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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또 찾아 올꺼요.

Auteur: 연월담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21 13:46:24

그 순간이었다.

상석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사람들 사이, 장독대로 시선을 옮겼다.

갓 아래로 눈이 마주쳤다.

이현의 손에서 쥘부채가 미끄러졌다. 부채가 사방침에 부딪혀 탁, 소리를 냈다. 가야금 소리가 그 바람에 한 박자 엇나갔다.

수백 년 동안 무엇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던 대쪽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살짝 무너졌다.

가영은 그걸 보지 못했다. 들켰다는 생각에 장독대 위에서 허겁지겁 몸을 숙이느라 바빴다.

"나리?"

호준이 이현을 돌아보았다. 이현이 부채를 떨어뜨리는 걸 처음 보았다.

"왜 그러시오?"

“아무것도.”

"아무것도가 아닌데." 호준이 이현의 시선을 따라갔다. 마당 구석, 장독대. 그 위에서 갓 쓴 작은 사내 하나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갓이 너무 커서 엎드린 몸보다 갓이 더 커 보였다.

호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다 반달이 되었다.

그는 부채를 탁 펼쳐 장독대 쪽을 가리키며, 대청이 쩌렁쩌렁 울리게 외쳤다.

"저기! 장독대 위에 갓 쓰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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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마몽(天馬夢) -백마가 꿈길을 건너오면   29화.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 게 아니라 구할 수가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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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마몽(天馬夢) -백마가 꿈길을 건너오면   26화 또 찾아 올꺼요.

    그 순간이었다.상석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저 멀리 사람들 사이, 장독대로 시선을 옮겼다.갓 아래로 눈이 마주쳤다.이현의 손에서 쥘부채가 미끄러졌다. 부채가 사방침에 부딪혀 탁, 소리를 냈다. 가야금 소리가 그 바람에 한 박자 엇나갔다.수백 년 동안 무엇을 보아도 흔들리지 않던 대쪽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살짝 무너졌다.가영은 그걸 보지 못했다. 들켰다는 생각에 장독대 위에서 허겁지겁 몸을 숙이느라 바빴다."나리?"호준이 이현을 돌아보았다. 이현이 부채를 떨어뜨리는 걸 처음 보았다."왜 그러시오?"“아무것도.”"아무것도가 아닌데." 호준이 이현의 시선을 따라갔다. 마당 구석, 장독대. 그 위에서 갓 쓴 작은 사내 하나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갓이 너무 커서 엎드린 몸보다 갓이 더 커 보였다.호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다 반달이 되었다.그는 부채를 탁 펼쳐 장독대 쪽을 가리키며, 대청이 쩌렁쩌렁 울리게 외쳤다."저기! 장독대 위에 갓 쓰신 분! 거기 처자도 지원자요?"마당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장독대 위의 갓이 움찔했다."처자 아니오!"갓 아래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낮추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그러나 누가 들어도 처자 목소리였다."나, 나는 사내요!""사내?" 호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내가 어찌 그리 목소리가 고우시오?""감기요!""감기 걸린 사내가 장독대엔 왜 올라가셨소?"“구경하러!”구경꾼들 사이에서 킥킥 웃음이 터졌다. 그 옆에서 분이가 머리를 당으로 쳐박고 엉덩이를 하늘만치 올린채 엎드려 있었다. 차라리 땅으로 꺼지고 싶은 얼굴이었다.월향이 치맛자락을 살랑이며 장독대 쪽으로 다가갔다. 코를 킁킁거렸다."어머. 분 냄새."“이건 우리 어머니 분이오. 어머니가 바르는 걸 옆에서…….”"어머니 분을 왜 아드님 목덜미에서 맡을 수 있을까?"설화가 팔짱을 끼고 다가왔다."갓 끈을 왼쪽으로 맸군. 사내는 오른쪽으로 매오."“나는 왼손잡이요!”호연이 쿵쿵 걸어와 장독대 앞에 섰다. 장

  • 천마몽(天馬夢) -백마가 꿈길을 건너오면   25화. 갓 쓴 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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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마몽(天馬夢) -백마가 꿈길을 건너오면   24화 천년을 한결같이

    세 번째 처자는 들어오는 소리부터 달랐다.쿵. 쿵. 쿵.대문이 흔들렸다. 마당의 자갈이 튀었다. 월향과 설화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더니, 동시에 털이 곤두섰다. 둘의 치마 아래로 꼬리가 열 개 한꺼번에 삐죽 튀어나왔다.마당에 처자 하나가 서 있었다.키가 컸다. 이현과 호준만큼은 아니어도 웬만한 장정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어깨가 넓었고, 팔뚝이 단단했다. 노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었는데, 저고리 소매에 줄무늬처럼 검은 수가 놓여 있었다. 얼굴은 의외로 순했다. 눈이 동그랗고 컸다. 그런데 그 눈동자가 노르스름했다."저, 저어……."목소리가 작았다. 몸집에 안 어울리게 쭈뼛거렸다."방 보고 왔는데요……. 귀신 안 무서워하는 사람 뽑는다고 해서……."호준이 침을 꿀꺽 삼켰다."이, 이름이?""호연이요.""무, 무얼 잘하시오?""검무요."호연이 등 뒤에서 칼 두 자루를 꺼냈다. 칼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쌍칼이라 하기엔 너무 컸다. 한 자루가 제 키만 했다."이, 이건 어디서 났소?""대장간에서 제일 큰 걸로 달라고 했어요. 작은 건 자꾸 부러져서……."호연이 마당 한가운데 섰다. 칼을 양손에 쥐고, 숨을 한 번 고르더니 춤을 시작했다.아름다웠다. 의외로. 칼끝이 허공에 은빛 원을 그렸고, 치맛자락이 바람을 갈랐다. 몸집에 비해 놀랍도록 가벼운 걸음이었다.그리고 마당의 감나무가 두 동강 났다.춤이 이어졌다. 장독대 뚜껑이 날아갔다. 빨랫줄이 끊어졌다. 담장 기와 세 장이 동시에 떨어졌다. 칼끝이 대청 쪽으로 휙 돌자 호준이 상 밑으로 몸을 던졌다. 월향과 설화가 서로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마지막 동작에서 호연이 두 칼을 하늘로 치켜들며 외쳤다."어흥!"정적.호연이 제 입을 틀어막았다.“죄, 죄송해요. 신나면 자꾸 나와서.”상 밑에서 호준이 기어 나왔다. 상투가 반쯤 풀려 있었다."나리…… 저건?""범이다.""그건 나도 알겠소.""김현이라는 사내를 사랑했던 범 처녀가 있었다. 신라 때."호준이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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