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자신의 생명을 이렇게 허비하는 게 달갑지 않아 여전히 밖으로 나가서 가족과 친구들을 찾고 싶었다.정말 이대로 하루하루 어둠 속에서만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정말 원망스러웠다.허종혁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어차피 이연서는 그가 구한 사람이었고 먹고 마시는 것까지 다 챙겨주는데 그를 위해 목숨 정도는 바칠 수 있지 않겠나.‘당연한 것 아닌가?’게다가 허종혁이 없었다면 이연서는 어느 황량한 들판에서 죽었을지도 몰랐다.‘이 정도 일도 그냥 못 넘어가는 거야? 참 웃기는 사람이네.’“됐어. 넌 여기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돌아왔을 때 기분이 좋으면 데리고 나가서 산책도 시켜줄 테니까.”그 말을 듣고 이연서의 눈이 반짝였다.그러고는 허종혁의 시선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허종혁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이연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안소현과 합류하러 서둘러 떠났다.처리할 일이 있었기에 계속 여기에 있을 수 없었다.그것만 아니면 이연서와 계속 함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다른 건 둘째 치고 그녀의 몸매와 외모가 확실히 그의 취향이어서 어떤 면으로 보나 매우 만족스러웠다.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허종혁은 당분간 절대 이연서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이연서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해 봤자 소용없었다.이연서는 허종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조용히 침대에 엎드린 그녀는 부서진 유리 인형처럼 얼굴에 아무런 빛이 없었고 더 이상 웃지도 않았다.입꼬리를 올려도 그 의미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이연서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무기력한 동시에 이렇듯 한심한 자신이 혐오스러웠다.이 지경이 되어서도 죽는 게 두려운 건지, 조금만 용감했더라면 이 악마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하지만 이연서는 정말로 두려웠다.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미련도 남았으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이대로 모래알처럼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이연서는 겁이 났다. 이대로 지
원래는 삶에 대한 의욕조차 잃고 있던 이연서였다.그런데 허종혁이 해외에 나간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눈빛이 번쩍였다.‘허종혁이 출국한다고? 그렇다면 적어도 여기 없는 동안엔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그 미묘한 표정을 허종혁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굳어지며 분노가 치밀었다.허종혁은 성큼 다가와 이연서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며 낮고 날 선 목소리로 내뱉었다.“뭐야, 내가 떠난다고 하니까 그렇게 기분이 좋아?”그의 손끝이 점점 힘을 주며 턱을 죄었다.“잘 들어. 나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얌전히 있어. 알겠어?”이연서는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없는 날들을 상상하니 그때야말로 진짜 자유일 것 같았다.이 남자와 함께 있는 매 순간이 역겨웠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고 토할 것만 같았다.“꺼져. 나한테서 사라져.”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허종혁은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그는 이를 악물며 손에 더 힘을 줬다.그녀에게 먹을 것도, 잘 곳도 제공해줬는데 왜 여전히 달라지는 게 없는 건지 그는 혼란스러웠다.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연서, 넌 정말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년이야. 이렇게 오래 잘해줬는데 왜 하나도 변한 게 없지?”그 말에 이연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잘해줘? 웃기지 마. 넌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비열한 인간일 뿐이야. 지금 날 가둬놓고 있으면서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허종혁의 눈빛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엔 광기와 살기가 뒤섞여 있었다. 손끝의 압박이 점점 더 강해졌다.“내가 아니었으면 넌 진작 죽었을 거야. 내가 널 산속에서 주워 왔고 네 목숨은 내 거야.”그 말을 들은 이연서는 온몸이 굳었다. 허종혁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 목숨을 나한테 되돌려주고 싶다면 방법이 없진 않지.”그는 일부러 말을 끊었고 예상대로 이연서의 눈빛이 흔들렸다.턱을 누르던
그렇게 하면 마치 자신이 남자에게 매달려 사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그녀에게도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한 남자에게 집착하며 시간을 낭비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알겠어요. 진짜 할 말이 있어서 전화한 거예요.”호흡을 가다듬은 허종혁이 낮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말해봐. 무슨 일인데, 자기야.”허종혁의 목소리는 원래부터 낮고 묵직했고 안소현은 그 음성을 늘 마음에 들어 했다.그래서 그가 ‘자기야’라고 부를 때마다 그녀는 그 말 한마디에 쉽게 마음이 녹아내렸다.순간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였다.“나 곧 해외에 좀 나가려고요.”“같이 갈까?”안소현은 눈이 반짝였다.“네, 바로 그거예요.”혼자 가면 여러모로 불편할 수도 있지만 허종혁이 함께라면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그는 어떤 일이든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옆에 두면 외롭지 않았다.일도 보고, 심심함도 달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허종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근데 왜? 갑자기 왜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거야?”그는 반대하는 마음은 없었고 단지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었다.물론 그에게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허종혁의 시선이 천천히 방 한쪽으로 향했다.그곳에는 꽁꽁 묶인 채로 의자에 앉아 있는 이연서가 있었다.그녀의 입에는 수건이 꽉 막혀 있어 입 밖으로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이건 지난번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조치였다.그는 한 치의 허점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안소현이라는 여자를 그는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자였다.그런 존재를 포기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남자란 본래 그렇다. 모든 걸 다 가지려는 욕심, 두 여자를 다 놓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허종혁의 물음에 안소현은 김미진 집에서 들은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이야기해 주었다.그리고 자신의 추측도 덧붙였다.“사실 이 일, 난 전에 엄마한테도
