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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Author: 케사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6 14:00:06

강혁은 모니터 한가운데 떠 있는 메모장을 바라봤다.

테스트 필요.

네 글자.

어제 면접이 끝난 뒤 적어놓은 그대로였다.

지우려다 몇 번이나 커서를 올렸다.

지우지 못했다.

다른 말로 바꿀 수도 없었다.

‘확인.’

‘관찰.’

‘판단.’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메모장을 닫지 않은 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 없음.

익숙한 화면이었다.

문장을 길게 쓰지 않았다.

[모레 오후 2시. 같은 장소.]

[이번에는 신체 접촉이 포함됩니다.]

[참여 여부를 오늘 자정까지 회신하십시오.]

전송.

메시지가 사라졌다.

강혁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잠시 그대로 앉아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바로 잡았다.

소매 끝도 한 번 정리했다.

그 버릇이 나온 뒤에도 방 안은 그대로 조용했다.

메모장은 여전히 빈칸을 남긴 채 깜빡이고 있었다.

⸻

은유는 저녁을 막 마치려던 참이었다.

컵라면 뚜껑을 덮어놓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발신자 없음.

문자를 읽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이번에는 신체 접촉이 포함됩니다.

은유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가만히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면접은 끝났다.

질문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체 접촉.

무엇을 한다는 걸까.

어디까지가 테스트일까.

겁이 나지 않는건 아니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몸을 맡긴다는 건, 아무리 스스로 원했던 일이라도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은유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

‘안 가도 된다.’

그 생각이 처음으로 스쳤다.

아직 계약도 아니었다.

거절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누가 비난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뒤로 가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면접 마지막 장면만 자꾸 떠올랐다.

“왜 문을 두드리지 않았습니까.”

“손해가 적다고 판단해서요.”

“긴장 안 했습니까.”

“안 보이려고 했으니까요.”

그 질문들보다 더 선명한 건,

질문 사이사이 길게 이어지던 침묵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

사람을 읽으려는 눈.

아니.

읽어내지 못해서 더 오래 바라보던 눈.

은유는 천천히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답장은 짧았다.

[참여하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화면을 바로 끄지 못했다.

이번에는 캡처하지도 않았다.

지우지도 않았다.

복원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뒤에는, 더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대폰 화면이 천천히 꺼졌다.

은유는 식어버린 컵라면을 내려다봤다.

젓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대신 가슴 한가운데가 아주 조금 뜨거워져 있었다.

다음 날.

은유는 오후 한 시 오십 분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시계를 확인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끝만 평소보다 조금 차가웠다.

17층.

복도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회색 벽.

검은 문.

문패도, 초인종도 없었다.

은유는 문 앞에서 멈췄다.

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이번에도 두드리지 않았다.

잠시 뒤.

철컥.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강혁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책상 뒤가 아니었다.

문을 연 채 은유를 잠깐 바라본 뒤 짧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은유는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사무실 안은 달라져 있었다.

책상은 벽 쪽으로 밀려 있었고, 가운데 공간이 비어 있었다.

회의실처럼 꾸며진 것도, 상담실처럼 편안한 것도 아니었다.

불필요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공간 전체가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강혁은 은유가 방 안을 훑어보는 시간을 막지 않았다.

대신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은 면접이 아닙니다.”

은유가 그를 바라봤다.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알겠습니다.”

강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탁자 위에서 서류 한 장을 집어 은유 앞으로 내밀었다.

“읽어보세요.”

은유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길지 않았다.

오늘 진행되는 절차에 대한 안내와 중단 의사 표현, 종료 기준 같은 기본적인 내용만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은유는 끝까지 읽은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읽었다.

강혁은 재촉하지 않았다.

“질문 있습니까.”

은유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확인하지 않고 서명하는 습관은 좋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은유는 다시 종이를 내려다봤다.

이번에는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었다.

강혁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몇 분 뒤.

은유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괜찮습니까?”

강혁이 물었다.

“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읽고 이해한 뒤에 결정했으니까요.”

강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좋습니다.”

은유는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종이를 건네자 강혁은 바로 치우지 않았다.

서명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파일에 넣었다.

“오늘 제가 보는 건 잘하는지를 보는게 아닙니다.”

은유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지시를 들었을 때 어떻게 판단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은유는 짧게 대답했다.

“네.”

“억지로 버틸 필요도 없습니다.”

강혁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높이를 유지했다.

“불편하면 말하세요.”

“말하면.”

은유가 처음으로 질문했다.

“끝입니까?”

강혁은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그 시점부터 다시 판단합니다.”

은유는 그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녀가 기대했던 답도, 예상했던 답도 아니었다.

강혁은 시계를 한 번 바로잡았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비어 있는 공간을 가볍게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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