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루카스는 거실 구석에서 카시엘과 아리나의 묘한 기류를 목격했다.평소라면 "천사양반! 내 동생 손 놔!" 라고 소리쳤겠지만,그는 왠지 모를 서글픔에 입을 다물었다.그는 알고 있었다.아리나가 밀러 가문의 막내딸이 된다는 것은,그녀가 이제 평범한 여자가 아닌,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리라는 것을."형사님, 뭘 그렇게 멍하니 봐요?" 테리가 영양제를 건네며 물었다. "교수님, 우리 부모님이 아리나를 친양자 입양하려는 진짜 이유.... 알고 있었죠? 아리나가 가진 그 힘... 사람은 물론 악마들의 마음조차 선으로 돌리는 그 능력이요."테리는 침묵했다.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의 데이터를 그녀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힘을 쓰려면..... 아리나가 제물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도..."루카스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그래서 내가 더 오빠 노릇을 하려는 거에요. 법적으로 내 동생이 되면...... 적어도 악마들이 함부로 그녀의 피를 요구하지는 못할 테니까... 카시엘, 저 어설픈 뚝딱이 천사한테만 아리나를 맡겨둘 순 없잖아요.."루카스는 아리나에게 다가가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밀러 가문의 상징 펜던트를 그녀의 목에 걸어 주었다."아리나, 이제부터 넌 진짜 내 동생이야. 어떤 신이나 악마도 내 허락 없이는 네 몸에 손끝 하나 못 대. 알았지?"루카스의 듬직한 선언에 아리나는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카시엘은 그 광경을 보며 말도 안되는 질투를 느꼈지만,아리나를 지키기 위한 루카스의 진심을 인정하며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깊은 밤.요새화 된 거실에는 촛불 하나만이 위태롭게 타오르고 있었다.루카스와 테리는 다음 습격을 대비헤 현관쪽을 지키고 있었고,아리나와 카시엘은 화실 구석에 마주 앉았다.아리나는 흐르는 코피를 닦아내고는 떨리는 어깨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카시엘, 저 때문에 모두가 위험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밀러 가문의 딸이 되어도 되는 걸까요? 그게 이 전쟁을 멈추는 게 아니라 더 키우는 건 아닐까요? 저 때문에 루카스 오빠의 가족들이 다 위험에 빠지면 어떡해요?"카시엘은 망설이듯 어정쩡하게 아리나에게로 다가갔다.그는 예전처럼 기계적으로 "당신의 안전 수치를 계산 중입니다"라고 말하는 대신,조심스럽게 아리나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인간의 체온을 배운 천사의 손은, 이제 제법 따뜻해져 있었다."아리나, 당신이 누구의 딸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그 능력을 갖게 되는 대가가 당신의 고통이라면, 나는 이 전쟁을 끝까지 막을 것입니다."카시엘은 아리나의 젖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수호천사의 의무감보다 한 남자의 애틋함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아리나는 카시엘의 시선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루카스 형사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느끼는 안도감과는 전혀 다른,심장이 꽉 막히는 것 같은 긴장감이 그녀를 덮쳐왔다."카시엘... 당신에게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아리나의 물음에 카시엘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이마를 가만히 맞대었다.그 행동은 천계의 의식도, 수호의 맹세도 아니었다. 오직 한 여자만을 향한, 인간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인간의 사랑..그 마음을 배운 천사가 하는 서툰 사랑의 고백 연습이었다.
