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4대 종문 대회에서 최종 승리한 사람에게 보상으로 천년병제련을 준다고 들었습니다.”이장로가 한마디 보탰다.“이 약초는 남사에서 제공한 겁니다.”진서준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이 빛났다.이전에 유기명은 이번 4대 종문 대회에서 천년병제련이 보상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이장로가 그 사실을 확증한 것이다.마지막 약재인 천년병제련을 손에 넣으면 진서준은 진서라 체내의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게 된다.“김평안 씨, 혹시 참가할 겁니까?”이장로가 진서준의 표정을 보며 슬쩍 물었다.“당연하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김평안 씨가 의술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의술이 아니라 무도를 겨루게 됩니다.”이장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번에 참가하는 건 우리 4대 종문의 젊은 제자들입니다. 이 청년들은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실력이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이때, 은청준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나도 이번 4대 종문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넌 더 말할 필요 없겠지.”4대 종문에는 천재가 넘쳐났다.누구도 다른 세 종문에 역대급 천재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천년병제련은 반드시 제 손에 넣을 겁니다.”진서준이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이장로님, 이 천년병제련을 우리가 손에 넣으면 김평안 씨에게 양보할 수 있나요?”조슬기가 간절한 눈빛으로 이장로를 바라보며 물었다.은혜를 갚고 살아야 하는 건 뻔한 도리였다.더군다나 진서준은 조슬기 생명의 은인인데 이 은혜는 꼭 갚아야 할 것이다.“물론 양보할 수 있어. 우리 종문 내 다른 약재를 갖고 우승자와 교환할 수 있을 거야.”이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후, 다들 방을 떠나고 조슬기만 혼자 남아 침대에서 편히 휴식을 취했다.진서준도 쉬려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성동석이 진서준을 붙잡았다.“김평안 씨, 그 독충을 이용한 치료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성동석의 눈에는 기
조슬기의 목소리를 듣자 허윤진은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봐, 아침 일찍부터 널 찾잖아, 이래도 네게 관심 없다고 할 거야?”“너도 날 찾으러 왔잖아.”진서준은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이 여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난 저 여자랑 달라.”허윤진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 콧방귀를 뀌었다.“알겠어, 일단 먼저 숨어. 내가 저 여자를 돌려보낼게.”진서준의 말에 허윤진은 불만이 또 터졌다.“왜 내가 숨겨야 해?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왜 내가 저 여자를 피해야 해?”“그건 말이야...”진서준은 할 말을 잃었다.사실 진서준이 걱정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잠시 침묵을 지킨 후 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난 김평안이야, 진서준이 아니야. 너랑 너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의심할 수도 있어.”허윤진은 그제야 마지못해 화장실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숨을 곳이 전혀 없었고 화장실만이 유일한 은신처였다.문밖에 있던 조슬기는 방 안에서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진서준이 아직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조슬기가 돌아가려고 하던 찰나, 방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일어났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조슬기는 그제야 신난 표정을 지으며 진서준이 문을 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미안해요, 김평안 씨. 아침 일찍 휴식을 방해했네요.”조슬기의 얼굴에 죄송한 표정이 가득했다.“저를 왜 찾아오셨죠?”진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어젯밤 은 선배와 다른 선배들의 폭언에 관해 그분들을 대신해서 사과하러 왔어요.”조슬기는 어젯밤에 은청준 등 사람들이 진서준에게 불친절한 태도로 대하며 온갖 폭언을 날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다행히 진서준이 너그러워 그냥 웃어넘겼기에 어젯밤 병상에서 죽을 뻔한 조슬기를 다시 살려낼 수 있었다.“아가씨가 날 건드린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하는 건가요?”진서준이 담담하게 묻자 조슬기는 진진하게 대답했다.“김평안 씨, 제 선배들이 김평안 씨를 건
