값 90% 이상이어도 사람이 최종 판단.]언니다운 문장이었다.화면을 고치되 화면을 믿지 않는 사람.그런데 조금 아래에는 다른 메모가 있었다.[특정 얼굴은 탐지 대상에서 제외 가능.]서하가 멈췄다.“이게 뭐야.”재경이 코드를 확인했다.“화이트리스트 비슷한 거야.”“특정 사람 얼굴은 합성돼도 경고 안 뜨게?”“기능상으론 가능해.”서하의 속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왜 이런 걸 만들었어.”“테
[강서하 × 윤태오, 어젯밤 원본.]공개까지 58분.강서하는 화면을 캡처해 문재경에게 링크를 보냈다.“올라오기 전에 서버 흔적 잡아.”재경이 바로 답했다.“예약 파일이면 캐시 남을 수 있어. 근데 제목 꼬라지 보니까 일부러 네가 보게 만든 것 같은데.”“알아.”현관 밖에 있던 윤태오가 말했다.“내려가 있을게.”“왜.”“영상 뜨면 당신 혼자 보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서하가 문을 더 열었다.“도망가려고?”“선택권 주는 중.”“들어와.”태오는 잠깐 그녀를 봤다.“확실해?”“영상에 당신도 나온다며. 같이 봐.”그제야 안으로 들어왔다.둘은 노트북 2대를 펼쳤다.52분.41분.23분.조회수는 계속 올라갔다. 아직 영상도 없는데 댓글부터 붙었다.[몰카업자답네.][호텔 다음엔 집이냐.][둘이 짜고 친 거 아니냐.]서하는 전부 저장했다.태오가 물었다.“안 봐도 돼.”“봐야 가짜인지 깨지.”“가짜인 건 이미 알잖아.”“어디가 가짜인지 증명해야지.”정각.페이지가 새로고침됐다.영상이 떴다.첫 장면은 진짜였다.전날 밤 서하의 집 복도 CCTV. 둘이 함께 현관으로 들어가는 장면.그다음부터는 없었던 일이었다.침실과 닮은 공간.서하와 태오를 닮은 두 사람이 가까이 붙어 있었고, 얼굴은 소름 끼칠 만큼 자연스러웠다. 조명 방향도, 체형도, 전날 입었던 옷까지 같았다.서하는 영상의 소리를 껐다.그래도 손끝이 굳었다.“씨발.”태오가 멈췄다.“그만 봐.”“놔.”서하가 다시 재생했다.노골적인 장면은 교묘하게 프레임 밖으로 밀어놓고 얼굴과 대화만 또렷했다.그게 더 악질이었다.진짜라고 믿게 만들기 충분했다.영상 속 서하가 말했다.―오늘 찍은 건 다 지워.영상 속 태오가 대답했다.―돈은 받았잖아.서하가 바로 멈췄다.“내 목소리까지.”재경에게서 전화가 왔다.“봤어?”“응.”“합성이야. 확실해.”“근거.”“입 주변 프레임 4군데 튀고 호흡 잡음 반복돼. 음성도 예전 샘플 섞었어.”“얼굴
메모리카드 1개가 사라져 있었다.강서하는 곧바로 현관부터 확인했다.도어락 파손 없음.창문 잠금 정상.베란다도 이상 없음.그런데 현관 센서 로그에 낯선 기록 하나가 남아 있었다.04시 17분.문은 열리지 않았는데 도어락 관리 모드가 14초 동안 활성화돼 있었다.“마스터키.”윤태오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서하는 바로 건물 관리실에 전화했다.20분 뒤 CCTV 원본을 받았다.새벽 4시 16분.관리업체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공구가방 하나.마스크.모자.서하는 영상을 멈췄다.“정기점검 일정 있었어요?”관리소장이 고개를 저었다.“없었습니다.”“이 사람 직원 맞아요?”“외주업체 쪽인데… 잠깐만요.”명단을 뒤지던 관리소장의 얼굴이 굳었다.“지난달까지만 일했던 사람입니다. 김형준.”“퇴사했는데 마스터 권한은?”“반납 처리됐어야 하는데.”서하가 웃지도 못했다.