복도를 뚫고 거실로 침입하려는 하급 악마들의 손길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테리는 공포에 질린 것이 아니라,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그녀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신앙과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충돌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내 환자들, 내 동료들... 너희 같은 것들이 건드리게 두지 않아, 절대로."테리가 손을 뻗자,치유의 은사로만 쓰였던 은빛 반짝임과 동시에 발현한 초록 광채가날카로운 채찍처럼 변해 악마들을 채찍질 하듯 타격했다.초록 빛줄기가 닿는 곳마다 악마들은 비명을 지르며 재가 되어 흩어졌다.테리 자신도 놀란 표정이었지만,그녀의 손등에는 성스러운 문양이 낙인처럼 새겨지기 시작했다.루카스는 그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교수님... 당신 정체가... 대체 당신, 뭡니까? 언제부터... 수술실에서 칼만 쓰는 줄 알았더니..!성은(성력의 은사)이...""시끄러워요, 형사님! 당신은 당신의 그 수호령이나 잘 관리해요!"테리는 차갑게 쏘아붙였지만,루카스의 황금빛 기운이 자신을 감쌀 때마다 심장 박동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카시엘은 화실 벽에 걸린 아리나의 초상화가 은은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카시엘의 뒤에 앉아 기도하는 아리아의 주변으로 오로라빛 오라가 휘몰아 치더니 그들이 있는 공간 전체를 감쌌다.아리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타인의 악한 마음을 녹이는 기적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악아들의 검은 날개가 눈처럼 하얗게 변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진 풍경을 목격한 루카스와 테리...카시엘은 아무것도 모른채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는아리나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뉴욕 미드타운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평범한 시민들은 그것을 이례적인 황사나 오염된 안개라고 생각하며 창문을 닫았지만,오피스텔 25층의 요새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들에게그것은 명백한 재앙의 신호였다.루시퍼의 비호아래 사다니엘이 보낸 악마군단은오피스텔 전체를 영적 결계로 고립시켰다."루카스,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사라졌어. 여긴 지금 지상에서 떨어진 허공이나 다름없어!"테리가 차트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그녀의 은빛 눈동자는 이미 복도 너머에서 기어오는은빛 그림자들을 투시하고 있었다.루카스는 권총 대신 밀러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성스러운 단검을 꺼내 들었다.그의 등 뒤에서 황금빛 수호령이 거대하게 일렁이며복도를 메운 검은 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걱정 말아요, 교수님. 밀러 가문의 성벽은 그렇게 쉽게 안 무너져. 아리나! 카시엘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아리나는 카시엘의 손을 꼭 잡았다.카시엘의 손은 차가웠지만,그 손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은 두려움이 아닌아리나를 향한 거대한 걱정과 두려움, 보호 본능이었다.카시엘은 어설프게 아리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백색광이 검은 안개와 충돌하며날카로운 파찰음을 냈다.카시엘은 직감했다.악마들이 이토록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이유는아리나가 밀러 가문의 호적에 이름을 울리는 순간,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의 영매가 탄생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리나는 밀러 가문의 친양자 입양 제안 이후 더욱 심란해졌다.그녀는 카시엘이 자신을 멀리하는 것만 같아 서운했다.카시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화실에 박혀 그림만 그렸고,아리나가 다가가면 "그림에 집중해야 합니다" 라며 차갑게 선을 그었다."카시엘. 제가 밀러 가문에 들어가는 게 싫은 거예요? 왜 내 눈도 안 봐요?"아리나의 당돌한 질문에 카시엘은 붓질을 멈추었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리나를 바라보았다.예전의 무심한 눈빛이 아니었다.그 안에는 갈망과 슬픔, 그리고 이름 모를 열기가 섞여 있었다.아리나는 카시엘의 눈동자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로 보고 있는한 남자의 시선을 느꼈다."저는 당신이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의 황금빛 속에 섞여 들어갈 때,나의 백색광이 당신에게 닿지 않을 까 봐...... 그것이 두렵습니다."카시엘은 어설프게 아리나에게 다가갔다.그는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넘겨주었다.이것은 수호의 손길이 전혀 아니었다.아주 미숙하지만 확실한 의 표현이었다.아리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설레임을 느꼈다.루카스 형사에게 느끼던 편안한 남매의 정과는 차원이 다른,전기가 흐르는 듯한 긴장감이었다."카시엘... 당신은 저에게 그냥 천사가 아니에요. 당신은...."아리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피스텔 복도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악마들의 대규모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이제 평화로운 썸의 시간은 끝나고 아리나를 차지하기 위한 천상과 지상의 전쟁이 시작을 알리는 막이 올랐다.카시엘은 아리나의 손을 꽉 잡으며 선언했다."절대 내 손을 놓지 마십시오. 당신이 누구의 딸이 되든, 당신의 영혼은 나의 것입니다."