“내가 구한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가씨니까요.”진서준의 설명을 듣자 조슬기는 감탄과 존중이 섞인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알겠어요.”조슬기는 이렇게 공과 사를 완벽하게 구분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이해했으면 다행이네요.”진서준은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그럼 더 이상 휴식을 방해하지 않을게요, 먼저 가볼게요.”조슬기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에취!”화장실에 숨어 있던 허윤진이 갑자기 재채기했다.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조슬기가 듣기에 충분한 정도였다.조슬기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조슬기는 진서준의 방 안에 여자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서준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입꼬리가 떨렸다.언제 해도 좋을 재채기를 하필 지금 하다니, 또 골치 아픈 상황을 만든 것 같았다.“미안해요, 김평안 씨. 어젯밤에 김평안 씨가...”조슬기는 얼굴이 빨개지며 말끝을 흐렸다.조슬기는 남녀 간의 일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콜록, 콜록...”진서준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두 번 했다.“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조슬기는 황급히 도망치듯 떠났다.조슬기가 떠난 후, 진서준은 즉시 방문을 닫고 화장실로 가서 허윤진을 끌어냈다.“고의로 한 거지?”진서준은 어이없어 다짜고짜 따졌다.“내가 언제 재채기를 할지 어떻게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허윤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허윤진은 아까 화장실에 숨어 있었는데 갑자기 코가 간지러워져서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해버린 것이다.“너 자기 이미지가 조슬기 씨 마음속에서 무너지는 게 그렇게 신경 쓰여?”허윤진은 여전히 질투가 가득한 말투로 비꼬았다.“아니야, 조슬기 씨가 네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기만 하면 돼.”진서준도 너무 신경 쓰려고 하지 않았다.어차피 조슬기가 허윤진을 보지 못했다면 진서준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이제 나가도 돼.”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허윤진은 나가지 않고 오히려 진서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방금 너희
가장 무서운 건 공기가 갑자기 고요해지는 순간이다.진서준이 허윤진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한 장면을 조슬기가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조슬기는 충격을 받아 입이 떡 벌려졌다.두 사람이 방에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교류하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게다가 지금은 저녁이 아니라 아침이었다.조슬기는 순간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죄송합니다, 노크하지 않았네요.”정신을 차리고 나서 조슬기는 얼굴이 빨개지며 깜짝 놀란 새끼 토끼처럼 곧바로 줄행랑을 놓았다.하지만 허윤진은 여전히 진서준을 놓지 않았다.자기가 숨쉬기 어려워지자 그제야 진서준을 놓지 않았다.허윤진의 얼굴은 이미 홍조로 물들어 있어 백 년 된 와인보다 더 매혹적이었다.평소 대범해 보이던 허윤진이지만 이런 강제로 키스하는 행동은 난생처음이었다.“이 선물, 마음에 들어?”허윤진은 고개를 숙이고 진서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허윤진도 마음속으로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특히 다른 여자가 이 대담한 현장을 본 게 너무도 창피해 땅속에 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진서준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시퍼런 대낮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 진서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어휴, 이젠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할 수 없겠네.”진서준은 고개를 흔들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해명할 수 없으면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마. 어차피 저 사람들은 네 진짜 모습을 본 적 없잖아.”허윤진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자 진서준은 입을 열어 반박하려고 했지만 결국 말을 삼켰다.신수란과 조슬기는 진서준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지만 김평안과 진서준이 한 사람이란 걸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입술에 남은 빨간 자국을 닦고 진서준은 허윤진과 함께 나갔다.식사를 마친 후, 진서준은 유정 옆에 붙어 있었다.진서준은 지금 유정의 경호원인 김평안이기에 허사연과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하지만 조슬기가 진서준과 눈을 마주치자 진서준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유정아,