“됐어야 한다는 말 제일 싫은데.”김형준의 출입카드는 이미 폐기된 번호였다.그런데 새벽 기록상 정상 인증으로 찍혀 있었다.문재경에게 출입 로그를 넘기자 10분도 안 돼 답이 왔다.[복제카드 쓴 흔적.][원본 권한값 그대로 베꼈어.]서하는 김형준 계좌와 최근 행적을 합법적으로 확인 가능한 범위부터 추적했다.결국 하나가 걸렸다.건물 관리업체가 외주비를 지급하던 계좌에 2주 전 별도 입금 800만 원.송금자는 차명법인.그리고 그 법인의 실질 관리처가 한 번 더 꺾인 뒤 연결된 곳.MIRROR 관련 업체였다.태오가 말했다.“매수된 거네.”“내 집 들어오는데 800이면 생각보다 싸게 팔렸네.”“그 말 하지 마.”“왜.”“당신 집 주소랑 생활 동선이 돈으로 거래됐다는 얘기잖아.”서하는 그를 봤다.“갑자기 보호자 모드 하지 마.”“내 집으로 가.”“싫어.”“서하야.”“싫다고.”태오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서하는 카메라 가방을 다시 열었다.“여기서 나가면 저쪽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 겁먹고 생활 바꾸고, 숨어버리는 거.”
영상 속 강해진은 카메라 위치를 알고 있었다.그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강서하는 재생을 멈춘 채 노트북을 닫았다.“오늘은 더 못 보겠다.”윤태오도 다시 열라고 하지 않았다.“집에 데려다줄게.”“혼자 갈 수 있어.”“알아.”“그럼 왜.”“나도 더 보기 싫어서.”서하는 잠깐 그를 봤다.피해 영상 안에 자기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가해자인지, 구하려던 사람인지조차 아직 모른다.그런데 지금 옆에 있는 남자는 그 영상 속 피해자였다.“우리 집 가.”태오가 움직임을 멈췄다.“확실해?”“그 질문 오늘 몇 번 하게.”“필요하면 계속.”“가자고.”이번에는 그가 더 묻지 않았다.서하의 집에 도착한 건 새벽 4시 가까이였다.현관문이 닫히자 서하는 가장 먼저 카메라 가방을 침실 옆에 내려놨다.태오가 그걸 봤다.“오늘은 안 찍어?”“안 찍어.”“왜.”“감정 섞였으니까.”“당신 규칙?”“응.”서하는 카메라 전원을 완전히 껐다.“오늘은 기록 안 남길 거야.”태오가 재킷을 벗다가 멈췄다.“그럼 난 왜 여기 있어.”“몰라서 왔겠어?”“그걸 당신 입으로 듣고 싶은데.”“진짜 피곤하게 산다.”“중요하니까.”서하는 한 걸음 다가갔다.“당신이랑 있고 싶어서.”“사건 때문에?”“아니.”“강해진 영상 봐서 흔들린 거 아니고?”“아니.”“내가 피해자라서 불쌍해서도?”“그 말 한 번만 더 하면 쫓아낸다.”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뭐가.”“이유.”서하는 그의 셔츠를 잡았다가 멈췄다.“잡아도 돼?”이번엔 태오가 웃지 않았다.“응.”손가락이 셔츠에 닿았다.“키스해도?”“응.”“내가 먼저?”“그건 더 좋고.”“말 많아.”서하가 먼저 입을 맞췄다.이번에는 호텔에서처럼 카메라를 의식할 필요도, 누군가 보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태오의 손이 허리에 닿았다가 그대로 멈췄다.“더 가까이 와도 돼?”서하가 대답 대신 그의 셔츠를 당겼다.“이 정도면 대답 됐어?”“확실하네.”다시 입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