“아줌마, 여기 오래 머물지 못할 거 같아요. 집에 가서 짐 좀 챙기고 항공편도 알아봐야 해서요.”김미진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연신 당부했다.“그래, 그래. 초연아, 꼭 조심해야 한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제일 중요한 건 네 안전이야. 그걸 꼭 기억해야 해.”민초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줌마. 반드시 조심할게요.”그 말을 남기고 민초연은 곧장 돌아서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반드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도착하면 바로 상황을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그 말이 김미진의 마음에 딱 들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이었다.잘 아는 지인이 직접 가는 게 훨씬 나았다. 그렇게 하면 예상 밖의 일이 생길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김미진은 문 앞에 서서 떠나가는 민초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이제 아이가 다 컸구나.’이젠 예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함과 허전함이 동시에 밀려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김미진의 마음 한구석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맴돌았다.그때, 이 집사가 딸기가 담긴 접시를 들고 김미진 뒤에 다가왔다.그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웠고 복잡했다.그는 아까 김미진과 민초연이 나눈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있었다.처음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하지만 곱씹어 보니 뭔가 이상했다.‘김미진이 지금 하는 말이 단순한 부탁일까? 결국은 민초연을 이용해 안다혜를 보러 가려는 게 아닐까?’이런 일은 사실 김미진이 얼마든지 사람을 시켜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그런데 굳이 어린 애 같은 민초연을 보내다니, 이건 뭔가 석연치 않았다.이 집사는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훗날 민초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순진한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상처받을까 생각했다.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내가 왜 이제야 눈치챘을까. 사모님이 이렇게 속이 깊은 분이었다니.’아니면 그동안 자신의 앞에서는 절대 그
이어서 김미진은 급히 이 집사를 불렀다.“이 집사, 얼른 가서 초연이 먹게 딸기 좀 가져와요.”“네, 알겠습니다.”이 집사는 대답을 마치자마자 곧장 부엌으로 가서 과일을 씻기 시작했다.민초연은 김미진 옆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아줌마, 지금 다혜 상태가 어떤가요? 전에 한 번 병원에 갔을 땐 아직 깨어나지 못했는데 지금도 그대로인가요?”사실 민초연은 이미 그 답을 짐작하고 있었다.만약 안다혜가 깨어났다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연락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는 걸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고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김미진의 얼굴에는 바로 슬픔이 번졌고 그 표정을 본 민초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이지? 왜 아줌마 얼굴이 이렇게 어두워 보이지? 혹시 안다혜 쪽에서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걸까?’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민초연은 점점 자책감에 사로잡혔다.‘내가 이러고도 친구야? 이렇게 될 때까지 다혜의 상황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니.’김미진은 그런 민초연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금 다혜는 해외로 갔어.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그 말을 듣자 민초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듯했다.“아줌마,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이제야 말씀하셨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이쪽 병원 의사들은 다혜의 몸 상태를 이유로 이동하는 것을 절대 반대했었다.그런데 윤해준이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데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민초연은 속에서 분노가 치미는 동시에 의아했다.평소의 윤해준이라면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신중했으며 무엇보다 다혜를 진심으로 아꼈다.그런 윤해준이 이런 판단을 내리다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김미진은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정말이야. 요즘엔 나한테 전화도 한 통 없고 무슨 상황인지 나
민씨 가문의 두 어른은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딸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도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민초연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아빠, 엄마, 제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지금 제 가장 친한 친구가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있겠어요?”그녀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감정적으로도, 이치로도 그건 옳지 않아요.”민초연의 엄마는 남편을 바라보았다.두 사람 모두 민초연과 안다혜의 사이가 아주 각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며 자매처럼 지내왔으니 그 정이 얼마나 깊은지 모를 리 없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친구가 위급한 상황에 놓였는데 민초연한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그건 부모로서도 말이 되지 않았다.게다가 두 가문 사이도 오래전부터 왕래가 깊었기에 민초연이 직접 병문안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렇게 생각하니 두 어른의 마음도 조금은 놓였다.결국 민초연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그래, 좋아. 하지만 꼭 조심해야 해.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연락해.”민초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엄마. 도착하면 바로 전화할게요. 무슨 일 생기면 곧장 말씀드릴 거예요.”그제야 부부는 안도한 듯 딸을 현관까지 배웅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계속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그 외에는 그들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딸의 선택을 막지 않는 게 곧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지지였다.민초연이 병원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것도 김미진에게 물어봤기 때문이었다.한편, 김미진 역시 집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딸을 만나러 해외로 가야 하나,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걱정이 쌓여만 갔다.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