그렇게 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일뿐더러 유씨 가문을 곤란한 상황에 몰아넣을 뿐이었다.“아참, 오빠, 우리 집은 최근에 성약당과 협력해서 새로운 제품을 연구했어요. 회사에 도착하면 그 제품 좀 봐주세요.”유정이 갑자기 새 화제를 꺼냈다.“응? 어떤 새 제품인데?”진서준도 흥미가 생겼다.지금의 성약당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그곳 장로들의 의술과 인품은 예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고 그들이 연구한 제품은 분명 평범한 게 아닐 것이다.“성약당 대장로가 말하길 그 제품은 회연단이라고 하는데, 피부를 촉촉하게 하고 노화도 늦출 수 있대요.”유정은 신난 표정으로 제품을 소개했다.모든 여성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생각은 분명 비현실적이었다.이 세상 그 누구도 영원히 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설령 지선 경지에 이른 절세 고수라도 젊음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었다.단, 진서준처럼 선법을 수련하는 경우는 예외였다.하지만 그 선법을 수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현재까지 진서준이 만난 사람 중, 교회 사람과 구지범이 가짜 선법을 배웠었다.하지만 가짜 선법과 진짜 선법은 큰 차이가 있었다.“그래? 네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해지네.”진서준은 웃으며 대응했다.피부 노화 방지 처방전에 관해 진서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효과가 어떨지는 진서준이 직접 시험해 본 적 없었다.하지만 이 모든 지식은 창욱 어르신한테서 전수한 것이라 완벽한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일정한 효과는 있을 것이다.곧 두 사람은 회사에 도착했다.유씨 가문의 회사 빌딩은 백 미터 길이에 달하는 웅장한 빌딩이었고 이 빌딩 전체가 유씨 가문 그룹 소유였다.사무실에 들어가자 유정은 자기 비서와 마주쳤다.외부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유정의 태도는 즉시 변했다.진서준 앞에서 보였던 단순하고 고분고분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가 넘치는 강력한 리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방 비서,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회연단 가져오세요.”“유 대표님,
저녁 무렵, 수안 호텔.금도에서 유명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호텔인 수안 호텔의 면적은 매우 넓었다.수안 호텔은 한국식 왕궁의 아름다움과 서양식 고층 빌딩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정원, 대나무 숲, 와이너리, 심지어 인공 호수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그야말로 곳곳에서 고귀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최고급 호텔이었다.이 순간, 수안 호텔 입구에 은백색 벤틀리 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고 하얀색 연회복을 입은 유정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본래 어여쁜 외모를 자랑하는 유정은 정성껏 꾸민 후 더 매력적으로 변했다.차가운 기질과 이쁜 미모가 어우러지며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성들의 몸에 있던 시선을 전부 끌어갔다.모든 남자가 유정을 주목하며 눈에서 탐욕스러운 금빛을 뿜어냈다.“이야, 저 여자는 어느 가문 딸이지? 너무 예쁜데?”“모르겠어, 근데 저 차 보니까 유씨 가문 번호판 같지 않아?”벤틀리의 번호판은 여섯 개의 6으로 이루어졌다.금도에서 유씨 가문 외엔 이런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차가 없었다.유정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잘 나타나지 않아 그녀를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이번에 유정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하나는 장씨 가문과 유씨 가문 사이의 관계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랑하려는 의도였다.자랑하려는 사람은 물론 유정 곁에 있는 진서준이었다.하지만 이번에 진서준은 김평안의 인피면구를 쓰고 연회에 참석했다.“금도에도 이렇게 멋진 호텔이 있었어?”차에서 내린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수안 호텔은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름답고 웅장한 빌딩이었다.“금도는 국내에서 유명한 도시잖아요. 게다가 이 수안 호텔은 장씨 가문의 전용 장소예요. 장정범 부자는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서 이곳을 굉장히 화려하게 꾸민 거예요.”진서준은 유정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지하 세계를 누비다가 신분 세탁한 사람들은 체면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유정 씨,
