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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유월냥이
윤홍주는 걸음을 늦추고 강현우를 돌아보았다.

그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갑작스레 들려온 김영란의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산이, 천천히 가렴. 숙모가 따라가기 힘들구나.”

김영란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고 있었다.

“저 이제 안 뛸게요. 숙모님 기다리겠습니다.”

산이는 손에 엿사탕을 든 채 웃으며 뛰어왔다.

그 작은 얼굴에는 행복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윤홍주를 보는 순간, 그 웃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과 아쉬움이 떠올랐다.

김영란은 강현우를 발견하자 두 뺨에 수줍은 홍조가 피어올랐다. 촉촉한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

그녀는 강현우를 힐끗 바라본 뒤, 곧 시선을 피했다.

“아주버님, 형님.”

“형님께서 산이에게 엿사탕을 먹이지 말라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산이가 우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제가 멋대로 사 주었습니다.”

“형님께서 화가 나셨다면 모두 제 탓이오니, 저를 탓해 주십시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영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모습이었다.

반면 윤홍주의 시선은 잠시 산이에게 머물렀다가, 이내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녀가 산이에게 엿사탕을 금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함부로 많이 먹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김영란이 두 사람 사이를 흔드는 구실이 될 줄은 몰랐다.

윤홍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현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긴장한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마치 자신이 정말 김영란을 탓할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러나 윤홍주의 마음은 이미 오래된 우물처럼 고요했다.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괜찮다. 먹고 싶으면 먹거라.”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강현우의 마음이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조여 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심코 그녀를 붙잡으려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때, 산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숙모님! 숙모님께서 쓰러지셨어요!”

강현우는 내디디려던 발을 멈췄다. 그리고 곧장 몸을 돌려 김영란에게 다가갔다.

그는 김영란을 품에 안아 올린 뒤, 윤홍주를 바라보았다.

“홍주야, 미안하지만 의원을 좀 불러 줄 수 없겠느냐? 영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머니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윤홍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현우는 김영란을 안은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

산이도 손에 들고 있던 엿사탕마저 떨어뜨린 채 그 뒤를 따라갔다.

그 순간 윤홍주는 깨달았다.

강현우가 자신에게 주었던 연모도, 애틋한 마음도 이제는 모두 김영란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들이 그토록 걱정하는 김영란과 함께 살아가면 될 일이었다.

이윽고 윤홍주는 의원을 데리고 김영란의 처소로 향했다.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마당에 들어선 순간, 윤홍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눈앞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마당 한편에 놓인 그네, 그 위에 새겨진 나란히 피어난 연꽃 한 쌍.

모두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저 연꽃 무늬는 강현우가 직접 새긴 것이었다.

그리고 저 그네는 틀림없이 김영란의 손수건 속에 있던 바로 그 그네였다.

‘두 사람이 여기서 정을 나누고 있었다니...’

윤홍주는 더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그날 손수건 속 그림이 떠올라 있었다.

문에도 강현우가 남긴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방 안의 평상 위에는 그의 겉옷이 놓여 있었다.

그 옷은 윤홍주가 직접 지어 준 것이었다.

수없이 만져 본 것이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의원님, 영란이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강현우가 다급히 물었다.

의원은 난처한 얼굴로 잠시 윤홍주를 바라보았다.

“잠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현우는 의원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침상 위에 누워 있던 김영란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연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입가에 비웃음 어린 미소를 띠었다.

“형님, 대체 언제까지 현모양처인 척하실 겁니까? 그날 밤 형님께서 모두 보셨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 불꽃놀이는 아주버님께서 저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맺은 약조였지요.”

“아주버님께서는 제게 형님이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보내 드린 손수건은 보셨습니까? 혹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아주버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김영란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입을 열려던 순간, 때마침 강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영란은 즉시 눈을 감고 다시 힘없이 누워 있는 척했다.

강현우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 감추지 못한 기쁨을 눈빛에 드러냈다.

그는 윤홍주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홍주야, 이제 돌아가 쉬거라.”

“조금 있으면 어머니께서 오실 것이다. 어머니가 또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예.”