밀러 가문의 루카스 부모님은 아리나를 저택으로 불러 정식으로 제안했다."아리나, 네가 허락한다면 우리 가문의 양녀로 들어왔으면 하는데... 법적인 보호뿐만 아니라 우리 가문이 가진 모든 영적인 방패를 너에게 주고 싶단다."아리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회장님, 전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에요. 저 때문에 여러분이 위험해 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마가렛 밀러는 아리나를 품에 꼭 안았다."어머나.. 그건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 가문이 아리나, 너를 선택한 거야. 우리는 이미 너를 우리 딸로 맞을 마음의 준비를 다 했고, 루카스가 너를 여동생으로 여기듯 우리도 너를 딸로 생각하고 있어."루카스는 이 광경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아리나가 자신의 여동생이 된다면,그는 평생 그녀를 합법적으로 지킬 명분이 생기는 것이었다.그는 카시엘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천사양반, 이제 아리나는 공식적으로 내 동생이 될 거야. 당신이 목숨걸고 지키지 않아도 밀러 가문의 군대가 그녀를 지킬 거라고."카시엘은 수화기를 들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축하... 축하해야 할 일이군요."그의 목소리는 기계적이었지만 가슴 속 핵(core)은 요동치고 있었다.아리나가 밀러 가문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더 이상 옥탑방의 추억을 공유하던 가 아니라는 뜻이었다.카시엘은 화실 벽에 걸린 아리나의 초상화를 손으로 쓸어내렸다.'당신이 인간의 가족을 얻는 것이 당신의 행복이라면, 나는 기꺼이 소외되겠습니다.'천사의 이타심과 인간의 소유욕이 충돌하며 카시엘의 내면에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루카스는 치료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아리나와 마주쳤다.아리나는 루카스의 상처를 보며 진심으로 걱정했다."형사님, 고생 많으셨어요. 정의를 위해 싸우시는 모습도, 다른 분을 먼저 배려하시는 모습도,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 리스펙해요"루카스는 수많은 칭찬을 들어봤지만, 아리나의 한마디는 결이 달랐다.그녀의 눈에는 가식이 없었다. 루카스의 거친 심장이 조금 느리게 뛰었다."아... 뭐,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간호사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시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날 오후, 응급실은피범벅이 된 환자와 그를 데려온 경찰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그 중심에 루카스가 있었다.그는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어깨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동료들의 안위부터 챙기고 있었다."난 괜찮으니까 저쪽부터 봐줘요! 저 친구가 피를 더 많이 흘렸어!"루카스의 외침에 카시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루카스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황금빛 기운.그것은 대대로 선을 행한 집안에서만 나타나는 강력한 가호였다.'저 남자다.'카시엘은 직감했다.저 남자 곁에 아리나를 둔다면,자신이 뚝딱거리며 바닥을 닦지 않
응급실에서 퇴원한 카시엘은 갈 곳이 없었다.아리나는 이 신원 미상의 남자를 길바닥에 버려둘 수 없었다.결국 자신의 작은 자취방 거실을 내어주기로 했다."여기가 제가 사는 곳이에요. 좁지만 지내기엔 나쁘지 않을 거예요."카시엘은 거실 한복판에 꼿꼿하게 서서 집안을 응시했다.천사의 눈으로 본 그곳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아리나가 매일 올리는 기도와 선행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하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은 카시엘에게 당장 닥친 문제는 영적인 것이 아니었다."아리나, 제 다리가... 제멋대로 접히려고 합니다."
뉴욕의 밤공기는 차가웠지만,아리나의 마음은 그보다 더 시린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성 빈센트 병원 응급실 수간호사인 아리나의 삶은언제나 타인을 위한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그 대가는 늘 가혹했다.가난한 환자의 병원비를 몰래 보태준 날에는 어김없이 집안에 물이 샜고,약한 이를 괴롭히는 무리를 말린 다음 날에는 원인 모를 사고가 그녀를 덮쳤다.사람들은 그녀를 '성녀'라 불렀으나,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검은 그림자들은그녀의 선함을 비웃으며 불운의 덫을 놓았다.그날 밤도 그랬다.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