유정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정말 병에 걸려 쓰러졌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지도 몰라요. 오랜만에 푹 쉴 기회가 생겼으니까요.”유정의 물 흐르듯이 완벽한 연기를 보며 진서준은 속으로 감탄했다.시간은 정말 최고의 스승이었다.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유정의 변화를 본 진서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박진용은 당황해하지 않고 가볍게 웃어넘겼다.“저도 다른 사람들한테 들은 소문이에요. 시간도 늦었는데 같이 들어가실래요?”“박 도련님, 먼저 가세요. 저는 여기서 잠깐 있을게요.”유정이 평온하게 거절했다.박진용의 속셈을 잘 알고 있는 유정은 일부러 박진용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유정은 박진용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유정의 마음은 오래전부터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알겠어요. 그럼 유정 씨, 여기서 바람 쐬시면서 편히 계세요.”박진용은 웃으며 돌아서서 떠났다.박진용이 멀어지자 유정은 비로소 긴장을 풀며 웃었다.“오빠, 방금 저 사람은 박서명의 둘째 아들 박진용이에요. 박씨 가문은 여기서 여러 회사를 운영하고 박진용은 그걸 전담하고 있어요. 우리 유씨 가문과도 사업적으로 연관이 많죠.”유정이 박서명과 그의 회사를 소개했다.진서준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유정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누구나 가족에게만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었다.지금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전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진심을 내보이면 마찬가지로 진심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냉혹한 칼날만 돌아오기 일쑤였다.진서준이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저 사람이 너희 회연단을 훔칠 가능성은 없어?”“아마 없을 거예요. 박씨 가문 가주는 주로 인터넷 사업을 하고 약재 생산에는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어요.”유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제 병에 관한 소식은 누군가 밖에 퍼뜨렸네요.”유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유정이 병에 걸렸을 때, 유씨 가문은 이 소식을 철저히 차단하려 했었다.그 이유는 회사 내에
그 가벼운 말투에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고개를 돌리니 선글라스를 쓰고 어려 보이는 얼굴에 교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이 두 사람 뒤에 서 있었다.“장 도련님.”유정은 차가운 표정으로 바로 인사했다.이 사람은 바로 오늘 연회의 주인공인 장정범의 아들 장우림이었다.“며칠 보지 못했더니 유정 씨는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네요.”장우림은 눈을 가늘게 뜨며 경박한 목소리로 말했다.선글라스 밑에서 장우림의 눈은 배고픈 늑대가 사냥감을 노려보는 것처럼 유정을 노려보았다.유정은 장우림의 눈에 맛있는 먹잇감인 듯한 느낌이었다.“장 도련님, 과찬이세요.”유정은 여전히 쌀쌀하게 대응했다.“유정 씨 피부도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네요.”장우림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거리낌 없이 손을 뻗어 유정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유정의 얼굴에는 더 짙은 냉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장우림의 손이 유정에게 닿기도 전에 진서준은 유정의 손목을 꽉 잡았다.“넌 씨X 누구야? 이 손 못 놔?”장우림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눈에서 불꽃을 튕겼다.“네 손을 공제하지 못하겠으면 내가 대신 부러뜨려 주마.”진서준도 역시 쌀쌀한 목소리로 말했다.공공장소에서 유정의 얼굴을 만지려는 행동은 공개적으로 성희롱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내가 누구인지 알기나 해?”장우림은 선글라스를 벗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물었다.“네가 누구든 상관없어. 유정 씨에게 손대는 건 용납할 수 없어.”진서준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차가웠다.“얼씨구?”장우림은 대놓고 진서준을 비꼬아대기 시작했다.“유정 씨 집에서 키우는 개는 꽤 충성스럽네요.”“장우림, 그따위로 말하겠으면 닥치는 게 좋을 거야.”유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늘은 네 생일이야. 공공장소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내 앞에서 썩 꺼져.”자기를 성희롱하고 진서준을 모욕한 건 유정이 그냥 웃어넘길 수 없었다.“망신당한다고? 내가? 잊지 마, 여긴 우리 장씨 가문 세력 범위 안이야.”장우림은 악랄하게 웃으며 말했다.“너 경호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