윤홍주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강현우가 바라보는 가운데,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아마도 너무 기뻤던 탓일 것이다.

윤홍주는 멀리 가지도 못했는데, 뒤에서 강현우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란아, 네가 드디어 회임했다더구나.”

‘으로 잘된 일이네. 김영란은 마침내 회임했고, 산이에게도 동생이 생겼으니.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일이 끝내 이루어졌구나.’

윤홍주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음은 이미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팠다.

방으로 돌아온 윤홍주는 자신의 물건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혼수와 지참물은 모두 인헌황후가 마련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영안후부의 살림을 보태느라 대부분을 써 버린 상태였다.

윤홍주는 남은 혼수를 하나씩 정리했다.

창고 열쇠와 장부도 함께 챙겨 두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긴 유품은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싸서 한쪽 궤짝 안에 넣었다.

“마님, 정녕 떠나실 생각입니까?”

여리는 윤홍주가 거둬 준 고아였다.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라곤 윤홍주 하나뿐이었기에, 누구보다 그녀에게 충성을 다했다.

“소인은 마님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윤홍주는 손을 멈추고 여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떠나려 한다는 것을 어찌 알았느냐?”

“소인은...”

여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윤홍주는 조용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떠나기 전에 네가 지낼 곳은 내가 마련해 주마. 이 돈을 가지고 가거라. 작은 점포라도 하나 열어 성실히 꾸려 나가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여리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 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만은 알고 있었다.

김영란이 후부에 들어온 뒤부터, 강현우가 윤홍주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겉으로는 여전히 깊은 정을 보이는 듯했지만,

그 다정함 뒤에는 윤홍주의 가슴을 찌르는 차가운 칼날이 숨어 있었다.

그 상처가 하나둘 쌓이고 쌓여, 마침내 윤홍주의 마음은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윤홍주는 여리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강현우는 영민하고 빈틈없는 사람이었다.

영안후부의 힘에 기대지 않고도 조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낼 만큼 능력이 뛰어났고, 남들보다 훨씬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리조차 그녀가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정작 강현우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답은 하나였다.

지금의 강현우에게 윤홍주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새벽, 윤홍주는 홀로 장생사로 향했다.

강현우는 오래전 그녀에게 약조했었다. 함께 장생사에 올라 이튿날 아침부터 경을 외우며 윤가군의 영령을 위로하고 복을 빌어 주겠다고.

그러나 지금 그는 산이와 김영란 곁을 지키느라, 자신과의 약조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윤홍주는 불전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린 뒤, 점괘를 하나 뽑았다.

이를 본 주지 스님이 조용히 말했다.

“윤 보살님, 오늘 보살님께서 청하신 일은 반드시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악연은 끊어지고, 새로운 인연은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윤홍주는 두 손을 모아 깊이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주지 스님.”

윤홍주가 영안후부로 돌아온 것은 다음 날 정오 무렵이었다.

강현우는 여전히 같은 거짓말을 반복했다. 지난 이틀간 공무가 바빠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미안함을 달래려는 듯 윤홍주에게 연지와 분을 사 왔다. 거기에 작은 흙인형 세 개까지 함께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말을 했다. 세 식구가 영원히 행복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홍주의 반응은 담담하기만 했다.

이를 본 강현우는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곧바로 산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산이는 얼른 품 안에서 그림 한 장을 꺼냈다.

“어머니, 이건 산이가 그린 거예요. 여기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산이예요... 잘 그렸죠?”

윤홍주는 그림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예쁘구나.”

그제야 산이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면 됐습니다. 어머니, 이제 화 안 나신 거죠?”

“그래.”

그 대답에 산이는 환하게 웃었다.

강현우는 조심스럽게 윤홍주의 눈치를 살폈다.

“홍주야, 오늘 서루(西樓)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은 어떻겠느냐?”

그는 미안한 마음에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었다. 윤홍주가 서루의 비법 계화떡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숙모님도 함께 가면 안 돼요? 숙모님도 자고 일어나시면 배고프실 거예요.”

산이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윤홍주를 바라보았다.

강현우 역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어딘가 어색함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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